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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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院寺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오대산의 사찰이다. 조계종 소속이이며 근처에 있는 월정사의 말사이다.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많으며, 상원사 동종 등 유명한 문화재들이 있는 절이지만 요즘은 그 무엇보다 고양이석상으로 냥덕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진여원'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것은 고려 말에 사라지고, 진여원 위에 절을 지었다고 상원사가 되었다. 진여원이 있던 곳은 상원사의 입구에 있는 부도탑자리다.
이후 영산각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1946년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중창된 것이 지금의 상원사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달리 한국전쟁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절로 유명하다. 전각들 자체는 위에 언급되었듯이 1947년에 건설되었기에 문화재적 가치는 전혀 없었지만, 이때 화재 피해를 입었다면 이 절의 국보인 문수보살상과 동종이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1.4 후퇴 당시에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군이 절에 머물 것을 우려해 월정사 등을 태우면서 후퇴하였는데, 이 상원사에도 국군이 오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 절의 주지였던 승려 한암[1] 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국군 군인들이 와서 절을 소개해야 하니 나갈 준비를 하시라고 하자 한암은 알겠다면서 가사와 장삼을 차려입고 법당에 들어가더니 정좌하고 "'''자, 이제 불을 놓게.'''"라고 태연히 말했다. 군인들이 놀라며 왜 안 나오느냐고 말하자 "'''당신들은 군인이니 명령을 따라 불을 놓으라. 나는 불제자이니 내 몸도 함께 태워서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라고 말했다. 그것을 본 국군 장교는 상원사의 문짝을 떼어내서 태워 연기만 낸 후 돌아갔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2] 당시 인근 부대의 장교로 있던 소설가 선우휘가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상원사라는 소설을 썼다.
다행스럽게 상원사는 살아 남았지만, 월정사를 비롯한 다른 유서 깊은 절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니 국군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요즘 돈을 좀 벌었는지 여러번 증축해서 새 건물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오래된 절이라는 분위기는 좀 덜하다. 대웅전격인 문수전에는 청기와도 올리는 등 작은 절이 화려하게 변하고 있다.
요즘 상원사의 주력 관광 상품. 상원사 문수전 아래 계단 옆에 쌍으로 있다. 원래는 걍 석상만 굴러다니는 것을 돌판 위에 올려놓더니, 어느새 조각된 기단위에 올라가더니, 전용 조명도 설치되고, 꽃밭도 생기고, 조명도 더 깔끔한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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猫石像
세조와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고양이들이 상원사에 들른 세조 임금의 바지자락을 물며 법당으로 못 가게 막아섰다. 의심도 많은 세조가 그 것을 이상하게 여겨 법당 안을 뒤져보니 그 안에 재수도 더럽게 없던 자객이 있었다는 이야기. 이리하여 이 고양이들은 고양이 전용 밭을 하사 받고(!) 석상까지 만들어져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3] 이와 비슷한 일화를 가지고 있는 절이 또 하나 있는데, 금강산의 정양사(正陽寺)가 있다.[4]
한 석상은 목이 좀 긴데, 사실은 목이 아니라 얼굴이 닳아 없어진 것이고 위에는 관(冠)을 쓰고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고양이상이 아닌 사자상이다. 우측이 암사자상이고 좌측이 수사자상으로 자세히 본다면 암사자상과 달리 수사자상 목에서 갈기를 확인할수 있다. 사자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불경에 묘사된 내용만으로 조각을 하다보니 이상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비슷한 예로 분황사 모전석탑에 있는 사자상이 물개상으로 오인된 적이 있다.
따라서 위에 적힌 세조와 관련된 설화는 사자상이 만들어진 이후, 사찰에서 사자상이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모양의 유사성만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5][6] 또한 조선 임금은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도성 80리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법도였다. 거기다가 고려와 조선왕조는 국왕이 강원도 근처라도 간 적이 없다. '''한양에서 강원도까지는 험준한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 불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강원도를 가려면 경상도까지 간 다음 강원도로 올라가야 했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밑에는 벌거벗은 여자상(裸女像)[7] 이 있고, 순천의 송광사 일주문 계단의 소맷돌에도 원숭이상이 있다.
법당에는 고양이 못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유명한 문수보살상이 있다. 이 역시 세조랑 관련이 있다. 국보 제221호.
자세한 건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을 참조.
