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라노 시게모리
平重盛
1138년 ~ 1179년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무장.
헤이안 시대 말기(겐페이 전쟁기)의 최고권력자였던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장남. 아명은 키요타(清太). 로쿠하라 코마츠다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코마츠 도노, 코마츠나이다이진, 코마츠나이후라고도 불렸다.
군담소설 호겐 이야기나 헤이지 이야기에서는 호전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데, 호겐의 난 당시 미나모토노 다메토모의 가공할 궁술[2] 에 기겁한 기요모리가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이대로 도망치기는 분합니다!"라면서 다시 나가 싸우자고 한다. 헤이지 이야기에서는 군사들 앞에서 "연호는 헤이지(平治), 도읍은 헤이안(平安), 우리는 헤이시(平氏)라, 헤이(平)이 셋이 모였으니 이 난은 반드시 평정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병사들을 독려하는가 하면,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장남 요시히라(義平)와 황궁 시신덴 정원의 귤나무와 벚나무 사이를 오가며 격전을 벌이는 등의 호전적인 모습도 묘사된다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부동의 악역 포지션을 꿰찬 헤이케 일가 중 유일하게 까방권을 얻은 현자로 묘사된다. 현명한 인격자로 불심이 깊어 집안에 절에 매다는 등롱을 매달아 놓는 등 종교계의 신뢰도 깊어 "등롱대인"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키요모리의 후계자로서 기대를 모았지만 일찍 병사해 삼남인 타이라노 무네모리가 후계자가 되었다.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는 죽기 직전의 그의 모습이 거의 우울증 환자처럼 비쳐질 정도다. 헤이케의 몰락을 예견하고 쿠마노에서 "헤이케가 몰락한다면 자신이 먼저 죽게 해달라(그래서 집안이 몰락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안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들이 물에서 뛰어노는데 안에 입은 자주색 옷이 꼭 장례식 때 입는 옷 같아서 불길하다고 말리려는 하인에게 "그럴 것 없다. 쿠마노의 신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라며 쿠마노에 예물을 보내기까지 한다. 쿠마노에서 돌아오자 병을 얻어 사망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가 죽으면서 영원할 것 같았던 헤이케의 영화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키요모리의 적자로 장남이지만, 토키코의 자식들에 비해 외가의 비호를 받지 못했고[3] , 유일한 친형제였던 타이라노 모토모리도 그보다 일찍 사망했고 처남이자 사돈인 후지와라노 나리치카도 실각해 집안 내에서도 고립된 위치였다고 한다. 그의 온화한 성품을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립된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정치적으로 아버지와는 달리 고시라카와 법황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고립적인 위치와 그의 사후 헤이케의 동량[4] 자리를 아들인 코레모리가 아니라 타이라노 무네모리가 이은 것을 통해 더 살아있었다면 동량의 지위 자체도 위험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고리사카와 법황의 황후 타이라노 시게코는 토키코의 여동생이라 자신과는 혈연이 없었고, 황후가 된 여동생 토쿠코도 이복 여동생이라 힘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시게코 사후 법황의 측근이자 자신의 매형이던 후지와라노 나리치카가 시시가타니 사건으로 인해 키요모리에 의해 유배되어 아사하면서 더욱 입지가 좁아지게 되고, 원과 아버지를 조율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시게모리의 사후 헤이케는 고시라카와 법황을 유폐하는 등 조정과도 사이가 벌어지고 키요모리의 5남 시게히라가 저지른 난토 소각사건으로 인해 불교세력과도 척을 지게 되어 그 지위가 위태해진다.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서 특전무장으로 등장한다.
