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슈라더린

 


1. 개요
2. 생애
3. 복원
4. 동화화 되어 살인 사건의 진실을 고발
5. 진실


1. 개요


Katharina Schraderin
? ~ 1647년 7월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에 굽는 마녀 혹은 과자 집에 사는 마녀의 모델이 된 인물로 설정된 가공 인물.'''
헨젤과 그레텔에 호기심을 품은 어느 독일인 김나지움 교사 게오르크 오세그가 실제로 하이델베르크 외곽의 슈페스아르트의 엥겔스베르그 야산 어느 마을에서 헨젤과 그레텔 속에 묘사된 산과 지형, 그리고 빵굽는 화덕과 살해된 25~37세 가량의 젊은 여성의 유골을 발견해냈다. 사인은 목이 졸려서 죽은 것.
그리고 헨젤 메츨러와 그레텔 메츨러가 훔치려던 카타리나의 제빵 기술은, 폐허가 되고 수풀이 우거진 그녀의 옛 집이 발굴된 뒤 1962년 게오르크 오세그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벽 밑 비밀 장소를 우연히 발견, 그 속에서 발견하였다.

2. 생애


카타리나의 출신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게오르크 오세그가 그녀의 집터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추적한 몇몇 기록을 통해 그녀는 하르츠 주의 베르니게로더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정확한 출생 년도와 생일은 알려져있지 않다. 일부 기록을 근거로 어느 년대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카타리나가 대략 나이 16세 전후 되었을 무렵 크베들린부르크 수도원 원장의 하녀로 크베들린부르크 수도원에 들어가 1638년까지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다.
이때 카타리나는 후추 과자를 개발하고 렙쿠헌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남부 독일의 시장들에 렙쿠헌을 내놓았다 한다. 어느날 카타리나는 '아름다운 샘물' 근처의 뉴른베르크 시장통에 노점을 열었다. 그의 후추 과자는 입에서 입을 타고 소문으로 전해졌다.
브란덴부르크의 궁정 제빵사 한스 메츨러(Hans Metzler)가 이를 듣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후 한스는 그녀를 찾아와서 청혼했다. 자신의 제빵 기술을 빼앗으려는 그의 속셈을 눈치챈 카타리나는 끈질긴 청혼 요구를 모두 거절, 제빵기구들을 챙겨 1647년경 비밀리에 하르츠를 떠나 야반도주하여 슈페스아르트의 엥겔스베르그 야산의 어느 집에 은신하였다. 카타리나는 오래 동안 주인이 없던 비어 있던 작은 목조 주택을 사서 보수한 뒤, 다시 자신의 목적에 맞게 개조했다. 그녀는 4개의 빵 화덕을 새로 건립했다. 이 빵 화덕 역시 그녀가 살해당한 뒤 폐허가 되었다가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보고 추적했던 게오르크 오세그에 의해 발견되었다.
며칠 후 카타리나는 새로운 재료를 쓴 렙쿠헌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였다. 또 그녀는 호니히 쿠헌(과자), 메르제부르거 포도 렙쿠헌, 밤베르크 식 설탕바른 시럽 쿠헌, 후추가 든 작은 과자와 꿀이든 작은 과자인 겔른호이저 식 레컬리를 개발해 냈다.
그녀의 새로운 명성은 다시 한스 메츨러의 질투심을 자극했다. 한스는 카타리나가 은신한 곳을 찾다가 끝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냈다.
한스 메츨러는 겔른호이저 시의 시립 재판소에 카타리나가 마녀라고 고발했다. 이상한 음식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그녀는 마녀로 몰려 심문을 받았고, 1647년 7월 15일 겔른하우젠(Gelnhausen)에서 실제로 열렸다. 카타리나는 이단 심문소로 넘겨져 마녀재판에 회부되어 심문받고 고문당했지만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고 무고를 주장하였다. 그녀는 굴하지 않았고 재판관들은 그녀를 무죄 석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진술에서 카타리나는 자신을 고발한 자가 복수하기 위하여 자신을 모함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스는 렙쿠헌 제조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에게 계속 구애, 청혼했지만 그녀는 청혼을 거절했고, 그를 피해 숲 속에 들어가 과자와 빵을 만들어 팔았던 것이다.
1647년 7월 하순 이단 심문소에서 카타리나 슈라더린을 무죄로 풀어주자, 7월 말쯤 한스 메츨러는 그의 여동생 그레텔 메츨러(당시 34세)와 함께 카타리나를 찾아 엥겔스베르크 숲을 찾아갔고, 카타리나가 은신하던 집과 화덕을 발견, 그녀를 목졸라 죽였다.
그리고 렙쿠헌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집 안을 샅샅이 찾았지만 실패했다. 카타리나의 비법은 그녀의 집 벽 속의 비밀 공간에 숨겨져 있었고, 한스 메츨러와 그레텔 메츨러는 그의 집, 가구를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한스 메츨러가 카타리나를 가까운 최근에 고발한 점이 지목되어 살인 용의자로 의심받고 한스와 그레텔은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무죄 석방되었다.

