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

 




'''Ἀχιλλεύς / Achilles'''
1. 개요
2. 일대기
2.1.1. 아가멤논과의 불화
2.1.3. 헥토르와의 결투
2.3. 사후 전승
3. 인간 관계
3.1. 가계도
4. 평가
4.1. 인품
4.1.1. 긍정적 평가
4.1.2. 부정적 평가
4.1.3. 현대인의 관점에서
4.1.3.1. 옹호
4.1.4. 종합 평가
4.2. 다른 영웅들과의 비교
5. 그 외
6. 관련 문서


1. 개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양대 주인공 중 하나.[1]
이름은 아킬레우스 혹은 아킬레스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영어식으로 읽으면 '어킬리즈(Achilles)' 정도로 읽힌다. 인기가 높아서 정복왕 알렉산드로스 3세도 아킬레우스를 숭배했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는 자신과 헤파이스티온의 관계를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했다.
프티아의 왕자. 테티스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자식으로는 데이다메이아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있다.
아명 혹은 본명은 리귀론으로 그 뜻은 어머니의 젖에 입술을 댄 적 없는 아이다. 이는 아킬레우스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던 테티스가 물[2]에 아기를 담구는 것을 본 펠레우스가 그를 막아서자[3] 테티스가 홧김에 이들 부자를 떠났기 때문으로, 펠레우스는 이후 아들의 이름을 아킬레우스로 바꾼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어릴적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인생의 중요한 혹은 위험한 순간에만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를 만나곤 했다.
이름을 분석하자면 '슬픔'을 가리키는 단어 ἄχος(아코스)와 사람들의 '무리/국가' 등을 가리키는 λαός(라오스)가 합쳐진 이름이라고 하며, 이를 따른다면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슬픔''''이란 뜻이 된다. 그가 전쟁에 참여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댄 것과, 그 자신도 요절해서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에게 슬픔을 안겨줬을 걸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아킬레우스에서 유래한 말로는 아킬레스건(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뜻)과 아킬레우스의 방패가 유명하다.
실사화 배우 중에서는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로 분한 브래드 피트가 유명하다.

2. 일대기


본래 바다의 신이자 50명의 네레이데스 중 한 명인 네레이드 테티스는 제우스포세이돈에게 구애를 받던 몸이었으나, 프로메테우스가 예언하기를 "테티스가 낳은 자식은 무조건 아버지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테티스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너무 강력한 놈이 태어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자식이 더 위대해져도 상관없을 것 같은 놈'인 펠레우스를 골라서 중매해줬다(…). 그래도 펠레우스도 평범한 혈통은 아니고 제우스의 손자라 아킬레우스는 제우스의 증손자로 태어나게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가 태어나자 테티스는 자식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승을 흐르는 스틱스 강에 담가서 무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물에 담글 때 발 뒤꿈치를 잡고 강에 담갔기 때문에 [4] 발뒤꿈치가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테티스는 자신이 불멸의 신이기 때문에 위대해도 어디까지나 필멸의 인간인 펠레우스를 남편으로 둔 것에 불만이 컸고, 그래서 자식을 낳을 때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필멸의 요소'를 없애기 위해 불 또는 물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식들이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 죽었다'''는 것. 테티스는 자식 여섯 명을 그런 식으로 죽이고, 일곱째로 낳은 아들 리귀론[5]도 마찬가지로 불에 집어넣었는데,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자꾸 죽는 것을 의심하여 산실을 엿보던 아버지 펠레우스가 뛰어들어 끄집어내는 바람에 리귀론은 살아남았다. 이때 발꿈치가 탔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가스 중 가장 발이 빠른 다뮈소스의 유골에서 발뒤꿈치를 파내 붙였다고 한다.[6] 테티스는 이 일로 펠레우스에게 결정적으로 정이 떨어져 바다로 돌아갔고, 펠레우스는 아들의 이름 리귀론을 아킬레우스로 고치고 켄타우로스케이론에게 맡겨 길렀다.
아킬레우스는 갑옷을 항상 입고 다녔고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을 때도 갑옷이 필요하다고 난감해했다. 고대 그리스의 전사들에게 갑옷이란 것이 명예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7] 일리아스 내내 아킬레우스도 필멸자라 칼로 쑤시면 들어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아킬레우스 본인도 좀 겁먹는 묘사가 꽤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호메로스 세계관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더불어 기원후 1세기 전의 문학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무적의 몸이라는 묘사는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불사신이란 이야기는 기원후 1세기 로마의 시인인 스타티우스(Publius Papinius Statius)가 쓴 미완의 서사시 아킬레이아드에서 처음 나온 얘기다. 그 이전에는 아킬레우스가 불사신이란 얘기는 '''아예 없었다'''. 물론 이것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맞지만.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썼던 무장에는 펠리온산의 물푸레나무 창, 발리오스와 크산토스라는 두 불사의 말이 끄는 전차, 신이 만든 갑옷과 후에 신이 만든 갑옷을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탈취당한 후 얻은 헤파이스토스가 새로 만들어준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갑옷이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아기 때 헤라에게 버림받은 후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가 길러주었다. 이 인연과 은혜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준 것이라는 언급이 일리아스에 나온다. 또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작품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걸작이라고 한다.
이 중 펠리온산의 물푸레나무 창은 케이론이 아버지인 펠레우스의 결혼 선물로 준 것으로 펠레우스와 아킬레우스 외에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그리스군 내에서는 쓸 수 있는 자가 없었고, 불사의 말인 발리오스와 크산토스하피 포다르게(Ποδαργη)[8][9]의 말이라고 불리는 최고의 명마이며, 신이 만든 갑옷 또한 최고의 갑옷으로 둘 다 신들이 펠레우스에게 준 결혼 선물이었다. 또한 헤파이스토스가 새로 만들어준 아킬레우스의 방패와 갑옷도 말할 필요가 없는 명품이라 하겠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아킬레우스가 불사신이 아니라, 발이 빠른 영웅이었다고 한다. 발뒤꿈치에 제일 빠른 기가스 다미소스의 뼈를 박아넣었기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있었다는 것으로 여기서는 발뒤꿈치는 그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었다. 유명한 제논의 패러독스에서 아킬레우스가 발이 빠른 사람의 대표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리아스에서도 '''준족''' 아킬레우스라는 존칭으로 종종 불린다.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직접 활로 쏘아죽였다는 것도 이쪽 계통의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아킬레우스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우선 발뒤꿈치를 쏴서 기동력을 빼앗은 후에 가슴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사실 발뒤꿈치가 약점이라는 건 맞으면 상처입는다는 얘기지, 거기에 화살을 맞았다고 죽는 건 아니기 때문에, 준족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전승에선 발뒤꿈치에 맞은 화살이 '''독화살'''이다.
일리아스에서 달리기와 관련된 묘사를 한 부분을 보면 흐르는 강물보다도 더 빠르다고 묘사된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과 싸울 때 트로이군을 크산토스 강까지 몰아붙여 그리스 무쌍을 펼치는데, 강의 신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하신의 자손이니 살려달라는 자를 죽이고 "하신이 뭐 어쨌다고!" 하며 '''주제도 모르고''' 큰소리를 쳤다. 이에 크산토스, 스카만드로스, 시모에이스 세 강의 하신들이 강물로 그를 쓸어버려서 죽이려고 하고, 아킬레우스는 허우적대다 체력이 바닥나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헤라가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세 강물을 불로 증발시키고 하신들을 협박하자 세 강의 하신들이 물러가 위기를 모면한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해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는 예언이 있었다.''' 즉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업적을 올리면 죽고, 아무것도 안 하고 무명으로 살면 장수하는, 영광과 업적에 집착하며 죽고 사는 고대 그리스인의 시점으론 미치고 환장할 상황이었다.
호메로스 이후의 전승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자 테티스는 아들을 전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여장을 시켜서 스키로스의 리오메데스 왕의 딸들 사이에 숨겼다. 이때는 라는 가명을 썼다고 한다. 여장이 먹힐 정도의 미소년인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는데 막상 일리아스에서의 묘사는 누가 봐도 그리스에서 제일 위풍당당한 전사로 그려진다.[10] 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에서 시도때도 없이 하는 게 변신이니 신의 능력을 썼다고 생각하거나, 그냥 호메로스가 쓴 아킬레우스가 후대 작가들이 쓴 아킬레우스와 설정이 달랐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가 없으면 이길 수 없다"라는 신탁을 받고 방물장수인 척하고 찾아와서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에 무기를 섞어 내놓았다. 다들 장신구 같은 걸 집는데 아킬레우스 혼자 무기를 집었다가 딱 들통났고, 그리하여 군대로 갔다. 사실 모양새는 아킬레우스가 전쟁터로 끌려간 듯한 모양새지만,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와 달리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니었기에 굳이 참전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었다. "가장 먼저 트로이 땅에 발을 딛은 자는 죽는다"라는 전승도 씹고 냅다 상륙하려다 어머니한테 제지당할 정도로 호전적인 아킬레우스가 굳이 도피했다가 끌려갔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아킬레우스 본인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 있었거나 어머니 때문에 붙들려 있었는데, 오디세우스가 오자 냅다 참전해버렸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11] 참고로 이때의 나이가 열다섯이었고, 리오메데스 왕의 장녀 데이다메이아를 '''강간해서'''(그냥 눈맞았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이미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있는 상태였다.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에서는 자신을 빌미로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려는 아가멤논에게 분노해서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지 못하도록 지키고, 마지막에 스스로 제물이 되려는 이피게니아에게 만약 중요한 순간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자신에게 달려오면 그리스군과 싸워서라도 지켜주겠다는 나름 개념찬 모습을 보인다. 그 전에 이피게니아를 희생시키지 말자고 그리스인들에게 말했다가 오디세우스에게 선동된 병사들에게 돌 맞아 죽을 뻔도 했다.

