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스타우벅
1. 커리어
1942년 2월 5일 ~
前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소속팀은 댈러스 카우보이스.
미국해군사관학교출신으로 1963년 미국 최고의 대학 선수에게 주어지는 하이즈먼 트로피를 수상하였다. 여담으로 해사 생도시절 풋볼팀 코치로서 빌 벨리칙의 아버지인 스티브 벨리칙이 있었는데, 스타우벅은 아버지를 보기 위해 해사로 자주 놀러온 빌 벨리칙에게 풋볼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며 많이 놀아주었다고 한다. 졸업 후 임관하여 베트남 전쟁에도 보급장교로 참전했었다. 해사생도 시절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둬 파일럿이 될 수 있었으나, 색맹이 있어 병참으로 임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큰 키 때문에 단기복무만 하고 전역한 데이비드 로빈슨보다도 더한 군 경력의 소유자.
군 복무에 참전까지 했기에 만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하였고, 29세가 돼서야 풀타임 주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확한 판단력과 롱패스로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1차 황금기를 이끌었다. '''캡틴 컴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역전승의 명수. 1970년대 후반 명예의 전당 헤드코치인 톰 랜드리의 지휘아래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1차 전성기를 이끈 쿼터백이다. 슈퍼볼 2회 우승 주역.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특히 1975년 미네소타 바이킹스와의 플레이오프 때 10-14로 뒤지고 있던 경기의 종료를 2초 남기고 성공한 50야드 초장거리 역전 터치다운 패스는 '''헤일 메리 패스(Hail Mary Pass)'''라는 이름으로 그를 상징하는 플레이가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스타우벅은 마음을 비우고 성모송을 외우면서 던졌다고 밝혔기에 헤일 메리라는 이름이 붙에 된 것이다.
은퇴 이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부동산 투자 및 개발 업체를 운영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고, 2008년엔 회사를 613m달러에 매각하여 NFL 선수출신 중 가장 많은 돈을 번 선수로 기록되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에 의해 자유메달을 받았다.
2020년 댈러스 카우보이스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댈러스 카우보이스 역대 최고 선수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
2. 연도별 기록
[1] 카우보이스는 5회 대회 때, 조니 유나이타스가 이끌던 볼티모어 콜츠에게 16-13으로 패배했다. 그러니까 하울리는 슈퍼볼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한 팀에서 배출된 MVP.''' 이 때 그는 유나이타스에게서 인터셉션 2개를 잡고, 펌블 1번을 이끌어냈다. 슈퍼볼 역대 MVP들을 소개하던 50회 대회 때 그의 나이 여든이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 오지는 못하고, 화면으로 대신하였다. 스타우벅은 참석했다. 참고로, 이 때 MVP를 내지 못한 콜츠는 36년 뒤(41회 대회, 인디애나폴리스 이주 이후)에야 우승 1회를 추가하는데, 이 때 MVP는 '''그 페이튼 매닝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