야쿠자
1. 개요
일본에서 조직을 형성하여 폭력으로 직업적으로 범죄 활동에 종사하여, 수입을 얻고 있는 자를 말한다. 별칭은 'Japanese Mafia(일본 마피아)'다.
'야쿠자'는 속어로서 특정 단체, 조직의 명칭이 아니다. 야쿠자들은 스스로를 임협(닌쿄) 또는 극도(極道•고쿠도)라 칭한다. 80년대는 협객(俠客)이라는 자칭도 많이 사용했고, 지금도 야쿠자가 아닌 사람이 야쿠자와 직접 대화할 때 야쿠자를 높여 부르려면 이 단어를 쓴다. 한편 경찰 등 정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폭력단(暴力団 보료쿠단)이며, 그 중에서도 일정 조건을 만족하여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있는 폭력단을 지정폭력단(指定暴力団 시테이보료쿠단)이라고 한다.
일본 경찰청 조직범죄대책부 조직범죄대책기획과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일본 내에 야쿠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10년전을 기점으로 급감세에 있다.
60년대 중후반 벌어진 제1차 정상작전[1] 이후 각지에서 군림하던 조직들이 해산과 재구성을 거듭하여 2015년 8월경 까지 전체 야쿠자의 절반 가량은 일본 야쿠자 3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카이(住吉会)''', '''이나가와카이(稲川会)''' 소속의 하위조직이 되었고, 나머지 절반 역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2020년 기준 경찰의 단속과 폭대법으로 인한 자금확보가 어려워서 야쿠자들의 숫자는 크게 줄고 있다. 야마구치구미 약 8,900명, 스미요시카이 약 4,500명, 이나가와카이 약 3,400명으로 3대 조직이라 불리는 거대 조직의 구성원 숫자가 줄고 다른 폭력단들도 마찬가지다.
야마구치에서 분리된 고베야마구치구미도 분리 당시 6600명에서 절반 정도인 3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현재는 야마구치구미, 고베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라는 4개 조직의 구도가 된 상태이다.
하지만 4대 야마구치구미의 분열 당시 규모가 현재의 고베야마구치구미보다도 컸던 이치와카이가 5년 정도의 항쟁후 다시 야마구치구미에 재흡수되었던 사례도 있었기에 앞으로 어떠한 추세로 진행될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
2017년 2월에는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닌교(任侠·임협·남자답고 용감함) 야마구치'가 떨어져 나와 야마구치 구미는 3등분 되었다. 日 최대 야쿠자 ‘넘버2’ 출소…‘유혈 참극’ 시작되나?
2020년 1월 닌교야마구치구미가 갑자기 조직명을 키즈나카이라 바꾸고 야마구치란 이름을 버렸다. 현지에선 야마구치 삼국지에서 빠저서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이다. 키즈나카이도 조직원이 감소세로 분열당시 770명에서 현재는 610명 규모이다.
2020년 4월 2일 일본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말 현재 일본 전국의 폭력단원 숫자는 2만 8200명으로 폭력단 세력의 피크인 1963년 18만 4100명에 비하면 그 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2. 명칭 유래
야쿠자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많은 설이 있으며, 그 중에서는 하나후다로 하는 도박인 오이쵸카부(おいちょかぶ)의 필패수인 893 조합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오이쵸카부는 패 3장을 뽑아 숫자 합의 끝자리를 가장 높게 만드는 도박으로 카부 도박에는 "7 이상을 뽑으면 다음 장을 뽑지 않아도 된다"는 기본 규칙이 있다. 만일 첫 장을 뽑아 8, 둘째 장을 뽑아 9가 나오면 끝자리가 7이 되는 좋은 조합이다. 여기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손을 멈추겠지만, 비상식적으로 모 아니면 도를 고집하는 사람이면 한 장을 더 뽑아 좋아야 본전, 나쁘면 3을 뽑아 0을 만들고 자멸할 것이다.
이처럼 쓸모 없는 조합인 8(や), 9(く), 3(ざ)를 단어로 만들고 '쓸모 없는 존재, 인생을 무모한 도박처럼 살아가는 인간'[2] 이라는 의미로 사용해왔으며, 나중에는 후자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들이 반사회적인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집단'으로 변하여 바쿠토를 일컫는 단어가 되었다는 설이다.[3]
3. 역사
문단이 길어 분리되었다. 야쿠자/역사 참고.
4. 구성
야쿠자들은 자신들의 패거리를 XX구미(組) 또는 XX카이(会)라고 부른다. 한 때는 구미나 카이 외에도 XX흥업(興業) 또는 XX흥산(興産)이라는 간판을 내거는 조직도 제법 있었는데, 이쪽은 興이라는 글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주로 예능계와 유착한 조직이다.[4] 다만, 현재는 예능계 자체가 적극적으로 폭력단과의 근절을 추진한 탓에 흥업, 흥산 계열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국과 달리[5] 이런 구미, 카이 등의 조직명을 아주 공개적으로 활용하는데 일본에서 야쿠자가 운영하는 사채업자 상당수는 조직명을 공개적으로 붙이고 영업하는 경우가 잦다
일본에서 구미, 카이는 보통 곤고구미(金鋼組)처럼 일반적인 건설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명칭인데, 야쿠자가 이런 명칭을 쓰게 된 이유는 1884년에 '오카리코미(大刈込み)'라는 도박단속법이 발표되면서 아쿠자들이 도박사업을 숨기기 위해 건설회사 이름으로 쓰이던 구미를 자신들 패거리의 이름으로 썼고, 이것이 야쿠자 구미의 시초가 된다.
역대 두목들이 많아질 수록 몇대 째~라고 대수를 조직 이름 앞에 붙이기도 한다.(예: 로쿠다이메 야마구치구미(6대째 산구조))
4.1. 위계
야쿠자 구미의 위계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 소사이(総裁) : 총재. 일반적으로 두목이 후임한테 직위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나면 얻는 명예회장 같은 칭호로 많이 쓰이지만 따로 사카즈키고토를 조정하지 않고 두목을 총재라 부르기도 한다.
- 구미초(組長) : 두목. 폭력조직의 우두머리로 조직명에 따라 카이초(会長)[6] 나 소쵸(総長)[7] 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오야붕(親分)이라는 호칭은 조직원들의 아버지같다는 의미에서 부르는 일종의 애칭으로, 구미초가 아닌 조직원들은 구미초에 대비되는 구미인(組員, 조원)으로 지칭하거나 자식이라는 의미의 꼬붕(子分)으로 부른다. 이들은 조직의 얼굴 역할을 하면서 대외 활동에 힘을 쏟는 편이다.
- 와카가시라(若頭) : 부두목. 본래 일본에서 마을 청년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단어로, 구미초 아래 조직원들 중 맏형이라는 의미이다. 실질적으로 구미초의 명령을 받아 조직을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와카가시라 직위에 있는 이들이 가장 유력한 차기 두목 후계자라고 볼 수 있다.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는 주로 '서열 2위'로 번역되는데, 사실 구미초 다음가는 실권자이기는 하지만 '공식 서열'까지 2위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8] 조직에 따라 회장 밑에 부회장이 있고 그 밑에 와카가시라가 또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와카가시라 호사(若頭補佐) : 부두목 보좌. 여기서부터 조직의 간부로 대우받는다. 일반적으로는 구미초 및 와카가시라의 업무를 보좌하며, 와카슈 및 준고세이인들에게 실행 명령을 내리면서 이들을 관리한다.
- 와카슈(若衆) : 행동대원. 사카즈키고토를 마치고 정식으로 조직원이 된 자를 가리킨다.
- 준고세이인(準構成員) : 준조직원. 쿠미인보다 아래에 있는 구성원으로 한자에서 보이듯이 아직 사카즈키 의식을 치른 정식조직원이 아니라 조직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간보는 단계이다. 때문에 나갈 때 손가락을 자른다던지 하는 의식 역시 없다. 야쿠자물을 보면 준구성원 단계를 거치지 않고 조직원으로 바로 받아주는 것만 해도 파격적으로 본다.
- 샤테이가시라(舎弟頭) : 두목과 형제관계를 맺은 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 와카가시라와 비슷한 간부급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약간 거리가 있는 직책이다. 와카가시라가 실질적인 조직 운영을 담당한다면, 샤테이가시라는 쿠미쵸의 상담역에 가깝다. 엠블럼 TAKE2에서 '사제 총책임자'로 번역된 직책이 바로 이것.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는 번역명이 애매하여 그냥 '간부'로 번역되어있다. 일단 두목의 '형제'라는 점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와카가시라에겐 삼촌뻘 되는 항렬이므로 일단 윗사람에 해당한다. 때문에 와카가시라가 하는 일에 윗사람이라고 훈수를 놓는 일이 빈번한지라 최근에는 샤테이가시라 또는 샤테이 자체를 두지 않는 조직이 많다고 한다.
- 키교샤테이(企業舎弟) : 야쿠자 조직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설립한 소위 '프론트 기업'의 사장이나 임원들을 부르는 말. 이런 인물들은 신원이 깨끗해야 하므로 표면적으로는 야쿠자가 아니지만 이들 역시 엄연한 야쿠자다.
- 헤야즈미(部屋住) : 본가의 잔심부름과 두목의 수발을 들며 잡일을 하는 젊은 조직원.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아직 가독상속[9] 을 받지 않은 장남이거나 가독상속을 받지 못하는 차남 이하의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업무 특성 상 조직으로부터 용돈 격으로 돈을 받지만 일이 힘들어서 도망가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4.2. 형태
야쿠자 조직의 구성은 철저한 가부장제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야쿠자 입단식인 사카즈키고토는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결의 의식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야쿠자 두목의 별칭 오야붕(親分)은 부모(親)에 해당한다(分)는 의미로, 수하 조직원들인 꼬붕(子分)들의 아버지라는 의미다. 꼬붕들 사이에서도 가입한 순서에 따라서 서열이 존재하는데 먼저 가입한 조직원을 아니키(アニキ/兄貴), 또는 더 줄여서 아니(兄ィ)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선배 조직원은 후배 조직원을 샤테이(舎弟)라고 부른다. 동기들 간에는 서로를 쿄다이(兄弟)라 부른다.
그리고 야쿠자 조직끼리 합쳐지거나 동맹을 맺으면, 다른 조직의 두목이나 구성원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춰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 경우, 두목 간에는 형제 취급하고[10] 그 산하 조직원들은 서로를 백부 내지는 숙부 취급하여 오지키(オジキ/叔父貴 또는 伯父貴)라 부른다.
반대로 조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세력을 키워 자신들만의 조직을 설립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대부분은 오야붕이 설립한 조직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간다. 이럴 경우 어느어느 카이 산하 누구누구 구미 하는 식으로 간판을 걸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다. 조직원들이 각각 산하 조직을 만들어서 자신의 꼬붕을 갖게 되면, 자신의 샤테이나 아니키는 자신의 꼬붕에게 오지키로 불린다.
이렇듯 야쿠자의 요건을 갖추려면 이미 야쿠자인 사람과 '사카즈키고토'를 마쳐야 한다. 그 외에는 아무리 야쿠자와 친해도 단순 유착관계일 뿐이다.
이러한 가족 관계를 모방한 내부 서열은 야쿠자 조직 내부 뿐만 아니라 야쿠자 조직 간에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대 야쿠자 조직은 그 조직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하부 조직이 암세포처럼 뿌리 깊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만화 엠블럼 TAKE2의 예를 들자면 광역지정 폭력단 칸토 핫슈미 타가미 연합회(1차 조직) 內 타가미 우메자와 일가(2차 조직) 內 제2대 카이에다파(3차 조직) 內 토시오파(4차 조직) 부두목 에바라 싱고와 같은 말단 조직의 간부라는 긴 직함을 가지게 된다. 실제 일본에서 이정도 대규모 조직은 3개 정도밖에 안 된다. 만약 상위 조직의 두목이 된다면, 자신의 조직은 통상 부두목에게 넘겨주고 승격한다.
이런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이기 때문에 맨윗층의 1차 단체 조직의 간부들은 모두 2차 단체의 두목급들이다. 그래서 1차 단체가 수십명 수준이라도 그 밑에 수백명의 조직원이 있을 수 있다. 1차 조직 두목의 직계 간부를 직참(直参)이라 부르는데 원래 에도시대 쇼군의 직계 가신들을 의미했다.
이런 상하관계는 그 자체로 조직 내, 조직 간 권력 관계를 체계화 시키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야쿠자 조직들 특유의 고유한 자금 유통 체제와도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해 거대 조직 내 하위 조직들은 각자 고유한 사업 기반을 가지고 수익을 올리지만 상위 조직의 보호[11] 를 받는 만큼 그들에게 상납금을 바쳐야 하고, 뜯어간 삥은 상위 조직의 주요한 자금 수입원이 된다. 다단계 판매와 매우 유사한 행태다.
여기서 종종 특이하게 나타나는 게 3차나 4차 조직이 1차의 직계로 독립되는 케이스이다. 야쿠자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아래 방향으로 독립해나가지만 종종 독립해나간 한 조직이 유별나게 많은 수익을 올릴 경우 1차 조직은 2차, 3차 조직 선을 거치면서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보이는 하위 조직을 독립 시켜서 자신들의 직계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면 당연히 직계가 된 조직은 조직 내 권력을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1차 조직에만 돈을 바치면 되니 이득이고, 1차 조직은 더 직접적으로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다. 하지만 2차, 3차 조직의 입장에서는 주요한 수입원을 빼앗긴 격이니 열이 받을 수 밖에 없다 보니, 거대 야쿠자 조직 내의 내부 항쟁은 대부분 이러한 독립 직계 및 상납금 문제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다단계식 수익 구조 체계는 대체적으로 초기 야쿠자 조직들에서도 나타나는 모습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체계화 된 것은 야마구치구미의 다오카 카즈오가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으며, 사실상 일본 내 야쿠자 조직들은 항쟁 사건의 조율이 용이하고, 거대 조직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확보된다는 특성 때문에 이러한 조직 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폭대법 이후 수익 구조의 악화와 젊은 층 유입의 감소로 인해 조직 자체의 존속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지니 시간이 지날수록 느슨해져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대규모 야쿠자 조직들의 경우 수뇌부는 지금까지 벌어 놓은 돈을 활용해 각종 투자를 하는 등 돈놀이를 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실질적인 물리적 폭력이나 지역 관리는 외국계 폭력 조직이나 젊은이들로 구성된 조직에 돈을 주고 외주를 맡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구성원과 준구성원이라는 기본의 야쿠자 조직 체계가 폭력단대처법에 의해 집중 규제되면서 이를 우회하기 위해 아예 야쿠자 조직과는 별개의 조직에 이런 범죄행위를 외주를 준다. 그 결과 원래 이런 역할을 맡았던 최하위의 소규모 야쿠자 조직들은 수입원을 상실하여 씨가 말라버리고 있다. 이것은 RICO 법령으로 철퇴를 맞고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미국의 마피아도 같은 실정이다.
4.3. 수입
주 수입원은 초기엔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비 갈취, 도박, 사채 등이었다. 전후 혼란기의 도쿄 등 대도시의 조직들은 흥행사와 연계하여 싸구려 흥행사업을 벌이고, 해안지역 도시에 위치한 조직은 항만하역 등과 관련된 이권개입을 주 수입원으로 삼았다.
지금은 마약이 주 수입원인데. 예전엔 마약 제조나 수입 그리고 유통 모두 담당해왔으나 폭대법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져, 현재에는 한구레같은 폭대법에서 비껴나 있는 외부 조직에게 유통 아웃소싱을 맡기고 있다.
연예계의 경우는 에도 시대의 바쿠토 시절에도 가부키나 순례공연을 후원했을 정도로, 일본 폭력조직과 연예계와의 결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전 서커스와 비슷하게 예능회사가 연예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공연을 주최했던 옛날에는 지역의 야쿠자 조직들이 지역주민들에게 표를 강매한 후 예능회사와 수익의 일부를 나누거나, 아예 공연 자체를 방해한 후 수익의 일부를 강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후 TV와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부터는 주로 특정 회사와 거래를 맺고 경쟁기업들을 야쿠자 조직이 대신 짓밟거나 방해하는 행위가 많아졌는데, 실제로 전후 60~70년대에 크게 성장한 일본 대형 예능회사들은 이러한 폭력 조직의 개입에 의한 알 수 없는 이유에서의 경쟁기업의 몰락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상당히 많았다. 추가적으로 폭력 조직들이 회사창립이나 운영과정에 자금을 투자해서 대규모 확장을 도운것은 덤이다. 폭대법 이후에는 대놓고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적으로는 기업 자체에 폭력 조직이 더러운 자금을 투입해서 기업의 확장을 돕는 한편 돈세탁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예능계의 이런 폭력단과의 관계 때문에 야쿠자 간의 내부투쟁[12] 으로 인해 연예계 관계자가 부상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스포츠에도 많이 개입을 해서 복싱이나 격투기 대회에도 야쿠자가 연루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프로레슬링 공연도 야쿠자와 연루되는 경우가 있었다.