2.1. 《일리아스



2.1.1. 아가멤논과의 불화


트로이 전쟁 중에 미녀 브리세이스를 사이에 둔 아가멤논과의 마찰이 유명하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동맹국을 공격해 크리세이스와 브리세이스라는 두 미녀를 데려왔다. 평소 사이가 안 좋던 둘은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크리세이스를 선물하면서 다소 훈훈해지는데… 문제는 이 여자가 아폴론 사제의 딸이었던 것. 자신의 딸을 되찾으러 갔던 사제는 많은 몸값에도 불구하고 쫓겨났고, 이에 분노한 사제는 아폴론에게 부탁해 그리스군에 저주를 내려달라 빌었다. 아폴론도 가뜩이나 그리스군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자기 사제까지 쫓아냈으니 잔뜩 열받아 그리스군에 전염병을 퍼뜨린다.
그리스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신탁을 받았는데 바로 크리세이스와 더불어 소와 양을 합쳐 백 마리를 지불해야 아폴론이 분노를 거둔다는 신탁이었다. 당장이 급한 아가멤논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지불하는데, 문제는 자기한테 브리세이스가 아니라 크리세이스를 준 아킬레우스한테 책임을 묻고 브리세이스를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한 것.
평소에 거만하던 아킬레우스를 아니꼽게 보던 아가멤논과, 사령관이라고 전쟁 참여는 제일 안 하면서 전리품은 가장 많이 차지하는 아가멤논을 비웃던 아킬레우스였기에, 평소에도 사이가 안 좋던 두 사람은 이 사건으로 제대로 충돌해버린다. 아킬레우스는 분노했지만 전염병을 몰아내야 하는 입장인 다른 장수들이 아가멤논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브리세이스는 아가멤논이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아킬레우스는 화를 내며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어머니인 테티스를 찾아가 자기를 무시한 그리스군이 패배하게 만들어 달라고 제우스에게 부탁해달라 요청한다. 아킬레우스를 아끼던 테티스는 자식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제우스에게 찾아갔고 제우스는 부탁을 받아들여 모르페우스이리스를 시켜 전쟁에 간섭하게 한다. 이 부분이 일리아스의 서막에 해당한다.
두 영웅의 자존심 다툼 속에서 그리스군이 불리하게 되자 아가멤논이 먼저 양보를 한다. 평소 아킬레우스와 사이가 원만하던 아이아스, 포이닉스, 오디세우스 세 장수가 아가멤논의 사과와 보상을 전한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제시한 보상은 '''브리세이스를 돌려주는 건 당연하며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맹세, 지금까지 차지한 수많은 금은보화와 수많은 미녀, 트로이를 함락해 얻는 전리품의 절반, 그리고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딸과의 결혼, 자신 소유의 그리스의 도시 7개'''로 어마어마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보물이나 여성은 자신이 전쟁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데다가, 자기도 아까운 목숨인데 아가멤논을 위해 바치기 싫다는 식으로 반발한다. Adam Nicolson의 Mighty Dead에서 나온 해석에 따르면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의 진의를 꿰뚫어보았다고도 한다. 아가멤논이 저 조건으로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라고 할 때 덧붙인 말이 '''아킬레우스가 자신에게 굴복하게 만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더 왕다운 인간이니까. 오디세우스는 당연히 그걸 이야기하면 반발할 게 분명하므로, 그 부분만 빼고 얘기해서 아가멤논이 싹싹 비는 듯한 인상으로 만들었는데 아킬레우스는 그런 아가멤논의 속셈을 알고서 거절했다는 것이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의 친구인 포이닉스가 과거에 아킬레우스처럼 분노에 사로잡혔던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설득하려 한다. 요는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은 접어두고 일단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우잔 소리.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도리어 포이닉스는 자신과 아버지의 친구이니 아가멤논이 아니라 자신을 따라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해 오히려 포이닉스가 의도치 않게 아킬레우스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어버린다(...). 사과하러 온 사절들을 일단 옳은 말만으로 설득했으며, 아킬레우스도 내심 맞는 말이라 생각해 이들에게 제대로 반박하기보단 억지를 부리거나 머뭇거리면서 말을 피한다. 심지어 아이아스가 설득에 나섰을 땐 그의 말이 다 옳다고 인정했지만 그래도 아가멤논을 도우러 간다곤 안 했다. 그걸 지켜보던 파트로클로스가 나서서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에 이르지만 결국 먹히지 않았다.

