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롤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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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Rolston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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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12년 이상을 TRPG 디자이너로서 일했다. D&D는 물론이고 워해머 판타지 등 상당히 많은 수의 룰북과 서플먼트에 참여하였고 이때문에 베데스다에서 퇴사할 당시 어떤 비디오 게임 언론에서는 RPG업계의 전설(legend)라고 불러주기는 했으나 사실 TRPG 개발자로서 딱히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가장 유명한 성과로는 룬퀘스트(Runequest)팬들에게 이른바 "룬퀘스트 르네상스(The RuneQuest Renaissance)"를 이끈 인물로 알려진 점이다. Basic Roleplaying으로 유명한 룬 퀘스트는 1978년 최초로 나온 이래 시간이 흐르면서 침체기를 겪었는데 켄 롤스턴은 아발론 힐(Avalon Hill)의 에디터(이른바 룬 짜르(Rune Czar))로서 1992년부터 새로운 에디션을 내놓아서 좋은 평가를 얻었고 1994년에는 200명 남짓의 플레이어들과 첫번째 룬퀘스트 콘을 가지는 등 짧은 부활기를 가졌다. 하지만 룬퀘스트는 카오시움과 아발론 힐간 저작권 분쟁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1994년 4월 켄 롤스턴은 에디터 자리에서 쫓겨나 추가적인 작업을 하지 못하고 기존 작업물마저 출판거부당하면서 반강제로 이직을 하게 되고 그렇게 룬퀘스트 르네상스는 끝났다. [1] 룬퀘스트의 역사
그 외에 가장 유명했던 작품이 1984년에 초판이 나온 파라노이아(Paranoia)의 개정판 작업(1987년 출판)에 참여한 것이다. 파라노이아는 당시 RPG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완성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켄 롤스턴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여론도 한때 존재하였으나 RPG상을 수상한 작품은 파라노이아 초판이고 이건 Greg Costikyan 등 3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이지 켄 롤스턴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켄 롤스턴은 파라노이아 개정판(2판)의 4번째 디자이너로서 참여하였는데 개정판은 초판에 비해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고 전투관련 룰이 대폭 간소화된 것에 더해 아기자기한 맛을 살린 룰북으로 평가된다. 즉,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파라노이아 룰북을 좀 더 캐주얼하게 바꾼 작업[2] 에 추가로 참여한 것이지, 켄 롤스턴이 파라노이아에 공헌한 바는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다.
켄 롤스턴이 베데스다에 입사한 것은 엘더스크롤 2: 대거폴이 대중에게 미묘한 평가를 받은 뒤 개발자들이 대거 이탈한 시기와 일치한다. 대거폴이 구현하려던 게임상이 시장에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은 뒤 베데스다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엘더스크롤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래서 개발되던 것이 배틀스파이어나 레드가드같은 3D 액션 어드벤처 작품들이다. 켄 롤스턴은 테드 피터슨의 후임 디자이너로서 영입되었고 배틀스파이어는 줄리안 르페이와 함께 작업하였다. 이후 줄리안 르페이까지 퇴사하였고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종료됨에 따라 엘더스크롤의 프로듀서로 발탁된 토드 하워드가 켄 롤스턴과 함께 엘더스크롤 어드벤처 : 레드가드를 제작하게 된다.
2002년에는 액션 RPG 엘더스크롤 3: 모로윈드를 만들면서 리드 디자이너로 참여하였고 당시 RPG 디자인 경력이 일천하던 토드 하워드 등 다른 개발자들과 달리 TRPG 업계에 수 십년 구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엘더스크롤이 유력 RPG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레나나 대거폴의 RPG 게임성이 당시 RPG 팬들에게 의문시된 것과 달리 모로윈드는 RPG로서의 대중성이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이다.[3] 다만, 소수의 대거폴 팬은 모로윈드에 실망하기도 했고 켄 롤스턴은 그 원인으로 지적되어 약간이나마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모로윈드의 퀘스트 디자이너였던 더글라스 구달(Douglas Goodall). 2005년에 행해진 더글라스 구달의 인터뷰는 모로윈드 개발당시의 비화와 더글라스 구달 개인의 생각을 많이 소개해주는데 이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6년 발매된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리드 디자이너로도 참여하였는데, 오블리비언의 경우 메인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어서 켄 롤스턴은 순수하게 디자인만 한듯 보인다. 또한 오블리비언 출시 직전 공식적으로 베데스다 퇴사를 발표하였는데 이후 공개된 오블리비언 메이킹 다큐멘터리에서는 모로윈드 개발 당시의 당당한 인터뷰 태도와는 다르게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한 모습의 켄 롤스턴만 등장하여서 불화설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베데스다 퇴사 몇 달후 켄 롤스턴이 한 인터뷰인데 당시 켄 롤스턴은 오블리비언의 단점(선형적인 스토리, 메인퀘와 사이드퀘의 부조화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건 내 스타일이고 내 의도가 있다"고 방어를 하는 편인데 유독 대사의 음성화(풀 보이스)에 대해서만 '초딩이나 원하는 짓이고 개발하기에도 어렵고 모드도 만들기 어렵다'고 엄청한 디스를 하게 된다. 때문에 풀 보이스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켄 롤스턴이 퇴사한 것이라는 루머가 잘 먹혀들어갔다.