일본 대부분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물수건 납품으로 수입을 얻는 경우도 있다. 야쿠자로부터 납품받는 이 물수건을 카시오시보리[13] 라고 하는데 야쿠자가 많은 카부키쵸 등의 식당이나 주점 등에서 주로 사용한다. 거의 반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점포가 많은데 점포 오너에게 자기들의 물수건을 사용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한다는 듯. 물론 경찰에 신고하면 해결되지만 보복이 무서워서 그냥 사용하는 곳이 많다. 어차피 식당은 물수건이 필수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비교적 음지에 속하는 AV 사업에도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개중에서도 몰카, 투고류와 같은 일반인 대상의 리벤지 포르노와 노모를 주로 다룬다. 다만 아동 포르노 등의 미성년자를 이용한 경우는 일본에서의 처벌 수위 역시 높은데다가 공급책도 마땅치 않고 거기에 그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감수해야 하므로, 오사카의 아주마구미처럼 아예 막 나가는 조직이 아니라면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동 포르노의 경우 필연적으로 아동 학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건설업도 야쿠자의 전통적인 수입원이다. 공기업을 통한 개발이 이루어지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전통적으로 도시확장을 민간 건설과 철도 회사들이 담당해왔는데. 한국은 공공개발이기 때문에 토지수용제도로 공시지가에서 얼마 이상의 땅값을 보상만 해주면 되지만 일본은 수용제도 없이 알박기가 무한정으로 이루어지는 판이라, 토지 강제수용 같은 더러운 일을 맡아줄 역할을 자연스럽게 차지해 왔다. 거기에 건설 인력수급 창구 역할도 하는데 현재에도 임금갈취같은 문제가 비일비재하다.&
폭력단 대책법 수립 이후 대부분의 지정폭력단은 직접적인 불법사업 운영이 힘들어졌고 결국 기업사제라는 방식으로 조직원 일부를 형식적으로 파문, 지정폭력단구성원에서 벗어나게 한 후 이들을 통해 기업을 운영시키거나 불법적인 사업을 운영하여 폭력단 대책법을 회피하곤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폭력단 대책법의 개정으로 막히자 최근에는 아예 공생자라고 하여 폭력단과 완전히 관계가 없는 증권전문가나 금융브로커들과 협력해서 공생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공생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폭력단이 주로 불법적인 사업을 통해 모은 막대한 자금을 이들 공생자들이 각종 페이퍼 컴퍼니 등을 이용해 주식시장에 투자를 한다거나, 합법적인 회사운영에 끼어들어 돈을 긁어모으는 방식이다. 공생자들은 그 자체로 폭력단과는 본래 관계없는 일반인이었다보니 폭대법으로 바로 잡아내기가 어렵고, 대부분 사업, 금융의 전문가들이라 정부규제를 회피하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야쿠자 조직과의 공생관계가 무난하게 성립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생관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제쿠라는 이자카야 체인이 연관된 사건이다. 제쿠는 몇년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후 거액의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어 회사가 무너졌는데, 오오바 히코쿠라는 금융 브로커가 야쿠자로부터 24억엔에 달하는 자금을 받아 사업확장자금이 필요했던 제쿠에 투자했고, 그에 해당하는 6만주를 추가발행해 금융 브로커에게 제공했다. 이 금융 브로커는 이렇게 얻어낸 주식을 이용해 경영에 직접 개입, 실질적인 기업오너가 되었고, 자금투자에 참여한 야쿠자 조직 두목들에게 불법적으로 자금을 유출시킨 것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약 30억엔 이상이 이렇게 유출되었다고 한다. 사실상 돈세탁을 겸한 거대한 사기횡령사건인 것.
실제로 이러한 합법과 불법의 경계 사이에서 막대한 불법자금을 이용한 투자사업방식은 폭력단대책법 이후 일본 거대 야쿠자 조직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은 라이브도어 사건이나, 일본의 IT버블 등에서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고 알려져있다. 특히 일본의 IT버블 당시 야쿠자 조직들이 벤처기업 붐을 이용해 엄청난 돈을 긁어모아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는건 널리 알려져있다.
다만 이러한 불법투자외의 갈취같은 이전까지 많이 이루어졌던 불법행위들은 대부분 폭대법과 경찰의 단속에 의해 봉쇄되었기 때문에 소규모 조직들은 자금원이 거의 말라서 망해가고 있다. 사실상 막대한 자금을 투자로 굴릴 수 있는 거대 야쿠자 조직들만 살아남게된 것.
조직의 합법, 불법적인 일로 번 돈은 일정부분을 떼어 윗조직이나 두목에게 상납한다. 하부조직들은 상부 2차 조직에 상납하고 2차 조직은 대두목에게 상납하는 피라미드 형태다.
4.4. 마약과 범죄행위
마약의 경우는 야쿠자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다오카 카즈오가 생전에 거듭 마약만은 손대지 말 것을 강조한 관계로, 표면상으로는 마약에 손대지 않는 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다오카 카즈오가 말년에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야쿠자 조직 자체를 우익 정치단체로 포장시킬 일에 주력하고 있을 당시 언론에 표방하여 이미지를 관리를 위한 접대용 멘트에 불과했다. 어느 폭력 조직이고 정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외적인 이미지를 엄청나게 관리한다. 과거 1공화국 시절 조폭들도 그랬고, 콜롬비아 카르텔들도 그러했다. 사실 다오카 카즈오의 이 발언은 이나가와 카이 항목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일종의 관동 진출의 교두보 마련을 위한 꼼수성 발언에 가까웠다. 당시 다오카는 정치적 동맹관계인 다나카 세이겐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약유통근절동맹이라는 형식상의 기구를 설립, 관동지역에 인맥을 확보하고자 하였는데 마약을 손대지 말라고 이야기한 건 사실 이 시기에 주로 날린 멘트다.
이후 21세기에도 표면상으로는 어느 조직이든 '''"우린 마약만은 손대지 않는다"'''라는 멘트를 호기롭게 날리지만 하부조직에서는 알아서 다 판다. 다만 하부조직이 마약을 팔다 발각당하면 상부조직에서는 "우린 모르는 일"이라며 하부조직에 파문장을 날리고 적당한 희생양을 골라 경찰에 자수시키며 도마뱀 꼬리 자르듯 빠진다. 혹은 언론매체나 개인이 야쿠자 조직을 취재할 때 "우린 마약은 안 만진다"는 대답을 곡해하기도 하는데, 마약은 우리 조직 사업이 아니라서 안 만진다는 의미를 협객이라서 안 만지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1969년 하타노 아키라(秦野章) 경시총감[14] 은 '''"야쿠자가 마약을 안 만진다는 말은, 어부가 생선을 안 만진다는 말과 같다"'''며 다오카 카즈오의 발언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7~80년대엔 한국에서 한국 조폭들 및 한국 기술자들과 손을 잡고 히로뽕을 제조한 뒤 일본으로 밀수해서 판매하는 광범위한 마약 판매망이 유명했다. 이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가 마약왕이다.
실제로 조직의 우두머리가 수하들에게 딱히 범죄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고, 윗대가리들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칠수록 조직 내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으며, 조직에 몸담은 이상 가장 효과적이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범죄인 것일 뿐(…). 덕분에 돈이 벌리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지라 온갖 사업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 개중에는 비교적 합법적으로 돈을 굴리는 야쿠자들도 있는 편. 한마디로 조직의 상위단체들은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만 내릴 뿐 표면상으로 하위단체들의 사업내역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말단을 잡아내더라도 윗대가리까지 잡아넣기는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상술됐다시피 야쿠자는 피라미드 형식인데 약을 파는 단체는 4차, 5차, 6차 단체 같은 진짜 말단 조직 중 말단이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기면 조직원을 파문해버리는 식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보통 "이놈은 우리 조직에서 쫓아낸 놈이니 이놈이 뭔 짓을 하든 우리 조직과는 상관 없습니다."는 취지의 통지문을 각 조직에 돌린다. 특히 조직원이 체포당해 범죄가 드러날 경우 경찰과 검찰한테 이놈은 우리 조직에서 쫓겨난 놈이라 우리랑 상관 없다고 하기에 두목이 처벌받을 일을 피한다. 게다가 두목이 직접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말을 하고 부하가 그걸 알아서 해석해서 실행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두목을 엮어 넣기가 매우 어렵다.
4.5. 정치권과의 유착
야쿠자 조직 가운데 아예 우익 정치결사를 표방하고 있는 조직들도 많으며 뿌리부터가 우익단체에서 시작한 조직들도 많다. 이를 임협계 우익단체라 하는데 많은 가선우익이나 전통적인 보수우익 단체들이 야쿠자와 연관되어있다. 모든 야쿠자는 우익인데 애초에 사카즈키고토부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맹세하는 의식이고 천황제에 반대하는 야쿠자는 없다. 이런 현상은 이미 야쿠자들과 정계가 연계되기 시작한 1800년대 말부터 있었지만 특히 아시아주의를 제창한 도야마 미츠루(頭山満)의 현양사(겐요샤)를 보듯이 그 뿌리는 유서깊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50~70년대 안보투쟁 시기 일본의 좌익과 학생운동권은 매우 강성해저 거침없이 테러를 일으키고 전국적인 시위를 주도해나갔는데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야쿠자들을 적극적으로 정치깡패로 활용했다.
오늘날 일본 최대의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 또한 고베항의 항만노조를 견제하려던 자민당의 실력자 고노 이치로의 후원하에 급성장하였으며 고다마 요시오, 다나카 세이겐 같은 인물들이 정치권과 야쿠자를 연결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한국의 군사정권시기 동아시아 반공 동맹을 맺으려는 미국의 후원과 한일 우익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저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우익활동을 하면서 조총련을 감시, 견제하고 한국정부에 훈장을 받은 사례도 있다. 양원석의 사례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렇게 정치권, 특히 자민당과 유착한 야쿠자들은 그 대가로 많은 이권과 특혜를 받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등 야쿠자 세력이 일본으로 뻗어나가는데 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저지르는 행동이 너무 과격해지고 나가사키 시장 총격사건을 보듯이 범죄로 문제가 많아지자 일본 정치권은 야쿠자를 규제할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 결과물이 폭력단 대책법(폭대법)이다.
4.6. 의형제
두목과 부하들의 결연식을 할 때나 의형제의 의식을 맺을때 술잔을 나누는 의식을 치룬다. 이 술잔은 매우 중요하여 꼭 보관해야 하며, 잃어버리면 파문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한다. 단 사카즈키고토를 해도 나중에 사이가 틀어지거나 하는 경우 술잔을 반납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서로간의 관계를 끊은걸로 본다.
의형제를 맺으면 서로 나이나 세력을 따져 형, 동생을 정하고 서로 위치가 비슷한 경우 그냥 교다이라 부른다.
4.7. 출신
재일교포와 부라쿠민은 야쿠자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공안조사청 조사 제2부 부장을 역임한 스가누마 미츠히로는, 6대 야마구치 구미의 2인자인 타카야마 키요시로부터 야쿠자에서의 재일교포와 부라쿠민의 비중이 전체의 9할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단 본래부터 재일교포 같은 비일본계 비중이 큰 편인 관서계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2인자가 정보원인 만큼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애초에 야쿠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수치적인 정확성을 바라는 것도 무리고...
4.7.1. 재일교포 야쿠자
시사저널에서 1994년 취재한 교포 야쿠자 이야기
월간조선에서 교쿠도카이 조규화를 인터뷰한 내용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야쿠자 수백명 기사#
재일교포들은 기본적으로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었기에 주류 일본인보다 범죄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았다.[15]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은 주로 야쿠자 조직 내에서도 핵심적인 행동대장의 역할을 주로 맡아왔기에 조직 내 영향력도 크지만, 동시에 여러가지 면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과거에는 많았다. 전후 대부분의 재일교포 폭력조직들은 구렌타이의 형태로 활동하였는데, 미군정이 물러난 이후부터는 이들이 구렌타이 조직채로 기존의 야쿠자 조직에 편입되어 조직구성원이 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야쿠자 조직에 흡수되면서 초창기 야쿠자 조직간 항쟁의 최전선에서 소모품처럼 쓰였는데, 실제로 가장 야쿠자간 항쟁이 치열했던 시기 무투파로 유명했던 조직들에는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들이 많았다.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들은 폭력이 아닌 막대한 자금원을 확보하게 되는데, 바로 한국과의 커넥션이 그것이다. 현재에 와선 아예 귀화하는 부류도 많고 아직도 그 비중은 확실히 무시 못할 정도.
야마구치구미 사상 최강의 전투군단이라 불리던 구성원 대다수가 재일 교포인 야나가와구미는 전성기에 2차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작전 당시 10대 광역폭력단에 유일하게 포함되었고 해산 당시 산하73단체 사카즈키를 한 조직원만 1,700명 가량이었다. 여기에 준구성원을 포함하면 최소 2,800명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해산 이후 야마구치구미 본부로부터 절연당한 야나가와구미 초대 구미쵸인 야나가와 지로(양원석)과 야나가와구미 2대 구미쵸인 다니가와 고타로(강동화)는 야마구치구미 본가의 비공식 고문 역 및 픽서로 활동했으며 야나가와구미 4천왕이라 불리던 노자와 기타로, 이시다 쇼로쿠(박태춘), 가네다 산슌(김삼준), 후지와라 테이타로가 이끌던 각 조직은 3대 야마구치구미 2차단체로 승격하였고 나중에 초대 다쿠미구미 부조장이 되는 구라모토 히로후미, 구로사와구미 부조장이었고 고쿠세이카이 초대 가이초가 되는 마에다 가즈오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일교포 조직원들은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타 조직으로 흡수되어 핵심 전투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일본 최대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를 비롯해 각 지역 조직에서 큰 세력을 이룰 수 있던 여러 요인 중 가장 큰 요인은, 전후부터 90년대까지 지속 되던 한일 간의 마약 커넥션과 한국 여성을 이용한 매춘에서 찾을 수 있다.
전후 미군정 통치기 미군정의 묵인하에 각 도시의 암시장을 삼국인들이 장악하던 시기 구렌타이계열 한국계 야쿠자들은 당시에도 큰 돈이 되던 히로뽕[16] 을 한국에서 구하기 시작한다. 그 당시 한국에는 전쟁 기간 동안 히로뽕 제조에 징용되었던 조선인들이 제조기술자가 되어 대거 귀국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싼값에 순도가 높은 히로뽕의 밀조가 쉽게 이뤄질 수 있었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조업을 가장한 한국 어선 등을 이용해 손쉽게 입수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은 한국 여성을 이용한 매춘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다른 일본인 야쿠자들보다 자본금이 많았다. 당시 일본 버블경제때 "지나가던 개도 1만엔찰을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경제성장이 있었고 일본인 매춘부들의 숫자가 적어지면서 한국 여성을 꾀어서 매춘을 시켜 돈을 벌게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많았고 이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카사카 등 많은 쿠라부에서 한국 여성들에게 여행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꼬셔 여권을 뺏고 강제로 마약까지 투약시켜 쿠라부, 데리헤루, 소프란도 등에서 일을 시키며 불법이라는 것에 의해 일본인들에게 폭행까지 당하고 말을 잘 안 들을시에는 일부러 경찰에 단속되게 하여 가지고 있는 소지금도 모두 강탈되게 하고 강제 출국시킨다. 다만 요즘은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경우는 많이 없고 보통 한국인 브로커, 포주 등과 합세해서 성매매 여성을 고용해 일을 시키는 편이다.
즉 재일교포 야쿠자는 한국과 연관된 사업을 해서 성공한 케이스이며 어떻게보면 같은 한국인을 이용하여 일본에서 돈을 번 매국노적인 행동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재일교포 야쿠자가 많아서 한국이 실질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17]
마약 유통으로 목돈을 만지기 시작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은, 이후 깡패들의 전통적인 돈벌이인 마약[18] , 도박[19] , 매춘[20] , 흥행[21] , 정치[22] 산업 대부분을 하나둘 차지해 가며 엄청난 자금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각 조직의 결속 강화 확대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야쿠자 세계에서 높아져가는 위상을 이용해 한일협정 시에는 정건영의 토우세이카이를 필두로 한일 양국의 정보원 및 브로커로써 큰 활약을 해가며 부관페리 사업권 등 한일간 진행되던 사업 이권들을 얻어내며 야쿠자 세계에서 더욱더 강력한 지위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역대 한국 군사정권과는 김대중 납치 사건, 중정, 보안사와 협력하면서 우익 반공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신뢰를 쌓아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 재일 야쿠자들도 나왔다. 6, 70년대 일본 내 스포츠행사에 참가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체재 비용 지원,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등의 대형 국가행사에 자금원조 및 각종 장학재단에 기부 등으로 훈장의 명분은 만들었다.