2.1.2.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그리스측이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불리해지면서 배들이 정박된 해안까지 밀리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이 소식을 듣고 파트로클로스를 보내 자신과 친한 장수들이 다쳤나 보고 오라고 하는데, 그런 파트로클로스의 사정을 들은 네스토르는 '''지금 온 연합군이 죽어나가고 있다'''며 파트로클로스에게 호소했지만, 파트로클로스도 지금의 아킬레우스는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급박해진 그리스 측은 적어도 아킬레우스의 맹우인 파트로클로스라도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아킬레우스인 척을 해주면 트로이군이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아킬레우스 측에 제안했다.
여전히 아킬레우스는 비관적이었으나 파트로클로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이라도 나서겠다면서 아킬레우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아킬레우스는 마지못해 자신의 무장과 병력 전부를 파트로클로스에게 양도함으로써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 대행으로 트로이 전쟁에 복귀했다. 트로이군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런 위장 작전은 금방 들통났지만, 파트로클로스도 상당한 실력자인 데다가 아킬레우스의 정예까지 합쳐져 위장 작전이 들통나든 말든 트로이군을 몰아붙이며 다시 전황을 비슷한 수준까지 돌려놨다. 그런데 너무 흥분한 파트로클로스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성벽 근처에 갈 생각은 꿈에도 말아라"'''라는 아킬레우스의 충고를 까먹고 성벽 근처까지 가서 적들을 상대하다가 헥토르를 이기지 못하고 전사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매우 슬퍼하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자신이 직접 찾아가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어머니 테티스에게 부탁해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 최상급 무구들을 갖춰서 트로이 전쟁에 복귀했다. 자신의 뮈르미돈 부대와 함께 파트로클로스 전사 이후 사기가 오른 트로이 군을 다시 성안으로 몰아넣는데, 잔뜩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이때 안면이 있던 트로이 군인들이 애원할 때도 상관하지 않고 전부 도륙했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재합류전까지 파트로클로스 빼고 '''"내가 아는 사람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차라리 잘됐다. 그리스든 트로이든 서로 싸우다가 다 죽어라"''' 같은 소리나 하던 인물이었다.

2.1.3. 헥토르와의 결투


아킬레우스는 성문까지 진격했다가 아폴론의 꾀에 빠지는 바람에 트로이 군대는 성 안으로 전부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헥토르는 단신으로 성문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아킬레우스가 나타나자 헥토르는 공포를 느끼고 도망친다. 이에 데이포보스로 변신한 아테나가 나타나 도와주겠다며 용기를 줬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맞섰다. 싸우기 전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승자가 누구든 상대를 존중해 시신을 보내주자고 제안했지만 아킬레우스는 무시하고 헥토르에게 창을 던진다. 헥토르는 재빠르게 아킬레우스의 투창을 피하고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네가 내 등을 찌르는 일은 없다!"라고 외쳤다. 즉, 자신이 죽더라도 끝까지 도망은 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테나는 빗나간 창을 헥토르 몰래, 아킬레우스에게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헥토르가 창을 던지지만 그의 투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뚫지 못한 것을 분해하며, 데이포보스에게 다음 투창을 달라고 하나 데이포보스로 변신했던 아테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헥토르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검을 뽑았다. 검을 든 헥토르와 창을 든 아킬레우스가 서로에게 돌진했고 맞붙었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입은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그의 몸에 맞지 않아 생긴 틈의 목을 창으로 꿰뚫어버린다. 공교롭게도 창이 기도 옆을 비껴나간 덕에 말을 할 수 있었던 헥토르는 유언으로 자신의 시체만은 모욕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모욕하며 거부한다. 이에 헥토르는 이렇게 대답하고 숨을 거둔다.[12]

'''I know you truly now, and see your fate, nor was it mine to sway you. The heart in your breast is iron indeed. But think, lest the gods, remembering me, turn their wrath on you, that day by the Scaean Gate when, brave as you are, Paris kills you, with Apollo’s help.'''

'''이제야 그대를 제대로 알 것 같군. 그대의 운명도, 또한 그대를 쓰러뜨릴 자는 역시 내가 아니었던 것도 말이야. 그대의 가슴 안에 있는 마음은 진정 강철, 그 자체군.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신들이 그대에게 분노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아무리 용감하더라도 그날, 스카에안 성문에서 아폴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너를 죽일 것이다.'''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는 분풀이로 그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트로이 성을 돌며 쌓인 한을 푼다.
그 후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시종 한 명만 대동한 채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킬레우스를 만나러 온다. 프리아모스는 많은 몸값을 가지고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받으러 와서 애원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죽인 원수의 시체를 내줄 수 없다며 분노한다. 당장이라도 경비를 부르고 목을 치려고 한 아킬레우스지만 프리아모스 왕이 하는 자식 잃은 아버지의 큰 슬픔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헥토르를 죽여서 큰 전공을 올렸으니 예언 속 사망 플래그 조건을 달성한 사실, 자신의 아버지도 자기를 잃고 자식 잃은 슬픔에 평생을 괴로워할 것'''을 떠올리고 통곡한다.[13]
결국 아킬레우스는 증오를 거두고 프리아모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제우스의 뜻이라 여기며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주기로 한다. 더불어 헥토르의 장례를 치를수 있도록 12일간의 휴전을 보장하며, 음식까지 대접했고 푹 쉬도록 배려해줬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는 일리아스와는 다르게 묘사됐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의 전투에서 오히려 아킬레우스의 검을 못 쓰게 만들고 잠시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싸우자고 말할 정도의 여유까지 보였다. 아킬레우스가 물러난 후, 헥토르는 화려한 갑옷 차림의 그리스 장수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 쓰러뜨렸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기습하기 위해 부하들을 불러들이고 헥토르에게 향한다. 마침 헥토르는 노획한 갑옷을 입기 위해 무장을 해제한 무방비 상태에다 혼자였다. 아킬레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헥토르를 죽이고 자신이 헥토르를 쓰러뜨렸다고 외친다.
전체적으로 아킬레우스가 굉장히 비열하게 묘사된 작품으로, 결투에서 헥토르를 압도하지도 못해 부하들과 함께 기습을 해서 죽이고 이를 자신만의 공로로 돌리는 불명예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2. 《아이디오피스