사실 켄 롤스턴 퇴사이유는 당시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본인은 모로윈드를 오블리비언보다 더 좋아하는데 모로윈드 개발 당시에는 본인이 담당하는 영역이 더 넓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로윈드 당시의 소규모 스튜디오에 대한 그리움이나 소규모 게임에 대한 애착 같은 것도 보이고 있다.[6] 하지만 당시 베데스다는 모로윈드-오블리비언의 연타석 흥행으로 대규모 스튜디오가 되고 있었기에 퇴사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켄 롤스턴은 이후로도 빅 휴즈 게임즈 RPG 개발부나 인디게임 스튜디오같은 소규모 개발팀만 찾아가고 있다.
켄 롤스턴이 퇴사한 이후에 나온 스카이림에 실망한 일부 베데스다 팬 사이에서는 "켄 롤스턴이 계속 베데스다에 있었으면 스카이림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하는 식의 상상이 유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캐주얼하고 대중친화적인 토드 하워드 vs 하드코어하고 진지한 RPG를 만드는 켄 롤스턴' 이런 식으로 vs놀이를 하거나 테드 피터슨이나 줄리안 르페이같은 진짜 원작자 거르고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설정 창시자, 원작자가 켄 롤스턴인 것처럼 오해하는 게시물마저 흔하게 발견될 정도.
켄 롤스턴이 참여한 모로윈드/오블리비언이 스카이림 시절에 비하자면 RPG로서의 특성이 강조된 것이 사실이나 모로윈드/오블리비언의 RPG룰적인 특성은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있고[7] TRPG 개발자로서 보여준 켄 롤스턴의 능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고 파라노이아 제2판과 같이 오히려 대중친화적이기 때문에 '하드코어한 켄 롤스턴'이라는 이미지가 오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대거폴에 비하자면 모로윈드는 엄청 대중친화적으로 변모한 게임이다.[8]
그리고 '하드코어한 켄 롤스턴'을 그리워하는 여론은 2012년 킹덤 오브 아말러(Kingdoms of Amalur)의 출시와 함께 잠잠해진다.
베데스다를 퇴사한 켄 롤스턴은 이후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로 유명한 빅 휴즈 게임즈에 들어가게 된다. 빅 휴즈 게임즈는 그동안 전략게임만 만들던 개발사였지만 RPG시장에 진출하고자 켄 롤스턴을 영입하고 자그만한 스튜디오를 꾸려 게임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빅 휴즈 게임즈가 자금난으로 휘청거릴 때 이를 발견한 것은 야구선수 커트 실링이었다.
RPG 팬으로서 유명한 커트 실링은 이미 R.A. 살바토레나 토드 맥팔레인처럼 서브컬처계의 슈퍼스타를 영입하여 38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RPG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커트 실링은 38 스튜디오를 켄 롤스턴의 RPG 스튜디오와 합쳐서 RPG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EA 역시 돈냄새를 맡고 배급을 담당하게 달려들었고 켄 롤스턴이 빅휴즈 게임즈에서 만들고자 했던 소규모 스튜디오와 RPG 프로젝트는 점차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RPG가 바로 2012년 출시된 킹덤 오브 아말러 : 레커닝이었다. 실제로 킹덤 오브 아말러가 출시되었을 당시, 엘더스크롤의 리드 디자이너가 참여하였다고 EA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바도 있다.
그리고 38 스튜디오는 파산한다.
