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타르 1세

 

역대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

'''페타르 1세'''

폐지(병합)
역대 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국왕
신설

'''페타르 1세'''

알렉산다르 1세
1844년 7월 11일 ~ 1921년 8월 16일
페타르 1세는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의 국왕이다. 카라조르제비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가 오브레노비치 왕가와의 세르비아 왕위다툼에서 밀려나 어려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오브레노비치 왕가 출신의 알렉산다르 1세가 폭정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기회를 줘도 못 받아먹는 알렉산다르는 입헌군주제전제군주제로 바꾸고, 세르비아인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연상의 여자를 왕비로 맞았다. 결국 민심이 폭발한 결과 알렉산다르 1세는 살해당하고 페타르 1세가 세르비아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제1차 세르비아 봉기 100주년이 되는 1904년 대관식을 올렸다. 당시 유럽은 군주제 체제가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은 전임자를 살해한 쿠데타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냈고, 페타르 1세의 대관식에도 몬테네그로 왕국불가리아 왕국만 대표를 파견했다(...) 다만, 전임 왕인 알렉산다르도 일반 평민과 귀천상혼을 했기 때문에, 쿠데타에 대한 비난도 약간 형식적이었다.[1]
발칸 전쟁 때 세르비아군 최고 사령관이기도 했다. 고령에 건강 문제를 이유로 1차 대전 직전인 1914년 6월 24일[2] 알렉산다르 왕세자를 섭정(대리청정)으로 내세웠다.
이후 세르비아가 승전국이 되면서 그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병합해 1918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세웠다. 그래서 해방자 페타르 왕(Kralj Petar oslobodilac)으로 평가받는다.
그를 소재로 한 영화도 개봉했다.


[1] 유럽 왕실과 일반 평민간의 결혼이 제대로 인정받은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야기이다.[2] 사라예보 사건 나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