트로이를 도우러 온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숨을 빼앗았는데, 죽이는 순간 눈이 마주쳤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죽은 펜테실레이아의 시체를 가져갔다고만 하기도 하고, 말에서 내려 입을 맞췄단 이야기도 있고, 시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밖에도 여신 에오스의 아들이며 에티오피아의 왕인 멤논을 죽이는 등의 활약을 펼친다. 이렇게 아킬레우스의 포스는 엄청나게 강하다. 그런데 왜 이 정도 전력으로도 '''10년씩이나 트로이를 함락시키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브리세이스 건을 보면 알 수 있듯 10년간 트로이 공성전만 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를 거치고 이 성 저 성을 무너뜨려가며 트로이에 당도한 것이다.[14]
남들 몰래 헥토르의 장례식에 참여한 아킬레우스는 우연히 한 여자를 보게 되는데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였다. 첫눈에 폴릭세네의 아름다움에 빠진 아킬레우스는 그녀를 잊지 못하다가 정찰하던 중 성밖에 있는 헥토르의 무덤에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빠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고 있는 폴릭세네를 만나게 된다. 폴릭세네는 상대가 아킬레우스인 것을 알고 사랑하는 오빠 헥토르와 트로일로스를 죽인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단 결혼을 약속한다. 그리고 트로이 근처의 도시 팀블레(timble)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신들 앞에서 맹세를 약속해달라 부탁하고 아킬레우스는 이를 받아들인다.
파리스는 이를 폴릭세네로부터 듣고 신전에 먼저 가서 몰래 숨어 있다가 아킬레우스의 목숨을 빼앗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무적인 아킬레우스를 죽일 방법이 없기에 아폴론에게 기도를 드려 신탁을 받는데 내려온 신탁은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독화살로 쏘라는 말이었다.
수상하니 가지 말라던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말을 무시하고 폴릭세네를 만나러 간 아킬레우스는 아폴론 신전에서 파리스의 독화살을 맞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위처럼 긴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히 전쟁 중에 파리스가 쏜 독화살이 발뒤꿈치에 맞아 사망했다는 전승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투 끝난 후 아킬레우스가 성벽을 돌고 있었는데 아폴론의 인도를 받은 파리스의 화살이 그의 목숨을 잃게 했다고도 전해진다.
일설에 따르면 파리스가 죽인 것이 아니라 파리스로 위장한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죽였다고도 하고 파리스의 화살에 맞은 후에 데이포보스에게 확인 사살을 당했다고도 하고 폴릭세네가 아킬레우스를 사랑하게 되어서 매우 슬퍼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폴릭세네를 만나고 있는 아킬레우스의 발꿈치에 파리스가 독화살을 쏴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2.3. 사후 전승


오디세이아에도 출연. 여기선 저승에서 꽤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오디세우스에게 '''죽어서 왕이 되느니 노예로 살아도 이승이 낫다'''며 슬퍼했다. 그래도 오디세우스가 "너의 아들이 트로이 함락 에 단단히 한몫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자,[15]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저승에 등장하기 전의 장면에서는 아가멤논이 자기 마누라 뒷담화하는 데에 추임새도 넣어준다. 참고로 위에서 오디세우스에게 칭찬 받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귀환 후에 인처 모에 때문에 뿔이 난 약혼녀의 사촌오빠[16]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이게 또 전승에 따라 다르다. 비극에서는 이렇게 되지만 안드로마케를 헥토르의 동생에게 넘겨준 거 외에 별 얘기 없는 전승도 있고 살아남는 전승도 있다. 앞에 주석에서 8~12명의 자식을 얻은 전승도 이쪽이다.

3. 인간 관계


부장인 파트로클로스와는 더없이 수상한(?) 관계라 그쪽으로도 유명하고 둘이 커플이냐 그냥 친구냐는 고대부터 큰 떡밥이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의 언어는 연인들이 쓰는 어투지만 작중 둘은 친구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트로클로스의 역할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킬레우스의 '시종'으로 번역되는데, 우리말 그대로 노비방자 같은 느낌이 아니고 귀족 젊은이가 집안 사정상 다른 귀족 젊은이에게 딸려간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어쨌든 아킬레우스의 시종인 파트로클로스는 어려서부터 아킬레우스를 좀 돌보기도 하면서 같이 놀고 공부도 같이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운명이라고 한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대하는 것을 보면 직업적인 시종 일을 조금 시키긴 하는데, 현대로 따지자면 친구이자 비서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놈들이랑 그리스 애들이랑 다 죽고 우리 둘만 살아남았으면"''' 하고 말하는 장면과 다른 장군들이 '''"아킬레우스는 모든 아카이아인을 합친 것만큼이나 파트로클로스를 소중히 여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 문제로 아가멤논과 정면으로 충돌할 정도로 브리세이스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후 파트로클로스가 죽게 되자 '''브리세이스 따위 죽는 편이 나았다'''며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거두고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고자 했다.
안하무인적인 면이 있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에게만은 약한(?)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오디세우스 등의 동료들이 도와달라고 할 때는 안 도와준다고 거절하다가 파트로클로스가 '''울면서''' 부탁하니 자신의 갑옷을 내준다. 앞서 언급되었듯 그리스 전사들에게 갑옷은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라 명예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갑옷을 빌려주는 건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어찌 됐든 친구든 애인이던 파트로클로스를 가장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몇몇 사람들은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의 애동으로 착각하는데, 파트로클로스는 가계도상 아저씨뻘로 아킬레우스보다 '''연상'''이다. 고대 도자기 그림을 보면 아킬레우스는 수염이 없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수염이 있다. 영화 트로이도 이런 오류를 저질렀으며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에게 가르침을 받는 어린 친척 동생으로 등장했다.
처음에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 아가멤논이 아낀 애첩 크리세이스도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으로 잡아온 것을 선물로 바친 것이였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의 아폴론의 저주를 받자 어쩔 수 없이 크리세이스를 그녀의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야 했었는데 이 때문에 살짝 정신이 나가서 아킬레우스의 애첩 브리세이스를 빼앗아버린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아가멤논을 죽이려고 했을 정도로 분노했고 굉장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손을 떼고, 어머니 테티스한테 그리스군이 지게 해달라고 빌기까지 해서 그리스군은 헥토르에게 도륙당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아킬레우스에게 사절을 보내며 사과를 했다. 자신은 브리세이스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신에게 맹세까지 하며.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예상보다 더 찌질했기에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기 전까지 둘의 마찰은 계속됐다. 결국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화해를 한다.
아킬레우스가 반해 사랑하게 된 트로이의 공주 - 결혼을 약속했으나 아킬레우스는국 죽고 폴릭세네는 아킬레우스의 사후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죽게된다
  • 브리세이스
아킬레우스가 죽기 전까지 함께 있었던 여자.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동맹인 도시를 약탈하면서 잡아 온 애첩으로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굉장히 아꼈고, 브리세이스도 '''남편이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음에도''' 그래도 아킬레우스는 다른 그리스 장수들보다 나를 잘 대해줬다고 말한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애첩을 잃자 브리세이스를 빼앗았는데 이 때문에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손을 떼고 그리스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결국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아킬레우스가 다시 전장에 나갔는데, 브리세이스를 돌려받았음에도 그는 친구의 죽음에 머리 끝까지 열받은 나머지 '브리세이스 따위는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여장하고 숨어 있던 아킬레우스를 전쟁으로 끌어들인 장본인. 아킬레우스의 절친 중 한 명이며 전쟁 전부터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를 존경했었다.
프리아모스 왕 본인은 물론 가문에겐 불구대천의 원수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들을 학살했으며 거의 50명을 죽였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의 아들 필로스는 프리아모스 왕과 헥토르의 아들을 죽이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첩으로 삼고 헥토르의 동생 헬레누스를 노예로 삼기도 했다.[17] 거기다 트로이에서 돌아가려고 할 때 헥토르의 여동생 폴릭세네를 산제물로 바치라고 유령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3.1. 가계도


