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토리바코

 

1. 소개
2. 코토리바코의 유래
3. 유사한 이야기


1. 소개


子取り箱. 한국어로 의역하면 '''아이 뺏는 상자'''.
2005년 6월 6일 2ch 스레에 올라온 도시전설. 몇몇 네티즌들이 코토리바코 관련 게시물을 읽은 뒤 쏠림 증세나 오한, 두통, 설사 등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이야기에 따르면 여자나 아이가 코토리바코를 만지면 저주 때문에 죽는데, 상자를 복잡한 퍼즐처럼 만들어 뚜껑을 쉽게 열 수 없게 했다고 한다. 안에 짐승의 피를 가득 채우고 일주일 뒤 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아이를 죽여[1] 그 아이의 나이에 맞춰 검지 끝과 탯줄, 그리고 내장 부위의 피를 조금 채워넣으면 완성된다.
이때 죽은 아이가 한 명이면 잇포우(イッポウ), 두 명이면 니호우(ニホウ)...마지막으로 여덟 명이면 핫카이(ハッ力イ)[2]라고 부르며 현재 넷상에서 알려진 최초제작자는 기술을 알려주며 사람들에게 절대 핫카이는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으나 예외로 기술을 알려준 자신에게 처음 줄 상자는 핫카이[3]로 만든 것과 별개로 어린아이1명+여자1명을 달라고 되어있고 어린아이와 여자는 저주를 시험해보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핫카이는 후에 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죽이는 모양이다.
오컬틱 나인에도 나온다. 괴이증후군 2 챕터 1에서 메인으로 다룬다.

2. 코토리바코의 유래


1860년대 후반에서 1880년대 전반 사이에 에도시대 때 만들어졌으며, 당시 오키노사마에서 일어난 반란이 진압되고 반란주동자 중 한명이 이송되던 중 탈출해 부락(부라쿠민 참조)으로 흘러들어왔는데, 부락민들이 덩달아 피해를 입을까봐 그를 죽이려다가 자신을 살려주면 관청에 대항할 무기를 주겠다는 말에 설득당해 코토리바코가 만들어졌다.

이후 부락민들은 부락을 괴롭히던 관청과 주변일대에 코토리바코를 선물로 상납. 관계자들의 여자와 아이들을 전부 주살하는 것에 성공한 뒤, 관청과 주변을 협박하여 부락의 독립과 상자로 인해 생긴 일의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는 것까지 성공했다.

코토리바코의 효과를 톡톡히 맛본 부락민들은 그 후 13년 동안 자그마치 56명의 아이를 희생시켜 16개의 상자를 더 만들어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코토리바코는 마을 한곳에서 엄중히 보관되었다.

그러나 13년째 되던 해. 마을의 한 사내아이가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코토리바코를 가지고나와 자기네 집에서 갖고 놀다가 그 집안의 여자와 아이가 전부 죽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사건을 접한 부락민들은 처음으로 코토리바코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근처 신사로 가 처리를 부탁했으나 상자의 원념이 너무 강해 100여년에 걸쳐 원념을 없애는 작업을 하게 되었고, 마을사람들은 코토리바코를 각 가구에 하나씩 나눠 맡아 약속한 날에 신사로 가져가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4]
여기까지는 단순한 도시전설 또는 괴담일 뿐이지만, 황당하게도 이 글을 읽은 많은 일본인(2ch 거주인)들 사이에서 자기네한테도 비슷한 물건이 있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2ch 내에선 이 사태에 대해 '''"상자 수가 너무 많은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는 말이 당연히 나왔다. 이에 대해서는 '코토리바코와 비슷한 상자를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널리 퍼진 듯하고, 단지 투고자가 처음으로 그것에 관한 글을 올렸을 뿐.'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된 것 같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박도 있다. 코토리바코 이야기가 돌기 전까진 상자에 관련된 글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만, 갑자기 상자에 관한 글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잘 나가는 괴담에 살이나 더 붙여볼까?'''" 하는 것.
만약 스레에 올라온 이야기대로, 천대받는 부락민들이 주술을 부려 관청을 포함하여 지배계층 및 일반 시민들의 여자와 아이들이 몰살당했다고 해보자. 저주가 무섭다고 지배계층이 이런 부락민들을 그냥 내둘까? 저주를 피하면서 복수할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하다못해 용병이라도 모아 멀리서 불화살 등을 날리며 마을을 포위하여 몰살이라도 시킨다면 어쩌겠는가. 게다가 시대가 에도시대라면 더더욱 그러기 쉽다. 게다가 스레에서 말한 정도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면 최소한 관련자의 수기나, 하다못해 민속학자료 등에서라도 진작에 뭔가가 나왔을 것이다. 의외로 비밀을 엄수하기란 쉽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일이라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제로 그렇게 많다는 코토리바코 '''실물이 나타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결국에는 많고 많은 괴담처럼 입소문으로 그치는 정도.
단, 이와 비슷한 저주는 일본이나 한국에도 있기 때문에 어떤 오컬트 애호가가 의도적으로 이미 있던 정보를 다듬어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저주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저주가 실제로 효력을 발휘했는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참고로 코토리바코와 비슷한 것이 국내에도 존재한다.[5] 제작 방법은
  1. 무당이 오갈 데 없는 아이를 항아리에 가둬넣고 2~3일 가량을 굶긴 뒤 뚜껑을 열고 먹을 것을 보여준다.
  2. 배고픈 아이가 자연스레 음식을 향해 손을 뻗는다.
  3. 그 순간 아이의 손을 잡아 손가락 끝[6]을 잘라버리고, 항아리는 그대로 땅에 묻어 아이를 굶겨 죽인다.
  4. 이후 잘라낸 손가락을 몸주(身主)[7]로 삼아 신으로 모신다.[8]
이 내용은 검은방 3에도 나오며 백선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사용한다고 묘사된다. 단, 여기서 타깃은 성인. 쌈무이의 공포 라디오에 '새우니'에서도 언급된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며칠 동안 굶긴 뒤 젖을 내밀어 손을 뻗게 만들고 손가락을 자른다는 버전도 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루머가 있는 것으로 무당방울이 있다.

