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응이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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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제8대이자, 실질적으로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이후의 모든 군주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이왕가가 그렇듯 군주라는 호칭만 달고 있을 뿐인 프랑스의 꼭두각시 군주였다.
묘호와 시호는 없으며, 제호(帝號)는 출황제(出皇帝). 휘는 복명(福明), 즉위 전 이름은 완복응력(Nguyễn Phúc Ưng Lịch, 阮福膺 豆+歷)[1] 이다. 소치제의 손자이자, 순의견태왕(純毅堅太王) 완복홍해(阮福洪侅)의 아들.
2. 생애
재위 초기에는 완문상(阮文祥)이 섭정을 맡았다.
1884년, 건복제가 사망하자, 조정의 대신이자 실권가였던 똔텃투옛에 의하여 황제로 옹립되었다.
사실 그는 응우옌반뜨엉,똔텃투옛에 의해 강제로 옹립된 꼭두각시 황제에 불과하지만 당시 나라를 휩쓸고있던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자는 의견은 위의 두명의 보정대신들과 의견이 일치했다.
1885년, 똔텃투옛의 보조를 받아 항불근왕대봉기(抗佛勤皇大風潮)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궁을 나가서 반프랑스 독립 운동을 주도하였으나, 프랑스는 즉시 함의제를 폐위시키고, 함의제의 형인 동경제(同慶帝)를 즉위시켰다. 함의제는 3년 동안 정글을 돌아다니며 저항하였으나 1888년에 사로잡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로 유배되었다.
알제리로 유배된 함의제는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였고, 1943년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3. 사후
응우옌 왕조의 후손들은 베트남에 입국할 수 없으나, 함의제의 후손들은 프랑스와 싸운 공적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 입국이 허용된다고 한다.
현대 베트남에서는 성태제, 유신제와 함께 그나마 프랑스와 싸워보기라도 했고, 3년 동안 저항을 이끌었던 점을 높이 사서 응우옌 왕조의 황제들 중에선 이 사람이 명군으로 추앙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