파산 자체는 정치적 음모라는 말도 있지만 게임 자체가 기대하던 만큼의 명작 RPG는 아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임에 대한 자세한 특징 및 평가는 해당 문서 참고.
특히 '하드코어한 켄 롤스턴'이라는 팬덤의 이미지 역시 이 때를 기점으로 싹 사라지게 된다. 켄 롤스턴이 리드 디자인을 맡았다고 해서 올드팬의 기대를 받던 킹덤 오브 아말러 : 레커닝은 스카이림보다 더 캐주얼하고 콘솔친화적인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액션 RPG였던 것이다. 물론 커트 실링같은 큰손의 투자자가 낀 시점에서 하드코어한 RPG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변호 여론도 있다.
하지만 켄 롤스턴 역시 마크 넬슨(Mark Nelson)[9] 이나 Michael Fridley, Erik J. Caponi같은 베데스다 출신 개발자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등 자기 사람을 심고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R.A. 살바토레의 인터뷰가 그런 영향력을 반증하는데 판타지업계에서 스타 작가로 이름난 R.A. 살바토레는 게임 배경설정을 작업했을뿐 게임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이름같은건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그 이름들을 싫어했지만 켄 롤스턴 팀의 작업물이기에 바꿀 수 없었다고 한다. 켄 롤스턴은 그저 거대 자본과 스타 작가에 휘둘린 희생양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킹덤 오브 아말러의 게임성을 구축했던 것이다.
또한 킹덤 오브 아말러 출시전 상당량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게임관, RPG관을 여러차례 피력하였고 그 내용 중에는 하드코어 RPG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상당히 대중친화적이거나 유연한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킹덤 오브 아말러의 최고 장점으로 전투시스템을 꼽고 있고, 그중에서도 스피디함이나 콤보 액션같은 전투의 액션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다. [10] 또한 스카이림 출시이후 진행된 다른 인터뷰에서는 킹덤 오브 아말러가 스카이림과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킹덤 오브 아말러가 가진 전투의 멋짐과 빠른 속도, 전략적 풍부함같은 면은 비디오게임 역사상 최고의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하고, 거기에 더해 보다 선명하고 화려한 아트 스타일(more vivid, colorful art style)과 쉬운 루팅과 빠른 페이스의 게임플레이(easy-to-pick up, faster-paced gameplay in general)적인 측면에서 스카이림보다 더 낫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인터뷰가 누적되고 실제 게임도 정통 RPG성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하드코어 RPG=켄 롤스턴'이라는 이미지는 점점 옅어져갔다.
여기에다 더해, EA나 커트 실링이 끼어들기 이전, 빅 휴즈 게임즈의 RPG로 개발되던 ('선조(Ascendant)'라는 가제로 개발되고 있던) 킹덤 오브 아말러의 프로토타입 버전까지도 공개되었다. 거대 자본과 투자자가 끼어들기 이전이라면 좀 더 하드코어하고 정통 RPG에 가까울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Ascendant 역시 킹덤 오브 아말러처럼 화려함과 스피드가 중요시된 액션 RPG였던 것이다.[11]
이렇듯 지금까지 보여진 켄 롤스턴의 모습은 하드코어랑은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고 스카이림의 대흥행 이후 대거폴 같은 엘더스크롤 초기작이 재발굴되면서 모로윈드가 정말 하드코어해진 엘더스크롤인지 그 반대인지 회의적인 여론도 생겼다.[12] 때문에 켄 롤스턴이라는 상징은 엘더스크롤 팬덤에서 자연스럽게 퇴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이후로는 게임 개발보다 포크송 연습을 열심히 하더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게임에도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닌게, 터바인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고문으로서 활동하였으며 트위터 등으로 MMO 게임개발이나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피력하기도 하고 크리스 아발론이 아케이넘을 플레이하는 동영상에다가 '어떤 삶은 다른 이에 대한 경고로서 살기도 하지. 순수한 시라네, 크리스(Some lives are lived as a warning to others. Pure poetry, Chris.)"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인디게임 더 롱 다크의 객원 디자이너로서 참여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애초에 플레이 컨셉이나 시스템이 거의 정해진 상태에서 킥스타터 모금에 성공한 작품이고 켄 롤스턴은 그보다 한참 뒤인 얼리 액세스 중간에 끼어든 케이스라 얼마나 활약할지는 미지수. 게다가 더 롱 다크는 리드 디자이너가 따로 있다. 그리고 어느샌가 더 롱 다크 홈페이지 팀원 소개란에서 켄 롤스턴의 이름이 사라졌다. 애초에 계약직이었던듯.
