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
러시아어: Харьковское конструкторское бюро по машиностроению им. А. А. Морозова (ХКБМ)
우크라이나어: Харківське Конструкторське Бюро з Машинобудування ім. О.О. Морозова (ХКБМ)
영어: Kharkiv Morozov Machine Building Design Bureau (KMDB, KhMDB)
1. 개요
하리코프 A. A. 모로조프 기계제조 설계국(약칭 KMDB)는 1927년 하리코프에 설립된 방위산업체를 정신적 기원으로 하는 설계국으로[1] 실질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설계국은 1951년 우랄바곤자보드에서 모로조프가 이탈하면서 설계국을 새로 만들면서 설립[2] 되었으며 이후 T-64 등의 전차를 설계하며 소련의 중요 전차 설계국 중 하나로 명성이 높았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영 방위산업체 우크로보론프롬(Ukroboronprom)의 일원으로 기갑차량을 연구개발한다. 말리셰프 공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KMDB에서 개발된 차량 양산은 대부분 여기서 행해진다.
2. 상세
1927년 하리코프 증기기관차 공장(KhPZ)에 설립된 전차 설계국이 전신으로 이 시절 설계국은 T-12, T-24 경전차를 개발했다. 이후 30년대 공장과 독립적인 T2K 전차 설계국으로 승격되어 BT 전차 개발을 진행했다. 36년에는 KhPZ가 183번 공장, 설계국은 KB-190(190번 설계국)으로 개명되었고, 레닌그라드 OKMO 설계팀의 T-35 다포탑 전차 설계 지원을 위해 별도의 KB-35 설계국을 두었다.
1937년부터 미하일 코사킨 기사 주도하에 또 다른 설계국이 설립되었고, 이 기간 동안 전설적인 T-34가 개발되어 40년 6월부터 183번 공장을 시작으로 나중에 STZ(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 112번 공장(붉은 소르모포 공장)까지 T-34를 양산하게 된다. 동년에 코사킨이 폐렴 및 과로로 돌연 사망하면서 T-34 주설계국(GKB T-34)의 수석 설계자로 후임 알렉산드르 모로조프가 임명되어 근 40년 동안 KMDB를 휘어잡게 된다. 39년에 하리코프의 각 전차 설계국들이 OKB-520로 통합되었고, 41년 독소전쟁 발발로 183번 공장 전차공정과 함께 스베르들롭스크 주 니즈니타길에 위치한 우랄바곤자보드와 병합되어 T-34 개선과 T-34-85 개발 등에 전념하게 된다. 한편으론 우랄열차공장에서 모로조프가 T-34-85를 대체할 T-44를 설계하여 하리코프 공방전이 끝나고 하리코프가 해방되어 44년 7월부터 종전까지 하리코프에서 선행 양산되었고, 전후 기존 하리코프 출신 인원들이 하리코프로 복귀하면서 75번 공장이라는 명칭으로 T-44 양산이 재개되었다.
종전 후에도 모로조프 설계팀은 니즈니타길에 남아 T-54를 개발했으나, 51년 OKB-520에서 설계팀 간의 불화(어떤 문서에서는 모로조프가 치료차 하리코프를 방문했다가 상부로부터 하리코프 설계국 재통합을 지시받아 설계국이 분화되었다고도 한다)로 모로조프 설계팀이 떨어져나와 하리코프로 복귀해 KB-60 설계국을 새로 차린다. 다만 모로조브가 OKB-520에 있던 시절 설계한 전차들은 그 설계자가 KB-60으로 옮겼다 하더라도 당연히 OKB-520에 남는게 맞으므로[3] 어쩔 수 없이 하리코프는 자체적으로 만든 Object 430을 준비하게 된다.
오비옉트 219A는 T-80에 콘탁트-1 반응장갑을 장착했고, 오비옉트 478은 오비옉트 219A 차체에 75번 디젤공장에서 개발한 6TD 디젤엔진(1000마력 수평대향형)으로 교체하고 오비옉트 476의 포탑을 얹은 것으로 1981년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된다. 원래 오비옉트 476은 1975년 KMDB에서 T-64A의 신형 포탑을 위해 개발되었으나, 당시 소련 국방장관(동시에 열렬한 가스터빈엔진 지지자) 우스티노프가 오비옉트 476을 취소시키고 포탑과 사통만 T-80에 쓰게 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오비옉트 219AS, 즉 T-80U가 되어 1985년에 제식 채용된다.
1976년 전후 소련 공산당과 군부를 상대로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했던 알렉산더 모로조프가 사망함과 동시에 동년에 우스티노프가 국방장관으로 취임했다. 우스티노프는 열렬한 가스터빈엔진 지지자로 키로프 공장의 T-80을 밀어줬다. 그러다가 1984년 우스티노프가 사망하고,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으로 국방비가 줄어둠과 동시에 군부 T-80과 같은 고성능 장비는 가격 때문에 도입할 수가 없었다. 이러던 중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난 하리코프는 군부에 T-80U의 값비싼 가스터빈엔진을 대체할 전차를 오비옉트 478B를 제시한다. 오비옉트 478B는 T-80U 설계에서 엔진만 자사에서 생산하는 6TD 수평대항형 디젤엔진으로 변경한 것(T-64와 달리 T-80은 차체가 상대적으로 널널했기 때문에 6TD로 변경이 수월). 오비옉트 478B가 1987년 T-80UD로 제식 채용되면서 T-80UD 양산 개시와 함께 T-64BV의 양산을 종료시켜 버렸다. 한편으로 우랄바곤자보드는 전시 동원용 값싼 전차라는 명목하에 T-72를 계속 양산했다.
3. 생산품목
3.1. 기갑차량
4. 같이보기
[1] 이 27년에 설립된 설계국 자체는 UVZ에 병합된 이후 분리된 적이 없다.[2] 기존 설계국은 UVZ에 남았으며 모로조프의 새 설계국은 명칭 자체를 새로 받았다.[3] 설계자와 그 설계안을 가지는 설계국에 대해 혼동하는 분이 계신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픽사에 갔다가 다시 애플로 복귀했다 한들 픽사가 만든 애니메이션들이 애플 애니메이션이 되었던게 아니듯 설계안과 설계자, 설계국의 관계도 같아서 모로조브가 OKB-520 시절에 만든 설계안은 OKB-520 소속으로 남는게 당연히 맞다.[4] 당시 모로조프는 우랄바곤자보드 휘하 설계국 소속이었다.[5] 당시 모로조프는 우랄바곤자보드 휘하 설계국 소속이었다. 이후 모로조프 설계국은 우랄바곤자보드에서 떨어져나가 신규 창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