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타이거!
1. 소개
1956년작. 미국 SF 작가인 알프레드 베스터의 작품.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바탕을 따왔다. 거기에 전쟁 도중 독일의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난파당한 필리핀 선원을 수십척이나 되는 배들이 무시하고 지나갔다는 신문기사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추가한 작품이다.
당초에는 약을 빨은 듯한 내용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후에 뉴웨이브붐이 일면서 시대를 잘타서 재평가되었고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애니메이션화, 혹은 영화화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암굴왕 역시 원래는 본작을 기반으로 하고자 했으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안으로 삼았다.
국내에서도 당연히 번역 소개됐으며, 번역 전에 만화가 고유성에 의해 전반부가 만화화된 적이 있다.[1]
80년대 중반 쯤에 만화가 서두원[2] 에 의해 단행본으로도 나왔었다.
처음 월간 SF 잡지 Galaxy Science Fiction 연재 당시 제목은 "내 목적지는 별(The Stars My Destination)"이었다. 이후 영국에서 단행본이 출간되면서 작중 인용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타이거(The Tyger)" 첫 부분에서 따 온 "Tiger!, Tiger!"라는 제목이 새로 붙은 것. 미국에서는 아직도 "The Stars My Destination"이라는 제목이 널리 쓰이고 있으며, 현재 유통 중인 단행본도 이 제목을 달고 있다.
2. 줄거리
텔레포트 능력인 존트가 보편적이 된 미래 사회,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무지하고 별 볼 일 없는 우주선 선원 걸리버 포일은 탑승한 우주선이 공격당하는 바람에 우주에서 표류하게 된다. 포일은 파괴당한 우주선에 남은 물자로 6개월에 걸쳐 목숨을 이어가다가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같은 회사의 우주선을 발견하고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우주선은 이를 무시하고 지나가 버린다.
절망한 포일은 자신을 무시한 우주선을 향한 복수를 결심하고, 이 복수심이 원동력이 되면서 포일의 잠재적인 지성과 존트 능력을 이끌어내어 결국 우주선을 점화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가 탄 우주선은 버림받아 야만인화 된 우주인의 후예들이 있는 위성으로 향하고, 그곳 사람들에게 사로잡힌 포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호랑이 무늬 모양의 문신과 방랑자(NOMAD)라는 이름이 새겨진다.
탈출하여 지구로 돌아온 포일은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존트 능력을 기르고, 여러가지 일을 벌여 큰 부자가 되면서도 복수심은 잊지 않고 자신을 버린 우주선을 추적하는데 매진하게 된다. 그러다가 가장 큰 고위층의 장님인 아가씨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추적과정에서 고위권력층을 건드리게 되어 누명을 뒤집어쓴 채 형무소로 들어가나 간신히 탈옥하고, 그녀의 정체[3] 를 알게 되는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쫓기는 이유가 파이로라고 하는 물질[4] 이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걸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듣게 된다.
이러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마침내 시간과 우주를 넘는 존트를 익혀 종교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파이로를 존트로 전세계에 뿌림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은 다시금 위성으로 돌아가 잠에 든다.
3. 평가
1956년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의 평가는 갈리는 편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된 사나이와 더불어 베스터의 양대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5]
파괴된 사나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좀 더 자기 완결적이고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타이거! 타이거!는 온갖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쓰고 버리면서 종횡무진 내달리는 쾌감이 있다. 그렇다고 이후의 컴퓨터 커넥션 같은 작품처럼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 정도는 아니며, 기본적으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극을 뼈대삼아 나아가다가 뒤로 가면서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나 로저 젤라즈니의 별을 쫓는 자처럼 대폭주하는 구조.
작품 전체에 흩뿌려진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주인공의 얼굴 문신[6] , 개조인간수술이나 가속장치는 각각 이시노모리 쇼타로에게 영향을 주어 가면라이더, 사이보그 009를 낳게 하였고 초능력 관계의 묘사는 부분적으로 AKIRA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텔레포트 능력의 비중이 큰 SF작품들은 대개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유리 의족을 어항으로 만들어 안에 금붕어를 넣고 다니는 사람이랄지 하는 식으로 사소한 디테일에서조차 종종 얼이 빠지게 하는 아이디어를 맛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덕분에 사이버펑크의 시초의 시초 정도로 평가받곤 하는데, 사이버펑크 장르를 정립한 작가들이 이 작품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다만 이러한 각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작품의 중심 플롯과 엮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실제로 존트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묘사하고 있지만 결말 부분만 제외하면 존트를 이야기에서 삭제하더라도 스토리 전개에는 큰 지장이 없다.[7] 다른 예로 주인공이 거금을 내고 개조인간이 된 후로도 이야기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폭도를 죽였을 뿐, 그 힘을 통하여 스토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8] 이야기에 중심이 되는 파이어 역시 사실상 맥거핀에 가까워서 작품상에서 주인공이 표적이 되는 것 이상의 역할은 없다.[9]
또한 결말부도 평가가 갈리는데 이것은 그때까지 복수극이었던 것이 후반부부터 종교, 사회적인 색채가 짙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복수는 애매하게 처리되고 주인공인 포일이 대중을 믿는다면서 파이어를 아무한테나 뿌려버리고 그러한 행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들에게 대중은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전개가 된다. 주인공은 스스로 한때 대중들과 똑같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자신처럼 눈을 뜨게 만들면 될 거라는 식으로 말하며 이야기가 상당히 계몽적으로 전개되는데 이러한 전개가 되는 것은 작품의 후반부 중에서도 상당히 뒷부분이기 때문에 뜬금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작풍에 관해서는 베스터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은 각각의 아이디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깔끔하게 닫힌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던져 눈속임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작가라는 것. 그러나 먼저 소설이 반드시 모든 플롯 요소를 긴밀히 연결하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겠고, 타이거! 타이거!는 그래도 베스터의 이후 작품에 비하면 중심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 편이며, 무엇보다도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글솜씨와 에너지가 워낙 대단한 탓에 이 작품까지는 큰 이견 없이 널리 사랑받는 편이다. 공개적으로 이 작품을 찬양한 작가의 명단만 보더라도 닐 게이먼, 토머스 M. 디쉬, 조 홀드먼, 로버트 실버버그, 윌리엄 깁슨, 마이클 무어콕 등이 있다.
