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파운드
Η κυπριακή λίρα / Kıbrıs Lirası
1. 개요
키프로스의 통화였던 것. 정확히는 남부의 그리스계 키프로스와 영국령 키프로스 영토에만 해당하며, 북부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은 1974년 분단 이후부터 줄곧 터키 리라를 사용한다. 그런 이유에선지 키프로스 파운드는 첫 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터키보다는 그리스색이 훨씬 강한 편인데, 실물 대부분이 북쪽 키프로스에 있다는 것이 더 아이러니. 더 아이러니한건 실질적으로 키프로스 리라를 사용하는 터키계 키프로스인은 더이상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리즈까지, 심지어 새로 도입된 유로화 동전에도 꾸준히 터키어를 들이밀었다는것(...)
2. 상세
ISO 4217코드는 CYP, 복수형은 그리스어의 경우 리레스(λίρες)이며 터키어의 경우 똑같이 'lira'이다. 터키어 문법에서 숫자 뒤에 따라오는 명사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항상 단수형으로만 쓰기 때문. 보조단위로 mil(1/1000)단위를 쓰다가 1983년부터 cent(1/100)로 전향하였다. 2005년[1] 자료상 인플레는 2.8%로 매우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몰타 리라와 함께 유로로 전환했으며, 전환비는 0.585274리라/EUR으로[2] 유로값이 도리어 더 낮은 몇 안되는 통화 중 하나다. 그 외에도 몰타 리라와 유사성이 짙은데, 해당항목을 참조.
원래 이 통화명은 "키프로스 리라"이지만, 영국이 1878년에 오스만으로부터 이 지역을 뺏어다가 이듬해인 1879년에 키프로스 파운드를 처음 도입한 이래로 근 90년을 지배한 탓에 대외적으론 파운드로 굳어져버렸다. 아예 기호조차 "£"를 유지했을 정도. 당시 교환비는 오스만 제국 당시의 터키 리라화 대 파운드 스털링 환율을 적용해 1파운드 = 180피아스트(Piastre, Kuruş)[3] , 즉, 1실링 = 9피아스트였다. 1피아스트에는 당시 터키 리라와 마찬가지로 40파라(Para)의 보조단위가 있었지만 깔끔하게 무시. 이후 1955년에 본국보다 20년 앞서 10진법을 도입하였고, 1960년에 실질적인 키프로스 리라가 첫 선을 보였다.
참고로, 키프로스의 모든 통화는 2018년 1월 1일부터 유로화 교환이 중지되었다.. (구권은 이미 통화가 아니다.) 그런고로 현재 이 통화를 보유한 사람은 망했어요.
3. 1차
1960년에 도입되었지만, 1961년 시리즈로 명명되어있다.
- 앞면은 모두 독특한 무늬장식으로만 되어있다.
4. 2차
1977년 ~ 1983년 사이에 도입된 시리즈. 파운드 하위단위인 500밀은 1982년 딱 한 해에만 나왔다가 바로 50센트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50센트도 1991년에 동전[5] 이 등장하면서 잘렸다. 동전쪽도 5밀에 해당하는 1/2센트가 나왔지만, 이것도 몇 년 못 가서 삭제크리. 20리라 지폐는 비교적 늦은 1992년에 도입되었다.
밀이 센트로 바뀌면서 동전도 변화가 일어났다. 앞서 언급한 1/2센트(5밀)을 포함하여 1, 2, 5, 10, 20센트의 6종류가 새로 도입되고, 1991년에 50센트가 추가되었다. 1/2센트를 제외한 이 체계는 2008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5. 3차 (최종)
1997년 2월 1일에 도입하였다. (단, 20리라는 동년 10월에 도입) 특별한 교체사유는 없고, 그냥 대충 바꿀 시기가 되어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늦게 등장한 20파운드는 거의 개정판 수준이다.
[1] ERM에 들어간 해이다.[2] 약 2,600원/CYP정도다.[3] 신 키프로스 파운드와 영국 본토의 파운드화의 비율은 1:1이었다. 즉 1.80 오스만 리라=1 파운드=1 키프로스 파운드[4] 이 문제가 정말로 발생하자 1963년에 3밀을 엎어버리고 1밀이 다시 등장했다...[5] 특이한게 원이 아니고 7각형이다. 그것도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것으로.[6] 그런데 모노톤이라...[7] 평화의 신전이라는 의미. 13세기경 프레몽트레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마을이다.[8] 그리스에도 동명의 섬(Σαλαμῖνος)이 있지만, 그쪽이 아니라 고대 키프로스의 수도였던 곳을 말한다. 지금의 파마구스타에서 북쪽으로 6km.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 테우케르가 세웠다고 한다. 그의 고향이 그리스 아티카 앞바다의 살라미스라서 똑같이 이름을 지은 것. 이후 아랍인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다.[9] 키레니아=기르네는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에 있는 도시. 아프로디테의 바위라고도 한다.[10] 2차의 50센트와는 은근히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이다. 동일인물인데 작화력만 상승한 듯.[11] Kατώ Δρυς. 키프로스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 정말로 그냥 시골이다.[12] 수도 니코시아의 포타미아에서 발견했다.[13] 키프로스 중앙부 니코시아에서 서쪽 32km지점, 북키프로스와의 완충지대 바로 남쪽에 있는 인구 2,000명대에 불과한 작은 마을. 그리스어 "비둘기(페리스테리)"에서 유래했다. 밀, 올리브, 아몬드, 레몬/라임등이 특산품. [14] 파포스(Πάφος)에서 발견했다. 로마시대의 것으로 추정.[15] 야생 양의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