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사건사고 및 논란
1. 개요
이 문서는 허재의 역대 사건사고 및 논란을 다루는 문서이다.[1]
2. 경기 관련 논란
농구대잔치 시절 상대팀 선수에게 반칙을 주지 않은 불만과 반칙을 선언했음에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심판에게 거세게 항의를 한 것이 경기력을 저하시켰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허재를 전담 마크한 상대 팀 선수는 허재가 경기 초반에 심판 몰래 얼굴을 때리거나 침 뱉기, 약을 올리는 등의 속도를 잃어 버렸다고 했고, 기아 감독이었던 방열은 허재가 신인이라 경험이 부족한 것 때문이라며 감싸줄 때도 있었지만 인기 선수가 감정 조절을 그렇게 못하냐며 나무라기도 했었다.
KBL 시절 1997년 2월 2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대전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 한달 동안 훈련했었는데도 떨어진 체력 때문에 파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잇따른 실책과 전반전이 끝나기 전 5반칙으로 벤치에 돌아가는 등 팬들에게 실망받기도 했다.[2]
3. 음주 관련 사고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술과 관련해서 사고를 친 일이 굉장히 많다. 선수 시절 1990년대 초에는 술 관련 사고로 꽤나 언론을 탔고, 역대 한국 운동 선수 중 술 관련 사고로 언론에 오르내린 횟수가 제일 많은 선수가 허재일 거라는 말까지 있다.[3]
1993년 4월에는 동아시아 대회를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술을 마시다 물의를 빚은 데 이어 8월 6일에는 서울 서초구의 한 자택에서 하루 전에 낳은 장남 허웅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택시정거장까지 차로 배웅하고 나서 새벽 0시 45분쯤 자택 근처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100일동안 면허정지를 당했다.
1994년 6월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옆쪽 테이블에 있는 손님과 다투다 주먹을 휘둘러 폭행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었다.
1995년 12월 11일 새벽 4시 경, 서초구청 앞길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불법 U턴을 하다 맞은편에서 온 승용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일으키며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운전한 차량 모두 비켜가면서 다행히 부상은 없었으나, 허재는 음주운전을 했기 때문에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57%로 면허가 취소되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중에는 애틀랜타의 한인타운에서 술을 밤새도록 마시다 큰 물의까지 빚으며 6개월 동안 선수 자격정지를 당했고, 연말에 개막하는 농구대잔치를 2월초까지 나가지 못했다.[4]
1996년 11월 23일에는 1996-97 농구대잔치 개막을 1주일 앞두고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몰고가다 정차해 있던 택시를 들이 받은 뒤 바로 달아났으나 그걸 목격하고 뒤쫓은 다른 택시 기사에게 붙잡혀 버렸다. 경찰 조사에서 허재는 친구 이동덕[5] 이 운전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동덕은 허재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뒤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하루 뒤 허재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지만, 12월 9일 서울지방법원에 보석 신청을 받아들이자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했고 잘못을 뉘우쳤을 뿐만 아니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등의 판단에 따라 이를 허가하며 9일 뒤인 17일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보석으로 풀려난지 하루만에 또 무면허 사고를 내며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게 되었고, 대한농구협회 이사회는 음주 파동으로 물의를 빚은 허재를 법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등 법적 제재와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징계를 내려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2003년 8월 23일 밤 11시 경, 서울 압구정동의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그 상태로 친구의 승용차를 몰고 가다 차선을 변경하던 과정에서 20대 여성의 승용차 앞범퍼를 들이받은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고,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49% 나오면서 면허가 취소되고 말았다. 5번째 음주운전 적발. 경찰 조사에서 허재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는데 어떤 친구가 술을 더 많이 마셔가지고 조금이라도 덜 취했으니 내가 대신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만약에 2010년 이후를 예로 들었을 경우, 허재가 5차례 음주운전 적발되기 전에 이미 살인미수 범죄자로 농구계에서 영구제명되었을 것이다.[6][7] 강정호는 당시 '''더 죄질이 무거웠던 데다가''' 음주운전 뺑소니+음주운전 삼진아웃이지만[8] 이쪽은 삼진아웃에 투 스트라이크까지 잡혔으며 그 외에도 여러 음주 관련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 아이러니하다.[9][10]
4. 경기 중 폭행피해 사건
1991년 3월 3일 기아와 현대의 농구대잔치 결승 2차전에서 허재를 마크하던 임달식이 스크린을 걸면서 팔꿈치 공격을 가했지만 심판이 그냥 넘어가 버렸고, 맞은 허재가 임달식에게 머리를 들이대며 소리를 지르자 임달식이 허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허재는 일단 맞기만 했는데 심판이 동시 퇴장을 선언했고, 이 때문에 허재가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자 현대의 센터인 김성욱이 냅다 달려와 허재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코트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허재 입장에선 억울하게도 맞았는데 원인 제공자라며 6개월 선수 자격정지를 당했고, 임달식은 1년 자격 정지를 받은 직후 은퇴를 했다.