국보 제36호이며 신라시대인 725년에 주조된 청동종으로 높이는 1.7m이다. 현재 남아있는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대도호부 관아의 문루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조선 예종 1)에 왕명에 의하여 상원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자세한 건 상원사 동종을 참조.
上院寺
1. 개요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오대산의 사찰이다. 조계종 소속이이며 근처에 있는 월정사의 말사이다.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많으며, 상원사 동종 등 유명한 문화재들이 있는 절이지만 요즘은 그 무엇보다 고양이석상으로 냥덕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2. 역사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진여원'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것은 고려 말에 사라지고, 진여원 위에 절을 지었다고 상원사가 되었다. 진여원이 있던 곳은 상원사의 입구에 있는 부도탑자리다.
이후 영산각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1946년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중창된 것이 지금의 상원사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달리 한국전쟁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절로 유명하다. 전각들 자체는 위에 언급되었듯이 1947년에 건설되었기에 문화재적 가치는 전혀 없었지만, 이때 화재 피해를 입었다면 이 절의 국보인 문수보살상과 동종이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1.4 후퇴 당시에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군이 절에 머물 것을 우려해 월정사 등을 태우면서 후퇴하였는데, 이 상원사에도 국군이 오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 절의 주지였던 승려 한암[1] 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국군 군인들이 와서 절을 소개해야 하니 나갈 준비를 하시라고 하자 한암은 알겠다면서 가사와 장삼을 차려입고 법당에 들어가더니 정좌하고 "'''자, 이제 불을 놓게.'''"라고 태연히 말했다. 군인들이 놀라며 왜 안 나오느냐고 말하자 "'''당신들은 군인이니 명령을 따라 불을 놓으라. 나는 불제자이니 내 몸도 함께 태워서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라고 말했다. 그것을 본 국군 장교는 상원사의 문짝을 떼어내서 태워 연기만 낸 후 돌아갔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2] 당시 인근 부대의 장교로 있던 소설가 선우휘가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상원사라는 소설을 썼다.
다행스럽게 상원사는 살아 남았지만, 월정사를 비롯한 다른 유서 깊은 절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니 국군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요즘 돈을 좀 벌었는지 여러번 증축해서 새 건물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오래된 절이라는 분위기는 좀 덜하다. 대웅전격인 문수전에는 청기와도 올리는 등 작은 절이 화려하게 변하고 있다.
3. 가람
3.1. 고양이상
요즘 상원사의 주력 관광 상품. 상원사 문수전 아래 계단 옆에 쌍으로 있다. 원래는 걍 석상만 굴러다니는 것을 돌판 위에 올려놓더니, 어느새 조각된 기단위에 올라가더니, 전용 조명도 설치되고, 꽃밭도 생기고, 조명도 더 깔끔한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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猫石像
세조와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이 고양이들이 상원사에 들른 세조 임금의 바지자락을 물며 법당으로 못 가게 막아섰다. 의심도 많은 세조가 그 것을 이상하게 여겨 법당 안을 뒤져보니 그 안에 재수도 더럽게 없던 자객이 있었다는 이야기. 이리하여 이 고양이들은 고양이 전용 밭을 하사 받고(!) 석상까지 만들어져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3] 이와 비슷한 일화를 가지고 있는 절이 또 하나 있는데, 금강산의 정양사(正陽寺)가 있다.[4]
한 석상은 목이 좀 긴데, 사실은 목이 아니라 얼굴이 닳아 없어진 것이고 위에는 관(冠)을 쓰고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고양이상이 아닌 사자상이다. 우측이 암사자상이고 좌측이 수사자상으로 자세히 본다면 암사자상과 달리 수사자상 목에서 갈기를 확인할수 있다. 사자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불경에 묘사된 내용만으로 조각을 하다보니 이상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비슷한 예로 분황사 모전석탑에 있는 사자상이 물개상으로 오인된 적이 있다.
따라서 위에 적힌 세조와 관련된 설화는 사자상이 만들어진 이후, 사찰에서 사자상이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모양의 유사성만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5][6] 또한 조선 임금은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도성 80리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법도였다. 거기다가 고려와 조선왕조는 국왕이 강원도 근처라도 간 적이 없다. '''한양에서 강원도까지는 험준한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 불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강원도를 가려면 경상도까지 간 다음 강원도로 올라가야 했다.'''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밑에는 벌거벗은 여자상(裸女像)[7] 이 있고, 순천의 송광사 일주문 계단의 소맷돌에도 원숭이상이 있다.
3.2. 문수보살상
법당에는 고양이 못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유명한 문수보살상이 있다. 이 역시 세조랑 관련이 있다. 국보 제221호.