또 한국의 조직폭력단과 결의형제를 맺고 한국 조직들과 같이 사업을 하면서 우호적인 연대를 다젔다. 한국의 사채 시장 진출이나 호텔 관광, 스포츠 공연 사업, 카지노 관련 사업에 많은 투자를 했고 야쿠자의 사업 노하우를 한국 조폭에게 전수하는 등 한-일 양국 폭력단의 우호관계는 뿌리 깊다.
자금력이 권력이 되는 것은 야쿠자 세계에도 변함이 없어 자금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각 조직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 일례로 오사카에서 대형 캬바레를 운영하던 한록춘은 다오카 가즈오에게 거액을 상납하고 그 댓가로 샤테이 사카즈키를 받아 후지카이를 결성해 야쿠자 생활을 시작, 야마구치구미가 오사카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재일교포 구렌타이계 야쿠자인 메이유카이와의 항쟁 후 해산한 메이유카이 조직을 거의 그대로 흡수하며 오사카에서 야나가와구미와 더불어 큰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23] 현재 후지카이에서 개칭된 잇신카이의 초대 오야붕이었던 한록춘은 꾸준히 야마구치구미의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 공개된 재산만 한화 1조 5천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 오사카 중심부 도톤보리 등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거품경제 형성 시기 경제 야쿠자로 조직의 변모를 꾀하던 각 조직들은 허영중 등을 포함한 한국계 야쿠자들에게 의지를 많이 하였고[24] 이런 변화 속에 다카야마 기요시 등의 한국계 야쿠자들은 또 다른 재력을 손에 넣으며 야쿠자 리세션의 첨병역할을 하였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꺼지고 한국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된 90년대 이후 한국산 히로뽕 밀조가 정부의 단속으로 거의 사라진 후로는 한국계 야쿠자들은 일본 시중은행들의 저금리 대출과 오랜기간 구축해온 한일정재계와의 인맥을 통해 한국 사채 시장에 침투했다.
폭대법에 의해 지정된 22개의 지정 폭력단 중 2016년경 5개의 조직이 한국계가 오야붕으로 있으며 과거 오야붕이었던 경우까지 합치면 절반에 가까운 9개의 지정폭력단이 재일교포계가 오야붕으로서 관계가 있다.
관동지역 지정폭력단 5개 중 스미요시카이를 제외한 마쓰바카이, 교쿠토카이, 소아이카이, 이나가와카이는 한국계가 오야붕이었거나 현재 오야붕이고, 규슈 지역 야쿠자조직은 김인순의 후쿠하쿠카이와 박정호[25] 의 나미카와카이를 비롯해 전통적으로 재일교포세가 강하며, 간사이의 오사카 교토 주고쿠의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주부의 나고야 역시 재일교포세가 막강하다. 덧붙여 6대 야마구치구미 내 최대파벌 고도카이 핵심에도 재일교포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2015년 야마구치구미와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분열은 6대째가 되며 조직 넘버2인 와카가시라,[26] 넘버3인 통괄위원장,[27] 넘버4인 총본부장[28] 등의 핵심요직에 집권하며 조직 내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나고야계 야쿠자조직들의 기존 파벌들에 대한 차별이 3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5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초를 배출하며 야마구치구미의 적통이라 자부하던 야마켄구미를 포함한 다쿠미구미 등 기존 고베계 파벌들의 응집 및 반발이 원인이 되었다는 추정마저 존재한다. 고베 야마구치구미 간부 요직과 산하의 야마켄구미와 타쿠미구미 이케다구미 마사키구미 등 역시 내부를 들여다보면 예전에 해산된 야나가와구미 출신들 및 한국계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와 대비해 2011년 일본 경시청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일본내 야쿠자의 98.5% 정도가 일본 국적이며 한국 국적 및 조선적[29] 은 1.5% 이하라고 한다.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이 많다고는 하나 애당초 위에도 언급되었듯 야쿠자 조직들 내에서는 부라쿠민 출신의 조직원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많았으며 재일교포 출신이라 해도 부인은 일본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 후손들은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며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여기에는 조직의 간부급을 제외한 행동대원 급의 재일교포계 야쿠자의 상당수가 이미 은퇴 및 귀화를 한 영향이 크며 신규로 유입되는 재일교포계 야쿠자는 이미 일본으로 귀화해버린 케이스가 대부분이고 재일교포의 일본 내 위상이 상승하며 더 이상 범죄에 가담하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4.7.2. 그 외
기사 출처(총 4페이지)
아주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겠지만, 놀랍게도 스미요시카이의 간부이자 스미요시카이 하부 조직의 두목을 역임했던 이란인 야쿠자도 있다. 위 신문기사는 2014년에 사이타마 현에서 총도법 위반으로 체포된 스미요시카이 3차 단체의 전직 두목 나세리 라드 아무로라(Nasseri Rad Amurora)[30] 에 대한 내용으로, 일본어도 매우 유창했던 데다 체포된 이후로는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경찰을 상대로 넉살좋고 대담한 언행을 보이는 등 '''경찰에 불려간 전형적인 야쿠자 간부'''처럼 행동했기에 외국인 범죄 전문 수사관도 "완전히 야쿠자 오야붕 그 자체"라고 평했다. 당시 이란정부 및 이란 대사관에선 반응을 달리 보이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1979년(쇼와 54년)에 일본으로 넘어왔고, 3년 뒤인 1982년에 어떤 스미요시카이 계열 조직의 조직원에게 제의를 받아 조직원이 되었으며, 1986년에 일본인 여성과 혼인(체포된 시기인 2014년 시점으로 이미 이혼)함으로써 영주권 자격을 취득했다. 아무로라가 두목을 맡았던 조직이 비록 작은 3차단체라고는 하지만, 외국인이 야쿠자 간부 직위에 올라가 있었다는 사실에 경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고, 어느 경시청 간부는 폭처법과 폭력단배제조례 때문에 사업이 곤란해진 야쿠자들이 독자적인 마약 및 총기 밀수 루트를 가진 이란인 범죄조직과의 연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연줄을 위해 스미요시카이에서 아무로라를 중용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4.8. 처벌
야쿠자의 처벌 강도는 반성이 가장 약하고,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체벌이며, 그 다음에는 손가락을 자르는 유비츠메(指詰め)고, 그 다음은 파문이고, 마지막이 처단이다.
파문의 경우 조직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꼴통을 쫓아낼 때 쓴다. 감당이 안된다고 그냥 내쳐버리면 다른 조직원들 입장에서 자신들도 언젠가 사소한 걸로 트집 잡혀 쫓겨날 것을 우려해 반란이나 배신을 할 수도 있으니 쫓아내더라도 최소한 조직원들이 수긍할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직에서 쫓겨나 조직과 관련 없다는 의미지만, 복권이 가능하므로 이를 이용해 위에 서술된 대로 사건 발생 시 수뇌부의 안위를 위해 수뇌부를 대신해 총대를 맨 조직원이 파문을 당하고 자수한 뒤 출소 후 높은 지위와 함께 복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절연이라는 특이한 처벌이 있는데, 파문과 마찬가지로 해당 조직원과 조직 사이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처벌인 것은 비슷하나 그 양상이 다르다. 파문의 경우 복권이 가능하지만, 절연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판단하기에 복권되지 않는다. 보통 야쿠자 업계에서도 배신이나 조직을 와해 직전까지 만드는 등 엄청나게 큰 일을 저질러야 절연이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그만한 사안을 아무런 페널티 없는 절연 하나로 퉁치는 게 한심해 보인다는 것인데, 이렇게 절연을 하는 이유는 처단을 하기 어려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즉 처단을 해야 하는데, 그 대상자가 다른 조직에 붙거나 혹은 자체 세력을 구축하는 등의 이유로 처단이 사실상 어려워지면 이도 저도 못하게 되며 조직의 위신도 떨어지기에 나름대로 상징적인 처분이라도 내려 조직의 체면을 세울 용도로 절연 처분을 내리는 것.
파문과 절연은 통보를 위해 문서를 대상자에게 보내는데, 파문은 검은색 글씨로, 절연은 빨간색 글씨로 쓴다.
처단의 경우는 직접 암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상자가 사형을 당할 정도의 죄가 있으면서 대상자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할 위험이 없는 경우 무기명으로 '''경찰에 그 혐의로 신고해서 사형[31] 당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한 처단이라 효율적이라고 한다.
경찰과 언론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꼬리자르듯이 위장 파문, 위장 절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나중에 조용해지면 슬며시 복권시킨다.
4.9. 무기
서브컬처에서는 시라사야를 꼭 사용하는 것처럼 그리지만, 실제로는 권총과 폭탄[32] , 수류탄을 더 자주 사용한다. 시라사야 항목에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시라사야는 칼날 보관용이지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손을 보호하는 코등이가 없어서 잘못 휘두르다가 손이 절단 될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4월에 야쿠자 2명이 살인죄로 사형당한 일이 있는데 이들의 혐의는 다른 조직의 조직원 2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칼을 쓸 경우 시라사야 형태가 아닌 그냥 일본도를 사용한다.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일본도는 도검으로 분류되지 않으므로 이쪽이 더 낫다.
어쨌든 옆동네 조직폭력배와는 달리 총도 거리낌없이 잘 사용한다.[33] 물론 일본도 총기 소지가 아예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실제로 총을 쓰기 시작하면 일본 경찰청 조직범죄대책부가 움직여서 강하게 처벌한다. 참고로 어떤 일본 서브컬쳐물에서든 야쿠자가 권총을 들고 설친다면 그 권총은 아주 높은 확률로 TT 권총의 중국제 카피인 54식 권총이다. 정식명칭보다는 흑성권총이라는 통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것도 그냥 은어로 부르는 일이 더 많은 듯. 일본에서도 총도법이 시끄럽기 때문에 중국산의 카피를 또 카피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명중율이나 신뢰성은 전혀 없다. 야쿠자의 총기살인 스타일이 표적에게 근접해서 난사한 뒤 도주, 총기는 범행 후 바로 유기하는 1회성이기 때문에 명중율이나 내구성 따윈 신경 안 쓰는 이유도 있다. 워낙에 야쿠자들이 자주 사용했던 탓에 테러리스트의 상징인 AK-47이나 마피아의 상징인 톰슨 기관단총과 비슷한 취급. 요즘에는 레드 마피아와의 연계로 본토산 마카로프 권총이나 2006년 이후로는 필리핀제 M1911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2014년 시점에서는 거의 필리핀제 복제총기가 점령해서 중국의 54식이나 러시아 토카레프가 희귀해진 편이다. 야쿠자들한테도 토카레프 권총이 나쁘다는 인식은 있어서 가격은 저렴하며 또 러시아제 권총은 전용 토카레프 탄을 쓰기 때문에 탄약의 수급도 어렵다. 따라서 미국제 권총이나 오스트리아제 글록 권총 같은것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위급시에 한발이라도 걸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리볼버의 사용 역시 꾸준하다.
물론 이들이 밀수했다가 걸린 무기를 보면 '''권총만 있는 게 아니다.''' 기관단총, 자동소총, 유탄 발사기, 심지어 '''대전차로켓'''까지 밀수했다가 걸렸다. 이쯤되면 거의 테러 단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참고로 해당 링크의 사진이 포함된 실제 사건의 기사는 순서대로 2012년 후쿠오카의 기시라 겐고(岸良研吾)와 2011년의 간 마사토모(菅正知), 둘 다 야쿠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한 조직으로 악명 높은 쿠도카이 계열이고, 마지막 1장은 2006년 요코하마의 이나가와카이 계열 하부 조직 보스 마쓰다 다다시(松田真知)의 사례이다.
2019년 11월 27일에는 필리핀에서 복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AR-15 자동소총에 고베야마구치 간부가 사살당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범인은 교토 시내에서 금방 체포됐다. 차 안에 있다가 기동대와 SAT가 포위해서 접근해오자 투항.
4.10. 다이몬(代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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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의 다이몬이다.
가몬의 야쿠자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데 거창한 조직을 상징하는 문장을 만들어서 쓴다. 본부에 걸어놓거나 명함에 인쇄해서 붙이거나 조직의 문서에 문양으로 쓰고, 또 뱃지 문양으로 쓰는 등 쓰임새는 다양하다. 조직의 통제와 단결의 상징으로 매우 효과적이며, 또한 다른 조직과의 식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문양을 만드는 전통이 생겼다.
옛날에는 간토의 조직들은 선대와 후대의 다이몬이 다른 경우가 있었으나 현대에는 옛 다이몬을 그대로 계승해서 물려 쓴다. 야쿠자 만화, 대표적으로 엠블럼 TAKE2에서 이런 다이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엠블럼의 원제가 바로 이 다이몬이다.
매양 야쿠자들이 "다이몬이 무겁다", "다이몬을 짊어진", "다이몬의 가치를 알아라" 운운하면서 조직의 무게감을 설명하는데도 말버릇처럼 쓰인다. 엠블럼 테이크2에선 뱃지의 무게라고 나오는데 정확히는 뱃지에 그려진 다이몬을 가리키는 것이다.
5. 폭력단 대책법
위키피디아 폭력단(야쿠자) 미니강좌
'''법령번호 헤이세이 3년(1991년) 5월 15일 법률 제77호'''
다른 형벌과의 경계선, 본법은 이하의 행위를 금지한다.
- 입막음료를 요구하는 행위
- 기부금이나 찬조금 등을 요구하는 행위
- 하청 감가 등을 요구하는 행위
- 경호원 대동을 요구하는 행위
- 고금리의 채권을 징수하는 행위, 빚의 면제나 빚반제의 유예를 요구하는 행위
- 부당한 대출 및 어음의 할인또는 부당한 주식의 매입을 요구하는 행위
- (이하 생략)
6. 폭대법의 영향
야마구치구미, 이나가와카이, 스미요시카이 등 22개의 폭력단이 본법을 따르는 지정폭력단이 되어 일본 경찰과 공안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혹시라도 야쿠자가 괜한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일본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곧바로 경찰 기동대 소속 총기대책부대(銃器対策部隊)가 달려와서 죽지 않을만큼 족친다. 당신의 신변보호 역시 당연히 해준다. 흉기가 아니라 그냥 문신을 보이면서 위협해도 체포 대상으로 2018년 4월에 난폭운전 시비로 대학생들에게 문신을 보이며 위협했던 야마구치구미 2차조직 심복회의 조장이 체포됐다. 깨는 게 문신을 보이며 "니들 내가 야쿠자인 건 알고 경적을 울린 거냐?"라고 위협하자 대학생 하나가 "흐미 야쿠자가 협박하네." 하면서 바로 110에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것. 이런 야쿠자들을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강력계 형사들을 은어로 마루보(マル暴)라 부른다.[34]
결과적으로 조직원 수가 줄어들고,[35] 전국 각지의 사무실이 철거되었으며, 야쿠자 간의 내부투쟁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부투쟁이 일어나더라도 예전과 달리 최대한 깔끔하게 끝내게 되는 등 야쿠자는 전체적으로 위축된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야쿠자간의 항쟁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 수십명씩 죽어나가는 건 변함이 없다.
특히 일본 국내에서의 대부분의 불법적인 범죄행위에 의한 주 수입원이 줄어든 것이 큰데, 소규모 야쿠자 조직들이 의존했던 갈취와 같은 직접적 범죄행위들이 폭대법 이후 상당부분 봉쇄되자 하부조직이 수입원의 부재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야쿠자 조직의 수익구조는 하부조직들이 직접적인 범죄행위로 수익을 벌어들여 상납금 형태로 위에 올리면 상부조직이 방대한 인맥을 활용한 투자나 사기로 돈을 굴리거나 돈세탁을 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하부조직들의 수입원이 사실상 말라감에도 상부조직은 여전히 쌓아둔 막대한 자금과 인맥을 활용해 탄탄한 자금줄을 유지하면서도, 하부조직에 돈을 풀긴 커녕 꾸준히 상납금을 요구하면서 하부조직들이 이에 반발하여 하부조직과 상부조직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야쿠자 조직내의 내분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발생중이다.
여하튼 현재 야쿠자들은 해당 법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열공 중이라고 한다. 폭대법이 처음 등장했을때 1호로 가장 먼저 지정된 조직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된 3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다. 괜히 이들이 3대 야쿠자 조직이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7. 현황
[알쓸신세] 해삼 따고 멜론 서리…日 야쿠자 어쩌다 좀도둑 전락했나
오늘날 야쿠자 조직들은 과거와는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운신의 폭을 묶는 폭대법의 영향도 크지만, 사회의 변화로 인해 신규조직원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야쿠자 조직의 규모 자체는 크게 줄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야쿠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현대의 일본은 인구감소로 일자리가 오히려 남아도는 상황...이라곤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감소는 맞지만 일본의 인구감소는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과 비교해도 평균적인 수준이다.
