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헬 번호
1. 개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정리한 번호.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이자 음악사학자인 '''루트비히 폰 쾨헬'''(Ludwig von Köchel, 1800~1877)이 1862년에 당시 알려진 모차르트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정렬하여 라이프치히의 음악출판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처음 출판했다. 쾨헬은 알려진 많은 곡들을 연대순으로 정렬하는데 성공했지만 초기 작품들은 작곡 연도를 전혀 추정해내지 못해서 감으로 때려맞춰야만 했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많은 자필 악보들은 유럽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아예 소실된 경우도 있어서 작곡 연도를 정확히 정리하는 작업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지금도 일부는 그렇다.
그럼에도 이 다소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던 분류 체계가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까지 난삽하게 뒤섞여 있던 모차르트 작품들에 처음으로 도입된 목록이었고, 1877~1910년 동안 이 연구 작업과 병행해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이 최초로 당시까지 파악된 모차르트의 모든 곡을 전집 악보로 묶어서 내는 대규모 출판 계획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이 전집은 이후 후술할 베렌라이터의 신전집이 나온 뒤로는 구 모차르트 전집(Alte Mozart-Ausgabe. 약칭 AMA)이라고 불리고 있다.
쾨헬은 해당 출판사의 편집 주임이었던 음악학자 오토 얀의 도움을 받아 이 전집 수록곡들에 자신이 붙인 쾨헬 번호를 사용하도록 했고, 이 관행은 지금까지도 계속 내려오고 있다.
물론 쾨헬 자신도 자료 부족으로 때려맞출 수밖에 없었던 초기 작품의 완성 시기나 작품의 진위 여부는 후대 음악학자들의 추가 연구를 기대해야 했다. 우선 1905년에 파울 폰 발더제(Paul von Waldersee, 1831~1906)가 쾨헬 원본에서 근소한 수정을 거친 제2판을 내놓았고, 이어 1937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6촌 동생이었던 알프레트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 1880~1952)이 그 동안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반영해 대폭 개정한 제3판을 간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은 이 제3판이 출간되기도 전인 1933년에 나치당의 유대인 공직 박탈로 실직한 직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는 남겨놓고 떠났기 때문에, 이 제3판은 제국 선전성 산하 제국음악국의 특별 허가를 얻어 가까스로 출판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제3판 개정 작업 이후 유럽은 2차대전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자필보 혹은 초판본 같이 연구에 필요한 귀중한 자료들이 소실되거나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다. 3판까지 쭉 내고 있던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은 패전 후 동독 소유가 되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연구가 답보 상태까지 가는 안습 상황이 계속되었다. 다만 동독 소유가 된 브라이트코프는 전후에도 계속 아인슈타인 편집의 3판을 수정없이 4판(1958), 5판(1961)까지 계속 찍고 있었다.
결국 아인슈타인 이후의 추가 개정 작업이 대대적으로 반영된 제6판은 비스바덴에 설립된 브라이트코프 서독 지사에서 1964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했다. 방대한 모차르트 작품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기존의 한 사람이 아닌 프란츠 기글링(Franz Giegling, 1921~)과 게르트 지버스(Gerd Sievers, 1915~1999), 알렉산더 바인만(Alexander Weinmann, 1901~1987) 세 음악학자들이 공동 편집장을 맡았고, 이 공동 연구로 수많은 기존 작품의 성립 연대가 뒤집어지거나 짝퉁까지 몇 개 걸러지는 등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인슈타인 이후로 추가된 곡들은 번호를 다시 붙이지 않고 이전판의 번호 바로 뒤에 알파벳 소문자를 더해서 표기했다. 기존 판본을 거의 갈아엎다시피 한 판본이라, 연구 논문 등에서는 K⁶이나 KV⁶으로 더 자세히 표기한다.
