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부스 빈 사이드 알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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قابوس بن سعيد البوسعيدي
1940년 11월 18일 ~ 2020년 1월 10일 (향년 84세)
재위: 1970년 6월 23일 ~ 2020년 1월 10일
오만의 전 술탄이자 총리이고 동시에 재무장관, 국방장관, 외무장관이었다. 50년 가까이 재위해서 '''생존 당시에는 동시기 아랍의 군주들 중에서는 최장 기간 재위하고 있었던 군주였다.'''
카부스의 아버지이자 전 술탄이었던 사이드 빈 타이무르(1910~1972, 제위 1932~1970)는 암군으로 쇄국과 수구적인 정책으로 오만을 중세시대 수준으로 퇴보시키고 공산주의 반군이 들끓는 등 실정을 거듭했다. 그나마 왕세자인 외동아들 카부스가 술탄의 이런 막장 통치에 대해 충언을 하자 도리어 가택에 유폐시키고 정치활동을 금지시켜버리는 등 막장적인 암군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부스는 이 아버지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이라며 영국군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왕위를 계승해버린다. 물론 진짜 아서스처럼 아버지를 죽이진 않았고 그냥 영국으로 추방하는 정도로 끝냈다(...)
영국으로 간 타이무르 선왕은 호텔에서 편히 지냈지만 분통이 터졌는지 겨우 2년만에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무스카트 왕실 묘지로 이장되어 묻혀졌다.
오만은 산유국이지만 카부스 집권 이전까지 아랍 산유국들이 흔히 그렇듯이 석유로 번 오일머니는 경제개발에 쓰이는 게 아니라 전부 술탄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나 술탄위에 오른 카부스는 오일머니를 도로, 전력, 학교, 병원 건설 등에 사용하여 아버지의 실정으로 낙후된 오만을 근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군대를 근대화시켜 공산반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그 덕분인지 현재 오만은 내전이 터진 옆나라 예멘이나 종파간 내분과 내전으로 헬게이트가 열린 여타 아랍, 중동 국가들에 비하면 그나마 상당히 안정된 편이다.
그래서인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유혈사태가 오만까지 번졌으나, 애초에 원인 자체가 반 술탄이 아닌 개혁이었으며, 술탄이 제때 개각에 나서고 '슈라 위원회'를 확대하면서 잘 수습했다. 자세한 것은 아랍의 봄#s-4.17 문서 참조.
그러나 카부스 술탄은 1976년 결혼 후 3년만에 이혼했고 부패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 독신으로 지내서 자녀가 없으며 본인은 외동아들이라 형제도 없다. 그래서 세자나 세제가 없다(...) 오만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라고 볼 수도 있다.[1]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인척들조차 정부 요직에 기용하지 않은 상황으로서 후계구도가 제대로 잡혀 있지않다보니 카부스 술탄 사망 이후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특히 일흔을 훌쩍 넘긴(1940년생) 카부스 술탄의 후계 문제는 술탄 유고(사망)시 3일 이내에 왕실 회의인 통치 가문 위원회가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상태이다. 현재 술탄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술탄 사망 이후 정세가 불안정해질 것으로 보였다.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봄까지 술탄이 암에 걸려 독일 바이에른 병원에서 암 수술을 하고 장기치료를 받고 왔는데 당시 암 투병을 하고 있어 건강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특히 자주 모습을 보이던 예전과 달리 1년에 단 몇 번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그것보다는 오만 정부가 술탄의 건강 상태에 대한 발표를 잘 안 한다. [2] 다만 옛날 중국 청나라 때 태자밀건법처럼 차기 술탄위를 이을 후계자를 지명하는 비밀 문서를 이미 작성해두었다는 얘기도 있다.
2019년 12월 후계자 선정에 들어갔다.#
카부스 술탄이 사망한 이후, 후계자는 카부스의 사촌 동생이자 문화부 장관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1954년생)로 결정되었다.#
2020년 1월 10일에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인은 결장암.#
12일. 아랍 정상들이 방문하면서 추모하였으며, 서방 국가들도 애도를 가졌다.#
قابوس بن سعيد البوسعيدي
1940년 11월 18일 ~ 2020년 1월 10일 (향년 84세)
재위: 1970년 6월 23일 ~ 2020년 1월 10일
1. 개요
오만의 전 술탄이자 총리이고 동시에 재무장관, 국방장관, 외무장관이었다. 50년 가까이 재위해서 '''생존 당시에는 동시기 아랍의 군주들 중에서는 최장 기간 재위하고 있었던 군주였다.'''