[image]
부모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 아들네오프톨레모스.
며느리는 전승에 따라 메넬라오스헬레네의 딸 헤르미오네나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
손자암피알로스,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중 헤르미오네의 피를 이은 자식은 한 명도 없다.
아킬레우스의 피를 이은 것은 헤르미오네가 아니라 안드로마케. 네오프톨레모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죽이고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성벽에 던져 죽였는데, 아름다운 안드로마케를 전리품으로 삼아 에피루스로 데려가 첩으로 삼는다. 결국 헤르미오네는 찬밥 신세가 되어 아이를 가지지 못했고, 안드로마케는 아들 몰로소스를 낳는다. 결국 트러블이 생기고 메넬라오스까지 연관되면서 아킬레우스의 대가 끊길 뻔했지만, 펠레우스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델포이에서 헤르미오네의 사촌오빠인 오레스테스에게 암살당한다.
후손도 굉장히 걸출한데, 아킬레우스는 몰로소스의 계보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피엘로스의 계보에서 피로스 1세, 페르가모스의 계보에서 페르가몬의 조상이다.

4. 평가



4.1. 인품



4.1.1. 긍정적 평가


고대 그리스 문명 안에서 아킬레우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 때문에 필리포스 2세는 아킬레우스의 피를 이었단 말이 있던 올림피아스와 결혼해 자신을 아킬레우스의 계승자로 칭했으며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또한 자신을 그리 칭했다. 피로스 1세도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혈통임을 자처했다. 이는 헬레니즘 문화가 전성기를 맞으며 극에 달해서 에게 해, 흑해 등지엔 아킬레우스에게 바쳐진 섬과 항구가 너무나 많아 아킬레우스를 모시는 신전과 사제가 너무 많아졌단 기록이 남아 있다. 수많은 그리스의 극작가들이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대표작으론 아이스퀼로스의 아킬레스 삼부작(Achilles Trilogy), 소포클레스의 아킬레스의 연인(The Lovers of Achilles)이 있지만 일부만 전해진다.

4.1.2. 부정적 평가


이런 아킬레우스 숭배 사상은 기원전 5세기 말부터 점점 사그라들다가, 로마 문명이 지중해를 잠식하면서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로마인들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네이아스를 시조로 모시며, 트로이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았고, '''무엇보다 아킬레우스의 숙적인 트로이의 왕세자 헥토르를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 아킬레우스의 취급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다. 아이네이스의 저자 베르길리우스는 아킬레우스를 폭력적인 야만인 도살자로 표현했으며, 시인 호라티우스는 나약한 여자와 어린 아이들조차 살려준 적 없는 살인마라 말했다.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킬레우스를 전사로서 표현하기 보다는 브리세이스나 폴릭세네 등 그가 지닌 수 많은 여성 편력을 배경으로 한 부정적인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로마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한 변호 연설에서 살인자와 그의 심부름을 한 심복을 아킬레우스와 그의 마부에 비유했는데, 당대 로마인들에게 아킬레우스가 어떤 이미지인 지를 알 수 있다.

4.1.3. 현대인의 관점에서


현대인의 관점에서 봐도 아킬레우스의 성격과 행적은 영웅의 이상향 같은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일단 전쟁이라는 중대사에 참전한 입장에서 총지휘관과 개인적인 불화 때문에 전우들의 죽음도 나 몰라라 하고 틀어박혀 있던 것이나,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 포함 온갖 포상을 제안하며[18] 숙이고 들어가도 "뭘 얼마나 주든 내 알 바 아니고, 난 아가멤논 그 작자가 싫다"라며 막무가내로 화해 시도를 파토내고 여기에 그리스 군의 영웅이란 작자가 어머니인 테티스에게 "나 없이는 절대로 그리스 군이 승리할 수 없도록 제우스께 말씀드려주세요"라고 애원하며 고자질까지 하는 모습은 영웅의 행적치고는 찌질하기 짝이 없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이후에는 헥토르는 물론 트로이군 전체를 거의 갈아버릴 듯이 복수심에 불타는데, 이전에는 파트로클로스에게 "그리스군이고 트로이아군이고 다 죽어버리고 그냥 우리 둘만 남아서 고향 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투덜거리던 인간인지라 전쟁을 핑계로 분풀이나 하고 다니는 인간이라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 물론, 아군 입장에서는 동기가 무엇이든 앞장서서 적들을 다 죽여주면 좋은 거지만 말이다. 당장 본인이 빈정상해 군대를 이탈한 동안 희생된 아군의 목숨, 자신의 무장으로 전장에 나간 파트로클로스에게 죽은 트로이아 청년들의 목숨이 몇인데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한 것만 온 세상의 잘못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도 그의 성격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분노를 달래기 위해 세객으로 왔던 아이아스, 포이닉스, 오디세우스가 아군의 병사들의 생명이나 주요 지휘관끼리 맺어온 10년간의 우정이나 서로간의 존경, 친구인 그들이 처해 있는 생명의 위기상황에 대해 논하면서 풀고 나오라고 말할 때 별다른 반박을 못하고 아무튼 아가멤논이 싫어서 안 된다는 투는 역시 찌질이 감성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4.1.3.1. 옹호