2016년에는 킥스타터 모금으로 시작된 파라노이아 리뉴얼판 제작과정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TRPG로 시작한 켄 롤스턴의 커리어가 수십 년 만에 다시 TRPG로 돌아간 아이러니한 상황.
2017년 6월에는 Gamasutra의 필진과 함께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을 플레이하면서 베데스다 재직시절을 회상하면서 많은 개발비화를 쏟아내었다.
가마수트라 기사
1. 개요
Ken Rolston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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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RPG 개발자
1980년대부터 12년 이상을 TRPG 디자이너로서 일했다. D&D는 물론이고 워해머 판타지 등 상당히 많은 수의 룰북과 서플먼트에 참여하였고 이때문에 베데스다에서 퇴사할 당시 어떤 비디오 게임 언론에서는 RPG업계의 전설(legend)라고 불러주기는 했으나 사실 TRPG 개발자로서 딱히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가장 유명한 성과로는 룬퀘스트(Runequest)팬들에게 이른바 "룬퀘스트 르네상스(The RuneQuest Renaissance)"를 이끈 인물로 알려진 점이다. Basic Roleplaying으로 유명한 룬 퀘스트는 1978년 최초로 나온 이래 시간이 흐르면서 침체기를 겪었는데 켄 롤스턴은 아발론 힐(Avalon Hill)의 에디터(이른바 룬 짜르(Rune Czar))로서 1992년부터 새로운 에디션을 내놓아서 좋은 평가를 얻었고 1994년에는 200명 남짓의 플레이어들과 첫번째 룬퀘스트 콘을 가지는 등 짧은 부활기를 가졌다. 하지만 룬퀘스트는 카오시움과 아발론 힐간 저작권 분쟁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1994년 4월 켄 롤스턴은 에디터 자리에서 쫓겨나 추가적인 작업을 하지 못하고 기존 작업물마저 출판거부당하면서 반강제로 이직을 하게 되고 그렇게 룬퀘스트 르네상스는 끝났다. [1] 룬퀘스트의 역사
그 외에 가장 유명했던 작품이 1984년에 초판이 나온 파라노이아(Paranoia)의 개정판 작업(1987년 출판)에 참여한 것이다. 파라노이아는 당시 RPG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완성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켄 롤스턴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여론도 한때 존재하였으나 RPG상을 수상한 작품은 파라노이아 초판이고 이건 Greg Costikyan 등 3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이지 켄 롤스턴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켄 롤스턴은 파라노이아 개정판(2판)의 4번째 디자이너로서 참여하였는데 개정판은 초판에 비해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고 전투관련 룰이 대폭 간소화된 것에 더해 아기자기한 맛을 살린 룰북으로 평가된다. 즉,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파라노이아 룰북을 좀 더 캐주얼하게 바꾼 작업[2] 에 추가로 참여한 것이지, 켄 롤스턴이 파라노이아에 공헌한 바는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다.
3. 베데스다의 디자이너로서
켄 롤스턴이 베데스다에 입사한 것은 엘더스크롤 2: 대거폴이 대중에게 미묘한 평가를 받은 뒤 개발자들이 대거 이탈한 시기와 일치한다. 대거폴이 구현하려던 게임상이 시장에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은 뒤 베데스다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엘더스크롤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래서 개발되던 것이 배틀스파이어나 레드가드같은 3D 액션 어드벤처 작품들이다. 켄 롤스턴은 테드 피터슨의 후임 디자이너로서 영입되었고 배틀스파이어는 줄리안 르페이와 함께 작업하였다. 이후 줄리안 르페이까지 퇴사하였고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종료됨에 따라 엘더스크롤의 프로듀서로 발탁된 토드 하워드가 켄 롤스턴과 함께 엘더스크롤 어드벤처 : 레드가드를 제작하게 된다.
