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다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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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12월 16일 ~ 1934년 10월 9일(45세)
재위 1921년 8월 16일 ~ 1934년 10월 9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군주.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출신이다. 부왕 페타르 1세가 오브레노비치 왕조에 밀려 망명객이던 시절인 1888년에 몬테네그로 왕국 체티네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몬테네그로 공주이던 모친을 잃고, 아버지에 의해 스위스와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본래는 차남이라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낮았으나, 형인 조르제가 부왕과 의견 대립이 심한데다 정신질환 때문에 폭력적인 성격이었고 결정적으로 시종을 죽이는 바람에 폐세자당하자[1] , 1909년에 대신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었다. 1910년에는 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했고, 1914년부터 아버지 페타르 1세를 대신해 섭정하였다.
1921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왕위에 올랐으나, 1928년 크로아티아 농민당 당수 스테판 라디치(Stjepan Radić)가 암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2] 이로 인해 시작된 정치 혼란과 불안정한 체제를 1929년에 정식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고 이른바 '1월 6일 체제'라는 전제군주제로 체제를 바꿈으로써 극복하려 했으나 의회와 갈등이 심했다. 전제군주정이라니 언제적 시대 이야기를 하냐 싶기도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제군주정 국가는 상당히 많았다. 거의 전제군주정이나 다름없던 독재국가들도 즐비했고.
1934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루이 바르투 외무장관(1862 ~ 1934, 한때 프랑스 총리를 역임)과 회담하던 중 불가리아인 블라도 체르노젬스키[3] 에게 암살당한다.[4] 참고로 이때 프랑스 외무장관과의 만남 필름을 찍다가 암살당한 거라 아직도 암살 당시 필름이 남아 있다. 유럽 군주 가운데 암살당한 최후의 국왕이다.
암살이 촬영된 영상. 58초 쯤에 등장해서 1분 10초 쯤에 국왕 옆에 앉은 인물이 루이 바르투. 그는 총에 맞고 차에서 내려 병원에 옮겨졌지만 1시간 후에 죽었다.
한때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차녀인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황제 일가가 총살당하면서 무산되었다. 본인은 그 소식을 듣고 꽤 충격받았다는 모양. 본래 타티아나 여대공은 러시아 제국에서 알아주는 미인이라 여기저기에서 혼담이 오곤 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까지도 이 둘이 서신을 교류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둘의 혼담은 제법 진척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22년 루마니아 왕국의 공주 마리야와 결혼해서 3명의 아들을 두었고, 알렉산다르 1세가 프랑스에서 살해당한 이후 그의 장남 페타르가 페타르 2세로 즉위하였다.
여담으로 가슴에 독수리 문신이 있었으나#, 그 사실은 비밀로 유지되었다.
1888년 12월 16일 ~ 1934년 10월 9일(45세)
재위 1921년 8월 16일 ~ 1934년 10월 9일
1. 개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군주.
2. 생애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출신이다. 부왕 페타르 1세가 오브레노비치 왕조에 밀려 망명객이던 시절인 1888년에 몬테네그로 왕국 체티네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몬테네그로 공주이던 모친을 잃고, 아버지에 의해 스위스와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았다.
본래는 차남이라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낮았으나, 형인 조르제가 부왕과 의견 대립이 심한데다 정신질환 때문에 폭력적인 성격이었고 결정적으로 시종을 죽이는 바람에 폐세자당하자[1] , 1909년에 대신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었다. 1910년에는 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했고, 1914년부터 아버지 페타르 1세를 대신해 섭정하였다.
1921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왕위에 올랐으나, 1928년 크로아티아 농민당 당수 스테판 라디치(Stjepan Radić)가 암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2] 이로 인해 시작된 정치 혼란과 불안정한 체제를 1929년에 정식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고 이른바 '1월 6일 체제'라는 전제군주제로 체제를 바꿈으로써 극복하려 했으나 의회와 갈등이 심했다. 전제군주정이라니 언제적 시대 이야기를 하냐 싶기도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제군주정 국가는 상당히 많았다. 거의 전제군주정이나 다름없던 독재국가들도 즐비했고.
1934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루이 바르투 외무장관(1862 ~ 1934, 한때 프랑스 총리를 역임)과 회담하던 중 불가리아인 블라도 체르노젬스키[3] 에게 암살당한다.[4] 참고로 이때 프랑스 외무장관과의 만남 필름을 찍다가 암살당한 거라 아직도 암살 당시 필름이 남아 있다. 유럽 군주 가운데 암살당한 최후의 국왕이다.
암살이 촬영된 영상. 58초 쯤에 등장해서 1분 10초 쯤에 국왕 옆에 앉은 인물이 루이 바르투. 그는 총에 맞고 차에서 내려 병원에 옮겨졌지만 1시간 후에 죽었다.
3. 기타
한때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차녀인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황제 일가가 총살당하면서 무산되었다. 본인은 그 소식을 듣고 꽤 충격받았다는 모양. 본래 타티아나 여대공은 러시아 제국에서 알아주는 미인이라 여기저기에서 혼담이 오곤 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까지도 이 둘이 서신을 교류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둘의 혼담은 제법 진척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22년 루마니아 왕국의 공주 마리야와 결혼해서 3명의 아들을 두었고, 알렉산다르 1세가 프랑스에서 살해당한 이후 그의 장남 페타르가 페타르 2세로 즉위하였다.
여담으로 가슴에 독수리 문신이 있었으나#, 그 사실은 비밀로 유지되었다.
[1]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은 티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왕족들을 모두 국외추방시켰을 때 유일하게 유고슬라비아에 남을 수 있었고 천수를 누리다 1972년에 사망했다.[2] 그것도 대낮에 국회의사당 안에서 다른 의원의 권총에 죽었다고 한다.[3] 1897 ~ 1934. 마케도니아를 불가리아에 합치려던 과격파이자 우스타샤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는 당시 회담을 하던 프랑스의 루이 바르투 외무장관도 함께 죽였기 때문에 자국 외무장관을 살해한 죄로 분노한 프랑스 군중에게 맞아죽었다. 외국에서 방문한 국왕이 죽는 것으로도 자국 위신에 큰 손상이 오는데, 이상한 외국인이 자기 나라 장관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4] 이때 알렉산다르 1세는 나름 자국의 권위와 힘을 보이기 위해 자국 해군의 기함인 유일한 구축함 두브로브니크 호를 타고 갔었다. 물론 왕이 가서 암살되는 바람에 권위는 나발이고 함상에 있는 해군 장교와 수병들이 책임을 물을 것을 두려워해 난리였다고.(결국 유해를 싣고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