그러나 아가멤논과의 불화에 대해서 아킬레우스도 변호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우선 찌질한 거야 아킬레우스나 아가멤논이나 피장파장이니 아킬레우스 탓만 할 것도 못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애초에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목숨 걸고 나설 이유가 없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인 파리스헬레네의 불륜은 아킬레우스 부모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 이후에 바로 벌어진 일이라서 헬레네를 두고 구혼자들이 몰려올 때 아킬레우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19] 여기서 ''''목숨 걸고''''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게, 이미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하면 그곳에서 전사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킬레우스가 참전하지 않으면 그리스는 트로이아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신탁도 있었단 것. 일신의 용맹도 있고 해서 그리스 장수들이 갖은 수로 '''모셔 온 장수'''가 바로 아킬레우스인 것이다.
그러니 아킬레우스 입장에서는 정말 애먼 남의 집안 싸움에 목숨 걸고 도와주러 왔는데, 취급을 이따위로 하니 폭발할 만도 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싸움의 원인이 된 그리스군 진영의 돌림병의 화근도 아가멤논이었는데, 총지휘관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을 뺏어가는 짓을 참을 수 있을 리 없다. 더구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고대 그리스 남성이라면 더욱 더. 종합해보면 아킬레우스는 안 해도 되는 전쟁에 억지로 참전하게 된 대신, 그 대가로 전리품이라도 챙기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빼앗긴 것이다.[20]
지휘 체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구수가 곧 국력인 고대 사회에서 아가멤논의 미케나이가 왕초 노릇을 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그리스군의 각 대표 장수들은 모두 각국의 왕이나 왕자로서, 등급의 차이가 없는 동등한 지배 계층이었다. 일례로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도 강대국인 스파르타의 왕이었다. 이들은 '그리스 문명권(아카이오이)'의 일원으로서 긴밀하게 묶여 있긴 했지만,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삼국지의 군벌들처럼 표면적으로나 복종해야 할 공동의 주군을 모시고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웃나라들이었다. 아가멤논이 맹주이자 총사령관이긴 했어도 다른 장수들의 그의 '부하'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위치였던 셈이다.[21] 철저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수행하는 군대 체계는 고대에서나 현대에서나 편제, 의사 전달, 직책, 전술 등이 자리잡힌 상황에서 가능한 것인데, 일리아스의 묘사를 보면 그런 거 없다. 그냥 민족들끼리, 그러니까 왔던 때 그대로 뭉쳐서 야영을 하고 전투에 나갔다는 정도일 뿐. 이게 전쟁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시점의 묘사이니 편제나 명령 전달 체계 같은 건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드는 것은 수천 년 전의 군사적 특징이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비판이다. 달리 말하면 아가멤논은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아킬레우스급 인물을 자를 권한이 없다시피 했다고 보면 좋다. 아킬레우스는 비록 왕은 아니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왕이었기에, 현대로 따지면 왕자 수준으로 아가멤논 등과 비교해서 결코 꿇리지는 않는 위치다.
더구나 일리아스의 분량이 워낙 길어서 안 느껴지는 것이지만, 아킬레우스가 '파업'을 벌인 기간은 '''고작 3일'''이다.[22] 이것도 아킬레우스 개인의 경우 그런 것이고, 사흘째 되는 날에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군을 이끌고 참전하니 실질적으로 그의 군사력이 물러나 있던 기간은 이틀 남짓이다. 그러니까 아킬레우스의 파업이 두드러진 시간은 기껏해야 '''10년 중 2~3일이다.'''
물론 그 며칠간 희생된 인명을 생각하면[23] 이것만 가지고 옹호론을 펼치는 것은 무리지만, 일단 아킬레우스가 그리스에 등 돌리고 있던 기간이 일반의 생각만큼 길지 않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어머니에게 가서 일부러 아군을 승리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빈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자기랑 1도 상관 없는 전쟁에 참전하여 10년을 불평 없이 묵묵히 싸운''' 점은 안 보고 2~3일 파업한 것만 가지고 찌질하다고 집중적으로 까는 것도 지나친 이중잣대로 볼 수 있다. 애초에 영웅 한 명이 며칠 파업한다고 수두룩한 사람이 희생당할 정도라면 이미 아킬레우스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군의 능력 자체가 문제이며,[24] 그렇게 한 사람에게 의존할 것이라면 그 사람을 대접이라도 잘했어야 했다. 아킬레우스에게는 반드시 참전해야만 하는 명분이 없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데려오려고 했다면 당연히 대접을 잘 해줬어야 정상이다.