2. 즉위
카부스의 아버지이자 전 술탄이었던 사이드 빈 타이무르(1910~1972, 제위 1932~1970)는 암군으로 쇄국과 수구적인 정책으로 오만을 중세시대 수준으로 퇴보시키고 공산주의 반군이 들끓는 등 실정을 거듭했다. 그나마 왕세자인 외동아들 카부스가 술탄의 이런 막장 통치에 대해 충언을 하자 도리어 가택에 유폐시키고 정치활동을 금지시켜버리는 등 막장적인 암군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부스는 이 아버지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이라며 영국군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왕위를 계승해버린다. 물론 진짜 아서스처럼 아버지를 죽이진 않았고 그냥 영국으로 추방하는 정도로 끝냈다(...)
영국으로 간 타이무르 선왕은 호텔에서 편히 지냈지만 분통이 터졌는지 겨우 2년만에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무스카트 왕실 묘지로 이장되어 묻혀졌다.
3. 재위
오만은 산유국이지만 카부스 집권 이전까지 아랍 산유국들이 흔히 그렇듯이 석유로 번 오일머니는 경제개발에 쓰이는 게 아니라 전부 술탄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나 술탄위에 오른 카부스는 오일머니를 도로, 전력, 학교, 병원 건설 등에 사용하여 아버지의 실정으로 낙후된 오만을 근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군대를 근대화시켜 공산반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그 덕분인지 현재 오만은 내전이 터진 옆나라 예멘이나 종파간 내분과 내전으로 헬게이트가 열린 여타 아랍, 중동 국가들에 비하면 그나마 상당히 안정된 편이다.
그래서인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유혈사태가 오만까지 번졌으나, 애초에 원인 자체가 반 술탄이 아닌 개혁이었으며, 술탄이 제때 개각에 나서고 '슈라 위원회'를 확대하면서 잘 수습했다. 자세한 것은 아랍의 봄#s-4.17 문서 참조.
4. 후계 구도
그러나 카부스 술탄은 1976년 결혼 후 3년만에 이혼했고 부패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 독신으로 지내서 자녀가 없으며 본인은 외동아들이라 형제도 없다. 그래서 세자나 세제가 없다(...) 오만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라고 볼 수도 있다.[1] 자신의 권력 안정을 위해 인척들조차 정부 요직에 기용하지 않은 상황으로서 후계구도가 제대로 잡혀 있지않다보니 카부스 술탄 사망 이후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특히 일흔을 훌쩍 넘긴(1940년생) 카부스 술탄의 후계 문제는 술탄 유고(사망)시 3일 이내에 왕실 회의인 통치 가문 위원회가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상태이다. 현재 술탄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술탄 사망 이후 정세가 불안정해질 것으로 보였다.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봄까지 술탄이 암에 걸려 독일 바이에른 병원에서 암 수술을 하고 장기치료를 받고 왔는데 당시 암 투병을 하고 있어 건강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특히 자주 모습을 보이던 예전과 달리 1년에 단 몇 번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그것보다는 오만 정부가 술탄의 건강 상태에 대한 발표를 잘 안 한다. [2] 다만 옛날 중국 청나라 때 태자밀건법처럼 차기 술탄위를 이을 후계자를 지명하는 비밀 문서를 이미 작성해두었다는 얘기도 있다.
2019년 12월 후계자 선정에 들어갔다.#
카부스 술탄이 사망한 이후, 후계자는 카부스의 사촌 동생이자 문화부 장관인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1954년생)로 결정되었다.#
5. 사망
2020년 1월 10일에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인은 결장암.#
12일. 아랍 정상들이 방문하면서 추모하였으며, 서방 국가들도 애도를 가졌다.#
[1] 다만 케말파샤 전 터키 대통령은 고명아들이던 카부스 오만 국왕과는 다르게 여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2] 선조와 철종 두 사람 모두 전임 군주가 직계 후손 없이 사망하는 바람에 방계 출신의 왕족이 국왕이 된 경우이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실들은 직계 왕족들이 없어서 방계 왕족들로 국왕을 선출하여 대를 이은 경우가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