2002년에는 액션 RPG 엘더스크롤 3: 모로윈드를 만들면서 리드 디자이너로 참여하였고 당시 RPG 디자인 경력이 일천하던 토드 하워드 등 다른 개발자들과 달리 TRPG 업계에 수 십년 구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엘더스크롤이 유력 RPG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레나나 대거폴의 RPG 게임성이 당시 RPG 팬들에게 의문시된 것과 달리 모로윈드는 RPG로서의 대중성이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이다.[3] 다만, 소수의 대거폴 팬은 모로윈드에 실망하기도 했고 켄 롤스턴은 그 원인으로 지적되어 약간이나마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모로윈드의 퀘스트 디자이너였던 더글라스 구달(Douglas Goodall). 2005년에 행해진 더글라스 구달의 인터뷰는 모로윈드 개발당시의 비화와 더글라스 구달 개인의 생각을 많이 소개해주는데 이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켄 롤스턴은 모로윈드의 메인 퀘스트와 임페리얼 교단 퀘스트만 작성했다. 나머지 팩션 퀘스트는 더글라스 구달 본인이 전부 작성했으며 파고스 반지 찾기 퀘스트처럼 자잘하고 유머러스한 퀘스트는 마크 넬슨(Mark Nelson)이 만들었다. 제국군 퀘스트는 토드 하워드와 더글라스 구달의 공동작업.
- 켄 롤스턴은 플롯(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를 선호했으며 이는 개성있는 NPC와 그들간의 관계를 중시한 구달 본인의 작문 스타일과 달라 적응하는데 엄청난 애를 먹었다. 모로윈드의 개발과정은 개발진 상부에서 전부 결정했기 때문에(top-down) 구달 본인 마음대로 퀘스트를 거의 만들지 못했다.[4] 또한 구달은 마우스 컨트롤로 전투하던 아레나, 대거폴에 비해 모로윈드의 전투는 너무 단순하고 자동전투에 가깝다고 비판한 바 있다.
- 켄 롤스턴은 몇가지 디자인 원칙을 제시했다. 모든 것은 일종의 현실반영/메타포로서 작용해야 된다(everything must be a metaphor/everything must be based on something)이 원칙이 대표적. 그리고 배신은 안된다(no betrayal)는 원칙 때문에 구달은 NPC가 배신하는 퀘스트 작성을 포기해야 했다.[5] 또한 '오직 하나의 우연의 일치만 허용된다(only one coincidence allowed)' 역시 켄 롤스턴이 내세운 원칙.
- 설정 작업 방법도 켄 롤스턴과 구달은 서로 달랐다고 한다. 더글라스 구달의 설정 작업 방식은 하나의 '진짜 설정'을 먼저 구축하고 그 설정과 연관된 여러개의 가짜 설정을 조심스럽게 배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켄 롤스턴은 설정의 상대성(relativism)을 중시하였기에 무엇이 진짜 설정인지 딱히 정하지 않은채로 서로 배치되는 여러 개의 설정을 작성하였고 플레이어 스스로가 그중 하나를 취사선택하도록 유도하였다는 것이다.
2006년 발매된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리드 디자이너로도 참여하였는데, 오블리비언의 경우 메인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어서 켄 롤스턴은 순수하게 디자인만 한듯 보인다. 또한 오블리비언 출시 직전 공식적으로 베데스다 퇴사를 발표하였는데 이후 공개된 오블리비언 메이킹 다큐멘터리에서는 모로윈드 개발 당시의 당당한 인터뷰 태도와는 다르게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한 모습의 켄 롤스턴만 등장하여서 불화설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베데스다 퇴사 몇 달후 켄 롤스턴이 한 인터뷰인데 당시 켄 롤스턴은 오블리비언의 단점(선형적인 스토리, 메인퀘와 사이드퀘의 부조화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건 내 스타일이고 내 의도가 있다"고 방어를 하는 편인데 유독 대사의 음성화(풀 보이스)에 대해서만 '초딩이나 원하는 짓이고 개발하기에도 어렵고 모드도 만들기 어렵다'고 엄청한 디스를 하게 된다. 때문에 풀 보이스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켄 롤스턴이 퇴사한 것이라는 루머가 잘 먹혀들어갔다.
사실 켄 롤스턴 퇴사이유는 당시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본인은 모로윈드를 오블리비언보다 더 좋아하는데 모로윈드 개발 당시에는 본인이 담당하는 영역이 더 넓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로윈드 당시의 소규모 스튜디오에 대한 그리움이나 소규모 게임에 대한 애착 같은 것도 보이고 있다.[6] 하지만 당시 베데스다는 모로윈드-오블리비언의 연타석 흥행으로 대규모 스튜디오가 되고 있었기에 퇴사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켄 롤스턴은 이후로도 빅 휴즈 게임즈 RPG 개발부나 인디게임 스튜디오같은 소규모 개발팀만 찾아가고 있다.
