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Hamlet
1. 개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으로 그의 4대 비극 중 하나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1601년,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쓰여졌으며 이전까지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역사극 등을 주로 썼던 만큼 동시대의 다른 비극들과는 달리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기질이 강하며 고전에서 인용하는 부분도 많다. 작중 배경은 덴마크이다.
작품의 주인공이자 작품의 이름 햄릿은 실존 인물인 암레트(Amleth) 왕자의 이름의 맨 뒷글자를 앞으로 옮긴 것. 헬시뇨르의 크론보그 성이 무대다. #
16세기 말 토머스 키드의 작품 스페인의 비극(Spanish Tragedy)이 햄릿과 유사점이 있다는 평이 있다.
2. 설명
줄거리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아버지 덴마크 국왕의 시해와 어머니 거트루드의 변심, 인면수심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숙부 클로디어스의 모습을 보며 번뇌하고 미쳐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흔히 복수극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기성세대가 만든 부조리에 의해 부서져가는 햄릿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클로디어스 본인도 자신이 계획한 음모에 의해 파국을 맞이하면서 폭주하는 청춘의 기록이라 평할 수 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작중에서 햄릿이 복수를 계획하는 장면은 없다. 항상 클로디어스 타도를 맹세하고 괴팍한 언행으로 그의 일당을 당황하게 하지만 구체적인 복수의 수단을 모색하거나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계속해서 나빠지고 부조리해지는 현실에 고민하고 치를 떨며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유형의 인물을 문학에서는 '''햄릿형 인물'''이라고 분류하며, 돈키호테형 인물과 대립되는 인물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결국 거기에 휩쓸리고 자기 자신도 후회할 일을 (가령 누군가 숨어있자 무조건 찔렀는데 그게 폴로니어스였다거나 하는) 벌여 버리고 만다. 이런 면을 보면 그는 침착한 복수자라기 보단 앞뒤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반항아이다. 비극 햄릿은 바로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림으로 말미암아 젊은이의 좌절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햄릿은 여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처럼 한창 엘리자베스 1세의 후계자 문제로 불안하던 시기에 셰익스피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지 못한 리더상의 하나로 표현되며 총명하고, 재능은 있으나 행동력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가 된다. 그와 반대되는 인물인 포틴브라스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역시 리더는 행동력이 있어야 된다는 셰익스피어의 사상을 표현했다. 결국 왕족들이 모두 죽은 덴마크는 행동력있고, 명예로우며, 과거에는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노르웨이의 포틴브라스라는 이상적인 리더에게 귀속되는 엔딩으로 끝이났다(…).[1]
햄릿의 원전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스페인이나 아이슬란드 쪽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에서 덴마크의 암레트(Amleth) 왕자의 이야기를 가장 원전으로 여긴다.
3. 등장인물
- 햄릿
셰익스피어는 이 인물을 통해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독특한 인물상을 확립하였다. 그는 미친 척 하지만 항상 조리를 잃지 않으며 터무니없는 비약과 단정으로 상대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슬픔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쳐가는 현실과 그 속에서 차라리 미치고 싶은 자아를 화해시키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덤으로 원래는 온화하고 덕망있는 사람이었던 듯 하며, 사람들에게서 많이 사랑받았던 듯하다. 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는 묘사가 있으니.
- 햄릿 왕
그 후 자신의 전 아내이자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를 붙잡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리던 도중 생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서 햄릿이 그에게 약속했던 복수를 일깨워주기 위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들 햄릿에게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드리라고 말하고 사라지는데 이후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들 햄릿은 그가 부탁한 복수를 완수하는 데 성공하지만 끝내…
분명 이 작품의 피해자들 중 한 명이긴 하지만 그가 햄릿에게 자신의 복수를 하도록 종용한 것이 후에 그의 원수였던 동생 클로디어스 뿐만 아니라 아내, 아들, 아들의 약혼녀, 그 약혼녀의 오빠, 대신까지도 죽게 만드는 식으로 많은 죽음에 간접적으로 일조했다.