5. 전주 KCC 이지스 감독 취임에 관한 논란
선수 은퇴 후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던 허재는 2005-2006 시즌을 앞두고 귀국해 전주 KCC 이지스의 감독에 취임을 하였다. 그러나 일정을 앞당겨 TG삼보가 아닌 KCC의 감독에 취임한 것이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고 지적되었고, 정몽익 KCC 부사장과 이홍선 TG삼보 구단주 사이의 친분이 작용되기까지 하였다.
감독이 된 이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한편에서 선수 출신은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쉽지 않다며 KCC를 제대로 지휘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었고, 선수 때를 살려 감독이 된 뒤에는 선수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팀을 와해시킬 거라며 강하게 반대했다.[11] 게다가 아직 지도자로서 검증되지 않은 자질로 무슨 감독이냐는 얘기도 있었고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 용산고 선배 정몽진 회장과는 반대로 허재 감독 체계가 KCC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6. 이상민 보호선수 제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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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시즌을 앞두고 전주 KCC는 6월 12일에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전력 강화를 위해 FA로 나온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했지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상민을 보호선수에서 제외시키고 보상선수로 서울 삼성에 보내버리면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12] 사태 이후부터 팬들은 KCC 본사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어 구단의 공식 사과와 허재 감독을 포함한 최형길 단장을 퇴진시키라고 요구했고, 구단 프런트를 상대로 한 항의 전화와 KCC 이지스의 모든 경기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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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부는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무려 1,000여건 이상의 항의글과 허재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으며, 그 결과 실제로 한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허재퇴출'''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라왔을 정도였고, 지역신문에는 허재와 서장훈을 비난하는 만화를 기재하였다.
참고로 허재는 이상민과 함께 국가대표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보다 더 힘든 사람이 누가 있냐며 이렇게 가버렸는지 얘기할 수 있다며 착찹했었고, 서운함과 실망감에 한 숨을 내쉬며 KCC 이지스가 얼굴이라면 눈을 잃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상실하며 미안함을 느꼈다.[13]
사실 저건 애초에 팽했거나 보상선수로 "보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KBL 규정상 FA 중 연봉 상위 20위권 이내 선수를 데려가는 선수는 보상선수 한 명을 내주거나 FA선수의 전 시즌 연봉을 원구단에 줘야 했다. 그리고 보상선수에 포함되지 않는 보호선수는 세 명 뿐이었는데, 그것도 FA계약한 선수까지 포함해서 세명이었다. 즉, FA계약한 서장훈, 임재현까지 하면 실제로 삼성이 보호할 수 있는 선수는 단 한명이었던 것. 당시 KCC에서 팀을 지탱했던 프랜차이즈 선수 이상민과 추승균, 둘 중 한 명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나이가 2살 많은 이상민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허재 감독은 선수 중 누굴 보내고 영입하고는 팀 프런트가 하는 일이었는데 이를 두고 감독을 비난한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감독은 기본적으로 선수단 구성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당시 허재는 3년차에 접어든 젊은 감독에 불과했다. 다만 이상민의 열혈팬이 워낙 많았고, 허재가 프런트보다 훨씬 유명했었기에 욕을 먹은 것 뿐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당시 이상민과 같은 좋은 선수를 굳이 버릴 이유가 없었다. 물론 서장훈에 대한 비난여론은 당연히 더 말도 되지 않았고, 애초에 서장훈은 이상민과 같이 뛰고 싶어서 KCC행을 택한 것이었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해당 결정을 내린 KCC 프런트, 더 파고들었더라면 저런 말도 안되는 규정을 만든 KBL의 책임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팀의 얼굴이 이상민이 갑자기 서장훈으로 바뀐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팬들이 꼬장을 부린 것에 가까웠다.