켄 롤스턴이 퇴사한 이후에 나온 스카이림에 실망한 일부 베데스다 팬 사이에서는 "켄 롤스턴이 계속 베데스다에 있었으면 스카이림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하는 식의 상상이 유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캐주얼하고 대중친화적인 토드 하워드 vs 하드코어하고 진지한 RPG를 만드는 켄 롤스턴' 이런 식으로 vs놀이를 하거나 테드 피터슨이나 줄리안 르페이같은 진짜 원작자 거르고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설정 창시자, 원작자가 켄 롤스턴인 것처럼 오해하는 게시물마저 흔하게 발견될 정도.
켄 롤스턴이 참여한 모로윈드/오블리비언이 스카이림 시절에 비하자면 RPG로서의 특성이 강조된 것이 사실이나 모로윈드/오블리비언의 RPG룰적인 특성은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있고[7] TRPG 개발자로서 보여준 켄 롤스턴의 능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고 파라노이아 제2판과 같이 오히려 대중친화적이기 때문에 '하드코어한 켄 롤스턴'이라는 이미지가 오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대거폴에 비하자면 모로윈드는 엄청 대중친화적으로 변모한 게임이다.[8]
그리고 '하드코어한 켄 롤스턴'을 그리워하는 여론은 2012년 킹덤 오브 아말러(Kingdoms of Amalur)의 출시와 함께 잠잠해진다.
4. 킹덤 오브 아말러의 개발
베데스다를 퇴사한 켄 롤스턴은 이후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로 유명한 빅 휴즈 게임즈에 들어가게 된다. 빅 휴즈 게임즈는 그동안 전략게임만 만들던 개발사였지만 RPG시장에 진출하고자 켄 롤스턴을 영입하고 자그만한 스튜디오를 꾸려 게임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빅 휴즈 게임즈가 자금난으로 휘청거릴 때 이를 발견한 것은 야구선수 커트 실링이었다.
RPG 팬으로서 유명한 커트 실링은 이미 R.A. 살바토레나 토드 맥팔레인처럼 서브컬처계의 슈퍼스타를 영입하여 38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RPG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커트 실링은 38 스튜디오를 켄 롤스턴의 RPG 스튜디오와 합쳐서 RPG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EA 역시 돈냄새를 맡고 배급을 담당하게 달려들었고 켄 롤스턴이 빅휴즈 게임즈에서 만들고자 했던 소규모 스튜디오와 RPG 프로젝트는 점차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RPG가 바로 2012년 출시된 킹덤 오브 아말러 : 레커닝이었다. 실제로 킹덤 오브 아말러가 출시되었을 당시, 엘더스크롤의 리드 디자이너가 참여하였다고 EA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바도 있다.
그리고 38 스튜디오는 파산한다.
파산 자체는 정치적 음모라는 말도 있지만 게임 자체가 기대하던 만큼의 명작 RPG는 아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임에 대한 자세한 특징 및 평가는 해당 문서 참고.
특히 '하드코어한 켄 롤스턴'이라는 팬덤의 이미지 역시 이 때를 기점으로 싹 사라지게 된다. 켄 롤스턴이 리드 디자인을 맡았다고 해서 올드팬의 기대를 받던 킹덤 오브 아말러 : 레커닝은 스카이림보다 더 캐주얼하고 콘솔친화적인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액션 RPG였던 것이다. 물론 커트 실링같은 큰손의 투자자가 낀 시점에서 하드코어한 RPG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변호 여론도 있다.
하지만 켄 롤스턴 역시 마크 넬슨(Mark Nelson)[9] 이나 Michael Fridley, Erik J. Caponi같은 베데스다 출신 개발자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등 자기 사람을 심고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R.A. 살바토레의 인터뷰가 그런 영향력을 반증하는데 판타지업계에서 스타 작가로 이름난 R.A. 살바토레는 게임 배경설정을 작업했을뿐 게임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이름같은건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그 이름들을 싫어했지만 켄 롤스턴 팀의 작업물이기에 바꿀 수 없었다고 한다. 켄 롤스턴은 그저 거대 자본과 스타 작가에 휘둘린 희생양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킹덤 오브 아말러의 게임성을 구축했던 것이다.