금융, IT 등의 고소득 직군이야 한국 못지 않게 경쟁률이 높다지만, 하다 못해 프리터만 해도 훨씬 건전하고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데 뭐하려고 손가락 잘릴 수도 있고 심심하면 재떨이를 머리에 맞거나 연장들고 설치는 야쿠자가 되겠는가? 거기에 개인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범죄의 늪에 빠진 젊은이들도 봉건적 규율에 묶인 야쿠자는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뭉쳐서 한구레가 되거나 이런 저런 범죄로 먹고 사는 잡범이 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렇게 2000년도 초반부터 제기되어 온 야쿠자 고령화(?) 현상은 2017년 시점에서 경시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일본 전역의 야쿠자 조직원 중 50대 이상 중년 조직원의 비율이 40%를 넘어섰다고 한다. 출처 이로인해 오늘날에는 주로 물리적인 폭력을 기반으로하는 갈취사업 등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주로 사기와 불법투자행각이 주요 수입원이 되고있다.
그 결과 2017 경시청 자료에 따르면 야쿠자 규모도 급감 최대조직인 야마구치구미는 10년전에 비해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36] 스미요시카이와 이나가와 카이도 50% 가량으로 구성원 수가 감소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전체 야쿠자수 대비 3대 조직의 구성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대에서 변함이 없으므로 결국 일본 내 야쿠자 조직들 전체가 다 이런 경향이라는 것이다.
2018년 시점에서는 정말 야쿠자는 인권이 없는 시대에 돌입했다, 아니, '''국민 취급도 안해준다.''' 일본인이나 하다못해 재류 외국인도 발급되는 건강보험증이 발급되지 않아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며, 야쿠자라는 사실이 들키면 은행에서 서비스를 거부한다. 이미 개설해놓은 계좌도 현금을 싹 빼주고 강제해지당한다. 어디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야쿠자라는 사실이 들키면 쫓겨나기 일쑤. 폭대법 적용을 면하려면 야쿠자에서 탈퇴하고도 5년은 지나야 한다.
2018년 10월 2일에 미국 재무부는 야쿠자와 연계된 일본 기업 2곳과 개인 4명을 제재했다.
문제는 이것이 일본 내 조직 범죄의 축소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자금을 계속 갈취해야 생존할 수 있는 하위 조직들이 망할 뿐 이미 쌓아놓은 자본으로 수익을 거두는 본가들은 멀쩡하다. 이렇게 기존 야쿠자 하위 세력의 몰락하자 그 빈자리를 삼합회나 한구레가 차지했는데, 쉽게 설명하면 대기업 본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대기업 직속 계열사가 몰락하고 그 빈자리를 하청 업체가 차지한 셈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018년 10월 11일에 일본 야쿠자가 2020년 도쿄 올림픽 관련 시설의 건설을 위해 노숙자들을 동원하고 돈을 빼앗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건설 업계와 야쿠자와의 밀월 관계가 여전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심지어 과거 시장 선거 시절 아베 신조와 폭력단의 유착 의혹까지 있다.[37] 폭대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정치인과 야쿠자의 밀월 관계는 계속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건설노무현장에서의 갈취는 일본 야쿠자 조직이 오래전부터 근간으로 해온 사업인만큼 올림픽같은 대규모 사업에서 야쿠자 조직이 끼어드는건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고 봐야한다. 최근까지는 후쿠시마 지역의 복원사업에 야쿠자 조직들이 일부 끼어들어 갈취를 벌이고 있었는데, 올림픽준비가 시작되면서 야쿠자 조직들이 이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야쿠자의 빈 자리에 삼합회가 들어 앉았다는 소식에 북두의 권 스토리 작가 부론손 같은 꼰대들은 비긴(BEGIN) 같은 작품을 통해 요즘 애들은 깡다구가 없어서 야쿠자를 안하게 되어서 그렇다고[38] 한탄하기도 한다. 부론손의 논리가 참 이상한 게, 범죄자 하나라도 더 줄어드는 것이 왜 한탄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가 후미무라 쇼 명의로 참여하고 있는 작품 "비긴"을 보면, '''야쿠자들이 외국인 범죄자들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애국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야쿠자 미화물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만, '''현실은 정작 그 야쿠자들도 돈만 된다면 외국인 범죄조직과 잘만 거래하는 데다, 아예 이란인 같은 외국인이 야쿠자 간부까지 해먹는 판인데''' 아무래도 그런 '팩트'는 전혀 모르나 보다.[39]
2019년 일본 경시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주요 조직들의 구성원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경기불황과 폭대법으로 인해 자금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야쿠자들의 숫자가 줄고 있는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11월에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고베 야마구치구미 간부를 '''M16 소총으로 30발을 사격해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었다.#, #
일본에 코로나 19가 퍼지자 야쿠자 조직원들이 감염되는 사례가 생겨서 각 조직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특히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감염이 폭발되어 젊은 야쿠자 조직원이 병원에서 치료 받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기사
2020년 5월 30일에는 고베 야마구치구미에 소속된 이케다구미의 오카야마 사무실이 습격당해 간부와 조직원 한 명이 총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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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야쿠자라고 하면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진 일본의 범죄 조직부터 떠올리지만, 일본 본토에서는 야쿠자라는 단어의 용례를 자국에 한정시키지 않고 범죄 조직 전반에 걸쳐 적용시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조폭, 이탈리아와 미국의 마피아, 미국의 바이커 갱, 갱스터, 중국의 삼합회, 남미의 카르텔 등을 전부 야쿠자라는 표현으로 퉁칠 수 있다는 것.
만화나 영화에서는 의리를 중시하고 잘못한 놈이 할복을 하는 등 사무라이의 후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사무라이의 후손이 야쿠자가 되려면 몇 대째 등성조차 못하고 극도로 몰락해서 낭인이 되거나 대죄를 지어 할복이 아닌 참수형을 당해 폐문쯤은 당해야 가능하다. 야쿠자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는 설은 일본의 각종 매체에서 몰이해로 인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다.
걸핏하면 손가락 잘라대는 유비츠메 의식이 있는 건 사실이다. 손가락 하나를 모두 자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한 마디씩 자르는 의식이다. 보통 잘 안쓰는 왼손 새끼 손가락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매체 등에서는 아무나 잘라대지만 실제로는 직책에 따라 가치가 다르고 잔을 받지 않은 조직원이나 일반인의 손가락은 전혀 가치가 없어서 자른다고 봐주지 않는다.
일본 야쿠자 하면, 드럼통에 넣어서 바다에 빠뜨린다는 카더라 전설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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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렇게 처리한다고 한다. 일단 3,000도라고 하면 단순히 '뜨겁네'라고 인식할 수준이 아니다. 3,000도라는 온도 자체가 산업에서 거의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내기 힘든 초고열이다. 그냥 가스레인지 켰다가 끄듯이 만들 수 있는 온도가 아니라는 것.[40] 저만한 온도를 내기 위해서 드는 시간만 해도 오래 걸리고, 식히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한 번 쓰고 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극심한 비효율이다. 해당 온도를 견디기 위한 용기 또한 내열성 벽돌을 써야 하는데 애초에 3,000도를 버티는 내화물 자체도 드물 뿐더러 엄청나게 비싸다. 참고로 알루미늄 녹는점 600도, 철 녹는점 1,500도. 3,000도면 텅스텐쯤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온도는 어떻게 유지할 건가? 3,000도면 가스레인지로는 못 만들고, 포스코 같은 제철소에서 쓰는 전기 고로를 가져와도 어렵다. 참고로 전기 고로도 3천도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아스팔트는 200도 가량에서 만들어진다. 굳이 반박하자면 작가가 치밀한 취재를 한 후 만화를 그리기로 유명한 사채꾼 우시지마의 에피소드 중 야쿠자 조직에서 폐기물 처리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시체까지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그 기업운영을 나메리카와라는 등장인물이 도맡아하고 시체를 흔적도 없이 만든후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히 일반 가정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온도니 그런 전문 기업을 아예 운영하는 야쿠자의 스케일을 볼 수 있다. 또, 실제에서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닌게, 시멘트 소성로의 경우 3천도 까지는 아니지만 약 2천도 까지는 온도가 올라간다. 즉, 시멘트 회사를 가지고 있거나 거래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애완동물 장례업을 등록한 후, 평소에는 애완동물을 화장하다가 때가 되면 사람을 태워서 처리한다는 루머도 존재한다. 역시나 루머인 만큼 신빙성은 낮다.
미국에서 이 야쿠자를 영화계로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우후죽순으로 야쿠자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버트 미첨의 '''<야쿠자>'''나 마츠다 유사쿠의 '''블랙 레인''' 등등 말이다. <블랙 레인>은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서 마츠다 유사쿠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어줬다. 그 전에 마츠다 유사쿠는 야쿠자 영화의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블랙 레인>이 개봉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대로 야쿠자를 쓰레기로 보면서 야쿠자의 현실을 은근히 꼬집던 일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는 1992년 영화 <민보의 여자>에서 호텔 경영을 두고 야쿠자들을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해 실제로 야쿠자들에게 폭행당했다. 그 이후로도 야쿠자들의 압력으로 온갖 고생을 하다가 1997년 어처구니 없는 불륜 사건에 휘말려 사회적 매장을 당했고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겠다면서 스스로 투신하여 64살로 자살했다. 그런데 이 자살이 여러가지로 굉장히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지금도 곧잘 재조명된다. 외국 저널리스트들 중에는 아예 자살이 아닌 야쿠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대표적 인물로 음모론 전문가 겸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이 있다.
덕분에 일본 만화에서도 야쿠자가 악랄하게 나오면서 그래도 좋은 놈도 있다고 넌지시 조금이나마 좋게 나오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분석까지 있다.
일본 만화 가면전사 아쿠메츠를 보면 폭대법을 만들어 야쿠자를 조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말단 부하가 잘못하면 조직의 간부, 심지어는 보스에게 책임소재를 묻는 법으로 보인다.
데즈카 오사무도 실화를 바탕으로 대부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여기서는 야쿠자의 아들과 친구를 한 주인공 데즈카의 이야기, 약골 데즈카를 보호해주고 체력을 단련시켜주고 대신에 데즈카가 그린 미소녀 만화를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조폭관련 이야기인데 아련하다. 특히 마지막에 야쿠자 아들은 카미카제의 이슬이 되고 성장한 데즈카는 그것을 회상하는 장면이 명장면. 야쿠자의 아들은 특공하는 순간에도 데즈카가 준 그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야쿠자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를 더 가치에 둔다고 한다. 노래도 "인협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라는 노래도 있다. 쇼와잔협전에서 나온 카라지시보탄이라는 노래다. 이 영화가 나올때는 한창 야쿠자를 협객으로 그리는 임협물이 유행할 때였다. '''물론 수틀리면 서로 죽이고 죽는 세계라서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야쿠자를 리얼리즘에 기반하여 다루게 된 것은 영화 의리없는 전쟁 이후다. 그 전까지는 다소 낭만적으로 그리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 이후 오히려 리얼하게 그려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야쿠자 세계"를 묘사했다며 야쿠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영화가 역으로 영향을 준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
일본의 공산주의 계열 학자인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쿠자의 아들이지만, 전공투에 참가하여 투쟁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쓴 야쿠자 관련 서적인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에 의하면, 재일교포들 중 일부는 야쿠자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사실이다. 실제 야마구치구미가 관동에 진출하는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 당시 관동지방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사실 1960년대 일본 청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야쿠자 영화다. 특히 좌익 학생운동가들이 야쿠자 영화를 많이 봤는데, 자기들만의 룰, 의리, 파벌간의 대립, 배신, 음모,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우정같은 것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묘하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41] 전공투 시대의 학생운동가들은 서브컬쳐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야쿠자 영화도 많이 봤다고 한다. 근데 아이러니한게 현실의 야쿠자들은 '''대부분 우익이며 역사를 보면 47~49년엔 일본 공산당과 좌파인사 숙청에 참여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직도 대부분 극우계열이다. 사실 세계적으로 극좌와 극우는 서로 비슷한 면이 꽤 많다.
9. 전문지
야쿠자를 다루는 전문지는 실화시대가 있었다. 2019년 종간했다. 야쿠자들이 직접 발행하는 잡지도 있다. 교쿠토카이의 <한없는 전진>이나 야마구치구미에서 발행하는 <야마구치 시보> 등이 있다. 다루는 내용은 깡패짓에 관련된 법률과 조직원들의 시(詩)같은 걸 싣는다.
야쿠자들과 유착된 전문지들은 객관적인 시선을 못 보여줄때가 많기 때문에 프리랜서 기자들이나 작가들이 기고를 하는 대중지가 야쿠자 소식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중 야쿠자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미조구치 아츠시(溝口敦) 기자의 글들이 볼만하다. 친한 야쿠자 내부 소식통으로부터 정보를 얻어서 취합한 뒤 공개하는데 야쿠자 측의 홍보나 역정보에 이용당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여러 쏠쏠한 정보들이 대중에 공개되는 것도 이런 기자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조구치 아츠시 같은 경우 야쿠자한테 본인과 아들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는데 본인은 "살균에는 햇빛에 노출시키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미국 대법관 루이스. D. 브랜다이스의 신념을 모토로 삼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주간문춘이나 프라이데이 같은 주간지들도 특집 기사와 흥미거리로 야쿠자 내부사정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야쿠자들이 프라이데이를 좋아한다고 한다.
10. 야쿠자 은어
야쿠자의 은어는 사회에 통용되는 은어를 쓰는 경우도 있고 야쿠자 은어가 유명해져서 일본 사회의 은어가 된 경우도 있다.
- 사츠 - 케사츠(警察=경찰)의 줄임말로 한국식으로 하면 짭새와 비슷한 느낌의 은어다.
- 샤부 - 각성제, 주로 히로뽕을 의미한다.
- 야쿠 - 약, 역시 각성제를 의미한다.
- 도구 - 한국의 도구와 발음과 뜻이 같다. 총, 칼, 각종 흉기를 가리키며, 한국식으로 치면 연장과 비슷한 느낌이다.
- 하지키, 샤카, 챠카 - 권총을 의미한다.
- 렌콘 - 연근, 리볼버를 의미한다.
- 오쓰 - 押忍(おす 오쓰) 오하요 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좋은 아침입니다.)의 약자로 가라테 선수나 격투기 선수들도 많이 하는 기합섞인 인사이다.
- 시고토(仕事) - 작업, 업무, 일. 야쿠자 은어식으로 말하면 보통 청부 살인을 의미한다.
- 오토시마에(落とし前) - 원래는 노점상에서 협상으로 가격을 떨어트리는걸 의미하지만 의미가 변해서 "분쟁 등 실패의 뒤처리를 책임지고 하는것"의 의미로 쓰인다.
- 오레이마이리(お礼参り) - 원뜻은 신불에 소원 성취의 감사로 참배한다는 뜻이지만, 속어로는 구속에서 풀려난 야쿠자가 자기를 고발한 사람에게 찾아가 보복을 하는것을 의미한다.
- 히토만 - 영어의 히트맨과 같다. 살인청부업자를 의미한다.
- 고로시야 - 살인청부업자의 일본어.
- 텟포다마 (鐵砲玉) - 즉 총알을 나타내는 말로 보통 항쟁시 제일 선두에서 싸우고 희생되는 역을 말한다.
- 시노기(シノギ) - 야쿠자가 각종 불법으로 얻어내는 돈.
- 미카지메료우(みかじめ料) - 보호비 등으로 갈취하는 돈.
- 카스리(カスリ) - 상납금, 수금.
- 사바 - 원래 불교 용어로 사바세계 할때 그 사바이다. 속세를 의미하는데 보통 교도소 바깥의 세계를 말한다.
- 발을 씻다(足を 洗う) - 원래 불교에서 나온 말로 악업에서 벗어나 건실해지는걸 의미한다. 우리나라식으로 치자면 '손을 씻다'와 같은 의미로 야쿠자 세계를 빠저나와 일반시민으로 돌아오는걸 말한다. 은퇴가 수반되는 경우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은퇴보다는 탈퇴에 가깝다.
- 오케라 - 돈이 없는 상태.
- 다치 - 도모다치(친구)의 약자.
- 무쇼 - 게무쇼(형무소)의 약자.
- 모쿠 - 직역하면 구름을 의미하는데 담배를 의미한다.
- 야쿠이(臭い) - 냄새난다, 뭔가 의심스럽다.
- 아네상, 네상 - 두목의 부인, 누님, 사모님.
- 오야붕 - 아버지격을 말하며 두목을 말한다.
- 오지키 - 숙부, 조직의 큰 어른, 원로.
