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게페르트

 

''' 테오도르 게페르트'''
Theodore Geppert S.J.
[image]
'''본명'''
테오도르 게페르트 (Theodore Geppert)
'''출생'''
1904년 3월 8일 독일 베스트팔렌
'''사망'''
2002년 7월 13일 일본 도쿄 로욜라하우스
'''국적'''
독일 [image]
'''학력'''
베를린 동방신학원 일본어, 더블린 신학, 스위스 바젤대학교 경제학, 수학 박사
'''종교'''
가톨릭(예수회 소속 수도사제)

1. 소개


독일의 천주교 사제. 예수회 소속으로 서강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2. 생애


1904년 독일 베스트팔렌에서 태어나 1923년 네덜란드 헤렌버그에서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33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게페르트 신부는 독일 베를린 동방신학원에서 일본어를, 더블린에서 신학을 각각 수학했고 1940년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경제학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4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서강대 설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수차례 면담한 끝에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아내 1960년 4월18일 서강대를 개교한 뒤 엄격한 학사관리와 우수 교수 유치 등을통해 명문 사학의 기틀을 다졌다.
게페르트 신부는 서강대 초대 이사장으로 독일 예수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등 학교 살림을 챙기면서 교수로 직접 강단에 서서 독일어를 가르쳤다. 그의 노력이 바탕이 돼 서강대는 3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명문대로 발전했다.
이후 서강대가 개교한지 1년만인 1961년 한국을 떠나 선종하기 전까지 줄곧 일본에 머물며 조치대 경제학과 교수 겸 기숙사감 수도원장 등을 지냈다.

3.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스테파노의 은사이기도 했다. 일본 조치대학 유학생이었던 김수환이 사제가 되도록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추기경은 그가 사제로서 훌륭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자상한 분이었으며, 특히 한국 유학생들에게 늘 자애롭게 대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김 추기경이 학병으로 징집되어 학교를 떠나기 전, 게페르트 신부가 직접 그에게 무사할 것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기도 중에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였고, 김 추기경은 게페르트 신부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회고했다.
광복 후에도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 추기경이 자신의 추기경 서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게페르트 신부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이후 2002년 게페르트 신부가 향년 98세를 일기로 선종하자, 김 추기경은 서강대 학교 성당에서 거행된 장례 미사를 직접 집전하여 은사의 넋을 위로했다.

4. 사후 추모


선종 직후 자신이 세운 서강대 내에 안장되었고, 이듬해인 2003년에 그의 동상이 서강대 본관 인근에 세워졌다.
2017년에는 신축된 경제학과 건물을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Geppert Nam Duck-woo Hall)으로 명명했다. 대표적 서강학파이자 전 경제부총리였던 남덕우 전 교수과 함께 붙여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