[1]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뭉쳐야찬다 방송 직후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뜨자 아침에 사고쳤냐고 전화가 빗발치듯 왔다고 한다.[2] 경기가 끝난 뒤에는 사소한 접촉으로 위축되었다면서 남은 경기에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3] 야구선수 선동열은 같은 주당임에도 일절 사고를 치지 않았다. 애초에 선동열은 야구 외적인 구설수는 없는 편이다.[4] 여기에 함께했던 정재근(SBS)은 3개월 자격정지, 이상민(상무)과 현주엽(고려대)은 각각 3개월 근신 처분을 내렸다.[5] 회사원이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허재와 농구를 함께했다.[6] 참고로 김민구(음주운전 교통사고), 서장훈(음주운전 적발 2회), 강정호(뺑소니+음주운전 적발 3회)[7] 허재가 MBC 꿀단지 알까기 제왕전에 나왔을때 최양락이 말하길 '''어느날은 스포츠면에, 어느날은 사회면에 나왔다'''라고 말하면서 이를 깠다.[8] 과거 성범죄 사건은 무혐의 처리.[9] 이러한 사고들 때문에 2000년대 이후처럼 인터넷이 많이 발달한 시대였으면 서장훈 이상의 안티팬을 만들었을 거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안티팬이 많았던 서장훈은 은퇴 이후 예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농구선수로서의 모습이 재평가받고 있고, 안티팬이 많이 줄었다. 야구선수 강정호가 말 그대로 허재랑 비슷하게 음주사고를 쳤는데 이미지는 엄청 나락이다. 인터넷 시절의 유무라고 봐야할 듯 하다. 옛날에야 연예인이 음주한다고 그거 가지고 크게 까이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인터넷 발달로 음주에 많이 엄격해졌다. 노홍철이 그 음주 때문에 폭망한 걸 보면 알 수 있다.[10] 사실 인터넷 유무보다도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크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음주운전, 안전벨트 미착용 등에 대한 시건은 매우 너그러웠고,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보듯이 모범운전자로 선정된 택시기사들도 당연한 듯 안전벨트를 메지 않았다. 심지어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택시서 안전벨트를 메면 기사를 믿지 못한다고 싫어하는 택시기사도 있었고 회식 후 술을 덜 마시고 운전에 능숙하다는 일행이 차를 모는 일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차 가져왔다고 술 안 마신다고 하면 "남자가 쪼잔하다"고 하는 시선이 많았으며, 무단횡단에 대한 경각심도 적었다. 심지어 90년대까지 술 잔뜩 먹고 차 몰고 가는 장면이 지상파 드라마에 버젓이 나올 정도였다. 모 드라마에서는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자신은 술을 조금마셨으니 괜찮다며 직접 음주운전해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장면도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이 급격히 경제적 발전을 이뤄내면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인식변화가 경제발전의 속도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이러한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사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사회가 급속도로 변한 국가들 대부분이 겪는 현상. 물론 음주운전은 엄청난 잘못이고 쉴드가 불가능한 부분이지만 당시 사회적 인식은 현재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11] 전신인 현대 시절부터 응원한 팬은 이제 KCC를 응원하지 않겠다고 했고, 상당수는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 때 미국에서 TG삼보를 응원하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왔는데 왜 허재를 감독으로 시켰냐는 목소리도 높였다.[12] 서장훈과 임재현을 받아들인 것은 좋았으나, 무리수를 두었다는 평가도 있었다.[13] 이를 계기로 밤낮없이 술을 마시다가 신경성 위장병에 걸려버린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