- 클로디어스
이 사건 직후에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모습도 묘사되었고 그 전까지 나름 조카를 염려하고 있어 어느 정도 인간미를 갖춘 인물이었으나, 햄릿의 행동이 점점 심해지자 햄릿이 진짜로 자신이 형을 죽였다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그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햄릿을 죽이기로 결심, 또 한 번 인간의 길을 저버리는 잔혹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런 그의 행각은 결국 자기 자신조차 파멸로 몰아 넣으며 덴마크 왕국의 운명을 바꿔 버린다. 덤으로 이 양반의 최후는 그야말로 인과응보.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에 매우 능하며 심지어는 자기를 죽이러 온 레어티즈까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 거트루드
그래서 햄릿이 선왕[4] 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리려고 할 때도 햄릿의 태도에 지레 겁부터 먹고 햄릿을 피하려고만 했던 것도 모자라서 아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현 남편인 클로디어스나 그의 신하인 폴로니어스를 부르려고 했다. 만약 그녀가 둘 중 한 명이라도 불렀다가는 햄릿의 복수는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며, 햄릿은 국왕 살해 미수죄로 잘못했다간 처형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심적으로 매우 괴로워하던 햄릿을 고립시킨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인물. 왜냐하면 자기 남편인 선왕의 죽음에 일말의 의심조차 안 품고 바로 동생인 클로디어스와 결혼해버렸고, 이로 인해 욕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햄릿의 번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와 괴로움을 나누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냥 가벼운 괴로움 정도로 치부하며 아들의 상태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비록 어머니로서 아들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계속 쏟기는 했지만, 아들의 괴로움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찌보면 이런 쪽으로 상당히 넌씨눈이었을지도.
햄릿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는 그녀를 두고 한 말이다. 햄릿의 행동이 어머니에 대한 심한 모욕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실 거트루드가 한 행동은 상당히 막장이라서...
햄릿이 레어티즈와의 펜싱에서 이기자 클로디어스는 미리 준비한 대로 독이 든 축배를 축하를 명목으로 내린다. 햄릿은 받기를 미룬다. 그러자 거트루드는 대신 마시겠다며 클로디어스가 말릴 시간도 주지 않고 잔을 들고 죽는다.[5] 그리고 햄릿에게 축배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죽기 전에 알려줬다. 자신의 목숨이 증발하는 와중에도 자식의 안위를 위해 유언을 남긴 걸 보면, 아내로서 왕비로서는 낙제였을지 몰라도 어머니로서의 모정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햄릿 역시 어머니를 한심해하고 실망하고 미움까지 품었으나, 결국 검에 발린 독에 의해 죽어가면서 바닥을 기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는다.
- 폴로니어스
- 레어티즈
- 오필리어
인물 유형으로 봤을 때 거트루드와 다른 점이 별로 없다.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이다. 자신의 감정 또는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길 주저하고 오로지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행동한다. 그녀 또한 거트루드로부터 "젊은 날의 나와 같다"고 말을 들을 정도로 미인. 그나마 나은 건 거트루드보다는 감정이 뚜렷히 보인다는 거 정도? 햄릿이 그녀에게 거트루드를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여럿 있다.
햄릿이 미친 척하고 자신을 매도하자 큰 상처를 받았고(진정 오필리어를 미워한 것은 아니고 정황상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화풀이인 듯 하지만 오필리어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가 마침내 아버지를 죽이기에 이르자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미쳐버렸다(또한 아버지의 장례를 제대로 치루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 뒤 백치가 되어 물가에서 노닐곤 한다. 어느 날, 화환을 나뭇가지에 걸려고 하다가 약한 나뭇가지가 부러져 몸이 기울어 물에 빠진다. 드레스가 다 젖을 동안 노래를 부르다 점점 물 속에 끌려들어가 익사[8] 한다. 이 장면을 거트루드가 묘사하는데 이게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명문으로 꼽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망선고라고 하기도. 이 장면은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어에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라파엘 전파 문서 참조). 그리고 미쳐버린 끝에 물에 빠져죽은 비참한 운명의 미소녀라는 그녀의 최후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앞에 기술한 밀레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필리어의 죽음이나 그녀의 죽음에서 모티브를 딴 물에 빠져 죽은 소녀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여기에서 거트루드가 오필리어의 죽음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보아 거트루드는 오필리아가 물에 서서히 끌려들어가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로, 이는 거트루드가 오필리어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이를 방관했다는 해석도 있다.
작중 등장인물들 중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햄릿이 슬퍼한 유일한 인물.