자세한 건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을 참조.
3.3. 상원사 동종
국보 제36호이며 신라시대인 725년에 주조된 청동종으로 높이는 1.7m이다. 현재 남아있는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대도호부 관아의 문루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조선 예종 1)에 왕명에 의하여 상원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자세한 건 상원사 동종을 참조.
4. 기타
- 원주시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다른 상원사가 있다. 치악산의 유래가 된 꿩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 해발 1100m나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중턱에 있는 상원사와는 다르다. 이 쪽은 고려시대에 지어졌으나 1907년 일본군이 이 지역의 항일 의병들을 공격할 때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타버렸던 절이다.[8] 1970년대에 재건되었다. 마침 헷갈리기 쉽게도 이 양평군 상원사에도 국보급 통일신라 범종이 걸려있었고 "용문산 상원사종"로 불렸는데 이것도 위에 적은 상원사 동종과 절 이름만 같고 다른 종이다. 현재 남아있는 용문산 상원사종(구 조계사종)은 일본이 조작한 위작 논란이 있으며 국보에서도 해지된 상태다. 구 조계사종 문서 참조.
- 영화 사바하가 촬영되었다. 작중에서 문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총무스님의 절로 등장.
5. 관련 항목
[1] 흔히 '방한암 거사'로 불리는데, 한암의 속명이 방중원(方重遠)이어서 이렇게 불렀다.[2] 이런 일은 당시 여러 곳에서 있었는데, 화엄사의 경우는 차일혁 총경이 똑같이 문짝만 떼내어 태웠다.[3]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4년 4월 13일 방송에 소개되었다.[4] 조선 연산군 시기에 박상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연산군에게 잘 보인 딸을 등에 업고선 나주에서 행패를 부리던 황쇠부리(黃牛夫里)를 쳐 죽이고 임금에게 알리러 서울로 떠난다. 그러다가 입암산 갈재에서 고양이가 길을 막기에 고양이를 따라가 보니 그 곳이 금강산 정양사였다. 그 바람에 왕이 보낸 사약을 가진 금부도사와 길이 엇갈려 살았고, 그 후에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이에 감사하면서 하남면 오사리에 수십두락의 땅을 사서 정양사에 제사를 맡겼는데, 이를 묘전(猫田)이라 했다고 한다…[5] 분황사 모전석탑과 더불어 경주 남산 탑골의 마애구층탑, 송광사 일주문 조각에도 각각 청마상과 원숭이상으로 알려진 상이 있으나 사실은 모두 사자상이다. 송광사 원숭이상의 경우 사자상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면서 원숭이와 닮은 형태로 조각된 것으로 보이며, 마애구층탑의 사자상은 본래 수사자상이나 갈기가 날개로 오인되어 청마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6] 세조에게 긍정적인 내용의 야사들은 계유정난으로 인한 세조의 안 좋은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퍼뜨렸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대체로 세조 본인이 직접 퍼뜨렸거나 세조에 의해 높은 대우를 받은 조선 불교계가 자발적으로 퍼뜨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데, 상원사 고양이상 설화의 경우 사찰에서 사자상이 가지는 의미를 조선시대의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불교계에서만큼은 잘 알고 있었을 테니 후자의 가능성은 낮다. 그나마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건 세조 본인이 직접 퍼뜨렸거나 불교에 무지한 훈구파가 세조의 명령 없이 자발적으로 퍼뜨렸을 가능성이다. 세조의 경우 극도의 호불군주인 건 맞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주로 사찰, 불상, 석탑, 불교의식 등 불교의 겉모습을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고 생명존중 등 불교의 가르침은 세조 본인이 패륜아이자 학살자로 악명이 높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무시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불교의 세세한 것을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나는 불교의 모습만 좋아하는 상태에서 고양이상 설화를 퍼뜨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훈구파의 경우 비록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준 세조가 불교를 엄청나게 좋아하긴 했으나 정작 자신들은 비록 불교에 관대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엄연히 유교를 숭상했다는 점에서 세조 본인과 다르기 때문에, 불교의 세세한 것에 대해서는 세조보다도 더욱 무지했을 것이다.[7] 생긴 건 딱 원숭이처럼 생기긴 했으나, 여자가 맞다. 전등사를 세울 때 근처 주모가 도편수의 돈을 들고 튀어버린 탓에, 목수가 복수의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8] 당시 이런 경우가 제법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