- 꼬붕 - 아들뻘을 의미하며 부하 조직원, 두목의 사제를 말한다.[42]
- 잇폰토코(いっぽんどこ) - 대규모 조직에 속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태세를 유지하는 조직.
- 이카사마 - 원래 마작용어로 사기꾼, 속임수를 말한다.
- 소똥도 층이 있다.(牛の糞にも段々がある = 소똥도 위아래가 있다.) - 영화 의리없는 전쟁에 나와 유명해진 말로 모든 사물엔 서열이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위아래를 알아보라는 뜻.
- 노래부르다 - 경찰에 자백한다.
- 가세 - 가짜
- 키스 - 스키(好き)를 거꾸로 한 말로 좋아하는것을 의미하는데 보통 술을 의미한다.
- 쇼바, 쇼바대 - 쇼바는 위치, 자리를 말하는걸로 쇼바대는 자릿세를 의미한다.
- 치크리, 친코로 - 밀고를 의미한다.
- 양키, 친피라, 봉쿠라 - 양아치, 피라미, 얼간이, 잔챙이
- 오지토메 - 원래는 근무하다라는 뜻이지만 야쿠자가 쓰면 복역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 나와바리 - 구역, 영역, 자기 조직의 세력권.
- 카치코미(カチコミ) - 항쟁, 전쟁,
- 기리샤(義理事) - 관혼상제를 의미한다. 조직의 중요한 행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 고챠 - 억지, 생떼, 생트집
- 샤리 - 불교의 사리를 말하는데 밥을 의미한다. 한국식으로 치자면 교도소의 콩밥 이런 느낌이다.
- 바이닌 - 판매원, 마약 밀매자를 말한다.
- 파인애플 - 수류탄을 의미한다.
- 무투파 - 강경파, 항쟁파, 싸움을 즐기는 조직원
- 나팔불다(ラッパを吹く) - 거짓말 하다, 허풍치다.
- 고쿠도(極道) - 극도라는 뜻을 가졌으며 야쿠자를 높혀 이르는 말이다. 한국에선 건달이나 협객과 대응된다.
- 닌교도(任侠道) - 임협도, 협객의 길.
- 893 - 야쿠자의 어원이 된 것.
- 얏상,얏쨩, 야노쓰쿠히토(ヤのつく人, 야字가 붙는 사람), '야노쓰쿠지유교(야字가 붙는 자영업자)' - 야쿠자를 가리키는 말
- 마름모의 남자 - 일본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에 속한 남자란 뜻으로 은근히 자기의 조직을 과시하는 말이다. 왜 마름모의 남자냐면 야마구치구미의 가몬이 마름모꼴이기 때문이다.
- 돈파치 - 총격전. 사실 야쿠자 세계뿐만 아니라 꽤 자주 통용되는 단어이다.
11. 조직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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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 지정폭력단 지도.(24단체) 광역 폭력단 같은 경우 다른 지방에도 지부나 방계 조직들이 있다.
11.1. 지정 폭력단
- 야마구치구미(山口組)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2014년 포춘지에서 야마구치구미 연간 수익이 66억 달러로 전세계 범죄 조직 중 2번째로 큰 수익을 낸다는 기사를 냈다.
- 고도카이(弘道会) - 야마구치 구미 산하 최대 파벌이다. 6대 회장 시노다 겐이치가 여기 출신이다. 재일교포가 다수파인 산하의 다카야마구미가 고도카이를 넘어 6대 야마구치구미의 중핵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노다 이후 7대 야마구치구미 조장 후보로 3대 고도카이 회장이자 다카야마구미 2대 조장 출신인 다케우치 데루아키가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 고쿠스이카이(國粹会) - 원래는 뿌리 깊은 우익 정치결사 야쿠자로 관동에서 상당한 세력을 자랑했으나 2005년 야마구치구미에 가입했다. 야마구치구미의 관동진출의 효시로 자주 거론된다.
- 고베-야마구치 구미(神戸山口組)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야마구치구미 분열사태로 인하여 고베의 야마켄 구미를 중심으로 야마구치구미를 이탈하여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였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가 초대 회장 이노우에 구니오에 경제재재를 가했다.#
- 야마켄구미 - 야마구치 구미 산하 2대 파벌이자 다오카 가즈오의 오른팔이었던 야마모토 켄이치가 만든 조직. 2015년 야마구치 구미 분열 사태를 주도하며 조직을 탈퇴해 새로운 조직 고베-야마구치 구미를 창설하였다.
- 타쿠미구미 - 5대 야마구치구미의 부두목이었던 타쿠미 마사루가 만든 조직으로 이번 분열사태에서 야마켄구미와 입장을 같이 하였다. 여담으로 타쿠미는 버블시절 금융과 부동산으로 2,000억 엔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자금력을 배경으로 5대 야마구치구미를 실질적으로 운영했고 야마구치구미의 금고지기라는 별명이 있었다. 한국계로 알려져 있는 현 2대 조장 이리에 다다시는 6대 야마구치구미 소속 당시 샤테이카시라로 실질적 서열 3위였으며 탈퇴 후 고베야마구치구미 부조장이 되었다.
- 키즈나카이(絆會)(전:닌교야마구치구미(任侠山口組)) - 고베야마구치구미 내에서의 회비를 포함 조직운영에 불만을 느낀 구성원들이 독립해서 나온 조직이다. 현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의 오른팔이었던 오다 요시노리(김정기)를 대표로 하는 조직으로, 상대적으로 젊은층들이 주축이 되고 있는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7년에 오다 요시노리를 노린 야마켄 구미의 암살시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오다 요시노리의 보디가드가 사망했다. 2020년 1월 갑자기 조직명을 키즈나카이라 바꾸고 야마구치란 이름을 버렸다. 현지에선 야마구치 삼국지에서 빠저서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이다.
- 스미요시카이(住吉会)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야쿠자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 이나가와카이(稲川会)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고다마 요시오의 비호아래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해 현재에 이른다. 5대 회장이 재일교포 기요타 지로(신병규)이다. 4대째부터 조직이 분열될 조짐을 보였으나 5대째가 되며 기요타 지로의 야마카와일가가 중핵조직이 되어 조직을 장악한 상태. 6대 우치보리 카즈야가 승계를 하고 야마구치구미와 우호관계를 다지고 있다.
- 아이즈코테츠카이(会津小鉄会) - 1868년 설립한 유서깊은 교토의 조직이다. 여기 4대 회장은 재일인 다카야마 도쿠타로로서 조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다카야마의 영도아래, 1993년경 조직원이 1600명에 달하고 교토 외의 지역에도 큰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1997년 다카야마가 은퇴하고 5대 즈코시 토시츠쿠와 6대 바바 요시츠쿠를 거쳐 쇠락세가 지속되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직원이 600명 이상 감소하고, 설상가상으로 2017년경 7대 회장 자리를 두고 조직간에 분열이 일어났다. 이는 야마구치구미 분열소동의 여파인데 6대 회장 바바 요시츠쿠는 고베 야마구치의 이노우에 회장과 의형제 관계였고 부두목 하라다 노보루는 야마구치구미의 고도카이와 의형제 관계였기 때문이다. 야마구치가 분열만 안됐더라면 조용히 승계가 됐겠지만 바바 회장은 고도카이의 다카야마 키요시에게 후견인 관계를 끊어 달라고 통보했으며 이에 격노한 다카야마가 부두목 하라다 노보루를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다. 하라다 노보루는 6대째의 인감과 문서를 위조하여 조직 승계를 자칭하고 본부 사무실을 점거했으나 이후 들통나고 바바 회장의 조직원들과 고베측의 지원을 얻은 인원들이 격투끝에 본부를 탈환하고 하라다를 절연 처분했다. 그러자 이에 굴하지 않은 하라다 노보루는 야마구치의 지원을 얻어 독자적으로 7대를 자칭했다. 바바 회장은 은퇴하고 7대째 가네코 토시노리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야마구치와 고베 야마구치의 지원을 얻은 2개의 아이즈코테츠카이가 서로 정통이라고 다투고 있으며 조직원이 감소하고 현재 쇠락 중에 있다.
- 교세이카이(共政会) - 히로시마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조직으로 영화 의리없는 전쟁의 텐세이카이의 모델이다. 1960년대에 있었던 히로시마 항쟁의 주역으로 혼다카이와 손잡고 조직에서 분리해나간 미노구미+야마구치구미와 대리전쟁을 치렀다. 1965년 야마구치구미 3대 두목 다오카 카즈오의 집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진 사건으로 유명했다. 이때 일화가 영화나 미디어로 많이 다뤄저서 히로시마 야쿠자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후반에는 간사이의 아사노구미, 쿄우도카이와 협력 관계를 맺었고 한때 적대하던 야마구치구미와 공존노선을 맺기로 합의했다. 이후 1990년경 야마구치구미와 사카즈키고토를 나누고 우호 관계가 되었다. 1996년 이후 주변의 조직들인 쿄우도카이, 아사노구미, 고우다잇가, 신와카이와 오사회란 동맹을 맺고 있다.
- 도진카이(道仁会) - 큐슈 후쿠오카현에서 가장 큰 조직으로 2019년 기준 조직원은 약 450명이다. 사가현과 구마모토현에도 세력을 뻗치고 있으며 다른 큐슈조직인 타이슈카이,쿠도카이 등과 사사회란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굉장히 흉폭한 항쟁으로 악명이 자자했는데 도쿄의 스미요시카이와 조직원을 상경시켜 싸운적도 있고, 야마구치구미와 크게 싸운적도 있다. 2006년 두목 승계 문제를 두고 분리해나온 무라카미일가를 중심으로한 규슈세이도카이와 큰 전쟁을 치렀다. 2007년경 3대 회장 오오나카 요시히사가 규슈세이도카이의 히트를 받고 사망했고 이에 무차별적인 보복에 나서 각종 중화기를 동원해 규슈세이도카이와 총격전을 주고 받았다.[43] 2013년경 수류탄과 AK-47을 난사하는 항쟁을 종결하고 끝내 승리하였다. 현재 4대 회장으로 고바야시 테츠지가 두목으로 있다.
- 나미카와카이(浪川会) - 도진카이에 반발해 독립한 규슈세이도카이가 나미카와카이의 전신 조직으로 도진카이와 자동소총과 수류탄 등의 중화기를 동원한 항쟁으로 유명했다. 이때 78세의 조직의 원로 간부가 수류탄을 들고 도진카이 본부를 습격해 한국 언론에도 자주 회자됐다. 기사 2013년경 도진카이와 화해하고 규슈세이도카이를 해체한 뒤 나미카와카이로 재탄생 했다. 회장 나미카와 마사히로(박정호)는 다카야마 기요시를 능가하는 현역 야쿠자 중 최고의 재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6년 3월 29일에 있던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관동회합이 그가 소유한 도쿄 다이토쿠 있는 빌딩에서 열리는 등 이번 야마구치구미 분열사태의 향후 행방에 큰 영향을 끼칠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조직원은 200명 수준이다.
- 쿠도카이(工藤會) - 기타큐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으로 무투파가 많기로 유명한 규슈 야쿠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할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일삼는 조직이다. 위에서 스미요시카이와 대립한 도진카이와는 다른 규슈의 야쿠자 조직인 타이슈카이, 구마모토카이와 함께 사사회라는 동맹을 맺고 있다. 민간인에게 테러를 거침없이 저질러대는 조직으로[44][45] 2000년대에 와서 많은 조직들이 항쟁이나 폭력사건을 자제하고 돈으로 해결을 보는 데에 반해 2010년 이후에도 자동소총, 로켓 런처 같은 물건을 들여오거나 야쿠자 반대운동 관계자들을 암살하고 폭력단 추방을 외친 음식점에 수류탄을 던지는 등 무식한 짓을 계속하고 있는 조직이다. 심지어 쿠도카이를 담당하던 후쿠오카 현경의 간부가 은퇴하자 총으로 저격한 사건도 있다. 이에 따라 개정폭대법에 의해 유일하게 특정위험지정폭력단에도 지정되었다. 후쿠오카와 기타큐슈에서는 거의 공포의 조직으로 폭력단 수준을 넘어 테러조직이란 평가까지 받고 있으며 야쿠자 반대 운동가들에게 지속적인 테러를 가하여 조직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지정된 사람들이 "잘 부탁할게."라는 조직원의 말을 듣고 죄다 증언을 거부하는 등 이상현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2016년 7월 일제 검거를 피해서 한국으로 도피한 재일교포 출신 간부가 필로폰과 일본에서 쓰던 토카레프 권총을 가지고 도망쳤다가 부산에서 검거되었다(日 야쿠자 중간 간부, 부산서 권총 갖고 은신하다 검거 뉴스 영상). 극단적인 폭력성으로 사실상 공공의 적으로 찍혀 2014년에 총재 노무라 사토루가 구속되고,[46] 회장 타노우에 후미오도 구속됐다. 이후 계속된 검거 세례를 받아 조직본부가 세금 대납으로 매각되어 철거되는 등 과거보단 많이 쇠락했다. 관련 기사, 2012년에 알자지라에서 쿠도카이를 방문해서 간사장 기무라 히로시와 인터뷰를 한 영상이 있다. 상술했듯 지금은 조직 회관은 철거됐고 인터뷰한 기무라 간사장까지 검거됐다.영상 한편 총재와 회장이 검거된 사건은 어협(수협)조합장 일가와의 일이 큰데 1998년 키타큐슈 어협의 개발 이권을 노리고 어협 조합장에게 접근했지만 거절 당하자 사살해버린 사건[47] 과 이후 어협 조합장의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 어협조합장이 됐는데 그에게 다시 접근해 어협 이권을 요구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라 생각하고 쿠도카이를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2013년에 후쿠오카에서 전 어협 조합장의 동생을 살해하고 2014년 어협 조합장의 아들[48] 을 칼로 찌르는 테러를 감행했다. 그야말로 3대에 걸친 쿠도카이와의 악연인 것이다. 이외에도 유명 만두체인점 사장을 살해한 사건도 미해결 상태로 쿠도카이가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수많은 테러가 있다. 이러한 극단적 폭력성으로 도쿄의 경찰청에 제대로 찍혀서 집중적으로 검거세례를 받아 많은 조직원이 이탈하고 생활고에 몰려 자살을 하거나 은퇴하는 일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조직원들이나 전 조직원들이 총재와 회장에 대한 존경심을 여전히 늘어놓는등 쿠도카이의 조직력은 아직은 여전한 편이다.
- 사카우메구미(酒梅組) - 야마구치구미의 입김이 쎈 오사카에서 아즈마구미와 함께 독립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바쿠도계 지정폭력단. 3대 조장 마쓰야마 쇼지로 시기에는 다오카 가즈오와 5분(동등한)형제 관계를 맺을 정도의 위세를 가졌으나 2014년 경에는 조직원이 약 40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세가 상당히 약해져 있다. 1993년 오사카 공안위원회에 의해 지정폭력단으로 지정되었고 6대, 7대, 8대 조장이 한국계였으며 특히 7대 가네야마 고자부로(김재학)은 1988년 11월 칠성파 이강환과 6부 4부 사카즈키 의식을 치렀다. 이 때 축하금으로 동생이 되는 이강환에게 준 1억 엔 사용 문제가 발단이 되어 부두목급 김영찬이 신칠성파를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만들어 칠성파에서 갈라져나오게 된다.
- 교쿠도카이(極東会) - 원래 아메토쿠렌코카이를 원류로 하는 사쿠라이잇가 계열의 조직에서 활동하던 세키구치 아이지를 초대 두목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도쿄 신주쿠에 본부를 두고 이케부쿠로 일대에도 활동하는 일본 최대의 데키야계 폭력단이다. 도쿄와 간토에 세력권을 두고 우익 정치결사 활동도 하고 있으며, 2019년경 조직원은 450명에 이른다. 현 총재이자 전 회장이 마쓰야마 신이치(조규화)란 재일이었다. 2015년 은퇴하고 현재 6대 두목으로 다카하시 히토시가 회장으로 있다. 대만 흑사회인 사해방과 연계하고 있기도 하다.
- 마츠바카이(松葉会) - 전신은 세키네구미로 1936년 출범했다. 자민당과의 연계로 세력을 불린 도쿄의 조직으로 조직원은 약 390명. 2009년 5대회장 마키노 구니야스(이춘성)의 은퇴 후 주류파와 반주류파로 대립해 후계자 갈등을 겪었다. 그 해 6대 오기노 요시로가 회장이 되었고, 2014년에 그가 총재로 물러나고 7대 회장 이토 요시마사가 회장이 되었으나 그에 반대하는 코지마 일가 5대 총장 오오츠카 시게아키가 추종세력을 이끌고 간토 세키네구미로 따로 떨어져 나갔다. 2018년 마키노 구니야스가 자연사로 사망하고 2020년 5월 오기노 요시로도 자연사 했다.