NHK 2005년 대하드라마 요시츠네에서는 카츠무라 마사노부가 연기했다. 헤이케 이야기에 묘사된 기요모리의 악행이 사실은 시게모리의 소행이라고 하는 역사상의 사실에 따라 노리아이 사건 역시 시게모리가 나서서 무사들을 거느리고 일문의 모욕을 참을 수 없다며 자행한 짓으로 나오는데, 기요모리가 요리토모에게서 빼앗은 히게키리 검[5] 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기요모리가 요리토모에게 속았다는 것에 대한 화를 주체하지 못해 기요모리 자신이 평소 그렇게 애지중지 가꾸던 도라지꽃 정원을 한밤중에 마구 칼로 난도질하듯이 휘둘러 다 망가뜨려 놓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시시가타니 음모 사건[6] 이 발각되자 가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벌받게 된 처남 나리치카를 구명하려다 실패하자 그러면 (애초에 회합을 주도한) '''법황도 뭔가 처벌을 해 달라'''고 말해 기요모리는 물론 일문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후 병이 깊어지자 출가하여 병상에 누운 자신을 문병온 아버지 기요모리에게 과거 아버지가 요리토모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한밤중에 마구 망가뜨린 도라지꽃 정원의 모습을 보고 그토록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의 마음 속에도 야차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으며, 악인이라는 비난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 모두 뒤집어 쓰고 가야겠다고 생각해 그토록 난폭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내 병은 아버님을 대신해 야차가 되기로 한 제가 받는 부처님의 벌일지도 모릅니다."라고 하는 시게모리에게 기요모리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미안하다"라며 손을 잡아주는 것이 명장면. 또한 아버지 기요모리에게 "법황 폐하와 조정을 조심하셔야 한다"는 말도 남기는데, 법황이 나중에 어떻게 헤이케에게 뒤통수를 쳤는지를 생각하면 그의 예상이 맞았다.
시게모리가 죽은 뒤 기요모리의 흑화가 시작된다. 시게모리의 죽음을 전후해 기요모리가 자신의 서녀를 잃고 이어 시게모리까지 잃었다는 나레이션이 이어지고, 무장한 군대를 거느리고 수도로 들어온 기요모리에게 고시라카와 법황이 항의하는 사자를 보내자 사자 앞에서 법황이 자신에게 행한 부당한 일[7] 들을 열거하며 "'''법황의 뜻에 따라서는 시게모리를 대신해 앞으로는 내 귀신이 될 것이다'''"라며 선포한다.
배역은 쿠보타 마사타카.[8] 아버지 타이라노 키요모리와 가끔씩 의견 충돌하는 모습이 자주 비친다. 키요모리는 심하게 역정을 내기도 하지만, 주변에서는 어린 시절 키요모리와 닮은 구석이 많다며 두둔한다. 생각이 깊은 편이며, 의외로 문제의 본질을 잘 파악한다. 다만 자신만의 정치적 올바름이 너무 강하다보니, 스스로의 사고를 제약하는 면이 있다. 키요모리와 여러 면에서 충돌하면서 결국 그로 인해 병이 들어서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이 원형인 머나먼 시공 속에서 3의 등장인물.
원래는 이 시점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소생하여 헤이케를 이끌고 있다. 살아있을 때는 코마츠나이후로 불렸으나, 현재는 저승에서 돌아왔다고 하여 '카에리나이후'라고 불리고 있다.
사실 진짜 그는 죽은 뒤 소생 의식을 치렀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의 카에리나이후는 아리카와 마사오미. 원령이 된 키요모리는 마사오미를 기억을 잃은 시게모리라고 여겼고[9] , 그 후 마사오미가 피난하는 헤이케 일족을 이끌면서 그 뛰어난 지도력으로 '시게모리 님이 살아돌아온 것 같다'고 존경을 얻어 그대로 시게모리로 눌러앉게 되었다.
진짜 시게모리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마사오미와 닮았다는 것뿐. 실제로 머나먼 시공 속에서3 관련해 실린 단편 코믹스에서 나와 있는 생전의 시게모리의 일러스트는 마사오미와 매우 닮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게임 중 토모모리의 말에 따르면 생각하면서 미간을 찌푸릴 때 시게모리와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게모리를 닮았다는 마사오미는 아버지 키요모리나 배다른 동생 타이라노 토모모리나 타이라노 시게히라, 심지어 아들 타이라노 코레모리나 손자 로쿠다이(PSP판에서 공개)와도 닮지 않았다. 유전자의 신비.
1138년 ~ 1179년
1. 개요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무장.
헤이안 시대 말기(겐페이 전쟁기)의 최고권력자였던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장남. 아명은 키요타(清太). 로쿠하라 코마츠다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코마츠 도노, 코마츠나이다이진, 코마츠나이후라고도 불렸다.