- 호레이쇼
- 로젠크란츠 & 길든스턴
- 포틴브라스
작중 계속되어 언급이 되는 인물이지만 등장은 매우 적다(...)
4막 중(4장) 폴란드를 침공하려 하여 엘시노어를 통과할 때 첫 등장하며, 햄릿과 마주친 후 햄릿이 무언가를 깨닫고, 그로 인하여 햄릿의 행동 변화에 큰 기여를 한다. 원래는 폴란드를 침공한다는 빌미로 군사를 돌려 덴마크에 과거의 원한을 풀러 왔으나 이미 왕족들이 골육상쟁으로 모두 죽어버려 본인이 덴마크의 왕위를 얻으며 햄릿의 시신을 군인답게 경의를 다해 장례하도록 지시한다.
여담으로, 햄릿을 영화화 시킨 작품에서 엄청나게 멋있게 나온다(...)[12]
4. 명대사
위 대사는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어스가 숨어서 햄릿을 지켜보고 햄릿과 오필리어가 만나는 장면에서 햄릿이 자신의 고뇌를 토로하는 내용이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to sleep,
No more; 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 '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d. To die, to sleep;
To sleep, perchance to dream
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Th'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The pangs of dispriz'd love, the law's delay,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That patient merit of th'unworthy takes,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With a bare bodkin? Who would fardels bear,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The undiscovere'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ler returns, puzzles the will,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And enterprises of great pitch and moment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And lose the name of action.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격노한 운명의 화살과 물맷돌을
마음 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곤경의 바다에 맞서,
끝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것 뿐. 잠으로 심장의 고통과 육신으로부터 지음 받은
천가지 천부적인 충동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독실히도 바라던 것 아닌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그것이 곤란하구나!
죽음의 잠에서, 어떤 꿈이 올지 모르기에.
그것이 우리를 주저 하도록 하고, 그것 때문에
이 재앙의 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 사나운 채찍을 견디며, 권력자의 잘못과 세도가의 멸시,
경멸적인 사랑의 고통스러움과 끝없는 소송, 관리들의 오만
그리고 인내의 가치가 하찮은 자들에게 받는 멸시를,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참고 지내겠는가?
빼어 든 단검 한 자루면 스스로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데
그 누가 무거운 짐을 진채 지친 삶 속에서 땀을 흘릴 것인가?
죽음 뒤에 올 두려운 무언가,
경계에서 돌아온 여행자가 없는 발견되지 않는 나라가
의지를 교란시켜,
알 수도 없는 고난으로 가느니 차라리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견디게 한다면?
그렇게 깨달음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리하여 결단의 생기 찬 빛깔은
사념의 창백한 기색으로 드리워지고
위대한 정점의 진취와 움직임도
이런 이유로 물길이 틀어져
행동이란 이름마저 잃는다.
이 전설적인 문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문장은 단연,
일 것이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흔히 원문을 'dead or live'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to be or not to be'다. ''''to be'가 '사느냐', 'not to be'가 '죽느냐''''이며, 어순이 바뀐 것이다. 이 해석이 정착되기 전에는 이 말이 이곳에 있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고, 요즘도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사에서 계속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죽느냐 사느냐의 의미로 본다.
