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알베르토
1. 개요
[clearfix]
1. 개요
카를로 알베르토는 샤르데냐 왕국(현재 이탈리아의 일부)의 국왕이다.
1800년 사보이 왕조의 분가인 사보이카리냐노의 공작이던 아버지 카를로 에마누엘레가 사망하자, 2살에 공작위를 세습받았다. 나폴레옹 시기 프랑스에 살면서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았다.
1831년 사르데냐 왕국 국왕 카를로 펠리체가 후계자 없이 죽자 먼 친척[2] 으로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1848년에는 헌법인 스타튜토 알베르티노(Statuto Albertino)를 채택하였으며, 이 헌법은 이후 이탈리아 왕국 헌법으로 내려와 1947년까지 근 1세기 동안 계수되었다.
토스카나 대공국 페르디난도 3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 2남 1녀를 두었지만 딸은 영아 때 사망하고, 장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차남 초대 제노바 공작 페르디난도를 두었다.[3]
우울, 망설이고 베일에 싸인 성격인데다 입헌군주제와 전제군주제 강화 사이에서 고민을 오래 해서 '이탈리아의 햄릿' '망설이는 왕(Re Tentenna)'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2.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1848년 1월 시칠리아 섬에서 항거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전역의 봉기에서 카를로 알베르토는 봉기가 일어난 밀라노를 샤르데나 왕국에 병합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1849년 3월 23일 노바라 전투에서 요제프 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군에게 대패하였고, 이후 강화조약에서 카를로 알베르토 국왕의 퇴위와 망명을 요구하여 아들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양위해야 했다. 이후 양위 수 개월 만에 망명지인 포르투갈 왕국 포르투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