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빌뇌브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여담

본명
피에르샤를장바티스트실베스트르 드빌뇌브[1]
Pierre-Charles-Jean-Baptiste-Silvestre de Villeneuve
생몰년도
1763년 12월 31일 ~ 1806년 4월 6일
국적
프랑스 왕국 → 프랑스 제1공화국 → 프랑스 제1제국
최종 계급
제독(Admiral)
참전 전투
미국 독립 전쟁
아부키르 만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1. 개요


피에르샤를 빌뇌브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프랑스의 군인이다.

2. 생애


1763년 프랑스 발랑솔에서 태어난 빌뇌브는 1778년 미국 독립 전쟁이 한창일 때 프랑스 해군장교로 들어간다. 거기서 빌뇌브는 함대에 복무하며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과의 전투에 종사한다.
그렇게 소소한 복무를 마치고 프랑스에서 혁명이 터진다. 여기서 빌뇌브는 자신의 귀족적인 이름(Nobiliary Particle)도 버려가며 혁명을 지지했고, 다른 귀족 장교들의 목이 뎅겅뎅겅 잘려나가거나 망명 및 파면을 당할 때에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 도중 발생한 전투에 여러 번 참전했고 그 공로로 1793년 함장이 되고 1796년에는 해군 소장(Rear Admiral)으로 진급, 제독이 된다.
그렇게 빌뇌브는 브뤼예 제독 밑에서 나폴레옹 1세이집트 침공 계획에 따라나선다. 이동 도중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과 마주칠 위험이 몇번 있었으나, 넬슨이 알렉산드리아그리스 등에서 시간낭비를 할 동안 무사히 이집트에 도착한다. 그러나 브뤼예가 식량이 부족해서 우물쭈물한 사이에 넬슨과 마주치게 되고, 함대 후미에서 영국 해군의 위엄을 실컷 감상하다가 더 가만히 있다간 자기도 죽을 것이라 생각해 후방에 있던 다른 몇 척의 배들과 함께 자신의 기함 기욤 텔(Guillaume Tell)을 이끌고 도주한다.
그러나 1800년에 몰타[2]에서 결국 영국 해군에 붙잡히게 된다. 쓸모없다고 생각한건지 조건부 항복인지 곧 풀려나는데, 어쨌든 전장에서 도망친 일로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그를 '''행운아'''라고 생각, 즉 도망치는데 성공한 것도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계속 해군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됐다.
1804년에는 툴롱 함대를 맡던 트레빌이 죽자 별 공적은 없었지만 해전 한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이 그 밖에 없어서(...) 해군 중장(Vice admiral)으로 승진한다. 거기서 그는 툴롱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 해군과 합류하여 영불해협을 장악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아부키르 만 해전 이후 빌뇌브는 영국 해군에 대한 두려움을 보였고, 결국 그 때문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나폴레옹의 작전을 실패로 만든다.
1805년 1월에 빌뇌브는 툴롱 항에서 함대를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향해 출항한다. 넬슨은 빌뇌브가 출발하자 이전과 같이 이집트를 노릴것이라 생각, 동쪽으로 향하는 바람에 영국 해군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숙한 프랑스 해군이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는 데에도 어려움을 보일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던 탓에 곧 툴롱 항으로 되돌아간다. 3월에 다시 출발했을 때에도 넬슨은 이상하게 동쪽으로 향할 것이라 생각해서 동쪽에 주둔해 있었고, 넬슨이 오판을 하는 행운(?) 덕택에 무사히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서인도 제도로 향한다.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고 나서 자신을 추격하는 넬슨을 따돌리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려 함대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처럼 움직임을 보이고 북상한다. 그리고 페롤 함대와 합류하여 함대 덩치를 30척 가까이 불린 다음 북상하지 않고 남쪽으로 가는 바람에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전략을 무산시킨다. 이후 나폴레옹이 함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넬슨과 마주치지 않고 싶었기에 출발하지 않았고, 함장들끼리 투표를 통해 출발할지 결정하는 민주주의적(?)인 결정도 보인다. 분노한 나폴레옹이 빌뇌브를 해임하려하자 그제서야 출발하고 결국 패해 포로로 잡힌다.
포로로 잡힌 빌뇌브는 넬슨의 장례식에도 참석하는 등 후한 대접을 받다가 얼마 안 되어 석방된다.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 여관에서 지내다 패배의 죄책감과 절망감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그의 자살에는 논란이 좀 있는데, 자살할 사람이었으면 영국에서 자살할 수도 있었다는 점과 프랑스로 돌아온지 수 개월이 지나서야 죽었다는 점, 심장에 난 상처 외에 여러차례 찌른 흔적이 있는 점, 넬슨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프랑스 해군에 다시 돌아오려 했다는 점 등으로 암살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3. 평가


트라팔가르 이후 나폴레옹은 빌뇌브를 책망하며 당시 스페인 함대를 이끌었던 그라비나가 사령관이었다면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프랑스 해군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점에서 나폴레옹이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좀 억울한 측면도 있기는 하다. 다만 개인의 능력으로 봤을 때도 대규모 함대를 이끌 정도의 자질은 부족한 것도 사실이긴 했다. 능력 부족은 인지하곤 있었지만 지나치게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인 것이 문제.

4. 여담


상당한 강운의 소유자이다. 귀족 출신임에도 혁명 도중 무사히 살아남아 계속해서 승진을 하고, 본인의 생각이야 어쨌든 경쟁자가 없어 최고 사령관을 맡으며, 함대를 이끌 때에도 그가 소속되어 있으면 희한할 정도로 영국 해군과 잘 마주치지 않는다. 전투에서도 부상 한번 당한 기록이 없는데, 아부키르 만에서는 운좋게 후방에 있었기에 선두가 터질 동안 무사히 도망쳤으며, 심지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는 옆에 있던 함장이 포탄에 맞아 전사하고 승리자인 넬슨도 전사했음에도 본인은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아 포로가 된다.
영국의 존 저비스는 계급이 낮았던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하는 등 낮은 계급에서 부상을 당한 해군 장교들의 사례는 상당히 많으며, 넬슨도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던 기록이 있다. 더구나 아부키르 만에서 해전 한번으로 전사한 프랑수아 브뤼예나 휘하 함장들을 생각하면 엄청날 정도의 행운이다. 상술했다시피 실제로도 나폴레옹이 행운아라고 생각할 정도니, 운 만큼은 보장된 인물.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상 로망스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또한 붙임표로 이어진 인명 등의 경우, 여러 요소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복합어로 보고,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붙여 적는 것이 규정 용례이다.[2] 시칠리아 섬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