서양에서도 두 가지 해석이 모두 존재한다. to be를 '계속 존재할 것인가'로 해석하거나 'to be' 다음 dead man이 생략되어 있다고 본다. 이 대사 이후 햄릿의 독백에서 죽음 이후의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없으니 그것이 두려워 죽은 자가 되느냐 마느냐, 혹은 계속 여기에 존재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으로 본다. 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生きるべきか死ぬべきか)'로 번역된 문장이 널리 쓰이고 있다.[13]
사실 '죽느냐 사느냐'로 옮기는 것은 '해석역(譯)'이라 할 수 있다. to be or not to be 자체가 '죽느냐 사느냐'처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문학적 수사다. be 자체가 영어 문장의 아주 기본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일반적이고 기본적이어서 역설적으로 심오한 느낌을 풍기는 문장이다. 우리말로 치면 거의 '있을까 말까' 수준이다. 문학적인 표현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을 때, 죽느냐 사느냐는 사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번역은 아닌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있을까 말까'라고 옮기기도 곤란하다. 여러모로 번역하기 난감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대사의 의미는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이 대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독백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햄릿이 이 대사를 할 때 오필리어가 무대 위에 있으며 햄릿도 명백히 오필리어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상에서의 위치로 봐도 햄릿이 오필리어를 눈치채지 못할 구도가 아니며, 이어지는 대사 마지막에는 오필리어를 직접 부른다.[14]
참고로, 이런 아나그램도 존재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물맷돌과 화살을 마음 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In one of the Bard's best-thought-of tragedies, our insistent hero, Hamlet, queries on two fronts about how life turns rotten(셰익스피어가 최고로 여기는 비극으로 우리의 고집 센 주인공 햄릿은 삶이 어떻게 부패하는지를 두 개의 관점에서 묻는다)
5. 또 다른 의견
햄릿이 실제로 미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호사가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으며, 이러한 논쟁에는 종종 영문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까지 참가하기도 했다. 햄릿의 이런 대사나 행동을 보면 미친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과 다른 대사를 보면 정말로 미친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는 식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심리학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15] 정신질환의 증상과 일관성 있게 일치(혹은 불일치)하는 대사와 행동만을 넣기는 어려웠을 것이므로 이 논쟁이 끝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hamlet is insane"으로 검색해보자. 이 논쟁에는 수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편의상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 햄릿은 미치지 않았다.
- 햄릿이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클로디어스가 왕을 죽인 것 또한 사실이다.
- 클로디어스가 왕을 죽였다는 것은 햄릿이 미쳐서 현실과 착각한 망상일 뿐이다.
- 클로디어스가 왕을 죽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클로디어스가 실제로 형을 죽이지 않았다면 햄릿을 독살할 생각을 쉽게 했을 리도 없다(클로디어스는 원래는 햄릿을 싫어한다거나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클로디어스가 왕위를 차지한 목적도 거트루드와 결혼하기 위함이었지 권력을 손에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맨 처음엔 햄릿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호의적으로 대했다).
햄릿이 거트루드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 햄릿만이 유령을 보는 부분이 있지만, 이 부분은 거트루드가 유령이 보이는데도 일부러 무시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유령이 첫 번째 등장에서와는 달리 햄릿에게만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
그냥 단순히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에 상심한 끝에 실성했다고 여기고 유폐했으면 모를까. 이야기 상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보는 편이 맞는다.
- 클로디어스가 왕을 죽였다는 것은 햄릿이 미쳐서 현실과 착각한 망상일 뿐이다.
햄릿은 클로디어스가 정말 범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우가 형을 죽이는 연극을 보여주고, 이에 클로디어스가 불편하게 여기며 자리를 뜨자 이를 죄책감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동생이 형을 죽이고 형의 자리와 아내를 차지하는 내용의 연극을 보면, 설령 클로디어스가 정당하게 왕위를 계승한 것뿐이라고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햄릿 이외의 사람들은 클로디어스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클로디어스를 의심하지 않으며 전부 햄릿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햄릿 자신만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이리저리 설쳐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복수에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행동이나 계획은 전혀 없다. 미쳤다는 말을 듣는 것에 대해서 햄릿 본인은 복수심을 숨기기 위해서 미친 척 한다고 하기도 했지만, 정작 왕에 대한 복수심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미친 행동을 하는 것 때문에 더 위험하게 보일 뿐이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햄릿이 미쳤다면 클로디어스가 죄책감을 드러내며 신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훔쳐본 후 햄릿이 잠시 복수를 멈춘 장면이 어색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몇 가지 반론이 있다. 하나는 클로디어스는 단순히 기도를 했을 뿐이며, 햄릿은 클로디어스가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런 내용을 상상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햄릿이 바로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햄릿에게 막상 자기 손으로 복수를 할 수 있는, 즉 실제 행동에 나설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결연하게 행동에 나서기보다 복수를 멈출 이유나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령 선왕의 죽음에 대해 정신적으로 괴로워한게 맞다고 해도, 선왕의 시해자가 아닌 그의 동생으로서 인간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가 선왕을 죽이지 않았다고 쳐도, 클로디우스 입장에서는 형이 갑자기 죽고 그 자리를 자기가 차지했다는 점이 껄끄러울 수 있다. 혈육이 죽으면 설령 친하지 않아도 슬픔을 느끼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쳐있는 조카가 연극을 통해 자기가 형을 죽였다고 의심하고 있다는걸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면 괴로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작중 모습을 보면 빼박 악역이지만, 만약 본작이 미쳐버린 햄릿의 왜곡된 시선이라고 가정하면 얘기가 다르다. [17]
사실 햄릿이 제정신이라도 이 장면은 복수를 중단할 명분을 억지로 찾았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서 (미친 척까지 하면서?)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인데, 고작 "기도하는 동안 죽이면 천국에 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안 죽이겠다"는 이유만으로 물러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말 복수를 해야겠다면 하다못해 기도가 끝나는 순간까지 기다리기라도 했을 것이다.
