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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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Wilhelm II
생몰일 1744년 9월 25일 ~ 1797년 11월 16일
재위 1786년 8월 17일 ∼ 1797년 11월 16일
1. 개요
프로이센 왕국의 제4대 국왕.프리드리히 2세의 조카로 왕위를 물려받았다.
2. 생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생존한 아들 중 둘째인 아우구스트 빌헬름 왕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백부인 프리드리히 대왕이 자식이 없고 아버지가 일찍 죽은 영향으로 14살 때부터 추정 상속자로 취급받았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왕비와 생모가 친자매[1] 인데다가 프리드리히 대왕의 왕비가 자식이 없는 영향으로 예쁨을(?) 받았고 큰아버지와 삼촌들이 열심히(?) 전쟁에서 구르며 영토를 확장한 덕을 톡톡히 봤다.
1786년 왕위에 오를 때는 별 존재감이 없었는데 전임자가 워낙에 존재감이 후덜덜한지라 "늙은 프리츠가 죽으니 듣보잡 뚱보가 왕이 됐네!?" 정도의 반응... 인기를 올리기 위해 재임초 프리드리히 대왕이 말년 인기 하락 주 원인이던 국가 독점 담배 전매를 폐지했다. 대신 커피 같은 다른 사치품에서 세금을 올렸다.
가정적으로는 개막장이었다. 첫 아내[2] 와는 결혼 초기부터 불화로 따로 애첩을 두며 문란한 생활을 했고 아내가 바람을 피워 임신하고 도망가다 잡히자 강제로 구금시키고 이혼했다. 이후 두 번째 결혼에서 7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결혼 생활을 계속 하면서 애첩에게 다섯의 자식을 따로 얻었다. 아예 쓸모 없는 짓은 아니어서 사생아 중의 한 명은 손자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시절 총리를 지낸 브란덴부르크 백작이다. 그리고 말년에 애첩 하나를 또 얻었다.
재임 중에는 행운이 따랐다. 호엔촐레른 가문 방계들이 다스리던 남독일의 안스바흐와 바이로이트 지역에서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자 진압할 능력이 없는 방계 혈족들이 프로이센에 대신 좀 다스려 달라고 영토를 고대로 들어 바친 것... 그리고 경솔하게 오스트리아에 낚여서 프랑스를 쳤다가 '''이건 아닌듯 싶어서 중간에 도로 빠졌는데''' 프랑스에서는 혁명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프랑스와 강화하는 나라라 하여 매우 반가워했고, 1795년 바젤 평화조약으로 라인 강 서쪽의 코딱지 만한 영토를 프랑스에 넘기는 대신 프랑스로부터 영국과 동군연합이던 하노버 선제후국의 점유를 승인받았다. 당연히 다른 유럽 국가들한텐 얍삽하고 비열한 행동으로 욕은 많이 먹었다. 그리고 동쪽 국경에서는 1792년 1795년 폴란드 2차, 3차 분할에 참가하여 영토는 재위 초기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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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 크리스틴(1746년 11월 8일 ~ 1840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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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카 루이사(1751년 10월 16일 ~ 1805년 2월 25일)
- 프리드리히 빌헬름: 1770년 8월 3일 ~ 1840년 6월 7일
- 크리스틴: 1772년 ~ 1773년
- 루트비히 카를: 1773년 11월 5일 ~ 1796년 12월 28일
- 빌헬미나: 1774년 11월 18일 ~ 1837년 10월 12일 - 네덜란드 빌럼 1세의 왕비
- 사산아(1777년)
- 아우구스타: 1780년 5월 1일 ~ 1841년 2월 19일
- 하인리히: 1781년 12월 30일 ~ 1846년 7월 12일 - 헤센다름슈타트 공작 부인
- 빌헬름: 1783년 7월 3일 ~ 1851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