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퀴틀람
1. 개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州)에 위치한 도시. 밴쿠버 최대의 한인타운이 버나비와의 경계선인 노스로드 (North Rd.)에 위치해 있다. 1800년대 후반 설촌되었으며, 이름은 '붉은 물고기들이 올라오는 곳'라는 뜻의 연안 샐리시족의 말 Kwikwetlem에서 유래되었다. 1897년에는 군 (District)으로, 1992년에는 시 (City)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71년 현재 남부지역인 Fraser Mills와 통합했다. 서쪽으로는 포트 무디 (Port Moody)와 버나비 (Burnaby)가, 남서쪽에는 옛 주도인 뉴 웨스트민스터 (New Westminster)가 위치해있고, 남동쪽에는 포트 코퀴틀람 (Port Coquitlam)이 위치해있다. 2016년 12월 2일에는 포트 무디와 더불어 밀레니엄 라인 전철이 개통했으며 스카이트레인 차량기지가 설치되었다.
시경이 웬 모래시계인냥 생겼다. 고속도로 북쪽으로는 Coquitlam Centre, Westwood Plateau, Burke Mountain, Maple Creek, Eagle Ridge등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Maillardville[10] , Austin Heights, Burquitlam[11] 이 있다.
Fraser River 강가에는 1번 고속도로와 7번 고속도로가 지나가며, 영화관과 이케아, 엑스포 라인 역 등이 있다.
구글 지도에서는 이 도시를 '코퀴틀럼'이라 표기하고 이를 오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민사회는 코퀴틀'''람'''으로 칭하며 인근 '버너비'도 버나비, '랭글리'도 랭리로 칭한다. 단 제대로된 한국어 표기는 코퀴틀럼이 맞고, 버너비, 랭글리 역시도 맞는 표기이다.
2. 대규모 개발
흔히 코퀴센터라 불리는 도심에는 코퀴틀람 센터 (Coquitlam Centre)쇼핑몰이 있으며 건너편에는 중국인/한국인 자영업자들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는 헨더슨 (Henderson) 쇼핑센터가 있다. 이곳은 2010년경부터 단독주택 등이 아파트와 상업단지 등으로 개발되며 십여년 안팎으로 인구를 두 배로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는 현재 도서관 분관, 고등학교, 체육관 등이 있는 Poirier지역에 시청이 있었으나 90년대에 대규모 개발로 코퀴센터 지역으로 이전됐다.
Guildford Way 기준 북쪽은 80년대 말까지만해도 거의 다 산림이였으며 포트무디와의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로 '''한꺼번에 3개의 고등학교'''[12] 가 1997년 개교했다. 참고로 산림개발은 아직까지도 동쪽의 Burke Mountain 개발로 통해 현재 진행형으로, 지진/산사태 위험과 교통량 증가로 인해 남쪽의 포트 코퀴틀람 주민 일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코퀴틀람도 밴쿠버의 집값 상승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2012년 기준 평균 4-50만불이던 타운 하우스는 이제 최소 80만불정도는 내야 들어갈 수 있으며, 단독주택 값은 그보다도 더한다.
3. 자연 및 관광
밴쿠버 지역이니만큼 도시 전체가 산림과 공원, 인기 산책로로 둘러싸여있다. 남부에는 16제곱키로미터의 Mundy Park이 있으며 시청 인근에 대공원인 Coquitlam Centre Park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 바로 아래에는 프랑스 시멘트 회사인 Lafarge 의 옛 자갈 광산 터를 인공호수로 탈바꿈한 Lafarge Lake Park이 있으며 2020년 기준 12년째 7월 1일 캐나다 데이에 불꽃축제가 열린다. 2016년 스카이트레인 개통 이후에 대마초 냄새가 풍기는 등 노숙자의 성지가 되질 않는가 했으나 호수 주변 2017년 나무를 와장창 깎고 오픈 스타디움[13] 등을 조성하고, 겨울철마다 나무에 조명을 꾸준히 건 결과 2017년 이후부터 캐나다에서 조금씩 알려지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코퀴틀람시는 센터공원과 이곳에 걸쳐 지역행사를 열며, 7월 1일 캐나다 데이 행사 밤에는 밴쿠버 전역에서 이곳에 밀려든다. 주차장은 진작에 꽉 차니 공원 안에 있는 밀레니엄 라인 종점인 Lafarge Lake-Douglas 역을 통해서 오는 것을 추천한다.