- 간토 세키네구미(関東関根組) - 마츠바카이가 후계문제로 갈등을 겪자 독립해나온 조직. 이바라키현 쓰치우라 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구성원은 약 110명 정도이며, 5대 코지마 일가 총장 오오츠카 시게아키를 두목으로 2018년에 지정폭력단으로 지정되었다. 보통 조직이 분리해나가면 전쟁이 터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면의 합의가 있었는지 간토 세키네구미는 마키노 구니야스와 오기노 요시로의 승인을 받고 독립조직으로 인정 받아 현재 마츠바카이와 평화상태에 있다.
- 교큐류카이(旭琉會) - 오키나와 유일의 지정폭력단으로 여러번 분열과 항쟁을 거치다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전쟁 당시 흉폭한 사건이 많아 폭대법이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정폭력단에 속하기는 하지만, 본토 야쿠자들과 여러모로 다른 면모들이 많기 때문에 똑같이 '야쿠자'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 소아이카이(双愛会) - 치바현 이치하라시에 본부를 두고 간토 지역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지정 폭력단. 5대 두목 다카무라 아키라가 신명우란 이름의 재일출신이었다. 현 7대 두목은 시이즈카 아키라로 테라지마 일가 총장이었다.
- 아즈마구미(東組) - 오오사카에 본부를 둔 지정 폭력단. 각성제와 아동 포르노 판매로 유명했다. 조직원 숫자는 적지만 흉폭한 항쟁으로 소수 정예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2018년에 아즈마 구미 산하 세이유카이가 <야쿠자와 헌법>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폭대법에 시달리는 현대 야쿠자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예고편 영상
- 고자쿠라 잇가(小桜一家) - 큐슈 가고시마현을 기반으로 한 폭력단. 소규모 조직으로 가고시마현에 타조직의 진출을 허락하지 않지만 타 지역으로 진출도 안한다는 고자쿠라 먼로주의를 관철하고 있다.
- 쿄우도카이(俠道会) - 히로시마의 소규모 조직으로 교세이카이, 신와카이 등과 동맹을 맺고 있다.
- 타이슈카이(太州会) - 후쿠오카현 타가와시에 본부를 둔 지정 폭력단. 구도카이, 도진카이, 구마모토카이와 함께 사사회라는 공수동맹을 맺고 있다.
- 후쿠하쿠카이(福博会) - 후쿠오카의 조직으로 현재 회장이 김인순이라는 재일이다.
- 아사노구미(浅野組) - 오카야마현 카사오카 시의 조직이다.
11.2. 주요 비지정폭력단
- 이이지마카이(飯島会) - 한때 일본 최대의 데키야계 폭력단으로 도쿄의 조직이며 동일본을 세력권으로 한다. 지금은 다소 세력이 감소한 편이다.
- 스기토카이(杉東会) - 도쿄의 데키야계 폭력단으로 한때 꽤 위세를 떨쳤지만 현재는 쇠락 중에 있다.
- 쵸지야카이(丁字家会) - 도쿄의 데키야계 폭력단이다.
- 츄세이카이 (忠成会) - 효고현 고베시의 조직, 고베의 야마구치구미에 위세에 밀려 관서의 여러 조직들과 한때 반 야마구치 동맹을 맺기도 했다. 지정폭력단 지정은 받고 있지 않다.
- 토우세이카이(토우아카이 東亜会) - 한국어 발음으로는 동성회. 설립자가 재일교포 마치이 히사유키(정건영). "긴자 호랑이" "맹우(화난소)"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하며, 고다마 요시오의 오른팔 격이었던 인물이다
- 아메토쿠렌코카이(飴徳連合会) -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의 데키야계 폭력단.
- 신몬렌코카이(新門連合会) - 도쿄의 데키야계 폭력단.
11.3. 해산된 주요 조직
- 혼다카이(本多会) - 한때 고베에서 야마구치구미의 라이벌로 불리며 관서를 양분하던 대조직이었다. 그러나 정상작전의 결과 해산되고 대일본 평화 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생존을 모색했으나 이후 점차 쇠락하여 최종적으로 1997년 해산하였다. 대부분의 산하 조직은 야마구치구미에 흡수되거나 신와카이 처럼 독자적으로 독립해나갔다.[49]
- 이치와카이(一和会) - 4대째 야마구치구미에서 후계자 싸움으로 야마모토 히로시를 중심으로 갈라진 파벌. 야마-이치 전쟁으로 4대째 두목 타케나카 마사히사를 암살하는 등 야마구치구미와 치열하게 전쟁을 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소멸했다. 야마히로는 조직을 해산하고 야마구치구미 본가에 가서 직접 사죄함으로서 목숨을 건젔다. 부회장이었던 가모다 시게마사[50] 는 무투파로 끝까지 항쟁을 주장했지만, 본인도 도박혐의로 구속되고, 가모다구미도 항쟁에서 희생자가 나오는 등, 결국 대세에 밀려 은퇴했다. 여담이지만 조직의 노래도 만들었는데 의외로 좋다고 호평이다.#
- 나카노카이(中野会) - 5대째 야마구치구미의 보조단체였으나 1996년 아이즈코테츠카이와의 항쟁에서 히트맨들에게 회장 나카노 타로가 습격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교토에 있는 이발소에서 습격 당했으나 경호원이 먼저 사격하여 암살자를 사살했는데 이런 중대한 사건에도 5대째의 부두목인 타쿠미 마사루가 나카노카이와 상의없이 멋대로 아이즈코테츠카이와 화해해버린다. 당사자를 제치고 윗선에서 화해를 해버리는건 전례가 없는 일이며, 나카노카이는 격분한 나머지[51] 1997년 타쿠미 마사루 부두목을 암살해버렸다.[52][53] 이후 처음에는 집행부의 요청은 절연이었으나 와타나베 두목의 결정으로 파문 처리 됐다. 허나 타쿠미를 살해할때 옆에 있던 일반인 치과의사가 유탄에 맞고 사망한걸 계기로 집행부의 강행으로 절연됐다.[54] 하지만 굴하지 않고 독립을 선언, 한때 지정폭력단에 지정되었다. 그러나 타쿠미구미와의 항쟁으로 1999년 와카가시라 야마시타 시게오가 암살당하고 2002년 부회장 히로타 켄지가 암살당했다. 이후 계속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조직이 쇠락하여 2005년 해산했다.[55][56]
- 교쿠토사쿠라이소우케렌코카이(極東桜井總家連合会) - 1921년 사쿠라이소우케는 아메토쿠렌코카이 계열의 데키야로 시작하여 1961년 아메토쿠렌코카이, 사쿠라이잇가, 세키쿠치잇가 등이 뭉처서 교쿠토아이사쿠라렌코카이를 만들었으나 계속된 내부 분열과 노선 갈등으로 1967년 다시 분열하여 사쿠라이소우케는 교쿠토사쿠라이소우케렌코카이를 만들었고 나머지 아메토쿠카이는 독립, 세키구치잇가는 교쿠토카이로 떨어저 나간다. 2004년 쿄쿠토사쿠라이소우케렌코카이는 간부들의 이적과 은퇴로 해산했다. 사쿠라이 종가 조직은 소규모 조직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 야마노카이(山野会) - 구마모토시의 지정폭력단이었으나 쇠락하여 2001년 해산했다.
- 야나가와구미(柳川組) - 재일교포 양원석이 1958년에 구성해 1969년에 해산한 조직으로 대표적인 구렌타이계열 야쿠자 조직이다. 제3대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로, 야마구치구미의 전성기를 여는 데 있어서 행동대장격 역할을 맡았다. 조직의 별칭이 살인 군단일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성으로 유명했으며 전성기에는 2차단체면서 조직원 수만 1,700명에 달했다.[57] 더 무서운 건 야나가와구미는 1차단체도 아닌 2차단체면서도 1964년 제1차 정상작전 당시 광역폭력단으로 지정된 전력이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야나가와구미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양원석이 은퇴하고 해산했으나 무단으로 해산했다고 하여 파문됐다. 그러나 조직원들이 대부분 야마구치구미 직상으로 승격한 걸 봐선 정상작전의 희생양으로 겉으로만 처벌을 취했다는게 중론이다. 양원석도 야마구치구미 원로로 죽을때까지 대우 받았다.
11.4. 일본 조직의 특징
상기한 조직들 외에도 군소규모의 조직들 혹은 큰 조직의 방계조직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단체들을 2차, 3차 단체라 하는데 대두목의 사제가 작은 조직의 두목이 되는 일종의 중세시대 봉건제와 유사하다. 또 대두목의 직계 가신들을 직상(직참直参)이라 하는데 이런 직상들은 하급조직의 두목들보다 보통 위에 있다. 또 서로 다른 조직이라해도 사카즈키 의식을 통해 의형제를 맺어 친척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서로 유대를 다지고 있다. 개중에는 중국이나 대만, 한국 쪽 폭력조직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정형화되고 조직화된 조직들보다 느슨한 한구레 조직들이 더 설치고 있으며 기존 조직의 하위 조직들이 자금난이나 폭력단 배제 조례로 조직 유지가 어려워지자 해산하거나 한구레처럼 변하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58]
일본은 폭력 조직을 결성하기만 해도 폭처법으로 처벌받는 한국과는 다르게 결사의 자유를 인정해서 조직의 존재 자체는 허용하고 있다.[59] 하지만 일본도 한국 폭처법 못지않게 강력한 폭력단 대책법(폭대법)으로 야쿠자들을 통제하며 소위 '지정폭력단'이라해서 세력이 크고 강한 조직들을 지정하여 감시, 관리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지정폭력단이 폭력배를 국가적으로 '''용인하거나 키우는게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조직이 지정폭력단에 지정되면 그만큼 경찰과 검찰의 감시가 매우 심해지고 조직원들의 범죄에도 두목이 연대책임을 물어서 배상을 해야하며 심지어 자동차를 자기 명의로 거래할 수 없거나 부동산 거래, 은행거래, 휴대폰도 자기 명의로 개설이 안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특히 손해배상 청구를 방해하거나 보복을 할 경우 가중처벌을 받는다. 야쿠자들은 이 법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명의를 쓰는 방법으로 요리조리 피해가지만 걸리게 될 경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심지어 공공임대주택에서도 지정이 안되거나 쫒겨나고, 골프장 출입금지 정책도 있으며 폭력단 관계자임을 숨기고 거래를 해도 나중에 발각될 경우 사기죄가 적용되어 처벌받는다. 게다가 본인 명의 은행계좌가 없으니 사회복지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은퇴를 하거나 탈퇴를 해도 5년 동안은 조직 관계자로 취급돼서 이같은 폭대법과 폭배조례의 대상이 된다. 즉 야쿠자들에게 굉장한 제약을 가하는 제도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가 사실상 야쿠자를 사회적으로 말살해버리겠다라고 할 정도로 가혹한 제재이다. 다만 이 법으로 인해 야쿠자들의 자식들마저 부모가 야쿠자인게 들통나 차별받는 경우도 있으며 조직원이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하는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인 차별과 냉대가 악순환이 돼서 야쿠자 조직을 못빠져나온다라는 비판도 있다. 야쿠자들은 이러한 폭대법과 폭배조례가 인권 탄압이라고 길길이 뛰고 있으며 변호사들을 동원해 위헌 소송도 몇차례 한적이 있지만 어째 흐지부지 된듯 하다.
더해서 개정된 폭대법으로 항쟁 중인 조직들은 '특정 위험 지정폭력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지정된 조직은 특별 경계의 대상이 되고, 공안위원회가 정한 경계 지역에서 "조직 사무소 신설 및 출입", "대립 폭력단 주변에서 활보", "같은 폭력단 조직원 5명 이상 모이는 것" 등을 실시 했을 경우, 경찰은 즉시 체포 할 수 있다.
12. 관련 인물
- 도야마 미쓰루 - 흥아론의 정신적 지주중 하나. 겐요샤를 이끌며 메이지 초중기 굵직한 행적을 여럿 남긴 정치깡패이기도 하였다.
- 야마구치 하루키치 - 야마구치 구미의 초대 두목.
- 다오카 카즈오 - 야마구치구미의 3대 두목. 조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 츠카사 시노부(시노다 켄이치) - 야마구치구미의 6대 두목
- 이나가와 세이죠 - 이나가와카이 초대 두목.
- 이토 마츠고로 - 스미요시카이 초대 두목
- 선우영빈
- 양원석 - 일본 이름은 야나가와 지로. 피비린내는 유혈극을 많이 일으켰다. 야마구치구미 산하 조직 중 하나인 야나가와구미 초대 보스로 잔인하고 흉폭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대조직의 업소 개업일에 100여명이 모인 곳을 훈도시만 입은 샌드위치맨으로 위장 돌입, 8명이서 피바다를 만들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있어도 야나가와 구미에 피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없다"는 얘기가 만들어 질 정도. 그의 일대기가 "구름을 부르며 바람을 재우며"라는 논픽션으로 1990년에 나오기도 했다. 앞서의 일화는 허영만의 들개이빨이라는 작품에서도 차용되었다
- 박춘금 -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고베 등지에서 고용살이, 자전거 직공, 탄광갱부, 토목 노무자 등 육체노동으로 전전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야쿠자 거물로 성장. 일본 중의원 2번 당선
- 이기동 - 박춘금과 아울러 상애회 등 야쿠자 거물로 성장. 위키백과 이기동
- 코다마 요시오 - 야쿠자와 일본 우익 정계를 연결시킨 인물이다. 항목 참조.
- 다나카 세이겐 - 코다마 요시오와 함께 야쿠자와 정계를 연결시키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전후의 괴물이라고도 불린 인물로 극우 아시아주의 성향을 가지고 반공전선의 상징적 역할로 막대한 인맥을 가졌으며[60] 극우의 자금줄을 담당하기도 했다. 코다마 요시오가 주로 관동계 야쿠자조직과 이어져 있었다면 이 인물은 야마구치구미의 다오카 가즈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 시미즈노 지로쵸 - 에도 막부 말기, 메이지 시대의 협객이라 불린 야쿠자. 여러 대중문화의 소재가 되어 유명해졌다. 사후 조직이 1966년 5대까지 이어젔으나 해산되었다가 5대째에서 독립해나간 미오구미가 야마구치구미의 보조단체가 돼서 2007년 시미즈노 지로쵸를 승계한다는 명목으로 6대 시미즈잇가라고 자칭하고 부활했다.
13. 야쿠자와 관련된 작품 및 등장요소들
13.1. 대중문화에서의 모습
- 흔히 양복 옷깃에 조직을 상징하는 배지를 대놓고 달고 다닌다. 물론 실제로도. 그래서 종종 "네가 그 금배지만큼의 가치가 있다 생각하냐?"라는 식으로 배지 운운하는 대사가 많다. 또한 엠블럼 TAKE2의 작중 설명에 의하면 "배지는 자존심, 목숨과도 같은 것이기에 어떻게든 뺏기면 안 된다"라고 한다. [61][62]
- 도박판에서 기모노 입은 여성이 상의만 벗고 등의 문신을 보여주며 설치는 건 <일본여협전>[64] 이나 <일본 협객전>을 패러디한 거로 보면 된다. 그런데 여기 한 항목에 말하는 이유는, 배우만 다르고 내용이 전부 똑같은 야쿠자 영화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65] 심지어는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만화 타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했다.
- 등에 새겨진 문신은 자기의 인생철학을 담은 문신을 새기며 자신의 문신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문신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특히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는 문신이 그 캐릭터 자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문신은 강제하기 보다는 대부분 자신의 결정에 따라 종류를 정하며 두목이나 형제의 이름을 새겨넣기도 한다. 특히 젊은 야쿠자들 중엔 두목의 이름을 넣는게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기사
-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미이케 타케시의 <풀메탈 야쿠자>의 오마주.
- 대만 조폭들이 'VS 일본 야쿠자'구도로 나온다. 보통 화해해서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십중팔구 몰살당한다고 보면 된다. 엠블럼 TAKE2에서 해당 에피소드를 다룬 바 있다.
- 사람을 죽일 때는 드럼통에 넣어 바다에 빠뜨리는 듯 하다.
- 오사카와 자주 관련된다. 그런데 오사카는 재일동포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사카 출신의 예능인들이 야쿠자를 많이 다루긴 한다. 미이케 타카시나 니타 타츠오 등.
- 야쿠자만의 인사법이 있다. 먼저 미식축구 하듯이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왼손은 무릎을 짚고, 오른손은 전방을 향해 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소속 조직이나, 이름을 말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안녕하십니까! 동성회 직계 도지마조 소속 조직원 키류 카즈마입니다!"라든가...엠블럼 TAKE2에서 모리시타 아키라라는 캐릭터가 첫 등장할 때 하는 인사가 가장 모범적인 자세. 그리고 워스트에서도 등장. 여기서는 양손 모두 무릎을 짚지만 영락없는 야쿠자다.
