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피리오 디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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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데라크루스 포르피리오 디아스 모리[1]
José de la Cruz Porfirio Díaz Mori
1830년 9월 15일 ~ 1915년 7월 2일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멕시코의 29대 대통령으로 1876년에서 1880년 사이와 1884년에서 1911년 사이에 재임하였다.
그는 1830년 9월 5일에 멕시코 오아하카 주에서 메스티소 어머니와 크리오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니토 후아레스가 지도하는 자유주의 혁명에 참가해 혁명전쟁(1857~1860), 프랑스와의 전쟁(1861~1867)에서 군인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멕시코 내란과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자유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보수주의자로 변했다. 1880년에 1차 임기를 마친 디아스는 1880~1884년 사이에 꼭두각시 정부를 내세워 통치했다. 이는 그가 전임자들의 재선에 반대하여 주도했던 반란에 대한 명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디아스는 1884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어, 1887년에는 연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과 1890년에는 중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 1911년까지 30여 년 동안 멕시코를 통치했다. 이 33년간의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집권기간을 '포르피리아토(Porfiriato)'라고 부른다.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정신상태는 "문명과 야만" 시선으로 바라보던 크리오요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원주민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멕시코! 외국인에게는 어머니, 멕시코인에게는 계모"라는 말도 있다.
포르피리아토 동안 인민에게 애정을 가지고 다스린 것 같지는 않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두고 "불쌍한 멕시코! 하느님과는 이토록 먼데 미국과는 이토록 가깝구나! ("Pobre México, tan lejos de Dios y tan cerca de los Estados Unidos.")" 라며 어쨌든 그 임팩트만은 확실한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넘사벽으로 힘세고 부유하며, 애증으로 가득찬 위쪽의 이웃과의 관계를 두고 멕시코인들은 현대까지도 종종 이 말을 되뇌이곤 한다.
1911년에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자 프란시스코 마데로와의 협상 끝에 퇴임하였고, 4년 후인 1915년에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85세.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에 실린 단편 에피소드 등나무 집에서 언급되는 '산 페드로의 호랑이'란 별명의 독재자 돈 무리요가 아마도 이 인물을 모델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