4.1.4. 종합 평가


총평하여, 여러 신화, 특히 <일리아스>에서 보이는 아킬레우스의 성격이 '''다혈질'''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25] 좋게 말해서 긍지를 중시하고 감정에 솔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에 자기 자존심과 파트로클로스 빼곤 보이는 게 없는 성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리아스의 첫 구절은 시인이 무사 여신에게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즉 <일리아스>라는 대서사시 자체가, 호메로스가 무사에게 '''"아킬레우스가 빡쳐서 날뛴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주문을 넣자 여신이 들려준 얘기인 것이다. 사실 이런 특징은 그리스 신화의 신과 영웅에게 보편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므로[26] 이를 아킬레우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우선 감안해야 할 것이 초기 그리스의 영웅적 인간형은 쉽게 말해서 '무심'의 인간형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생각과 언행이 완벽히 일치하기 때문에, 화가 나면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슬프면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이 당연하다(삼국지연의 등의 동양적 영웅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유일하게 영웅이면서도 속내를 감추는 이는 오디세우스로,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 '현대적'인 영웅상을 나타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리아스> 내에서 아킬레우스의 성격을 마냥 미화해서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킬레우스의 오만, 고집불통, 철없음, 자기 과신, 매정함, 지나친 파트로클로스 편애 등은 이미 서사시 안에서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가멤논의 사절로 오디세우스, 아이아스, 포이닉스가 찾아왔을 때, 그나마 오디세우스는 점잖게 충고를 했지만 아이아스는 "이렇게 시건방지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한테 부탁한답시고 찾아온 우리가 바보였다"라는 투로 거칠게 화를 낸다. 또 다른 사람도 아닌 파트로클로스가 "전우들이 저렇게 불타 죽어가고 있는데 토라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네가 정말 피 흐르는 사람새끼냐"라며 한탄한 적도 있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뒤 아킬레우스가 참전 의사를 밝히며 회의장에 들어왔을 때는, "지금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는데 다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갑니까? 난 원수 갚기 전에는 식사고 뭐고 집어치울 생각인데 다들 저랑 같이해 주시죠"라는 참으로 그다운(...) 이야기를 꺼냈으나, 오디세우스에게 "매번 싸움에서 전우들이 죽는데 그때마다 슬프다고 단식을 하면 우리는 원수를 갚을 방법도 사라질 거요. 슬픔은 이해하지만 오늘 하루만으로 끝내고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다."라고 충고를 받기도 했다.[27] 출전한 다음에는 스카만드로스 하신(河神)의 경고도 무시하고 트로이아 병사들을 학살하다가 열받은 하신에게 죽을 뻔하기도 한다. 아무튼 아킬레우스는 서사시 안에서도 성격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는, 결점이 있는 영웅이다.[28] 네스토르나 오디세우스 등 비교적 신중한 인물들에게 그의 성급함과 감정적인 성미를 지적받기도 한다. <일리아스>가 그리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처음에는 아가멤논으로, 후반에는 헥토르와 트로이로 그 대상을 돌리며 점점 강성해진다. 아가멤논을 상대로는 옹졸한 소인배인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눈이 돌아버린 이후에는 광기 어린 복수의 화신처럼 트로이아군을 살육하며 날뛴다. 이때 아킬레우스에 대해서 쓰이는 직유의 상당수는 짐승에 대한 것이다.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능욕하는 장면에서는 도리를 벗어난 수준의 분노, 광기 어린 '''잔혹성'''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막바지에 이르러, 정확히는 헥토르의 죽음 이후부터 아킬레우스는 위의 철없는 싸움꾼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어나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트로클로스의 추모 경기에서 그는 주최자의 입장으로 자신보다 연배가 위인 다른 장수들에게 모임을 '주최'하고 시합 판정에 대해 '중재'를 하는 등, 철없는 젊은이가 아닌 완숙한 어른으로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심지어 이를 갈던 아가멤논에게 먼저 화해의 말을 건네며 그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라스트 신이라 할 수 있는 프리아모스 왕과의 만남에서 아킬레우스의 태도를 보자. 처음에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왕의 요구에 "그놈은 내 친구를 죽인 천하의 원수다!"라며 호통을 치지만, 이에 프리아모스가 "그러는 당신도 내 아들들을 수도 없이 죽인 나의 원수가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나의 원수인 당신의 무릎을 붙잡고 애원한다"라며 눈물을 흘리자 당혹감을 느낀다. 이어서 왕이 아킬레우스의 늙은 아버지를 떠올리라며 호소하자, 아킬레우스는 왕을 "가엾으신 분"이라고 부르며, 인간의 운명과 전쟁에 대해 함께 슬퍼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헥토르의 시신을 반환하고, 프리아모스의 부탁대로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휴전 협정까지 힘써줄 것을 약속한다. 이 시점에서 아킬레우스는 분노의 광기를 극복하고 성숙한 품위와 살육자가 아닌 전사로서의 명예를 손에 넣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노래'한 이 서사시의 마지막이, 분노로 날뛴 끝에 적장의 목을 베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의 원수와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며 슬픔을 나누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일리아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터뜨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노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고대 그리스[29]에선 아무래도 그리스 민족 개념이 약했다. 트로이의 헥토르도 야만인이 아니라 같은 신을 믿는 그리스 문화권이고, 어디까지나 여러가지 사정상 좀 더 친해서 이쪽을 도와줄 뿐이지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 속한 폴리스다.[30] 때문에 자기 여자 뺏겼다고 삐지는 아킬레우스는 느슨한 도시국가 연합의 동맹에서 10년을 싸워줬는데도 논공행상에서 최고의 전사인 자신이 지속적으로 상당한 불이익을 받은 데다 이미 받았던 여자를 도로 뺏기는 모욕까지 받은 경우이기 때문에 단순히 찌질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에 덤으로 아킬레우스는 신들이 내린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 앞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언제든지 이쯤에서 돌아가서 겁쟁이라는 오명은 대강이나마 피한 상태에서 목숨이나 보존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는데 아가멤논의 자극까지 받아 싸울 의욕이 거의 사라져 있던 것이다. 즉 자기 배에 틀어박힌 아킬레우스의 행동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의 고뇌, 또는 필멸이지만 어쨌든 소중한 자신의 목숨과 사나이다운 명예나 명성, 그리고 그것에 뒤따르는 불멸성 사이에서의 고뇌라고 해석이 되었던 것이며, 어차피 아킬레우스도 결국 자신이 싸우다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상태였다는 것을 그리스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우정과 복수를 위해서 일어선 사나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훨씬 견고한 도시들의 공동체인 로마가 들어서면서 트로이 멸망에 공조한 데다가, 그리스 폴리스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아킬레우스는 공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적인 이유로 싸우고 삐지고 하는 영 뭔가 아닌 인물로 보였는지 단테신곡에선 지옥에 떨어졌다. 그래도 지옥 중에서도 아주 깊숙한 구렁텅이에 떨어진 오디세우스나 디오메데스보단 사정이 나아서 색욕 또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들이 가는, 지옥 중에서는 그나마 위쪽에 있는 제2옥에 위치해있다. 여기 있는 이유는 폴릭세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킬레우스의 행적을 어떻게든 안 좋은 쪽으로 엮으면 더 밑바닥으로 처넣을 수도 있을 텐데 그냥 정욕에 관련된 죄목만 물어서 2옥에 넣어둔 걸 보면 나름 대접해준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종합적으로 '''중대한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대 기준으로는' 위대한 영웅의 전형으로 숭배받은 인물'''이고, '''<일리아스>라는 문학의 주인공으로서는 격정과 아집, 성숙의 양태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저지른 행적이나 성격이 현대 기준으로 혹은 非그리스적 세계관에서 볼 때 다분히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하는 입체적 인간상으로서 특유의 매력을 뿜어내는 영웅'''이기도 하다.

4.2. 다른 영웅들과의 비교


헥토르나 아이아스를 비롯한 쟁쟁한 영웅들이 개입한 트로이 전쟁 안에서도 특출난 강함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다시 참전했을 때, 홀로 수많은 트로이군의 군단을 학살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 그리고 끝내는 트로이 최고의 명장인 헥토르까지 찔러 죽이는 성과를 올린다. 트로이의 운명이나 다름 없던 헥토르를 죽임으로서 사실상 트로이 전쟁을 반 이상 혼자 끝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일리아스에서 노장 네스토르에게 "내가 젊었을 때 알던 옛날 영웅들에 비하면 아킬레우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네스토르는 그리스 군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아르고 호 원정이나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등 크고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사건에 많이 참여한 베테랑이기에 어찌보면 '''고작 인간'''을 학살하는 아킬레우스를 낮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네스토르의 말이 절대 틀린 말이 아닌 게, 네스토르가 젊었던 시대만 해도 12과업으로 유명한 헤라클레스, 그리스 최강의 판크라티온 실력자 폴리데우케스, 약혼녀를 되찾기 위해 '''아폴론'''과 싸운 이다스,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테세우스,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한 멜레아그로스, 등 여러 영웅들이 있었고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키메라를 퇴치한 벨레로폰, 메두사와 바다 괴물을 퇴치한 페르세우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31]를 쓰러뜨린 카드모스가 있다. 이들이 싸우거나 처치한 네임드들만 해도 아킬레우스가 쓰러뜨린 적들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아킬레우스의 최고 업적이 인간 영웅 헥토르를 죽인 것이기 때문.
물론 아킬레우스의 시대에는 이미 이전 세대의 영웅들에게 괴물들이 대부분 멸종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가 신급 괴물들과 싸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아킬레우스 역시 이전 세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신들과 괴물들을 상대로 선전했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하급신인 스카만드로스에게 죽을 뻔했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하지만.