2007년, 2008년에 한국에서 공연하고 2011년에도 공연한 바 있는 뮤지컬 버전 햄릿[19] 은 '러브스토리'로 홍보되었다. 원작을 한번이라도 읽어봤다면 이게 애틋한 러브스토리 따위가 될 수 없는 걸 알 텐데...? 아마 문화예술공연의 주된 소비층인 젊은 여성을 공략하려는 속셈인 모양. 다행히 나름대로 기본 스토리라인에는 충실해 원작파괴의 만행은 없었으나 나름대로 사랑이 불타는(...)극이었다. 무엇보다도 '''레어티즈-오필리어''' 러브라인으로 충분히 볼 수 있는 이들 남매의 관계는... 그래도 넘버들은 제법 괜찮은 편이며 1막의 끝 곡 Today for the last time은 그중 명곡이라 할 만 하다.
2012년에 공연한 장진 감독[20] 의 '리턴 투 햄릿'이란 연극에서는 극 속의 연극 극단이 극중극인 햄릿을 '''마당놀이(마당극)'''로 번안해 버린다. 1999년에 연극 <매직타임>을 번안한 연극 <매직타임>을 재구성한 것. 햄릿, 클로디어스 등이 질펀한 말투로 자신의 속사정을 연기하는 장면이 일품이다.
6.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햄릿에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존재한다. 다름아닌 해적.
실제로 보다보면 복수를 하고 정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타이밍에 햄릿이 영국으로 떠나버리게 된다. 그러다가 운 좋게(?) 중간에 해적을 만나서 덴마크로 돌아오게 되는 것. 해적을 만나서 죽지 않은 것은 그들이 햄릿의 신분을 알고 인질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해적들은 친절하게 상처 하나 없이 햄릿을 돌려보내준다(…).[21] ...가 아니라 햄릿 원전을 보면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친구 2명을 자기 똘마니로 삼아서 햄릿을 감시하고[22] 햄릿이 자기를 죽이려는 게 확실해지니까 왕자가 미쳤다는 구실로 영국으로 보내버리려고 했다. 그러고서는 그 똘마니들에게 영국에 도착하면 영국 국왕에게 햄릿을 죽이라는 요지의 서신을 들려보낸다.[23] 그런데 햄릿은 이미 두 친구들이 똘마니라는 것을 알고 그 서신을 바꿔챘으니, 새 서신의 내용은 당연히(...) 그 2명을 죽이라는 것. 그리고 바뀐 서신을 받은 영국은 그 2명을 죽인 후에 클로디어스에게 사신을 보내 명령을 이행했다고 말한다. 근데 그 시점이 '''클로디어스가 죽고 햄릿이 죽어가던 시점이다(...)'''
이 장면은 장면으로는 안 나오고 햄릿이 후에 호레이쇼와 이야기하는 장면과 클로디어스에게 보낸 편지에 나와있다.
해적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등장하는 것은 햄릿뿐만은 아닌 모양. 다른 작품에서도 마무리를 해야 할 순간에 주요 인물이 배를 타면 폭풍과 더불어 등장한다고 한다.
7. 대중문화에서의 햄릿
7.1. 영화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영화 또는 드라마화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수도 상당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명한 버전은 로런스 올리비에가 연출한 1948년작, 프랭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1990년작,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한 1996년작, 에단 호크가 주연인 2000년작이다.
