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노 카즈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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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
2. 선수 생활
릿쿄대학 시절에는 와세다대학의 와다 츠요시와 더불어 대학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부상 전력과 더불어 후술할 스캔들이 문제가 되면서 드래프트에서 당초 입단이 유력시되었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비롯해 어느 구단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타다노는 선수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하고, 200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50.1이닝을 던지면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4.65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1승이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리그 1승이었고 2005년 이후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 되지만 다시 메이저리그 진입에는 실패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드래프트 1라운드로 입단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뛰게 된다.[3][4]
201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시리즈 경기에서 오심으로 퇴장당했다. 정확히는 타자인 카토 켄[5] 의 헐리우드 액션.[6] 이 오심의 도움으로 요미우리가 다소 석연치 않게 일본시리즈를 우승했는데, 이 이후 센트럴리그 팀이 도대체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하고 있다.
2014년 10월 1일부로 닛폰햄에서 나오게 되었고, 2015년부터 독립리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팀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의 플레잉 코치로 뛰게 된다. 프로 입단이나 재기를 노리는 독립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인생의 실패를 논하면서 자신도 큰 실패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일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강한 멘탈의 소유자.
그의 구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4M나 될 정도로 높이 던지는 이퓨스볼. 39km를 찍기도 했다. 스피드건에도 찍히지 않는 초 슬로우볼이라고 악명이 높다. 2014년에도 엄청난 높이의 이퓨스를 선보이며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2018년 3월 1일 이시카와를 퇴단하며 공식으로 은퇴식을 가졌고, 친정 닛폰햄에 전력분석원으로 합류해 프런트로 일하고 있다.
3. 스캔들
2002년 여름 경에 2ch에서 타다노와 매우 닮은 사람이 등장하는 COAT사의 게이 포르노인 한여름 밤의 음몽이 있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고, 곧 타다노 본인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드래프트 지명이 불가능하게 될 만큼 큰 스캔들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2ch나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TDN으로 불리면서 놀림감이 되고 있다. 한여름 밤의 음몽과 TDN을 참고.[7]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면서 이 사건이 미국에도 알려지게 되는데, 미국에서 현역 스포츠 선수의 동성애는 꽤나 민감한 문제였던지라 제법 이슈가 되었다. 당시 타다노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게이가 아니며, 해당 비디오를 찍은 것은 단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이에 대해서 매우 후회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때 했던 해명이 '''"그 때는 젊었고 돈이 필요했다"''' (当時は若くお金が必要でした)가 명언이 되되어[8] 빈번히 사용되는 중이다.
다만 저 돈이 부족했다는 해명에 대해서는 말이 오가는데, 당시의 일본 프로야구계에서는 드래프트 유망주를 스카우트가 관리하면서 영양관리비라는 명목으로 뒷돈을 찔러주던게 일상다반사였고, 비록 부상이 있었다지만 프로 구단 지명도 확실했던 타다노도 그런 명목으로 돈을 받았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본인이 굉장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돈이 부족할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 포르노 출연이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으면서 훈련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한 체대생들이 암암리에 하는 아르바이트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아예 없는 해명은 또 아니다. 뭐 뒷돈을 못 받았을 수도 있고, 뒷돈을 받았어도 진짜로 갖고 싶은게 많아서 씀씀이가 컸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돈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고, 결국 진실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래서 저 스캔들로 인해서 화제가 상당했던 선수였고, 선수로서 메이저리그를 밟아보기도 했고 나름 닛폰햄에서도 몇 년 정도는 주전으로 뛰었기에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한 선수라 타다노가 진짜 게이인지 아닌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 타다노의 결혼 여부에 관심을 가지는 팬들이 많다. 연관검색어에 타다노 카즈히토 결혼이 뜰 정도. 2020년 기준 나이 40세인데 아직 독신이고 여자 관련 스캔들이 난 적도 없어서 그런 점에서 진짜 게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뭐 저런 비디오가 전국에 퍼진 사람이니 아무리 부자라도 어지간히 이해심이 넓은 여자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긴 하겠지만... [9] 여담으로 野球選手ホモビデオ(야구선수 호모비디오)라고 치면 그냥 대놓고 타다노 카즈히토의 프로필이 나온다(...).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타다노가 한여름 밤의 음몽을 촬영한 후 받은 출연료는 20만엔이었다는 말이 있다.
이후 타다노처럼 오피셜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테라시마 칸다이(전 롯데), 아즈마 카츠키(요코하마), 사노 케이타(요코하마) 등 GV 출연이 기정사실화 된 선수가 몇명 더 있긴 하다. 본인이 입을 다무는 한 증거도 없고, 사실일지라도 성인이 성인 비디오에 출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생활이고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쉬쉬하는 편. 사노의 경우는 구단 직원이 '''대놓고 저거 사노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테라시마의 경우는 GV 출연과 상관없이 너무 못해서 빠른 방출을 당한 케이스였다.
야구 선수로서는 상당히 재능이 있던 선수였다. 마이너리그를 1년만에 졸업했는데, 일반적인 미국 드래프티보다 2살 많았던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꽤 빠르게 졸업한 것이다. 이후 1년이나마 MLB에서 그럭저럭한 패전조 정도의 성적을 내며 풀 시즌을 보낸 적도 있고.
이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했을 때는 마이너 퇴단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고, 긴 실전공백과 이미 적지않은 나이, 1라운드 지명에 거액의 연봉까지 줬음에도[10] 부상 등으로 인해 결국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지 못하면서 닛폰햄 측에서는 그를 코어 자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선발과 불펜을 와리가리시키며 소모품으로 사용했고[11] , 결국 미미한 선수로 남고 말았다. 그럼에도 평균 정도는 되는 성적을 보여주었던 것은 대단하지만...