박찬욱도 이 소설을 좋아하여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는데 이미 작가가 살아 생전, 영화 판권을 팔았고 판권이 복잡하게 꼬인 채로 40년넘게 영화화가 계속 뒤엎어져서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4. 한국어판 정보
한국에는 동서추리문고를 통해 먼저 일본어 중역으로 소개되었다가 1993년에 출판사 꿈이 있는 집에서 하경혜 역본이 출간됐다. SF기획/번역자인 박상준의 말에 따르면 이 판본은 영문판을 저본으로 했으며 동서추리문고의 중역본에서 누락된 부분도 추가한 첫 한국어 완역본이라고 한다. 당시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영화평론가 임재철의 흥분과 애정 이 가득한 해설도 읽을거리.
하경혜 역본이 절판된 후 많은 팬을 애타게 하다가 마침내 2004년에 시공사의 그리폰 북스 2기를 통해 최용준 역본이 새로 나왔다. SF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역자인 만큼 나무랄 데 없는 번역이며, 역자 후기 또한 재치있다. 이 판본 역시 번역 SF의 운명을 좇아(…) 절판되었다. 다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시공사와 협의를 통해 새로 인쇄한 물량이 유통되면서 일단은 쉽게 구매할 수 있다.
5. 기타
책 맨 앞장과 뒷장에 나오는 영어 사언시 형태를 빌어서 주인공의 발전이 나타난다. 단어 두 개 바뀌는 걸로 분위기가 확 바뀐다.
Gully Foyle is my name
And Terra is my nation
Deep space is my dwelling place
'''And death's''' my destination.
내 이름은 걸리버 포일
내 나라는 지구
내가 머무는 곳은 깊은 우주
그리고 내 목적지는 '''죽음'''.
상술했듯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바탕을 따왔기 때문인지 Fate/Grand Order에 등장하는 암굴왕 에드몽 당테스에도 영향을 주었다. 몽테 크리스토 미톨로지 참조.Gully Foyle is my name
And Terra is my nation
Deep space is my dwelling place
'''The stars''' my destination
내 이름은 걸리버 포일
내 나라는 지구
내가 머무는 곳은 깊은 우주
그리고 내 목적지는 '''별들'''.
[1] 내용은 원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탐정물(같은 개그 SF물)이였다.[2] 슈퍼맨 만화도 그린 작가이다[3] 그녀는 자신이 장님이라는 신세에 큰 절망감을 가지고 보통사람들을 납치해서 우주에 버리는 쾌락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주인공을 버린 우주선은 그녀의 하수인이었던 것. 주인공을 구조하면 자신들의 범죄가 밝혀지므로 버리고 도망간 것이었다.[4] 사람의 정신을 매개로하여 대폭발을 일으키는 물질이다.[5] 사실 베스터의 이후 작품은 처음 두 장편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 하는 관계로 상당수 베스터 팬은 파괴된 사나이와 타이거! 타이거!의 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베스터 팬을 만나면 둘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어봐도 재밌다.[6] 후에 수술을 해서 지우는데 그 전에 한 잘못된 수술의 영향으로 상처가 남아서 흥분하면 얼굴에 문신 자국이 떠오른다.[7] ...고는 하지만, 작중 세계의 막장스러운 정세(내행성 세력 vs 외위성 세력의 전쟁 구도)와 폭주하는 사회상(순간이동으로 휩쓸고 다니는 폭도 조직들, 존트를 일부러 쓰지 않고 이동함으로써 부를 과시하는 기성 권력층 vs 존트를 돈벌이와 권력 획득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신흥 세력 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소재들이 합쳐져서 결국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다.[8] 다만 이렇게 단정짓는 건 비약에 가깝다. 사실 개조인간 능력은 스토리에 이런저런 영향을 많이 줬다. 자살장치가 달려 있는 사람을 심문하기 위해, 개조인간의 가속능력과 자기최면을 통해 초고속으로 수술을 집도하여 심장 자체를 적출, 생명유지장치에 연결해 연명시키고 심문하는 장면이 압권. 그 외에도 화성에는 전원이 주인공 이상의 가속능력을 보유한 개조인간인 경비대가 있다.[9] 파이어는 결말부분에서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파이어로 인한 폭발이 주인공의 최종 각성의 계기가 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