3. 복원


당시 그녀의 나이는 대략 25세에서 37세 정도로 추정된다. 게오르크 오세그가 동화 속 내용을 근거로 추적한 결과 폐허가 된 집, 그리고 주변의 화덕들, 그리고 목졸려 죽은 어느 젊은 여인의 유골을 발견했던 것.
키가 167cm였으며 갈색 눈썹과 갈색 머리, 그리고 매부리코가 특징인 전형적인 디나르(Dinar) 형이었다. 이는 유럽 중남부 산악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질로, 그녀의 선조들 중 누군가가 그 곳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유골의 주인은 군살 없는 날씬한 체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18년작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 1818년본 동판화에는 과자 집 마녀의 말투에 사투리가 있었다는 점을 발견, 게오르크 오세그는 그 사투리를 근거로 해당 사투리 쓰는 지역을 수소문하다가 하르츠 주의 베르니게로더 라는 지역을 찾아냈다. 그리고 오세그는 "빵굽는 마녀라고 불린 카타리나 슈라더린의 중범죄인 심문에 대한 실제적이고 정확한 서술"이라는 제목의 재판 보고서를 찾아냈다.
이 보고서에는 독일 일부지방 전설처럼 마녀가 재판을 받았다는 내용, 정확히는 마녀로 몰린 한 여성이 재판, 심문을 받았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 보고서로 작성되어 있었다.

4. 동화화 되어 살인 사건의 진실을 고발


빵굽는 기술을 훔치려던 한스와 그레텔의 살인 사건은 누군가에 의해 소문으로 전해졌고, 결국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전설, 동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카타리나를 살해한 헨젤 메츨러와 그레텔 메츨러 남매 중, 오빠 한스 메츨러는 나중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 뉘른베르크 자치시의 시의회 의원을 역임한 지역 유지로 활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살인 사실을 알더라도, 대놓고 언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스 메츨러가 죽인 정황이 유력하지만 증거가 없다 하여 풀려난 상태였다. 고소나 고발이 두려워서라도 대놓고 언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사건을 잘 아는 누군가가 이를 비슷한 내용의 동화로 각색해서 전설처럼 이어지다가, 나중에 그림 형제에 의해 '''현대에 흔히 알려진 내용으로 각색'''되었던 것이다. 20세기에 와서 동화속 내용이 다양한 전설로 독일내 여러 지방과 프랑스 일부 지역에 민담처럼 전해지던 것에 11세 때부터 흥미를 느낀 어느 김나지움 교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에 의해 진상이 드러난 것.
그림 형제헨젤과 그레텔1818년 판본에 실린 동판화에 나온 길과, 슈페스아르트 지역에 '마녀의 숲길'로 알려진 지명의 마을이 있는 것을 보고 찾아가 봤는데 1818년작 동판화 속 길과 상당히 유사했던 것이다. 게오르크 오세그는 동판화 그림을 보고 집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몇 군데의 땅을 파다가 폐허가 되어 붕괴된 집을 발견한 것이다.
한스 메츨러와 그레텔 메츨러가 훔치려고 한 카타리나의 렙쿠헌 제조 비법은 1962년 집의 벽 밑 비밀 장소에 일부 제빵기구들과 함께 있다가, 폐허가 된 집을 발굴한 김나지움 교사 게오르크 오세그에 의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5. 진실


...이라는 상술한 이야기는 모두 소설.
정확히는 <황홀한 사기극 ­헨젤과 그레텔의 또다른 이야기>(한스 트랙슬러 지음·정창호 옮김, 이룸 펴냄·7,500원)라는 소설이 설정한 인물이며, 카타리나 슈라더린은 물론 이 이야기를 복원한 게오르크 오세그 또한 실존인물이 아닌 소설 속의 가상인물이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