3. 유사한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 중에 상자가 아닌 항아리가 나오는 것도 있는데,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오랜 옛날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 지역이 있었다. 이 지역의 민족들은 각각 마을을 이루고 자기들끼리 모여 살았는데, 서로 다른 민족들이 모여 살다보니 항상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산불이 나서 한 민족(이하 A)의 부락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A민족의 사람들은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화마를 모면한 민족(이하 B)의 마을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A민족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처지가 되었다.

남자들은 매일 노예처럼 중노동에 시달리고, 여자들은 여기에 더해 B민족의 남자들에게 성노예 취급까지 받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A민족의 여자들 중 B민족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 A민족의 남자들은 다른 민족의 씨를 배었다며 분노해서 임신한 여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이렇게 죽인 여자와 태아들의 시체를 항아리에 모아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B민족의 어린아이 하나가 이 항아리를 보고 호기심에 다가오자, A민족의 사람 하나가 "행운의 항아리란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아이는 그 거짓말을 믿고 항아리를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항아리는 겉으로 봐서는 보통의 항아리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안의 구조가 특이해서 내용물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아이가 항아리를 가져간 다음 날부터 B민족의 마을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집에서 비명소리가 나더니 그 집 아이가 갑자기 죽어버렸고, 뒤이어 그 집의 안주인과 이웃집 아이까지 죽는 등, B민족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잇달아 죽어나가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A민족은 그동안 자신들을 핍박한 B민족에게 저주가 내렸다며 통쾌해했지만, 곧 A민족의 여자와 어린아이들마저 B민족과 마찬가지로 줄줄이 죽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남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오로지 여자와 아이들만이 죽음을 당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A민족은 몇 남지 않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지역의 산 속으로 이주했다.

새로 정착한 곳에서 처음 한동안은 아무 일 없이 살아갔다. 그러나....

얼마 후 B민족의 누군가가 항아리를 들고 A민족이 이주해온 곳으로 찾아왔다. 항아리의 힘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항아리 속의 내용물(=시체)이 많으면 많을 수록 저주의 힘이 강해지는 식이었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서로를 저주하면서 항아리에 계속 사람의 시체를 우겨넣었고...

이 이야기는 관청에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관리들이 조사차 마을을 찾아왔을 때는 마을, 아니 지역 일대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모조리 사라진 후였다.


[1] 마비키(가난한 집안에서 쓸모없는 아이를 죽이는것)당한 아이라고 했다.[2] 일보(一寶) 이보(二寶)가 아니다. 본문은 가타카나인데다가 사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상자의 뜻을 가진 '보'자는 없다.[3] 7살 이하 어린아이 8명[4] 자세한 내용은여기에서[5] 태자귀 항목 일부의 내용 : 속칭 염매(厭魅)라고 불리우는 끔찍한 물건에 대한 것이 있다. 우선 아이를 유괴해 비밀스런 곳에 가두고 굶기는데 죽지 않을 만큼만 음식을 주어 연명시킨다. 아이는 점차 괴로움 속에 말라가며 음식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게 된다. 결국 아이가 죽기 직전 버틸 수 없을 만치 흉칙하게 마르게 되면 대나무통 깊숙히 음식을 넣어 아이 앞에 놓는다. 피골이 상접해 몸이 작아진 아이는 좁다란 죽통(竹筒)속을 음식에 대한 일념만으로 발버둥치며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가 다 들어간 순간 칼을 번개처럼 찔러 죽이고 바로 뚜껑을 닫아 봉한다. 이렇게 죽통안에 끔찍하게 구겨 넣어진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 "염매"가 된다. 염매가 든 통을 가지고 부유한 집을 찾아가 안쪽을 보여주면 그 집 사람들은 미쳐 발작하다 결국 염매를 만든 자들에게 귀신을 쫒아달라며 돈을 바치게 된다. - 원본출전 성호사설 [6] 아이의 살기 위한 정기(精氣)가 손가락 끝에 모여있기 때문에.[7] 무당이 굿을 하거나 점을 칠 때 무당에게 내려 공수(神託)를 하거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존재. 무당은 몸주신이 영력을 주는 것이라 믿어 자기 집에 신단(神壇)을 만들고 그를 모시게 되며 몸주와 무당은 각별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8] 새타니태자귀 항목에 나와있지만 중국에서 유래된 염매라는 수법이 원전이다. 견신과 묘귀를 만드는 고독의 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