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론 파워
1. 소개
Tyrone Power. 1914~1958.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출신의 미국의 배우. 할아버지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이고 아버지도 배우였다. 아버지와 같이 연기한 적도 있다. 1937년에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에롤 플린과 유사한 테크트리를 밟으며 모험 활극의 대표 배우가 된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연기의 폭도 넓어져 말년에는 존 포드 감독의 롱 그레이 라인에서 명연을 펼치는 등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탄탄해지나 1958년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짧은 삶은 마감하고 만다.
외모 때문에 평가 절하된 배우의 대표로 뽑힌다. 연기자 가문에서 태어나 연기로 인정 받으려 평생을 노력했지만 전속 계약을 했던 폭스에서 애초에 진지한 역할을 전혀 맡기지 않았다.
그래서 타이론 파워 본인이 폭스와 딜을 해서 5편의 흥행형 영화를 출연하면 1편은 작가주의 영화에 출연하게 해달라고 하여 드물게(?) 진지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고 그의 사후에는 진지한 영화 쪽만 살아남았다. 타이론 파워 생전의 필모그래피는 로맨틱 코미디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의 뛰어난 연기자로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은 오히려 느와르 작품들이다. 악몽의 골목길(1947), 검사 측 증인(1957)이 대표적으로 손꼽히며, 특히 검사측 증인에서의 살인죄 누명을 쓴 남자[스포일러] 역을 맡아서 보여준 연기가 매우 일품이다.
58년 사망 전, 마지막으로 촬영하던 영화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다. 가장 중요한 전투씬 몇 장면만을 남기고 촬영장에서 잠시 휴식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결국, 제작사에서는 대역을 쓰는 대신 새로운 배우를 기용해서 재촬영으로 가닥을 잡았고, 친구였던 율 브리너가 투입되어 완성하게 된다.
2. 출연작
1955년 롱 그레이 라인
3. 여담
양성애자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혼을 세 번이나 했고 주디 갈란드와 사귄 적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남성과의 스캔들도 꽤 있었다.
딸 태린 파워[1] 와 아들 타이론 파워 주니어 역시 배우로 활동 중이다. 특히 타이론 파워 주니어는 아버지와 붕어빵 수즌으로 닮은 외모가 특징.
[스포일러] 결국 변호사의 활약으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런데 최후반부에 밝혀지는 사실은 그는 실제 살인범이 맞았고, 사실 돈만 밝히는 인간 쓰레기였다. 그가 독일에서 데려와 결혼한 부인(마를렌 디트리히가 연기했다. 그녀에게도 대표작)이 배심원 앞에서 자신을 남편에게 누명 씌우려는 악녀로 연기까지 해가며 그를 구명했건만 다른 여자와 이미 바람도 난 상태. 결국 분노한 부인의 칼에 맞아 죽는 역인데, 누명 쓴 체 하던 당시의 절망적인 남자와 뻔뻔한 인간 말종 양 극단을 오가는 모습을 보면 파워의 연기력에 소름이 돋을 정도.[1] 2020년 6월 26일 백혈병으로 66세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