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비코드
영어: Clavichord
독일어: Klavichord
프랑스어: clavicorde
이탈리아어: clavicordo
1. 개요
바로크 시대에 하프시코드와 함께 널리 유행했던 건반악기의 하나. 피아노의 사촌격.
2. 역사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기원전까지 올라가는 유구한 악기이며, 먼 옛날에는 현이 하나밖에 없는 "모노코드" 라는 악기였다. 그러다가 점차 시대가 중세로 접어들면서 현이 하나 둘씩 계속 늘어나다가, 마침내 기록상 가장 오래된 클라비코드인 Domenico da Pesaro의 1543년 제작된 클라비코드가 등장하였다. 그러다가 16~18세기경 바로크 시대에 그 인기는 절정에 달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살롱 음악과 독일 북부의 여러 위대한 작곡가들에 의해 그 빛을 발했다. 일례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나 인벤션과 신포니아 같은 건반 작품들이 바로 그것.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완벽한 상위호환 대체품인 피아노포르테(pianoforte)가 등장하면서 인기를 잃었고, 곧 이것이 현대적인 피아노로 개량되면서, 피아노의 완벽한 하위호환인 클라비코드는 곧 그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현대에도 조금씩은 제작도 되고 있고 연주도 되고 있으나, 어째 인지도나 인기는 하프시코드만도 못하다.
그러나 각종 전자 키보드나 신시사이저 등에서는 아무리 싸구려 소형의 것이라도 클라비코드 사운드는 꼭꼭 포함되고 있다. 다만 이건 이때 클라비코드가 아닌 60~70년대 대중음악에 사용된 호너 클라비넷의 사운드로 당연이 이 클라비코드 소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프시코드와도 느낌이 많이 다른데, 예컨대 바흐의 파르티타 BWV.825 "사라방드" 를 피아노로 연주할 때와 하프시코드로 연주할 때, 그리고 클라비코드로 연주할 때의 느낌은 전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3. 형태와 구조
뚜껑을 닫아두면 그냥 작고 납작한 나무박스처럼 생겼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 사이즈가 커지고 이에 따라 하프시코드나 피아노처럼 다리가 달리기도 했지만. 가끔 가다 오르간처럼 페달이 달린 것도 나오기도 했다.
뚜껑을 열면 빼곡한 현과 한쪽 구석진 곳을 차지하고 있는 초라한(?) 건반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들은 튜닝을 담당하는 고정핀과 브릿지에 얹혀서 조율되어 있는 상태이고, 건반을 누르면 기다란 나무건반 끝에 달린 작은 쇳조각인 "탄젠트"가 그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구조이다. 눈썰미 좋은 위키러들은 짐작하겠지만 피아노 뚜껑을 열었을 때 보이는 그 구조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계보상으로 따지면 하프시코드보다는 피아노와 훨씬 가까운 관계에 있기 때문. 사실상 양금 등의 덜시머(dulcimmer) 계열 악기에 건반 달아놓은 형태이다.
건반이 하나 늘어날수록 현도 늘어나고, 그에 따라 건반은 작고 초라한 그대로인데 전체 악기에서 현이 차지하는 비중만 끝없이 늘어나 결국은 이상한 가분수 형태가 되기 때문에, 현의 개수를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나온 프레티드 클라비코드(fretted clavichord)라는 형태도 있다. 이 경우 한 벌의 현이 두개 이상의 음을 담당하는데, 건반을 누르면 탄젠트가 솟아올라 현을 치기 전에 일단 펠트 등으로 마감한 조율 장치가 올라와 현을 짚어 소리의 높낮이를 변형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보면 알 수 있듯이 치명적인 단점 또한 있는데, 같은 현이 담당하는 음들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같은 현이 담당하는 건반들을 동시에 누르면, 그냥 그중 가장 높은 음이 날 뿐이다. 따라서 클라비코드용 악보를 작곡할 때에는 해당 악기에 따라 불가능한 화음 조합에 대해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귀찮다.
나무뚜껑 안쪽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이 썰렁하게 두면 정말 볼품없어 보이는지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하프시코드와도 공통점. 나무건반 역시 그냥 나무의 본 재질을 그대로 살려 두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고자 한다면 하프시코드와 색상을 맞추기도 하고, 아예 모든 건반을 싹 갈색으로 통일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기도 한다.
4. 특징
장점이라면 강약조절이 가능하다. 세게 누르나 약하게 누르나 강약조절이 불가능한 하프시코드와 비교했을 때 큰 메리트. 다만 아주 크거나 아주 작은 음색까지는 좀 어렵고, 대부분의 경우 메조피아노에서 메조포르테 사이 수준에서 조절된다. 타건감이 특이하기 때문에 숙달된 클라비코드 연주자들은 약간의 음색 변화까지도 꾀할 수 있고[1] , 또한 소리가 잔잔하고 조용조용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소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실내연주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점은 음량이 너무 작다는 것. 강약조절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어차피 고만고만한 음량이라, 가뜩이나 실내를 꽉 채우지 못하는 문제로 독주악기로 나서기조차 힘든 하프시코드보다도 더 소리가 작다. 그러다 보니 협주곡 같은 다른 실내악을 반주하려 해도 소리가 아예 묻혀 버리고, 단독으로 연주하고자 해도 소리가 너무 작고 초라해서 어린 학생들의 오르간 연습용처럼 느껴질 정도. 이러다 보니 소리도 크고 강약조절까지 가능한 피아노가 나왔을 때 깨갱한 것은 당연한 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