2. 생애
군담소설 호겐 이야기나 헤이지 이야기에서는 호전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데, 호겐의 난 당시 미나모토노 다메토모의 가공할 궁술[2] 에 기겁한 기요모리가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이대로 도망치기는 분합니다!"라면서 다시 나가 싸우자고 한다. 헤이지 이야기에서는 군사들 앞에서 "연호는 헤이지(平治), 도읍은 헤이안(平安), 우리는 헤이시(平氏)라, 헤이(平)이 셋이 모였으니 이 난은 반드시 평정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병사들을 독려하는가 하면,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장남 요시히라(義平)와 황궁 시신덴 정원의 귤나무와 벚나무 사이를 오가며 격전을 벌이는 등의 호전적인 모습도 묘사된다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부동의 악역 포지션을 꿰찬 헤이케 일가 중 유일하게 까방권을 얻은 현자로 묘사된다. 현명한 인격자로 불심이 깊어 집안에 절에 매다는 등롱을 매달아 놓는 등 종교계의 신뢰도 깊어 "등롱대인"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키요모리의 후계자로서 기대를 모았지만 일찍 병사해 삼남인 타이라노 무네모리가 후계자가 되었다.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는 죽기 직전의 그의 모습이 거의 우울증 환자처럼 비쳐질 정도다. 헤이케의 몰락을 예견하고 쿠마노에서 "헤이케가 몰락한다면 자신이 먼저 죽게 해달라(그래서 집안이 몰락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안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들이 물에서 뛰어노는데 안에 입은 자주색 옷이 꼭 장례식 때 입는 옷 같아서 불길하다고 말리려는 하인에게 "그럴 것 없다. 쿠마노의 신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라며 쿠마노에 예물을 보내기까지 한다. 쿠마노에서 돌아오자 병을 얻어 사망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가 죽으면서 영원할 것 같았던 헤이케의 영화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키요모리의 적자로 장남이지만, 토키코의 자식들에 비해 외가의 비호를 받지 못했고[3] , 유일한 친형제였던 타이라노 모토모리도 그보다 일찍 사망했고 처남이자 사돈인 후지와라노 나리치카도 실각해 집안 내에서도 고립된 위치였다고 한다. 그의 온화한 성품을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립된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정치적으로 아버지와는 달리 고시라카와 법황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고립적인 위치와 그의 사후 헤이케의 동량[4] 자리를 아들인 코레모리가 아니라 타이라노 무네모리가 이은 것을 통해 더 살아있었다면 동량의 지위 자체도 위험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고리사카와 법황의 황후 타이라노 시게코는 토키코의 여동생이라 자신과는 혈연이 없었고, 황후가 된 여동생 토쿠코도 이복 여동생이라 힘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시게코 사후 법황의 측근이자 자신의 매형이던 후지와라노 나리치카가 시시가타니 사건으로 인해 키요모리에 의해 유배되어 아사하면서 더욱 입지가 좁아지게 되고, 원과 아버지를 조율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시게모리의 사후 헤이케는 고시라카와 법황을 유폐하는 등 조정과도 사이가 벌어지고 키요모리의 5남 시게히라가 저지른 난토 소각사건으로 인해 불교세력과도 척을 지게 되어 그 지위가 위태해진다.
3. 대중매체에서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서 특전무장으로 등장한다.
3.1. 2005년 드라마 <요시츠네>
NHK 2005년 대하드라마 요시츠네에서는 카츠무라 마사노부가 연기했다. 헤이케 이야기에 묘사된 기요모리의 악행이 사실은 시게모리의 소행이라고 하는 역사상의 사실에 따라 노리아이 사건 역시 시게모리가 나서서 무사들을 거느리고 일문의 모욕을 참을 수 없다며 자행한 짓으로 나오는데, 기요모리가 요리토모에게서 빼앗은 히게키리 검[5] 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기요모리가 요리토모에게 속았다는 것에 대한 화를 주체하지 못해 기요모리 자신이 평소 그렇게 애지중지 가꾸던 도라지꽃 정원을 한밤중에 마구 칼로 난도질하듯이 휘둘러 다 망가뜨려 놓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시시가타니 음모 사건[6] 이 발각되자 가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벌받게 된 처남 나리치카를 구명하려다 실패하자 그러면 (애초에 회합을 주도한) '''법황도 뭔가 처벌을 해 달라'''고 말해 기요모리는 물론 일문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후 병이 깊어지자 출가하여 병상에 누운 자신을 문병온 아버지 기요모리에게 과거 아버지가 요리토모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한밤중에 마구 망가뜨린 도라지꽃 정원의 모습을 보고 그토록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의 마음 속에도 야차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으며, 악인이라는 비난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 모두 뒤집어 쓰고 가야겠다고 생각해 그토록 난폭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내 병은 아버님을 대신해 야차가 되기로 한 제가 받는 부처님의 벌일지도 모릅니다."라고 하는 시게모리에게 기요모리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미안하다"라며 손을 잡아주는 것이 명장면. 또한 아버지 기요모리에게 "법황 폐하와 조정을 조심하셔야 한다"는 말도 남기는데, 법황이 나중에 어떻게 헤이케에게 뒤통수를 쳤는지를 생각하면 그의 예상이 맞았다.