7.1.1. 1948년
1948년 작품은 존 길구드, 알렉 기네스와 같이 셰익스피어 극의 대가로 이름 날리던 로런스 올리비에가 직접 제작, 연출, 각색, 그리고 햄릿 역을 맡았다. 영화의 완성도는 굉장히 좋아서[24]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그리고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도 수상했다. 2014년 현재까지 영화의 감독상과 주연상을 동시에 받은 사례는 이 작품과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이 2개가 전부다. 또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경우는 이 작품이 유일하며, 외국영화로서 처음으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재밌는 이력이 많은 영화다.
7.1.2. 1990년
1990년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으로 유명한 프랭코 제피렐리가 감독했고, 리썰 웨폰과 매드 맥스로 한창 뜨고 있던 멜 깁슨이 햄릿을 연기했다. 이 영화 속 햄릿은 조금 사악한데,[25][26] 아래의 편지사건은 모두 원작에 나오는 내용. 물론 직접적으로 극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햄릿이 호레이쇼에게 어떤 일이 있었다 정도로 설명해준다. 햄릿은 무덤지기가 왕자인 자신에게 말장난을 한다고 세상이 말세라고 하는가 하면 로젠크란츠나 길든스턴의 죽음에 대해서도 두 거물 사이에 싸움에 껴든 하찮은 자들의 죽음은 자신의 양심과는 상관없는 문제라고도 하고, 딱히 이 영화에서만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편지 사건의 경우, 햄릿이 알고 일부러 바꾸어 놓는다. 물론 편지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원작에도 있는 이야기다. 클로디어스가 영국 왕에게 '햄릿을 죽여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데, 배를 타고 가던 도중 햄릿이 그것을 발견하고 내용을 '이 편지를 들고가는 놈을 절차나 재판 따지지 말고 바로 죽여라'로 바꾼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햄릿은 해적의 습격을 받아 납치되어 덴마크로 돌아가고, 편지는 아첨꾼인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이 그대로 들고간다. 두 사람의 운명은(...)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면서 두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선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첨꾼의 최후라면서. 그 외에 앨런 베이츠가 클로디어스 왕, 글렌 클로즈가 거트루드 왕비, 헬레나 본햄 카터가 오필리어를 연기했다.
7.1.3. 1996년
1996년 작품은 위에 서술된 영국의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의 계보를 잇는 케네스 브래너가 직접 감독, 각색과 함께 햄릿을 연기했다. 그 압도적인 길이때문에 각색 과정에서 내용이 많이 잘려나간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배경이 빅토리아 여왕 치세의 19세기 초중반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면 원작을 거의 대부분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 길이도 242분, 무려 4시간이다. 그러다보니 햄릿을 영화화한 작품에 있어서는 거진 끝판왕 취급을 받는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고, 수상 실적도 이렇다 할 것은 없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동안 영화화된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받는 등 영화의 질은 좋은 편. 여담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마스터 이전까지 70mm 필름으로 찍은 마지막 영화였다.
그 외 배역은 데릭 제이코비가 클로디어스 왕, 줄리 크리스티[27] 가 거트루드 왕비, 소싯적의 케이트 윈슬렛[28] 이 오필리어 역을 맡았다. 더 무서운 것은 조연진의 면면인데, 영화 시작부터 잭 레먼이 조역으로 나오며, 그 외에도 찰턴 헤스턴, 리차드 애튼버러[29] , 빌리 크리스탈, 로빈 윌리엄스,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디 덴치, 줄리아 스타일스, 존 길구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한다. 어찌보면 주연진보다 더 무섭다.
7.1.4. 2000년
2000년 작품은 배경을 현대로 옮겼고, 대사나 사건의 세세한 부분도 현대화 시켰다. 이선 호크가 햄릿을 맡았고, 그 외에 빌 머리가 폴로니어스를 연기했다. 그러나 대사는 셰익스피어 원전을 그대로 읊기 때문에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배우를 보면 좀 안습하다. 작품성도 망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명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평작 수준이라는 평이 다수.
