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현(농구)
1. 소개
한국의 전직 농구 선수. 별명은 임내쉬, [4]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한 해 후배인 송영진, 황진원, 2년 후배인 김주성과 함께 중앙대를 대학 농구의 절대 강자로 만들면서 대학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각광받았다. 이 명성을 바탕으로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지명받아 SK에 입단했다. 그리고 마침 주전 가드인 황성인의 군 복무 때문에 바로 주전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하지만, 전년도 우승팀인 SK의 주전 가드의 교체는 곧 임재현이 굉장히 중압감 속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SK는 이 해 시즌을 망치는데, 이 때문에 임재현에게 비판이 쏟아지게 된다.[5] 그러나 대신 2001-02 시즌에 분투하면서 평가를 만회하기는 하지만, 이 때부터 임재현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켜지게 된다.
황성인의 복귀 이후, 군에서 가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나마 괜찮던 신인 시절에 비해 리딩이 더 떨어졌다. 정통 포인트 가드로 보기에는 공격력과 수비력은 괜찮지만 리딩 부분에서는 분명 다른 가드들에 비해 역량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마침 SK도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절이라서, 임재현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이 때 붙은 별명이 그 유명한 '''임봉사'''.
[image]
KCC 입단식 당시. 서장훈, 허재 감독과 함께.
[image]
전주 KCC 이지스 이적후 첫 시즌이였던 2007-2008시즌 당시.
결국 FA를 맞아 그를 원했던 허재 감독이 있던 전주 KCC 이지스로 가는데, 이 때문에 허재 감독과 또 쌍으로 까였다. KBL의 이상한 규정 때문에 서장훈과 임재현을 동시에 영입한 KCC는 자동으로 이 둘이 보호선수가 되었고, FA 보상 선수는 총 세 명이라서 나머지 한 명을 추승균으로 보호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이상민이 보호선수로 팀을 떠나는 상황이 도래하자, 프랜차이즈 스타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팬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임재현이 까인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주전 가드로서의 리딩은 이상민에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KCC에서는 점점 덜 까이는데, 바로 주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슛과 수비는 괜찮았기 때문에[6] 리딩 대신에 전문적으로 슛을 노리는 슈팅 가드이자, 식스 맨으로 보직을 바꾸고서는 오히려 상당한 실력을 보여줬다. 리딩은 전태풍에게 맡기고, 자신은 식스맨으로 슛과 수비에 집중하면서 팀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다. 선수 자신도, 팀도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비관적인 평가를 많이 만회했다. 어차피 리딩에 한계가 있는 것, 자신의 장기를 극대화시킨 것이 좋은 상황을 낳은 것이다.
2011-2012 시즌이 끝난 현재 FA 자격을 얻었다. 다른 팀으로 떠나는 것 대신에 KCC와 2년 계약을 맺고 팀에 잔류했다. 전태풍과 강병현[7] 이 없는 KCC의 2012-13 시즌 상황에서 정통 1번이든, 신명호와 투가드를 사용하든, 어떤 형태로건 간에 주전 가드로 뛸 확률이 높아보인다.
2012-2013시즌 초반 강병현, 전태풍, 하승진, 추승균이 모두 빠진 상황에서 홀로 팀을 이끌며[8] 시즌 초반 맹활약하다 3라운드 즈음부터 체력적 부담으로 시작해 결국 시즌이 끝날때 즈음에는 강병현, 김효범 등의 합류와 박경상의 급부상으로 팀내의 입지가 줄어 식스맨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력이 급하게 빠져버린 KCC를 이끌어준 공로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2013-2014시즌은 결국 몇 경기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FA 자격을 얻은 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이적했다.
4. 지도자 시절
[image]
2015-2016년 시즌 1월 중 최진수 선수의 상무 전역 이후 엔트리 등록문제로 인해 '''은퇴'''를 하게 되었고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코치'''로 부임한다.
2015-2016 시즌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14년만의 플레이오프 우승에 공헌하게 된다.
조상현 코치와 함께 선수-코치로서 모두 플레이오프 우승을 하게 되었다. 김병철 수석코치 또한 오리온스의 레전드로 선수-코치로 모두 플레이오프 우승을 같이 했다.
하지만, 2017-2018년 시즌 종료 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성적부진과 은퇴한 김도수 선수의 코치 선임과 함께 조상현 코치와 함께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정들었던 오리온을 떠나게 되었다.
2019년에는 잠시 야인이었다가 2020년부터 모교 배재고등학교의 코치를 맡고 있다.
5. 플레이 스타일
버저비터를 은근히 잘 넣고, 슛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자세가 무너진 아스트랄한 상황에서도 슛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스피드가 좋은 편이고, 체력이 좋아 잘 뛰어다니기 때문에 악착같은 수비력도 지니고 있다. 임재현의 수비는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따라가서 괴롭히는 수비력이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이 순하게 생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들개'''(…). 한국의 데릭 피셔 정도라고 생각하면 딱인 선수이다.
6. 관련 문서
[1] 군 입대 이전 청주/서울 SK 나이츠 시절[2] 군 제대 이후 서울 SK 나이츠 ~ 전주 KCC 이지스 시절[3] 고양 오리온스 시절[4] 전태풍이 나타나기 전까지 포인트 가드를 맡았을 때 주로 들었던 별명이며, 전태풍을 만나고 주로 슈팅 가드와 식스 맨으로 나서면서부터는 은퇴할 때까지는 거의 사장된 별명이다.[5] SK는 그해 3위를 기록했다. [6] 사실 리딩을 하며 '''임봉사'''소리 듣던 시절에도 슛과 수비는 괜찮아서 이상민 대신 들어온 것만 아니었더라면... 소리를 듣긴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임재현에게 주어진 역할은 '''포인트 가드'''였으니...[7] 원래 강병현은 1번이 아니나, 신명호의 군복무 중, 전태풍이 코트에 없을 때 KCC가 가끔 임재현과 투가드 시스템을 가동시킨 적이 있다.[8] 아예 시즌 전부터 에이스의 역할을 부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