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스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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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ascan. 멕시코의 서북부 미초아칸주에서 번성했던 문명. 아즈텍을 포함한 멕시코의 고대 문명중 두번째로 컸던 문명이었다. 푸레페차라고도 불린다.[1]
2. 역사
A.D 1300년에 건국되었다. 수도는 친춘찬(Tzintzuntzan)으로 현 멕시코의 미초아칸 지역에 해당한다. 지리적으로 북부 산악지대에서 발현하여 수비에 능하여 아즈텍의 가장 큰 적수이자 걸림돌인 국가였다.
1470년까지 아즈텍처럼 주변 국가들을 점령해 영토확장을 해가며 세력과 땅을 불려왔으며 아즈텍과 가장 많이 군사적으로 충돌한 문명이었다. 과거엔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을 목표로 군사를 진격시키기도 했으나 1470년 아즈텍 제국의 틀라토아니(황제)이던 악사야카틀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고 기세는 한풀 꺾이게 되었다. 이후 아즈텍은 주변국들을 대부분 집어삼키고 강대한 세력을 누리게 되었으나 타라스칸만은 함락하지 못하였다.
특출난 점으로는 인근의 문명 중 유일하게 청동기를 흔하게 사용했던 문명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청동기 제련술만 따지면 기원전 5300년경에 만든 청동기가 발굴되고, 이는 시기로만 따지면 최초의 유럽의 청동기 흔적보다도 이른 시기이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7세기 쯤에 안데스의 발전한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어서 귀중품들을 일부 제련한 흔적은 보인다. 다만 멕시코 지방은 청동의 재료인 구리가 당대 기술로 캐내기에는 너무 깊숙한데 짱박혀있는 상태여서 석기, 흑요석 위주로 돌아갔던 것이다.
타라스칸은 그나마 구리가 노천광으로 지표면에 좀 있어서 어느정도 청동기 제련을 활발히 사용했으나,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 떨어진 기술로 무기를 청동기로 쓸만하게 제조할 정도의 기술은 모자라서 농기구만 청동기로 제작하는 수준이었고, 이는 고급병과들은 청동기 무기로 무장했던 안데스 문명권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는 편이어서, 잉카 제국에 비해서도 군사적인 이점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2]
이후 가장 강대한 적수이던 옆동네의 아즈텍이 에르난 코르테스와 스페인 제국에게 1521년에 멸망하자, 타라스칸의 왕인 탕가수안 2세는 1522년에 스스로 문을 열어 스페인에 항복했다. 그 후 1530년에 탕가수안 2세가 누뇨 데 구스만에게 반역죄 혐의로 처형당했고, 타라스칸은 스페인에 병합되어 멸망한다. 이렇게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한 덕분에 후에 다른 문명이 몰살당할때도 유일하게 거의 유물들만 빼앗기고 조용히 넘어갔다고 한다. 그 후 타라스칸 유민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스페인을 거쳐 멕시코가 세워진 후에도 원주민 정체성을 유지했다.
3.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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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틀 종교권의 문화로써 인신제사를 드리던 피라미드가 많다.
다만 이들은 아즈텍에 비해 인신제사를 많이 한 편은 아니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기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일 년에 100명 미만으로 추측된다. 이게 적냐 싶지만, 바로 옆 동네인 아즈텍 제국은 한 해에 수만 명씩이고 갖다 들이붓는 통에 이만하면 적었던 편(…). 스페인에 항복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그나마 있던 인신제사 풍습도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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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스칸 유적의 향로. 기록상 이들은 향로에 불을 피워놓고 구리로 만든 종을 치며 제사를 지냈다.
4. 현재
현재 이들의 후손은 타라스코(Tarasco)족으로 불리며, 과거에 수도이던 틴틴준잔, 현 미초아칸에서 대부분 거주중이다. 극심한 문화파괴를 겪지 않았지만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다수의 타라스코인들이 이촌향도 등의 이유로 멕시코 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메스티소들과 섞이면서 현재 타라스코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지닌 사람은 15만명 남직한 수준이다. 대부분은 농부로써 주요 농작물인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과거 스페인 정복자들의 영향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이들은 과거 멕시코 원주민들 중에 가장 독실한 신자들이라고 한다. 특이점은 악마와 마녀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