7.1.5. 기타
펑샤오강 감독의 2006년작 중국 영화 야연은 햄릿을 중국식으로 오마주했다. 원작에서 거트루드 왕비에 해당되는 황후 '완'(장쯔이 분)의 역할과 비중이 큰 편이다. 오대십국시대 중국으로 무대를 옮겨 재해석한 이 영화에서 황태자 '우 루안'과 선황의 황후 '완'은 본래 '''연인 사이'''였다는 설정이 나온다. 황태자의 아버지인 선황이 완을 황후로 간택해버리자 우 루안은 크게 상심하여 숲속에 은둔해 버린다. 그러던 중 선황이 암살당하고 선황의 동생 '리'가 황위를 찬탈하자 완은 옛 연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리와 결혼을 하고 우 루안을 죽이려는 리의 숱한 암살시도를 저지함과 동시에 종국에는 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짜게 된다. 화려한 영상미와 의상, 미술 소품들이 굉장히 훌륭하다.
BBC의 TV 영화판으로 1980년과 2009년에 각각 제작되었다. 2009년작은 데이비드 테넌트 주연. 재미있게도 두 작품 모두 패트릭 스튜어트가 클로디어스 역으로 등장한다.
7.2. 뮤지컬
체코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서는 2007년에 라이센스를 들여와 김수용 신성록 등이 햄릿을 맡아 공연되었고 흥행에 힘입어 2008년까지 꾸준히 새시즌(월드버젼)이 이어졌다. 2011년에 다시한번 공연하여 호평을 얻었고 인기있는 라이센스 대작으로 꼽힌다.
2017년에 홍광호, 고은성 주연의 뮤지컬 햄릿 : 얼라이브가 있다.
7.3. 기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불타는 성전에서 일리단이 굴단의 해골을 들고 독백하는 장면은 햄릿의 오마주이다. 작중에서 햄릿은 어렸을 적 궁중광대였던 요릭[30] 의 해골을 발견하는데 이 해골을 들고 짠하면서도 우울한 독백을 들려준다. 일부에서는 이 해골의 존재가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리단은 원래 죽을 운명. OTL
베이그란트 스토리의 등장인물 쟝 로젠크란츠와 로메오 길든스턴은 햄릿의 단역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다. 둘은 햄릿에서 워낙 비중이 적은지라 원작보단 톰 스토파드의 희곡인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죽었다'에서 영향받았을지도.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죽었다. (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바로 위에서 언급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죽었다”라는 희곡도 있다. 햄릿의 내용을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의 시점에서 진행한 이야기다. 사실 햄릿에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이 아첨꾼이니 클로디어스에게 잘 보이려고 햄릿을 배신했다고 암시만 나올 뿐, 진짜로 이게 밝혀진 적이 없다. 이를 토대로 이 희곡은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햄릿을 배신한 적도 없고 그저 초대를 받고 덴마크 궁정에 왔지만, 햄릿에서 벌어지는 덴마크 궁정의 상황에 당황하고 아무 것도 모른 체 이리저리 휘둘리는 내용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햄릿에서 그 뒷사정을 다 아는 내용을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만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백미. 대표적으로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기획한 연극에서 클로디어스가 기겁하여 자리를 뜨고 다른 인물들도 얼굴이 굳어지는 판국에, 로젠크란츠가 '''“(연극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라며 어리둥절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친구인 햄릿은 미쳤고, 덴마크 왕은 알 수 없는 말을 해대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는데 전혀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그냥 현재 상황에 휘말리기만 한다. 이런 상황에 지친 로젠크란츠 왈 '''“집에 가고 싶어.”''' 그리고 마지막에 (햄릿에 나온 것처럼) 덴마크 왕이 준 편지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다가 햄릿을 죽이라는 부분을 햄릿에게 들키고, 해적이 쳐들오자 햄릿은 편지를 바꿔치기하고 탈출, 남은 둘은 바꿔치기 당한 편지를 읽고 어떻게든 현재 상황에서 탈출하려고 발악하다가 '''결국 죽는다.''' 작품 내에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이 계속해서 동전을 던지는데, 아무리 던져도 같은 면만 나온다. 이들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지속적인 암시로서 이 소설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이 둘이 죽는 것은 그냥 작가가 죽이기로 해서 결국 죽는 운명이라는 것.''' 이를 영화화한 작품도 존재하는데, 젊은 시절의 게리 올드만과 이언 글렌 등이 출연. 게리 올드만의 어벙한 유머를 포함한 블랙 코미디가 정말 일품이다.
니어 오토마타의 주인공 2B의 이름은 햄릿의 명대사 'To be or not to be' 에서 유래한다.