- 조연이나 졸개로 등장할 때는, 흰 양복에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기거나 흉터가 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는 경우도 있다. 수염을 잘 기른다.
- 자신을 지칭할 때, "와시"라고 부른다.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한 주고쿠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는 1인칭으로 야쿠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야마구치구미가 바로 고베에 본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이미지다. 그 외의 지방에서는 화자의 연령이 고령임을 암시한다. 픽션에서는 노인, 박사, 권력자(남성)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사극에서 1인칭으로 자주 등장한다.
- 사무실까지 있으며, '인의'니, '의협'이니 하는 한자 글씨 같은 걸 액자에 넣어서 건다. 주로 오뚜기 달마(한쪽 눈 그리는 그 달마)가 있다.
- 경찰이 쳐들어오면, 조직원들이 핸드폰을 부수거나 없애버린다.
- 마을축제에 데키야(的屋)라 불리는 노점상으로 주로 참가한다. 실제로 마을축제는 야쿠자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서 자리세부터 시작해서 목 좋은 자리는 대부분 야쿠자가 가져간다. 블랙라군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 야쿠자들도 의외로 인간적인 것처럼 그려진다. 인간적 애환이라든가...당연히 야쿠자 미화로, 실제 야쿠자들에게도 사람인 이상 이런 면이 있기는 개뿔 가장 비인간적이고 짐승처럼 돌아가는 업계가 야쿠자 업계다.
- 익(益)보다 의(義)를 중요시하며, 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건다. 조폭미화물에서는 이런 장면이 반드시 나오나, 당연히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고 가장 배신이 밥먹듯이 벌어지는 곳이 범죄업계다.
- 도박장을 운영하는데, 주사위 도박(ex. 친치로)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여기서는 야쿠자 구성원들[66] 이 전부 옷을 거의 벗고 있다(바쿠토). 이는 도박을 하는 데에 아무런 속임수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 일본식 부적(목걸이 형태가 많음)을 하나같이 목에 걸고 있다. 전세계를 막론하고 폭력조직의 두목급이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속칭 '행운의 아이템'[67]
- 폭력단 대책법 제정 이후로는 해당 법안을 자주 들먹인다. 야쿠자의 부하가 무슨짓을 저지르면 폭력단 대책법에 따라 두목'도' 가둔다는 내용도 있다. 상술했듯 야쿠자들은 두목이 직접 명령을 내리는게 아니라 부하에게 암시하는 말만 하고, 부하가 그걸 알아서 해석해서 실행하기 땜에 이 법이 정당한건 맞다. 그래서 이 대책법 때문에 야쿠자 대부분이 합법기업화 되었다. 물론 뒤로는 여전히 나쁜 짓을 많이 하겠지만. 여튼 이 법은 말 그대로 야쿠자를 잡는 법으로, 이 법이 집행되자 야쿠자들은 사회나 주위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듯 약해졌다.
- 파칭코와 관련된 걸로 나온다. 실제 파칭코는 불법사업이라[68] 필연적으로 야쿠자 등 범죄조직과 연계되어 있고 실제 일본의 파칭코 사업의 대다수는 재일교포와 야쿠자가 점유율을 다투고 있다. 한편 조총련계열의 파칭고 회사는 돈을 북한으로 송금한다고 하는데, 알 수는 없지만 재일조총련들이 북한에 가면 환영받는 건 사실이다. 그들 돈으로 골프장도 짓는다.
- 재일중국인, 재일한국인들이 자주 나온다. 재일한국인의 경우 2차세계대전 직후 야쿠자 전성기 초창기부터 활동한 주요한 세력이며 재일중국인은 8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다수 유입되었다. 이들의 역할은 대부분 행동대장이며 이런 재일 야쿠자들은 주로 가부키초 같은 유명한 유흥가에서 활동한다 카더라…재일중국인 조직은 대개 삼합회로 불리며 주로 청룡도를 쓰고 잔혹한 걸로 묘사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69]
- 박용건의 장편 소설 <태양의 제국>에서는 20세기 중후반에 "다카마쓰 료헤이스케"라는 야쿠자 오야붕이 권력에 너무 맛을 들여서 자신이 가진 쇼미더머니 파워로 전국의 수재들을 지원하여 그 수재들을 정재계 등에 진출시켜서 일본판 애국자들을 창설했다는 설정이 있다.
- 위와 비슷한 예로 서양 쪽 매체에서는 가끔 남미 어딘가의 마약 카르텔 수준으로 충공깽한 조직[70] 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일례로 히트맨 2: 사일런트 어새신에 타겟으로 등장하는 하야모토는 아예 개인 소유의 성을 하나 통째로 가지고 있으며 개인 소유의 닌자 부대까지 있고, 심지어는 미사일 유도 시스템까지 가지고 있다.
- 레인보우 식스: 테이크다운의 주적도 야쿠자들인데, 테러리스트 때려잡는 게임에 왜 야쿠자가 적으로 나오냐 하면 이 빠가들이 압수당한 엑스터시 회수를 위한 양동작전이랍시고 국제 테러조직을 매수해서 미군 장성을 인질로 잡는 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하는 희대의 사건을 벌였기 때문. 당연히 미군 현직 장군이 인질로 잡히는 사태가 터져 레인보우 팀이 파견되고, 테러조직이 박살난 이후로도 이후에 추가로 터질 테러 위협 때문에 조직이 소탕될 때까지 존 클라크가 레인보우 팀을 그대로 한국에 잔류시키겠다고 해서 결국 조직은 완전히 망했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세계관에서는 "온모라키 구미"라는 야쿠자 조직이 겁대가리 없이 암살단 오사카 지부를 레이드 가서 오사카 지부의 멘토를 제거하는 짓을 벌였으나 뒤이어 멘토 부인을 필두로 한 분노의 암살단원들의 역공으로 조직 자체가 암살단에 하부조직으로 먹혔다.
- 스트라이크 백 시즌 5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태국에 근거지를 둔 야쿠자가 적으로 등장하는데...이상하게 총질하는 조직원들을 구렌타이라고 부른다. 구렌타이는 주로 청소년으로 구성된 깡패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 케인 앤 린치 : 데드맨에서는 서양 게임에서 흔치 않게 아예 주적으로 등장해서 케인과 린치에게 탈탈 털린다. 재미있게도 케인 앤 린치의 제작사는 위에서 언급한 <히트맨 2>를 제작한 회사인데 야쿠자들에 대한 묘사에 과장이 상당히 들어간 <히트맨 2> 때와는 달리 합법적인 기업으로 위장하는 등 그나마 현실에 가까워졌다.
- 3학년 B반 야쿠자 티쳐라는 만화에서는 '명토회'라는 야쿠자 조직이 있는데 다 쓰러져가는 형국이라 전조직원 모두가 두목도 예외없이 너도나도 크고 작은 아르바이트를 의무적으로 하게 되었다. 주인공 스가와라 긴타는 이 조직의 부두목이고 조직에서 유일하게 정규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조직에서 유일하게 교사 자격증이 있어서 고등학교 일반사회 교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두목은 그 학교 정문 앞에서 노점상을 차리고 타코야끼를 팔고 있다.
13.2. 야쿠자물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
13.3. 야쿠자 세계를 비중 있게 다루는 작품
- 깡패수업
- 나쁜 녀석들: 더 무비[72]
- 대악사
- 돈게쓰
-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
- 번쩍번쩍 의리통신
- 블랙 레인
- 생추어리(만화)[73]
- 소나티네(영화)
- 쇼와잔협전
- 사채꾼 우시지마
- 엘리트 건달
- 엠블럼 TAKE2
- 요짐보
- 용과 같이 시리즈 [74]
- 우리들의
- 원한해결 사무소[75]
- 의리없는 전쟁
- 아웃레이지
- 자토이치
- 저지 아이즈: 사신의 유언
- 코로시야 이치
- 키즈 리턴
- 타짜 4부
- 프리즌 호텔
- 히나마츠리
-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76]
- Back Street Girls
- 보스의 두얼굴
- 높은 성의 사나이(드라마)
- 야쿠자의 아내들
- 내세에는 남남이 좋겠어
13.4.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야쿠자 집단과 가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사예팔재회
- 누라리횬의 손자 - 누라구미
- 도박마 - 카케로 & 쿠라라 파[77]
- 듀라라라!! - 메데이파 아와쿠스회
- 블랙 라군 - 와시미네파
- 세인츠 로우 시리즈 중 2편 - 로닌그룹
- 세토의 신부 - 미치시오가,[78] 세토우치파, 에도마에파
- 슈에이샤에서 출판하는 만화들 - 슈에이샤/슈에이카이/슈에이구미[79]
- 쓰르라미 울 적에 - 소노자키가
- 오버워치 - 시마다 일족
- 용과 같이 시리즈 - 동성회, 오미 연합
- 저지 아이즈: 사신의 유언 - 동성회, 공례회[80]
- 역전재판 시리즈 - 시카바네파, 카타기파, 키타키츠가
- 코단샤에서 출판하는 만화들 - 코단샤/코단카이/코단구미
- 토가이누의 피 - 비스키오
- [81]
- G블러드 - 현해회
- 크로우즈 제로 2 - 카타기리 겐, 타키야 겐지[82]
- 크로우즈 익스플로드 - 카가미 료헤이[83]
- GTA 3, GTA 리버티 시티 스토리즈 - 리버티 시티 야쿠자
- Library of Ruina - 흑운회
13.5. 야쿠자와 관계 있는 설정의 캐릭터
- 고쿠센 - 야마구치 쿠미코
- 골든 카무이 - 오야붕과 히메, 바라토 히도로 일가
- 공의 경계 - 료우기 시키, 료우기 마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오버홀, 크로노스타시스, 미믹, 돌격부대 팔재중
- 노블☆웍스 - 나가미츠 마야
- 니세코이 - 이치죠 라쿠, 키리사키 치토게 : 야쿠자 두목의 자녀다. 그것도 경쟁조직의...[84]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레이, 고레다
- 단간론파 시리즈 - 쿠즈류 후유히코, 쿠즈류 나츠미
- 동방귀형수 - 킷초 야치에, 쿠로코마 사키
- 듀라라라!! - 오리하라 이자야, 아와쿠스 아카네
- 마법소녀 사이트 - 린가 사유키
- 마사무네의 리벤지 - 프랑크 페슨, 뮤리엘 페슨
- 블랙 라군 - 와시미네 유키오
-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 - 센료 쿄시로[85]
- 세토의 신부 - 세토 산, 에도마에 루나
- 소녀적 연애혁명 러브레보 - 타치바나 켄노스케
- 스카페이스 - 하나야마 카오루
- 싸움독학 - 백성준
- 쓰르라미 울 적에 - 카사이 타츠요시
- 아랑전설 시리즈, KOF 시리즈 - 야마자키 류지
-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
- 아이★츄 - 스포일러
-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 - 오니
- 엠블럼 TAKE2 - 아쿠츠 조지
- 오란고교 호스트부 - 카사노다 리츠
- 오버워치 - 시마다 한조, 시마다 겐지
- 외모지상주의(웹툰) - 박종건(외모지상주의)
- 용과 같이 - 키류 카즈마를 비롯한 거의 모든 등장 캐릭터들.[87]
- 용왕이 하는 일! - 야샤진 아이
- 지어스 - 사카키바라 타모츠, 하스키 이치로
- 원피스 - 사카즈키[88]
- 은혼 - 도로미즈 지로쵸, 친 피라코, 쿠로고마 카츠오
- 지정폭력소녀 시오미짱 - 이와오 시오미[89]
- 킬빌 - 오렌 이시이[90]
- 페르소나 5 - 이와이 무네히사
- 페이데이 2 - 지로
- 풀 메탈 패닉! - 미키하라 렌
- 히나마츠리 - 닛타 요시후미
- 회색도시 시리즈 - 노구치 시게노리
- 히프노시스 마이크 - 아오히츠기 사마토키
- A3! - 후루이치 사쿄
- Fate 시리즈 - 후지무라 타이가, 후지무라 라이가, 야쿠자[91]
- GTA 3 - 켄지 카센, 아스카 카센
- GTA LCS - 카즈키 카센, 토시코 카센
- Golden Marriage - 시마카게 루리
- Sdorica - 센노스케
[1] 일본 경찰의 야쿠자 조직 해산 작전.[2] 코드 기어스 드라마 CD에서 이 의미대로 쓰인 적이 있다. 오뎅집 자영업하는 나나리를 혼자 두고 매일매일 도박이나 유령회사 매입매수 등 확률 게임에만 미친 듯이 달려드는 를르슈에게 "이 야쿠자 같이 사는 썩어빠진 근성을 고쳐주겠다"라고 한 것이 그 예.[3] 한국에서 양아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동냥하는 사람'에서 '불량배, 건달'로 변화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4] 6, 70년대 대중연극의 태반은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당시엔 야쿠자와 예능계의 유착이 심했다고 한다.[5] 한국에서는 패거리에 스스로 명칭을 붙이는 순간 '''폭력단체 구성'''이라는 폭처법의 요건을 완벽히 갖추게 되어 최대 사형을 언도받기 때문에 절대 간판을 내걸지 않고, 보통 자기들끼리는 "어디어디 식구" 내지는 "누구누구 형님 밑에 있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잘 아는 XX파, OO파 하는 것은 조직이 지은 이름이 아니라 수사 기관에서 수사 편의상 붙이는 별칭이다. 그 때문에 '딸기맛미역파'같은 희한한 별칭도 간간히 있다.[6] xx회, xx연합, xx동맹 등의 조직명을 쓰는 조직에서 우두머리를 회장으로 칭한다.[7] xx일가(一家) 등의 조직명을 쓰는 조직에서 두목을 총장이라 부르곤 한다.[8] 신세계에서도 골드문 그룹의 실세이자 차기 회장 후보였던 정청과 이중구는 각각 공식 서열 3위와 4위였다. 공식 서열 2위는 장수기였으나 실권이 없었다.[9] 호주의 사망 또는 기타의 사유로 호주권이 상실될 경우 호주 상속인이 전 호주의 법률상 지위를 이어받는 신분 상속.[10] 다만 조직의 규모와 위상에 따라 서열이 대등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11] 문자 그대로의 보호도 있지만 대개 '강자에 의한 평화'를 의미한다.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깽판을 치는 일종의 협박인 것. 서양의 길거리 갱단의 주 수입원이 이것이기도 하다.[12] 일본에선 '항쟁'(抗爭)이라 한다. 한국에서 '항쟁'은 주로 압제자, 외세에 맞선 민중의 투쟁이란 뜻으로 쓰지만 일본어에선 야쿠자, 무장정치조직 안의 무력투쟁도 항쟁이라 표현한다.[13] 용도와 생김새는 그냥 일반 물수건이랑 다를 바 없다.[14] 후일 일본 법무상까지 역임했던 인물로 말년에는 방한하면서 개인자격이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를 반성한다고 밝혔다. 2002년 별세.[15] 이러한 현상은 미국 20세기 전반부까지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마피아, 20세기 이후의 히스패닉, 흑인 갱스터나 각종 이민자 출신의 갱단 등, 소외된 민족이 있는 나라라면 정도의 차이일뿐 항상 있는 현상이었다.[16] 일본 현지에선 가쿠세이자이, 즉 각성제라 흔히 부르고 은어로는 "샤부"라고 많이 부른다.[17] 간혹 일본 현지의 넷 우익들 중에는 일부 조직들이 조총련을 통해 대북송금을 한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하나 아무런 근거가 없다.[18] 히로뽕 유통. 2000년 기점으로 히로뽕 밀수루트가 중국과 북한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각성제관리법 위반으로 검거된 외국인 중 한국국적이 40% 정도를 꾸준히 차지한다.[19] 빠칭코 운영, 보호비 갈취, 경품교환소 운영.[20] 한국으로의 기생관광 중계업, 일본 현지에서는 한국인 접대부를 고용한 윤락 유흥업소 운영 및 보호비 갈취.(2000년대 중반까지도 가부키쵸와 아카사카 일대에만 10명 이상 접대부를 고용한 한국크라브가 100업소 이상이었고 도호쿠 대지진 후 많이 줄었다지만 2016년 아직도 일본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수의 업소가 한국인 여성을 고용해 운영 중이다.)[21] 연예흥행사업 및 연예기획사 운영, 프로레슬링, 야구, 권투, 스모 등의 스포츠 도박 및 흥행 사업.(야쿠자를 은퇴한 양원석은 일본 IBF 초대 커미셔너로 활약하며 일본 복싱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고 연예계에선 미소라 히바리, 사이조 히데키 등과 스포츠계에선 역도산, 타카노하나, 장훈 등의 수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두각을 내며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22] 전후부터 6, 70년대 안보투쟁시기까지 북한의 일본 거점이었던 조총련을 향한 백색테러, 민단장악.[23] 메이유카이 사건 당시 24명이 구속되는 큰 희생을 해가며 활약한 야나가와구미는 당시의 활약을 인정받아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로 승격하며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다진다.[24] 전후 상당기간 제도권 금융 대출이 힘들던 대다수의 재일교포들의 사채이용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배경으로 일본 사채 및 부동산 시장에서 재일교포 큰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자금확보 및 사채회수에 한국계 야쿠자들이 많이 이용되어 왔기에 총회꾼, 불법대출, 주가조작, 한일 커넥션을 통한 자금세탁에 활용되기에도 유리하였다.[25] 도진카이에서 회장 승계문제로 갈라져 나와 야쿠자 항쟁에 유래없을 중화기들을 동원해 항쟁을 벌였던 재일교포계 조직인 규슈 세이도카이의 2대 가이쵸였으며 항쟁 후 해산하였다가 나미카와무쓰미카이로 재결성해 개칭한 나미카와카이의 회장.