또한 킹덤 오브 아말러 출시전 상당량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게임관, RPG관을 여러차례 피력하였고 그 내용 중에는 하드코어 RPG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상당히 대중친화적이거나 유연한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킹덤 오브 아말러의 최고 장점으로 전투시스템을 꼽고 있고, 그중에서도 스피디함이나 콤보 액션같은 전투의 액션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다. [10] 또한 스카이림 출시이후 진행된 다른 인터뷰에서는 킹덤 오브 아말러가 스카이림과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킹덤 오브 아말러가 가진 전투의 멋짐과 빠른 속도, 전략적 풍부함같은 면은 비디오게임 역사상 최고의 수준이라고 자화자찬하고, 거기에 더해 보다 선명하고 화려한 아트 스타일(more vivid, colorful art style)과 쉬운 루팅과 빠른 페이스의 게임플레이(easy-to-pick up, faster-paced gameplay in general)적인 측면에서 스카이림보다 더 낫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인터뷰가 누적되고 실제 게임도 정통 RPG성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하드코어 RPG=켄 롤스턴'이라는 이미지는 점점 옅어져갔다.
여기에다 더해, EA나 커트 실링이 끼어들기 이전, 빅 휴즈 게임즈의 RPG로 개발되던 ('선조(Ascendant)'라는 가제로 개발되고 있던) 킹덤 오브 아말러의 프로토타입 버전까지도 공개되었다. 거대 자본과 투자자가 끼어들기 이전이라면 좀 더 하드코어하고 정통 RPG에 가까울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Ascendant 역시 킹덤 오브 아말러처럼 화려함과 스피드가 중요시된 액션 RPG였던 것이다.[11]
이렇듯 지금까지 보여진 켄 롤스턴의 모습은 하드코어랑은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고 스카이림의 대흥행 이후 대거폴 같은 엘더스크롤 초기작이 재발굴되면서 모로윈드가 정말 하드코어해진 엘더스크롤인지 그 반대인지 회의적인 여론도 생겼다.[12] 때문에 켄 롤스턴이라는 상징은 엘더스크롤 팬덤에서 자연스럽게 퇴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이후 근황
2010년 이후로는 게임 개발보다 포크송 연습을 열심히 하더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게임에도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닌게, 터바인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고문으로서 활동하였으며 트위터 등으로 MMO 게임개발이나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피력하기도 하고 크리스 아발론이 아케이넘을 플레이하는 동영상에다가 '어떤 삶은 다른 이에 대한 경고로서 살기도 하지. 순수한 시라네, 크리스(Some lives are lived as a warning to others. Pure poetry, Chris.)"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인디게임 더 롱 다크의 객원 디자이너로서 참여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애초에 플레이 컨셉이나 시스템이 거의 정해진 상태에서 킥스타터 모금에 성공한 작품이고 켄 롤스턴은 그보다 한참 뒤인 얼리 액세스 중간에 끼어든 케이스라 얼마나 활약할지는 미지수. 게다가 더 롱 다크는 리드 디자이너가 따로 있다. 그리고 어느샌가 더 롱 다크 홈페이지 팀원 소개란에서 켄 롤스턴의 이름이 사라졌다. 애초에 계약직이었던듯.
2016년에는 킥스타터 모금으로 시작된 파라노이아 리뉴얼판 제작과정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TRPG로 시작한 켄 롤스턴의 커리어가 수십 년 만에 다시 TRPG로 돌아간 아이러니한 상황.
2017년 6월에는 Gamasutra의 필진과 함께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을 플레이하면서 베데스다 재직시절을 회상하면서 많은 개발비화를 쏟아내었다.