2. 사례
6판 기준으로 작품번호는 1a부터 626까지 있는데, 이 작품 목록에는 이렇게 쾨헬 번호가 붙은 것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위작, 실제로 아버지 레오폴트나 다른 사람들이 작곡했지만 볼프강 모차르트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작품[1] , 모차르트 사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았다가 편집 도중 발견된 작품들,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나 단편들, 다른 작곡가들이 쓴 작품의 편곡물, 후배 음악인들에게 레슨을 하면서 남긴 음악적 기록물들,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지만 소실된 작품들, 모차르트의 곡임을 입증할 정확한 증거가 없어 의심작으로 분류된 작품들까지 포함한 부록도 들어있다. 이런 건 보통 쾨헬 번호로 표시될 때에는 KV 번호 뒤에 부록이라는 뜻의 Anhang을 줄인 Anh. 번호가 더 붙는다. (영어판의 경우 Appendix를 줄인 App.로 번역하기도 한다.)
또 해당 작품이 위작으로 공식 판명되었거나 모차르트 작품이라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경우 Anh. 에 C가 덧붙는다.[2]
아인슈타인 편집의 3판과 마찬가지로 이 6판도 수정없이 7판(1965), 8판(1983)까지 계속 나오고 있고, 쾨헬의 연구 작업과 마찬가지로 6판에서 새로 매겨진 번호는 브라이트코프의 구전집을 대체하기 위해 1955~2007년 동안 카셀의 베렌라이터 음악출판사에서 간행한 신 모차르트 전집(Neue Mozart-Ausgabe. 약칭 NMA)에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쾨헬 1판에서 6판으로 넘어오면서 번호가 바뀐 작품들의 경우 쾨헬 1판의 번호 뒤에 / 혹은 괄호로 묶어서 6판 번호를 같이 써준다. (예로 바이올린+비올라+관현악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경우 Sinfonia concertante KV 364/320d 또는 364 (320d)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공식이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찾고 부를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이 쾨헬 번호이다. 물론 음반 사러 갈 때 쾨헬 번호만 달랑 들고 가면 곤란하다. 일부 레이블은 겉표지에 쾨헬 번호를 아예 빼먹는 경우가 있다.
이 쾨헬번호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모차르트가 일생동안 작곡을 거의 일정한 속도로 했기때문에 쾨헬번호 100이 넘는 모차르트 곡의 번호를 25로 나누고 10을 더하면 곡을 작곡하였을때의 모차르트의 나이가 (약간의 오차 범위내에서) 나온다는것이다. 즉,
K = 작품의 쾨헬번호 { 100 < K ≦ 626 }
N = 해당 작품을 작곡했을때의 모차르트 나이
K / 25 + 10 = N
예) 피아노 환상곡 C단조 K. 475
( 실제 작곡년도 | 모차르트 나이 : 1785년 | 29세 )
475 / 25 + 10 = 29
미사 브레비스 B플랫장조 K. 275
( 실제 작곡년도 | 모차르트 나이 : 1777년 | 21세 )
275 / 25 + 10 = 21
물론 학자들이 번호를 매길 당시 작곡년도를 잘못 알고 '잘못된' 번호를 매긴 몇몇 작품들도 있는데, 키리에 D단조 K. 341와 푸가 G단조 K. 401가 그런 사례에 속한다.
아무튼 이 공식을 알아두면 쾨헬번호를 대입하여 모차르트가 곡을 작곡한 시기를 유추해볼수있어서 유용하다.
3. 여담
- 태광그룹 계열사였던 '태광 에로이카'에서 "쾨헬"이라는 브랜드의 오디오를 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철자는 Köhel로 썼다.
[1] 대표적으로 〈자장가(Wiegenlied K.350)〉. 옛 독일 민요 가락을 바탕으로 타인이 작곡한 것이지만 오랫동안 모차르트의 곡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진짜 작곡자에 대해서는 베른하르트 플리스(Bernhard Flies, 1770경~?)라는 의사 겸 아마추어 작곡가 혹은 모차르트의 10년 후배 작곡가였던 프리드리히 플라이슈만(Friedrich Fleischmann, 1766~1798)으로 보는 음악학자들이 많다.[2] 자필보가 소실되고 제3자의 필사보만 남아 있어서 모차르트 작품인지 아닌지를 놓고 지금도 키배가 벌어지고 있는 오보에+클라리넷+호른+바순과 관현악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가 대표적인 예로, 2판에서는 Anh. 9가, 3판에서는 297b가 붙어서 모차르트 작품임을 기정사실화했지만, 좀 더 비판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진행된 6판에서는 위작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Anh. C 14.01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