[26] 고도카이 총재 다카야마 기요시.[27] 교쿠신렌고카이 회장 하시모토 히로후미(강홍문). 3대 야마켄구미 와카가시라였고 2003년부터 3대 야마켄구미 조장대행을 하며 실질적으로 야마켄구미를 이끌던 강홍문은 2005년 야마켄구미 4대 구미쵸가 이노우에 구니오로 승계될 당시 자신의 교쿠신렌고카이를 이끌고 야마구치구미 2차단체로 독립 직계 단체로 승격한다.(야마켄구미 산하단체였을 당시에도 웬만한 직계단체 보다 큰 세력을 가진 무투파 유력 단체였다.) 2015년 4대 야마켄구미를 중심으로 고베 야마구치구미를 구성해 6대 야마구치구미를 독립할 당시 강홍문은 야쿠자 은퇴를 고려하였으나 6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초인 쓰카사 시노부의 회유와 압력에 야마켄구미와 거리를 두게되고 고베야마구치 구미 분열에 가담하지 않게된다. 쿄쿠신렌고카이는 야마구치구미 내에서 독보적인 연예계 커넥션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기간 일본 최대 게닌 사무소인 요시모토 흥업을 비롯, 연예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시마다 신스케의 은퇴 역시 깊은 관련이 있다.[28] 오하라구미 구미초 오하라 히로노부(윤광희). 초대 다쿠미구미 샤테이카시라보좌 및 본부장이었다. 1989년 타쿠미 마사루가 5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취임 시 독립 직계단체로 승격한다. 항쟁에 적극적으로 앞장 섰던 무투파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분열사태에 타쿠미구미와 입장을 달리 했다.[29] 조선적은 북한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 대한민국 국적 또는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하지 않은 식민지 전 조선국적을 뜻한다. 대부분 조총련 계열활동을 한다.[30] 신문기사에 따라서 일본식으로 성씨를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표기(아무로라 나세리, アムロラー・ナーセリー)하기도 한다.[31] 일본은 사형이 집행되는 국가이다.[32] 주로 공사장에서 훔친 발파용 다이너마이트를 썼다.[33] 사실 한국 조폭이 불법 루트로 총을 못들여오는건 아니지만, 총기규제가 엄청나게 빡빡한 대한민국에선 사람들이 어느정도 모여있는 곳에서 총성 하나만 울려도 대사건이며, 까딱 잘못하다간 경찰을 넘어 온갖 특수장비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에게 묵사발이 날 수도 있고 심하면 윗동네와의 연관성을 의심한 국가정보원의 수사망에 걸릴 수도 있다.[34] 각 지역 경찰청 및 도쿄 경시청의 조직범죄 대책부 소속으로 대 폭력단 전문 수사 형사들이다.[35] 폭력단대책법 시행 20년째인 2011년 현재 일본 경찰은 야쿠자 전체 숫자가 약 6,000여명이 감소한 걸로 추산하고 있다. 무한팽창하던 야쿠자 조직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36] 이는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독립에 따른 영향을 고려해야겠지만, 고베야마구치구미의 구성원 수를 합쳐도 10년 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37] 아베 신조의 비서가 규슈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쿠도카이를 찾아가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 살포를 사주한 후 입을 싹 닦은 사건이다.[38] 그런데 이 양반이 걱정하는 삼합회도 일본 차이나 타운 밖에서는 영 맥을 못 춘다.[39] 이러한 경향은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기 시기에 야쿠자물들이 마구 뽑혀나온 역사와 관련이있다. 당시에는 과격한 액션과 다소 야한 장면이 나와도 합리화가되는 야쿠자물들을 사람들이 많이 선호했기때문에, 이런 야쿠자물들은 엄청난 수가 양산되어 인기리에 팔려나갔고, 그 과정에서 실제 야쿠자 조직들도 자기들의 자금을 들여서 자기 조직들을 미화하는 온갖 야쿠자미화물들 양산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성장한 세대는 자연스럽게 야쿠자에 알 수 없는 로망을 가지게되는것이다.[40]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용접할 때 순간온도가 대략 그쯤 된다고 보면 된다.[41] 다만 보다 정확히는 그냥 당시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야쿠자물 자체가 유행이었다. 애초에 과격한 액션과 야한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들에 당시 젊은이들이 거기에 안빠지면 이상한거기도했고[42] 한국에선 꼬붕은 좀 급이 낮은 말단 조직원을 가리키지만 일본에선 오야붕의 부하들 중에 오야꼬 사카즈키를 한 이는 다 꼬붕이기 때문에 직위가 높은 꼬붕도 있다.[43] 이때의 사건으로 인해 큐슈는 수라의 나라라는 별명을 인터넷상에서 얻었다.[44] 1988년에는 삼합회랑 경쟁하다가 산탄총과 덤프트럭으로 애먼 중화인민공화국 후쿠오카 영사관을 공격했고, 2000년엔 시모노세키 시장 선거를 도와주겠다며 당시 모리 요시로 아래에서 내각부 수석차관을 역임중이던 아베 신조에게 돈을 갈취하려다 아베가 이를 거부하자 아베의 의원 사무실과 자택에 화염병을 던진 전력까지 있다.#[45] 사실 여기엔 반전이 있는데 아베 신조의 비서가 구도카이를 찾아가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살포할 것을 사주하고 입을 싹 닦자 빡친 쿠도카이측이 시모노세키의 아베 신조의 사무실과 집에 화염병을 투척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언론, 경찰 등에 압력을 넣어 이런 사실은 보도되지 못하고 애꿎은(...) 쿠도카이 조직원들만 깜빵에 갔다 와야 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전모가 밝혀졌다. 이러한 내막을 몰랐던 일반 시민들은 정치인을 건드리는 건 야마구치구미도 못하는 짓인데 과연 쿠도카이답다는 반응이었다.[46] 2021년 현재도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전 어협 조합장 사살사건, 어협 조합장 아들 테러사건, 전 경찰 간부 총격사건, 간호사 습격사건 관련으로 1심 재판에서 폭력단 조직의 두목으로는 이례적으로 사형을 구형받았다.[47] 이 어협 조합장은 야마구치계 폭력단 관계자로 젊은 시절 항쟁에서 쿠도카이 간부를 살해한 과거가 있었다. 가뜩이나 찍힌 상태에서 이권개입을 거절하자 살해했다는 추측이 유력하다.[48] 치과의사로 살해된 전 어협조합장의 손자[49] 야마구치구미와의 라이벌 구도로 1960년대 히로시마에서 교세이카이랑 손잡고 대리전쟁을 했는데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바로 의리없는 전쟁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신와카이가 혼다카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조직이다.[50] 유명한 배우 스가와라 분타나 와카야마 토미사부로와 매우 친했고 한국의 전국구 두목인 조창조와의 교분도 깊었다. 그래서 한국 워커힐 호텔 카지노로 많이 놀러왔다고 한다. 야마구치구미 시절부터 무투파로 이름이 높았지만 계속 싸움을 하다가는 폭대법이 성립이 될거라고 우려하는 신중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1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51] 회장 나카노 타로는 아이즈코테츠카이와 타쿠미 마사루가 서로 공모해서 5대 두목의 심복인 자신을 제거할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믿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오사카의 타쿠미 마사루가 일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는걸 보고 음모를 직감했다고 한다.[52] 여담으로 사살 계획의 총지휘역인 요시노는 한국으로 도망쳤으나 이후 한국 아파트에서 의문사한다. 또 한명의 실행범은 고베에서 숨어지내다 쓸쓸히 병사한다. 나머지 실행범들은 도망쳤으나 이후 계속된 수사로 차례로 체포되어 실행범 3명은 징역 20년, 현장 사살을 지휘한 나카노카이 하부조직인 자이츠구미 두목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53] 2018~2020년 사이 실행범 3명은 모두 만기출소했는데 이때에도 이들의 대한 소식이 업계 관계자나 잡지에서 잠깐 화제가 됐었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 야마구치구미도 2개로 분열되있고 20년만에 출소한 지라 세상이 너무 바뀌어서 정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실행범 중 한명인 Y는 출소때 고베 야마구치구미 소속 이케다구미의 후배가 마중을 나왔다고 하며 이 후배는 과거 나카노카이 소속이었던 이타리류카이(至龍会)의 일원으로 실행범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20년간 편지로 교제했다고 한다. 한편 타쿠미구미로서는 전 두목의 원수지만 20년전 일이고 실행범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한 일로 더 이상 원한을 갖진 않고 보복하진 않을것이라는 이리에 타다시 현 두목의 말이 있었고, 이 말이 Y에게도 전달됐다고 한다.[54] 타쿠미 마사루 암살은 대담한 히트였는데 신고베 오리엔탈 호텔 티라운지 구석에서 타쿠미가 야마구치구미 최고 간부들이었던 기시모토 사이조, 노가미 테츠오와 점심 식사 겸 차를 마시고 있을때 히트팀이 나타나 권총을 마구 난사해 살해했다. 기시모토나 노가미는 무사였다. 훗날 기시모토는 그때를 회상하며 '총에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맞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여하간 뻥 뚫린 장소였던지라 운이 나쁘게도 옆 테이블에 민간인 치과의사가 앉아 있었고 유탄에 맞아 병원에 옮겨젔지만 이내 사망했다.[55] 이 나카노카이 내부 항쟁 사건은 야마구치구미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관망하던 고도카이의 츠카사 시노부가 6대째로 떠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타쿠미 마사루 암살 사건은 조직의 실권을 쥐고 있던 타쿠미와 갈등이 있던 5대 와타나베 두목의 양해를 받았다는 말도 있기 때문에 지금도 전모는 베일에 쌓여있는 일이다. 즉 추정하자면, 와타나베 두목과 타쿠미 부두목의 갈등으로 부두목이 두목의 심복 나카노를 제거하려 했고 이에 실패하자 와타나베 두목이 나카노를 부추겨서 부두목 타쿠미를 제거했다. 처음엔 파문 정도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사건의 전모를 알아챈 고도카이를 비롯한 집행부의 강요로 나카노는 절연당해 버림 받고 5대 와타나베 두목도 은퇴했다는 쿠데타 시나리오가 유력한 가설이다. 이러한 야마구치구미 내부 암투를 이용해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고도카이의 츠카사 시노부가 6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56] 나카노 타로는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하다가 2021년 1월 사망하였다. 5대 야마구치구미의 심복이었고 징역의 나카노 타로, 무투파 나카노 타로로 불렸을 정도로 거친 인물이었지만, 나카노 타로의 아들이 학교에서 싸움을 벌이자 직접 찾아가 아들이 폐를 끼쳤다고 사과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57] 준구성원을 포함하면 2,800여 명. 이정도면 그냥 1차단체 규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엄연히 야나가와구미는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였다. 즉 야마구치구미의 무식한 규모를 짐작하게하는 대표적인 사례.[58] 한국의 대형조직들이 폭처법으로 조직유지가 어려워지자 음지에 숨어서 반달화되고 점조직처럼 변하는 현상이 야쿠자계에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59] 사실 조직을 결성하기만해도 처벌하는 한국 폭처법의 범단 조항은 결사의 자유를 위반하는 위헌시비가 있다. 즉 일본은 민주적인 결사의 자유는 허용하되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서 더 감시하고 관리, 통제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마치 '일본에는 저렇게 대놓고 야쿠자가 설치는데 참 이상한 나라네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식의 관리 통제 방식 역시 효율적이고 한국 독재정권 당시 만들어진 폭처법의 위헌적 조항이 더 이상한 것 일수도 있다.[60] 쇼와 덴노를 시작으로 당시 역대 일본의 주요 수상들뿐만 아니라 해외로는 하이에크나 등소평과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다.[61] 취소선은 그어놨지만 모든 조폭들이 허세에 목매는 이유는 중2병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62] 실제로 쌍팔년도 야쿠자는 그런 식으로 배지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며 다니는 경우도 많았지만, 폭대법이 강화된 이후로 그런 사례는 없어졌다.[63] 그러니까 메이지, 다이쇼, 쇼와 초기[64] 여자 야쿠자가 설치는 것[65] 참고로 타카쿠라 켄은 단골로 출연했다.[66] 특히 "딜러" 역할.[67] 마피아 영화인 <대부3>에서 헬기에 의해 수많은 패밀리 두목들이 몰살당할 때 어떤 마피아가 자신의 '행운의 코트'를 붙잡느라 총알을 못 피하고 죽었다.[68] 환금과정이 불법이다.[69] 유튜브에서 삼합회 싸움 같은 것을 검색해보면 연장이랍시고 청룡도를 들고 쳐들어가는 게 CCTV에 찍힌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70] 조직원들이 하이테크 무장(복합 돌격소총)을 하고 나온다거나 닌자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거나.[71] 이 사람은 일본의 김성모라 불러도 될 정도. 물론 시대극도 그리지만, 시대극을 그려도 야쿠자화된다. <수라가 간다> 시리즈가 유명.[72] 아쿠자의 본격적인 등장은 영화 후반부부터다.[73] 두 친구가 동전던지기를 해서 한쪽은 빛(국회의원), 다른 한쪽은 그림자(야쿠자 두목)가 된다. 그렇게 정치와 야쿠자가 유착되는 과정을 묘사했다.[74] 해외판은 아예 이 시리즈의 제목이 야쿠자이다.[75] 사무소 자체는 야쿠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업무 특성상 연계플레이를 많이 한다.[76] 제작진이 직접 야쿠자물을 보고 만들었다고 밝혔다.[77] 카케로의 경우 스스로를 야쿠자라고 칭한 적은 없지만, 도박장을 관리하던 인물이 조직을 세워 작중 현재까지 계속 그 일을 한다는 점에서 야쿠자의 기원과 유사하다. 쿠라라 파야 빼도박도 못할 야쿠자.[78] 이쪽은 평범한 집안이었다가 야쿠자와 엮이게 되었다.[79] 코단샤와 함께 야쿠자 조직명에 자기네들 회사 이름을 쓰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치죠 라쿠 항목 참고.[80] 용과 같이 시리즈와 세계관이 같기 때문에 동성회가 나오고 배경도 카무로쵸다.[81] 팝 팀 에픽 만화의 단행본을 빨리 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출판사 타케쇼보(竹書房)의 간판에 멋대로 "지정폭력단"이라 적어놓고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이 있다. TV 애니 중 야쿠자 영화가 소재인 8회에서는 한술 더떠 타케쇼보를 죽생회(竹生會, 칙쇼카이...)라는 조직으로 등장시켰다.[82] 겐지 아버지가 야쿠자의 보스다.[83] 아버지가 나라오카 조직에 소속했는대 야쿠자들간 전쟁중 사망해버리자 나라오카와 켄이 대신 키웠다. 켄지처럼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싸움 실력도 있는편.[84] 두 조직간 항쟁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들의 교제가 시작된다.[85] 공식적으로는 가부키 배우가 본업이지만 비밀리에 야쿠자를 이끌고 있다.[86] 작중에선 자세히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정황상으로는 야쿠자로 추정된다.[87] 야쿠자 모델 게임에선 정점에 달해있는 작품이기에, 등장인물 80% 가량이 야쿠자 소속이다.[88] 야쿠자로 나오진 않지만 캐릭터 모델이 야쿠자 전문 배우고 전반적인 모습이 야쿠자에 왔다. 그리고 캐릭터 이름도 야쿠자의 의식 사카즈키에서 따왔다.[89] 본명 시오미 겐. 작중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히토츠바시파의 4대째 두목이긴 한데, 본인의 4대째 계승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간 치요다회로부터우 암살 위협때문에 부두목 이시카와의 권유로 전신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겉모습과는 달리 신체연령은 그대로. [90] 아이러니 한건, 오렌 이시이는 일본, 중국, 미국피 섞인 혼혈이라는 것이다.[91] 악성격절마경 신주쿠에서 잡몹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