시게모리가 죽은 뒤 기요모리의 흑화가 시작된다. 시게모리의 죽음을 전후해 기요모리가 자신의 서녀를 잃고 이어 시게모리까지 잃었다는 나레이션이 이어지고, 무장한 군대를 거느리고 수도로 들어온 기요모리에게 고시라카와 법황이 항의하는 사자를 보내자 사자 앞에서 법황이 자신에게 행한 부당한 일[7] 들을 열거하며 "'''법황의 뜻에 따라서는 시게모리를 대신해 앞으로는 내 귀신이 될 것이다'''"라며 선포한다.
3.2. 2012년 드라마 <타이라노 키요모리>
배역은 쿠보타 마사타카.[8] 아버지 타이라노 키요모리와 가끔씩 의견 충돌하는 모습이 자주 비친다. 키요모리는 심하게 역정을 내기도 하지만, 주변에서는 어린 시절 키요모리와 닮은 구석이 많다며 두둔한다. 생각이 깊은 편이며, 의외로 문제의 본질을 잘 파악한다. 다만 자신만의 정치적 올바름이 너무 강하다보니, 스스로의 사고를 제약하는 면이 있다. 키요모리와 여러 면에서 충돌하면서 결국 그로 인해 병이 들어서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3.3. 머나먼 시공 속에서3 등장인물
1이 원형인 머나먼 시공 속에서 3의 등장인물.
원래는 이 시점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소생하여 헤이케를 이끌고 있다. 살아있을 때는 코마츠나이후로 불렸으나, 현재는 저승에서 돌아왔다고 하여 '카에리나이후'라고 불리고 있다.
사실 진짜 그는 죽은 뒤 소생 의식을 치렀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의 카에리나이후는 아리카와 마사오미. 원령이 된 키요모리는 마사오미를 기억을 잃은 시게모리라고 여겼고[9] , 그 후 마사오미가 피난하는 헤이케 일족을 이끌면서 그 뛰어난 지도력으로 '시게모리 님이 살아돌아온 것 같다'고 존경을 얻어 그대로 시게모리로 눌러앉게 되었다.
진짜 시게모리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마사오미와 닮았다는 것뿐. 실제로 머나먼 시공 속에서3 관련해 실린 단편 코믹스에서 나와 있는 생전의 시게모리의 일러스트는 마사오미와 매우 닮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게임 중 토모모리의 말에 따르면 생각하면서 미간을 찌푸릴 때 시게모리와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게모리를 닮았다는 마사오미는 아버지 키요모리나 배다른 동생 타이라노 토모모리나 타이라노 시게히라, 심지어 아들 타이라노 코레모리나 손자 로쿠다이(PSP판에서 공개)와도 닮지 않았다. 유전자의 신비.
[1] 다만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초상화라는 설도 있다.[2] 화살 한 발로 기요모리의 가신 두 명을 꿰뚫어 죽였다.[3] 어머니가 그를 낳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죽고, 그녀의 가문이 타이라 가문에 비해 세력이 약하고 지위도 낮았다.[4] 일족의 수장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말로 '도료'라고 한다.[5] 작중 겐지 대대로 겐지의 도료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보검이라고 설명된다.[6] 고시라카와 법황이 시시가타니 별장에서 측근들을 모아놓고 헤이케 타도를 모의한 사건.[7] 후지와라 셋칸케의 당주인 다다자네의 부인으로 자신의 딸인 모리코가 죽자 모리코에게 상속되었던 후지와라 셋칸케 소유의 옛 영지들을 법황이 가로챘다든지, 시게모리가 죽었는데도 조의는 표하지도 않고 연회를 열어 놀았으면서 시게모리가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지행국이었던 에치젠까지 법황이 낼름 거둬가 버린 일이라든지[8] 도쿄 구울 실사판 영화에서 카네키 켄역으로 배정되었다.[9] 원령이 된 뒤 약간 기억이 혼란이 있었던 듯. 처음 마사오미를 만났을 때는 죽은 아들과 닮았다고 하긴 했지만 시게모리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또한 루트에 따라 정화될 때 마사오미를 시게모리가 아니라 '마사오미'라고 부르거나 자신의 착각을 깨닫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