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카 공화국
1. 개요
1755년부터 1769년까지 존속한, 코르시카 섬에서 독립국이라고 자처한 정권. 다만 당시 코르시카를 아는 모든 나라가 인정한 건 아니었으므로 미승인국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건립
그 전까지 제노바 공화국의 지배를 받던 코르시카 섬에서는 제노바의 경제적 쇠퇴 등을 틈타 코르시카주의가 대두되었다. 1736년 현지인들이 제노바에 대항하여 독일인 모험가인 테오도르 슈테판 프라이허 폰 노이호프(Theodor Stephan Freiherr von Neuhoff)[2] 를 국왕으로 옹립하고 '''코르시카 왕국'''을 선포했으나 이 정권은 그 해에 금방 망했다.
하지만 20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 코르시카 섬 독립파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파스콸레 파올리는 기회를 포착하여 1755년 코르시카 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하고 제노바 세력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쇠망해가던 제노바 세력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이에 코르시카 세력은 해안가 몇몇 마을을 제외한 섬의 전 지역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후 파격적이게도 만 25세 이상의 전 남성에게 투표권을 주고, 이를 통해 3년마다 1번씩 선거를 실시하여 의회를 구성하였고 근대식의 독립된 사법체계를 구상하였다. 국가원수를 통령으로 칭하였고 통령은 전 군대의 통수권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통령은 절대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던 파올리의 몫이었다.
이후 아프리카나 남유럽의 소국들에게 공인을 받고, 독자적으로 화폐도 주조하면서 명실상부 독립국의 지위를 다져나갔다. 제노바 공화국은 포기하지 않고 코르시카의 반란을 진압하려 했으나 모두 패하거나 성과가 지지부진했기에 코르시카의 독립은 공인되는 것 같았다.
3. 프랑스의 침공과 멸망
1767년, 코르시카 반란을 진압할 능력이 없는 제노바 정부는 프랑스에게 코르시카 섬을 매각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이는 코르시카 공화국의 상대가 기울어져가던 제노바 따위가 아니라 유럽 최강대국 '''프랑스'''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코르시카 섬을 양도받은 프랑스는 이듬해인 1768년에 후방지원군 포함 10만이 넘는 대군을 코르시카 침공에 투입하였고, 코르시카군은 이에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몇 차례의 전투에서 패하여 붕괴하였다.
통령 파올리는 측근들과 함께 프랑스의 숙적 영국으로 망명했고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그리고 이는 훗날의 앵글로 코르시카 왕국으로 이어진다.
4. 의의
비록 남성 한정이긴 하지만 보통선거권을 도입하고 근대적인 독립사법체계를 기획하는 등 근대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 때문에 당대 유럽 지식인들로부터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아울러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과거의 영광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코르시카 공화국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 나라의 건국 및 멸망으로 인해 코르시카 섬이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파올리의 측근이던 카를로 부오나파르테는 파올리와 같이 망명하지 않고 코르시카에 잔류, 프랑스 편에 서며 프랑스 귀족의 작위를 받고 이름도 프랑스식인 샤를 보나파르트로 바꾼다. 그의 아들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불리오네 부오나파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