가마수트라 기사
[1] 르네상스 시기 나온 서플리먼트는 아직까지도 고평가를 받고 있다. 거기다 켄 롤스턴은 2018년 새로 발매된 룬퀘스트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2] 어떤 리뷰는 "It doesn't lend itself easily to long-term campaign play. This game is best treated as a succession of short adventure sessions in which players get to enjoy themselves doing all those despicable things that would spoil a more 'serious’ game"라고 파라노이아 제2판을 평하고 있다.[3] 게다가 당시 유력 RPG 개발사였던 바이오웨어는 멀티플레이에 주안점을 둔 네버윈터 나이츠를 내놓아 발더스게이트같은 에픽 스토리를 기대한 RPG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며 폴아웃 2와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같은 뛰어난 싱글플레이 RPG를 만들던 블랙 아일마저 스토리는 내다버리고 전투에만 몰빵한 아이스윈드 데일 2를 내놓아 실망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물론 두 작품은 비평적으로는 준수한 평가를 받아냈고, 실제 상업적으로도 잘 팔렸다. 단지 게임성이 기존에 내놓았던 작품들과 달라져서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2년은 서양 RPG업계의 정체기 혹은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4] 참고로 더글라스 구달은 대거폴만 3년동안 플레이했다는 대거폴의 진성 빠돌이로서 로그라이크처럼 랜덤성이 강조된 아레나와 대거폴의 게임 스타일을 기존 RPG보다 훨씬 진보된 것으로 보았으며 전통적인 RPG에 가까워진 모로윈드는 아레나, 대거폴보다 훨씬 열등한 것(a step backwards)으로 보았다. 때문에 구달은 모로윈드의 메인 스토리가 본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도 없었고 기존 설정에도 상당부분 배치된다고 엄청 까고 있다. 로그라이크의 스토리텔링이 플레이어 스스로 자신만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축하는 것이라면 당시 모로윈드를 비롯한 주류 RPG스토리텔링은 이미 만들어진 대사집과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에 더 가까웠기 때문. 만약 자유로운 캐릭터 구축이 cRPG에서 불가능하다면, 그게 영웅이든 마법사든 악인이든 용병이든 상인이든 적어도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대사라도 풍부하게 만들었어야 한다는 게 구달의 견해인데 모로윈드는 "범죄저지르다 걸릴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에게 반응을 안 하더라"면서 모로윈드의 빈약한 상호작용성과 캐릭터 구축력을 깠다.[5] 때문인지 모로윈드에서는 퀘스트중 배신하는 NPC가 없다. 스카이림 도둑길드나 메인퀘에서 배신하는 NPC가 속출하던 것과는 정반대.[6] 시드 마이어의 해적 1이나 문명 1이 해당 시리즈의 후속작보다 훨씬 좋았다고 언급한다. 2014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투박한 모로윈드를 재즈음악에 비유하며 보다 더 다듬어진 오블리비언보다 더 좋아한다는 취향을 보이기도 했다.[7] cRPG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노가다적인 요소(명중판정과 스피치 반복 클릭)나 전설의 555레벨업을 탄생시킨 레벨링 시스템(오블리비언은 그 정도가 심했을 뿐이고 시스템 자체는 모로윈드와 오블리비언이 동일하다), NPC와의 빈약한 상호작용, 평판과 개인 호감도 시스템의 언밸런스 등.[8] 당시 바이오웨어/블랙 아일같은 유력 RPG 개발사와 달리 초심자를 배려하지 않고 스토리텔링도 밋밋했기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측면은 있으나 모로윈드의 게임방식이나 룰은 대거폴의 열성 팬 '더글라스 구달'의 지적처럼 대거폴의 복잡하고 어려운 요소가 간략화/단순화/삭제된 버전이고 실제로 모로윈드가 2002년 당시 가장 주목받은 점은 다른 RPG에 비해 뛰어난 그래픽과 스케일이었지 RPG 내적인 요소는 당시에도 비판이 많았다.[9] 켄 롤스턴이 퇴사한 베데스다에서 켄롤스턴의 뒤를 이어 리드 디자이너를 역임하였다. 쉬버링 아일즈가 대표작.[10] 참고로 킹덤 오브 아말러에는 버튼 연타나 QTE같은 전형적인 캐주얼게임 스타일도 상당수 들어가있다[11] 차이점이 있다면 Ascendant 역시 동료 2명을 양옆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인공지능 전투를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동료 시스템과 동일했다. 그리고 해당 시스템은 킹덤 오브 아말러에서 구현되지 않았다.[12] 예를 들어 현실지향적이고 복층적인 엘더스크롤의 설정은 모로윈드가 아니라 대거폴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고 이를 도입한 것은 테드 피터슨 같은 잘 안 알려진 디자이너다. 그리고 모로윈드는 애초에 콘솔 출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기 휘두르는 방향 같은 마우스용 컨트롤이 사라졌으며 아이템 수리용 망치가 휴대용으로 등장해서 내구성 걱정없이 던전 탐사가 가능해지는 등 대거폴에서 모로윈드로 넘어오면서 캐주얼해진 부분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