라이온 킹의 전체적인 모티브를 햄릿에서 따왔다고 디즈니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햄릿과 달리 라이온 킹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니) 심바가 삼촌(스카)을 죽이고 아버지(무파사)의 원수를 갚은 후 왕위를 되찾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바디의 미니앨범 <Songs For Ophelia>는 오필리어의 관점에서 해석한 곡이다.
청나라 세조 순치제 또한 청나라판 햄릿이다. 순치제 문서와 도르곤 문서 참조.
《룬의 아이들》에서 란지에 로젠크란츠의 성은 햄릿의 대학 시절 친구 로젠크란츠(Rosencrantz)와 일치한다.
마비노기 C4 G13에서 대놓고 차용했다.(...) 물론 실제 게임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고 게임 안의 연극에서 상영되는 일종의 극중극 개념.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작가가 햄릿과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하였다. (...)
장쯔이가 나온 영화 야연이 노골적으로 햄릿의 구도를 땄다. 선왕의 귀에 독가루를 넣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거트루드의 입장 위주로 진행되고 황후가 흑막이란 점에서 원전을 변형했다.
원로배우 김동원과 유인촌이 햄릿 역을 꽤 많이 했다. 유인촌의 걸작,《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폐비 윤씨의 유령과 마주하는 장면과 그 이후 고민은 완벽히 햄릿에 대한 오마주.
캡콤의 귀무자 시리즈에 나오는 환마 캐릭터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 따온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환마왕 포틴브라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서는 잠깐 그가 햄릿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시거를 입에 물고는 "이봐 클로디어스,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지. 큰 실수한 거야."라며 클로디어스를 창밖으로 집어 던지는 것으로 시작해서 성 안에서 기관단총을 갈겨대는 등 그 유례가 없는 맛간 햄릿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이 특히 압권인데, 개박살이 난 성 안에서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를 읊조리며 시거를 입에 물더니, "'''죽어야지(Not to be)'''!"라는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듯한 대사를 날리며 시거에 불을 붙이고, 이윽고 성 전체가 폭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를 리뷰한 NC는 아놀드가 연기할 마지막 햄릿 연기라며 조롱한다.
1980년대 초연했다가 연출이 안기부에 끌려가서 막을 내리고 80년대 후반 다시 나온 한국판 연극 햄릿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통키타와 청바지를 즐기는 학생으로 그리고 있다. 클로디어스는 대한민국 육군 소장복장으로 나오고 결말은 클로디어스의 부하들에게 남영동으로 끌려가 물고문을 당하고 햄릿이 죽는다.
월야환담 시리즈에서 서린이 말하길 빌어먹을 근친상간마라고 했다...
절원의 템페스트라는 애니에서는 햄릿에 명대사와 더 템페스트에 명대사가 많이 나온다.
일본의 소설가 시가 나오야의 초기 작품 중 햄릿을 재해석한 《클로디어스의 일기》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제목대로 일기 형식을 빌려 클로디어스의 시점에서 쓰여진 것이 특징. 작가 시가 나오야는 자신의 작품 해설을 겸한 수필 〈창작여담(創作余談)〉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로 '유령의 말 이외에는 클로디어스가 형을 죽였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하고 있다.[31]
미국 드라마 썬즈 오브 아나키가 햄릿과 비슷하다는 걸 제작자 커트 서터가 인정했다.
헐리우드 고전 코미디로 유명한 에른스트 루비치는 사느냐 죽느냐에서 제목을 따와 영화를 만들었다. 내용은 햄릿을 올리려는 폴란드 배우 부부가 삼각관계와 나치의 음모에 얽혀들어간다는 내용으로, 루비치 대표작으로 꼽힌다.
GTA CTW 역시 스토리 구조가 햄릿과 유사하다. 주인공 황 리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찾다가 삼촌(= 자기 아버지의 동생) 우 '케니' 리에게 암살당했다는 것을 알고 최종 미션에서 우를 죽이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데에 성공한다.
드라마 탐나는도다에서 조선으로 표류해온 영국인 윌리엄이 조선의 왕 앞에서 햄릿을 인형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왕이 인조였고 결국 왕을 능멸했단 죄로 체포된다. 물론 인조가 아닌 다른 왕이라도 햄릿을 좋게 봤을 왕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