또 다른 산책관광지로는 일명 'The Crunch'라고 불리우는 Coquitlam Crunch이다. '''무려 890계단이 설치'''되어있고 옆에 자갈로 된 산책로가 있는 이곳은 전선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4. 교육
초중고교육은 BC 43번 교육청 (School District 43)가 포트무디, 포트 코퀴틀럼, 벨카라, 앤모어와 더불어 담당한다. 시경 내로는 공립 고등학교가 4개[14] 있으며, Burke Mountain지역에 1개를 추가로 계획중이다. 사립학교로는 카니 추기경 고등학교 (Archibshop Carney Regional Secondary), BC기독교학교 (BCCA) 등이 있다. 아시아계가 많은 만큼 학원, 특히 한국인 입시학원들이 많다.
공립 학비는 없으나 유학생 학비가 '''매우''''''''' 비싼만큼[15] 많은 학부모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차라리 사립으로 보낼 생각을 하기도 한다.
더글러스 전문대 코퀴틀럼 캠퍼스가 파인트리 고등학교하고 맞대어 있다. 파인트리 학생들은 쉬는시간에 더글라스 내의 팀 호턴스를 매점 격으로 이용한다.
5. 한인타운
[image]
밴쿠버 최대 한인타운이다. 이곳엔 한아름마트, 한의원, 안경집 등의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다.
사실 바로 앞에 있는 노스 로드(North Road)라는 길 바로 건너편에 한남 슈퍼마켓을 위시한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또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코퀴틀럼이 아닌 버너비 구역. 그래서 한남쪽이 정전이 되었을 때 바로 옆의 한아름 몰(mall)은 멀쩡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두 지역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같은 한인타운 상권으로 본다. 큰 수퍼마켓 두개와 음식점 10여곳, 약국과 한인 대상의 법률 관련, 은행 등 영어를 모르는 어르신들도 문제없이 지내실 수 있을 정도의 시설들이 다 있다. 주변의 아파트와 주거지역에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6. 여담
- 코퀴틀럼 센터는 Tri-Cities 생활권의 중심에 있다. 그래서인지 인근 포트 무디와 포트 코퀴틀럼과의 흡수통합 떡밥이 가끔 유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코퀴틀럼은 이 두 도시보다 인구, 면적으로 3배가 넘으며, 경계선도 가끔식 희미할 때가 있다. 그래도 두 도시 모두 코퀴틀럼보다 역사가 깊고 특히 포트 무디는 예전 캐나다 동서부를 잇는 캐나다 태평양 철도 (CP)의 기존 서부 종착점이였던 만큼[16] 이들 지역에서 통합을 크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 다문화 도시인 만큼 시장이 한국어 명함이 있다!
- 한국계 캐나다 배우인 최우식이 유학을 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파인트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로 진학했고, 1학년을 마친 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시작하였다.
[1] 4선. 前 BC주의회 코퀴틀람-말라드빌 지역구 주의원 (2001-05), 코퀴틀람 시의원 (2005-08)[2] 부동산 중개사와 의원 배경을 통해 코퀴틀람 개발을 잘 주도했다는 평가가 있다.[3] 재선[4] 캐나다 사상 최초 한인 하원의원. 온타리오주 출신으로 2019년 총선에서 전략공천되었다.[5] 재선. 2013년과 17년 모두 현재 코퀴틀람 시의원인 김형동 (Steve Kim)의원을 이겼다. 2017년에는 불과 41표차로 승리했다. 기사[6] 초선[7] 초선[8] 2018년 시청자료 기준[9] 미국 알래스카 남부지역, 워싱턴주의 시애틀, 호주 동남부의 멜버른과 시드니, 뉴질랜드 전역, 지중해와 알프스 산맥일대를 제외한 대다수의 서유럽 전역이 이 기후대에 해당한다. [10] 예전 Fraser Mills시절때 인력부족으로 퀘벡에서 600여명의 이민자들이 정착한 마을로 도로 이름이 불어로 되어있는 곳이 흔하며 영불어 공용어 학교가 있다.[11] 한인타운[12] Pinetree Secondary, Gleneagle Secondary, Heritage Woods Secondary[13] 2019년 TD은행의 후원으로 TD Community Plaza로 개칭[14] Centennial Secondary, Dr. Charles Best Secondary, Pinetree Secondary, Gleneagle Secondary[15] 무려 초중고 1년에 $10000 (!)[16] 포트 무디 항구의 수심이 얕아서 결국 현재의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연장되며 밴쿠버가 이 지역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17] 시장의 부인이 학교 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