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통일

 


1. 天下統一
1.1. (중국의) 천하통일을 이룬 인물들
1.2. 여담
2. 유희왕에 등장하는 카드
3. 센고쿠히메의 전작 격인 시리즈


1. 天下統一


천하(天下)라는 단어는 하늘 아래의 세계 즉 세상을 의미한다. 즉 천하를 통일한다는 것은 세계를 통일한다는 의미로, 엄격한 의미의 천하통일은 아직까지 이루어낸 왕조나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중국에서는 중원이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중국 통일이 천하통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황제천자라 불릴 정도로 세력이 강했기에 그 당시에는 중국의 황제가 곧 천하의 주인을 의미했다. 그 외에도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가 널리 퍼져서 천하통일이 중국대륙 통일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자리히는데 한몫했다.
외국이 간섭할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중소국가가 난립하는 시대 배경일 경우 본국의 통일 혹은 주변 나라 몇 개 평정한 것만으로 천하통일의 대업이라 자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의 경우 삼국시대삼국통일, 혹은 후삼국시대 고려 건국 과정을 다룬 시대물이 이런 경우이며,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때를 다룬 시대물이 이런 경우다. 오다 노부나가의 깃발에 달린 문구에 '천하'라는 단어가 있던 일화 등을 보아 당시에도 이런 생각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군사 간베에 등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대하드라마에서는 일본 통일을 으레 '천하통일'이라고 칭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에서는 천하통일, 즉 행성단위의 단일정부 수립이 문명 발전의 기본적인 단계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1.1. (중국의) 천하통일을 이룬 인물들


  • 탕왕
  • 무왕(주) 희발
  • 시황제 영정 - 위의 상 탕왕과 주 무왕은 황하 유역 각지의 영방국가들의 맹주 간의 정권교체로 볼 수 있지만 진시황은 여러 나라로 800여년간 분열되었던 범(汎) 중화권을 완전히 하나로 통일했다.
  • 한고제 유방 - 단명한 진나라와는 달리 전한-후한 합쳐 400년 이어지는 한실을 개창하여 실질적으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세웠다.
  • 광무제 유수 - 신나라#s-2.2 이후로 혼란기를 거쳐서 전한을 명실상부 계승한 후한[1]을 건국한 인물.
  • 무제 사마염 - 오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을 때까진 명군. 그 이후엔 암군 노릇 하다가 결국 서진은 통일 단 30년만에 몰락.
  • 수문제 양견 - 아들 양광과 달리 양견은 황건적의 난 이후 400년만에 통일제국을 이루고 나라를 발전시킨 성군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아들이 완전히 말아먹어서 왕조가 단명했지만...
  • 당고조 이연 - 수나라가 망하고 잠깐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중국을 재통일한 인물. 여담으로 당나라 초대 황제 이연은 수양제와 이종사촌관계이다.
  • 송태종 조광의 - 당나라 멸망 이후 오대십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했다.
  • 원세조 쿠빌라이 칸 -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였다.
  • 명태조 주원장 - 진우량, 장사성, 방국진, 한림아 등 당대 쟁쟁한 군웅들을 물리쳐 강남을 평정하고 북진하여 대도를 점령, 원나라만리장성 이북으로 몰아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장강 이남에서 일어나 천하를 통일.
  • 청세조 순치제, 청성조 강희제 - 순치제는 섭정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한 남명 영력제 정권을 버마로 쫓아내었다. 강희제는 영력제를 목졸라 죽이고도 후일 다시 멸만흥한을 외치며 반기를 든 오삼계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대만 정씨 왕국도 복속하여 천하를 재통일하였다.
  •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 - 광저우에서 북벌하여 군벌이 지배하던 북양군벌격파하고 천하통일을 이뤘으나, 15년도 못되어 국토의 0.3%만 남기고는 몽땅 털려 버렸다.
  •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 대만으로 철퇴한 중화민국 정부를 완전히 끝장내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대륙 전역을 제 손에 넣은 것도 큰 성과였다. 다만 이런 인식은 대만을 당연히 중국의 일부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금도 독립론자나 고산족 등의 대만 원주민들에게는 꽤 불쾌한 관점이다.