위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일본프로야구에 정상적으로 입단해 훨씬 더 대성할 수도 있었던 선수. 한창 성장했어야 할 때 메이저리그에서 불펜 패전조로 돌며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지 못했고, 미국 퇴단 후에는 최전성기 2년을 독립리그에서 1년, 그냥 백수로 1년을 보내는 허송세월을 하면서 기대만큼 큰 선수가 되지 못했다. 당장 동기생이자 비슷한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던 와다 츠요시가 얼마나 큰 선수가 되었는지 생각한다면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사람의 인생을 크게 망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만 하다. 게다가 같은 비디오에 출연한 배우들도 평생 인터넷 네타의 조리돌림감이 되었다
[1] 3번째 1라운드 지명.[2] 일본 독립야구리그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소속 구단.[3] 말이 1라운드지 대학생, 사회인과 고졸을 따로 뽑던 시기였고, 이 해의 고졸 1라운더는 '''나카타 쇼'''였기 때문에 타다노는 최고 코어픽은 아녔다. 거기다가 애초에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에서도 닛폰햄은 처음에 타다노가 아니라 대졸 투수 최대어이자 헤이세이의 철완이라는 별명을 갖고있었던 투수 오바 쇼타를 뽑았고, 오바가 6구단 중복지명이라 소프트뱅크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두번째로는 일본 사회인야구 최고의 좌완투수이자 전국대회 3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두었던. 도하 참사 당시 일본 야구대표팀 멤버 핫토리 야스타카라는 대졸사회인 좌완투수를 뽑았다. 근데 이 핫토리마저 롯데에게 빼앗기면서 3번째 하즈레로 타다노를 지명한 것. 여담으로 오바는 타다노랑 거의 똑같은 성적을 거두면서 실패, 핫토리는 원포인트로 딱 한 해 밥값하고 다른 해에는 1군에 거의 나오지도 못하면서 셋 중 가장 실패. 결국 셋 다 프로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다.[4] 이 해 대졸사회인 드래프트가 가뭄인것도 있던게 당시 대졸 최대어 3인방이었던 오바 쇼타, 하세베 코헤이, 카토 미키노리 등이 프로에서 싹 다 망했다. 이때 대졸사회인 드래프트 1라운드로 6구단이 오바를, 5구단이 하세베를, 둘 다 안 뽑은 야쿠르트가 카토를 뽑했는데 오바>하세베>카토 순의 성적을 냈다. 이때 오바의 성적이 타다노랑 별 차이가 없었으니 다른 둘은... 그리고 첫 번째 하즈레에서 시노다 쥰페이와 핫토리 야스타카가 각각 3구단 중복지명을 받았는데, 이 둘도 폭망했다. 또 다른 하즈레인 시로니타 히로카즈와 코바야시 후토시, 야마우치 소마도 타다노보다 성적이 안좋았으며 3번째 하즈레였던 무라타 토오루, 히라노 마사미츠, 코바야시 켄지도 제대로 망했다. 신기한 것은 이 12명의 대졸사회인 드래프트 1라운더들이 전부 투수였다는 것. 그리고 닛폰햄에서 뛰고 있는 무라타 토오루를 제외하면 2020년 기준 전부 은퇴했다. 당시 대졸 선수들은 1985년생, 일반적인 테크를 탄 대졸사회인 선수들은 83년생인 것과 이들이 전부 1라운더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늘고 길게 가지도 못한 셈. 그 무라타도 지명된 요미우리에서는 1군 기록 없이 빠르게 방출당했고 6년동안 마이너리그를 떠돌면서 메이저리그에 딱 1경기 출장했다가 3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닛폰햄에 입단하면서 사실상 늦깍이 중고신인으로 복귀한 것이다. 복귀해서도 6선발과 패전처리, 2군을 오가면서 타다노의 테크를 그대로 타고있고. 다만 하위픽에서는 미야니시 나오키, 쿠와바라 켄타로, 이토 요시히로 등의 중간계투들과 도루왕까지 차지했던 외야수 히지리사와 료 등 그럭저럭 성공한 선수들이 있었다. [5]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포수. 17년 동안 프로 생활을 했지만 통산 200경기도 나오지 못한 만년 백업포수였다. 2016년 시즌 이후 은퇴.[6] 동영상이 날아간 관계로 글로 설명하면, 당시 던진 공이 포수 미트에 맞고 튄 것을 타자가 마치 얼굴에 맞은 것처럼 연기하는 바람에 심판이 감쪽같이 속아서 몸에 맞는 공을 선언한 것.[7] 참고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반 다크홈도 일본에서 TDN이라고 불리는데 바로 타다노 카즈히토의 TDN에서 따왔다. 복장 때문에 TDN코스기라고 불린다.[8] "I was young, playing baseball, and going to college, and my teammates and I needed money," [9] 타다노는 일본프로야구에서 7년간 2억엔 정도를 벌었고, 메이저리그에서는 2년 간 62만 달러 정도를 벌었다. 대충 한화로 30억 가까이 벌었다는 셈. 세금을 다 내도 야구선수로 뛰면서 연간 1~2억원 정도는 손에 넣었을 것이다.[10] 12구단끼리 신인선수에게는 1500만엔 이상의 연봉을 주지 말자고 합의했는데도 규정상 금지가 아니라면서 그 두 배인 3000만엔을 첫 해 연봉으로 줬다.[11] 3년차까지는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년차 때 부상으로 1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리자 전력외통고까지 했다가 뒤늦게 재계약을 했다. 이때부터 구단에서는 그냥 돌려막기용 선수로 분류한 듯. 선술했듯 이전까지는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나름 기회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