1.2. 여담


춘추전국시대부터 당나라 때까지는 낙양장안을 양대 축으로 해서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는데, 대운하 완공후 화북의 생산량을 뛰어넘어 천하의 창고 역할을 하게 된 장강 중하류 지역과 너무 먼 관계로, 역사의 무대는 카이펑을 위시한 동쪽으로 옮겨갔다.
남조와 북조간의 싸움이 전장의 주 레퍼토리가 된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에는 명 주원장과 19세기 말~20세기 초 남경군벌 장제스를 제외하면 모두 북조를 중심으로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다. 명과 중국도 홍무제 사후 영락제가 북조와 남조로 정난의 변이 일어났을 때 북조 진영으로 승리해서 북경으로 천도를 했고 국공내전에서도 북중국을 근거지로 둔 마오쩌둥이 남중국이 근거지인 장제스를 몰아내고 천하통일했다.
마오쩌둥은 장시성 징강산에서 중화 소비에트 정권에 가담했지만, 대장정을 거쳐 2차 국공내전이 일어날 때까지 마오쩌둥이 권력을 확립한 곳은 화북의 옌안이다. 영락제와 마오쩌둥의 일은 이미 송 이후 남조가 북조 경제력을 넘어선 이후였는데, 건문제/장제스보다 세력 규모는 작았지만 남경을 노린 한타 러시/요심[2]전역에서 승리한 후 몰아치기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확정된 결론은 아니지만, 북방 주민과 남방 주민의 기질 차이로 보는 관점이 많은 편이다. 북방 주민들은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억세고 전투적인 무인의 기질이 강한 반면, 남방 주민들은 환경도 온화하고 [3]전체적으로 글공부를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기질이 부드럽고, 그래서 전투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4] 게다가 병사들만이 그런 게 아니고, 군주들도 안일한 생활에 젖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남송의 임승이라는 시인은 "따뜻한 봄바람에 취해서 항주변주도 구분 못하네."라고 위정자들을 돌려까기도 했다.[5]
고대에는 순 밀림이었던 남조와 달리 이미 개발된 북조가 더 경제력이 높기는 했지만, 황하는 20세기가 돼서야 근대식 치수로 방지하게 된 유역변경 문제로 장강보다 훨씬 골때리는 곳이었고 또 거침없는 북방 이민족들과 지겹도록 싸워왔기 때문에 딱히 호전성이 낮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전국시대의 연나라, 조나라 사람들은 흉노 등의 유목민족들과 싸운 역사가 길어서 호전적인 사람들이 많기로 유명했고, 특히 조나라는 아예 무령왕 대에 호복기사의 군사개혁까지 진행할 정도였다.
남방이 가지는 또 하나의 불리한 요소는 군마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들은 지금의 간쑤성 일대의 목장 혹은 유목민족과의 무역 루트를 통하여 군마를 확보하였는데 남방은 둘 다 불가능하였다. 이때문에 기병대를 대규모로 편성할 수 없어서 전술, 전략의 폭이 제한받기도 하였고, 물자 운송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나마 본토에서는 장강을 이용한 수전 및 하천을 이용한 운송으로 커버가 되겠지만 천하통일을 노리고 북으로 진격하려면 어려웠다. 남방이 아무리 장강을 의지하여 잘 수비한다고 해도 결국 전략적으로는 수동적인 입장이라 언젠가는 뚫리거나, 아예 사천 일대로 우회하는 방식도 있었기 때문에 먹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2. 유희왕에 등장하는 카드


천하통일(유희왕) 항목 참조.

3. 센고쿠히메의 전작 격인 시리즈


덴카토이츠-센고쿠히메 시리즈 참조.

[1] 신나라를 부정하기에 애초에 단절된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한나라 당대인의 시각이다.[2] 요녕+심양(랴오닝+선양)[3] 취소선을 긋긴 했으나 남방의 대표적인 지역인 장쑤성저장성 일대는 당말이래 '''지금까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흔히 말하는 강남이 이 지역. [4] 실제 명나라 홍무제 시절의 과거시험 중 회시 합격자들이 전부 남방 출신이라서 북방 출신들이 지역차별이라며 반발했는데 조사해보니 북방 출신 선비들의 문장 수준이 확실히 낮았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남방은 문인 기질이 더 강하다는 얘기도 된다.[5] 당시 변주는 정강의 변으로 금나라의 손에 넘어간 옛 북송의 수도 변량(개봉)을 말하는 것이었고, 항주는 남송의 명목상 임시 수도인 임안이었다. 그러니까 땅을 뺏기고 파천한 처지인데도 강남에 안주해서 고토수복은 생각도 안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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