5. 그 외


  •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신격화에 이용됐다.
  • 중세부터 그를 주제로 한 비극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이 아킬레우스 외의 다른 인물들(아이아스나 아가멤논 등)을 주제로 한 데에 비해 중세부터는 제목부터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인 작품들이 많다.
  • 북구 신화지크프리트와 비슷한 면이 있다.
  • 이 영웅의 이름을 가진 고생물이 있다.
  • 신곡 지옥편에서는 2층인 색욕 지옥에서 벌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6. 관련 문서



[1] 일리아스를 시작하는 첫 구절이 "여신들이여 노래하소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를!"이며, 마무리를 짓는 마지막 구절은 "그들은 그렇게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이다. 즉, 이 거대한 서사시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헥토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2] 혹은 불[3] 이들 부부 사이에는 아킬레우스 이전에도 자식이 있었는데, 테티스가 다 이런식으로 아이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려고 했으나 인간 아기가 그것을 견뎌낼 리 만무하고 다 죽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막 태어난 마지막 아이까지 같은 짓을 하려고 하니, 펠레우스 입장에선 당연히 막을 수 밖에 없었다.[4] 그래서 2번 담그면 죽는다는 등 설정을 두기도 한다. [5] '입술이 없다'. '''어머니의 젖에 입술을 댄 적이 없는 아이'''라는 뜻.[6] 비슷한 일화로 데메테르페르세포네를 찾아 헤맬 때(노파로 변장한 상태였다) 자신을 정중히 대접한 왕가의 아이를 불멸자로 만들기 위해 불에 넣는 것을 왕비가 보는 바람에 실패한 적이 있다. 메타네이라 참고. 메타네이라의 경우를 볼 때, 원래부터 신이 하는 대로 놔두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인 듯하고, 테티스의 경우 자식들이 계속 실패해서 죽은 이유가 펠레우스의 간섭 때문이었다면 정이 떨어졌다는 뒤의 해석도 앞뒤가 맞아떨어진다.[7] 그래서 전사한 적군의 무구를 전리품으로 빼앗고 아군의 무구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8] 이름의 의미는 빠른 자/발이 빠른 여자. 보통 용모가 미형이 아닌 하피들 중 자신의 자매 셋과 함께 인간보다도 더 아름다운 형상을 지닌 네 하피 중 하나가 바로 그녀라고 한다.[9] 참고로 포다르게는 아르고 호의 원정 전승에서도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아르고 호의 원정에 참여한 이들 중 북풍의 아들들인 칼라이스와 제토스가 여행 도중에 만난 피네우스라는 노인의 식사를 빼앗던 하피들을 쫓아가 칼질하려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중도에 나타난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그들을 제지한다. 이리스는 칼리아스&제토스 형제에게서 도망치던 하피들 중 제일 뒤처졌던 포다르게가 실은 자식을 배고 있었기에 빠르게 날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그녀가 신의 아이를 뱄으니 그녀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덤으로 하피들에게 괴롭힘받고 있던 피네우스의 형벌도 이제 끝났으니 하피들이 그를 괴롭힐 일도 더는 없을 거라고 이리스가 말해준다. 포다르게의 이름 뜻이 '빠른 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리 중에서 가장 뒤처졌던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이리스가 두 형제를 막아준 덕에 포다르게는 생존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후 태어난 네 마리의 말이 발리오스와 크산토스, 그리고 이 두 말의 형제 격 말들이라고 한다. 이들 모두 명마로 잘 알려졌다고. 이후 어찌 된 일인지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포세이돈이 데리고 있었는데, 나중에 펠레우스의 결혼 선물로 준다. 참고로 포다르게가 신의 아이를 뱄다는 부분은 판본에 따라 다르다. 어떤 판본에선 칼리아스&제토스 형제의 아버지인 북풍의 아이를 뱄다고도 하고(이 경우 포다르게 죽여서 이복동생 죽이는 존속살해를 저지르지 말라고 이리스가 경고하기도 한다), 어떤 판본에선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아이를 뱄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는 포다르게의 뱃속에 있었을 때 아르고 호 원정대를 만난 적이 있는 셈[10] 작가 이하진의 카산드라에서는 이 모순을 ''''얼굴은 꽃미남인데 목 아래로는 근육질''''이라는 설정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그림체상 어차피 덩치가 그렇게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수염을 기르고 나오는 판국이라 수염 하나 없이 매끈한 얼굴은 설득력 있게 잘 살린 편.[11] 구스타브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다른 전승이 있다. 아녀자들 사이에 있는 건 같은데, '''적이 침공했단 사이렌을 울리고 아킬레우스용 군장을 놔두어''' 바로 5대기 출동하여 아킬레우스가 징집됐다.[12] 헥토르가 어떻게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안 건지는 불명이다.[13] 실제로 펠레우스는 자식 뿐 아니라 손자도 잃어 괴로워했으며 , 전쟁의 원흉이었던 메넬라오스를 '''여자 간수도 못해서 전쟁이나 일으킨 놈'''이라며 매도했다. 이후 삶의 목표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테티스와 재회했다.[14] 이런 사실 덕분에 일리아스에서의 기술에서도 그렇듯 헥토르의 군사적인 능력이 더더욱 돋보인다. 실제로도 10배가 넘는 연합군을 용장 한 명이서 먼치킨스러운 지략으로 막아낸 케이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그리고 사후, 그들이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무공을 칭송받은 건 당연하다.[15]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래도 나름 대접해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살해당했다. 그것도 네오프톨레모스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서 덤볐다가. 이래저래 아킬레우스랑 프리아모스는 상극이었다. 웃기게도 그런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누군가 하면 바로 아킬레우스가 죽인 프리아모스의 장남 헥토르의 아내였던 '''안드로마케'''다. 게다가 둘 사이에서 8~12명의 자식을 얻기까지 했다.[16] 아가멤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 네오프톨레모스는 트로이 전쟁의 참전 대가로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 약혼했다.[17] 아킬레우스 본인이 이미 죽고 없는 상태이긴 했다.[18]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카이아 청년들이 내게 준 명예의 선물'인 만큼 자신의 명예를 위한 전리품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가멤논의 행태에 빈정 상한 것. 이는 고대사회의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9]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 사람으로서 헬레네가 누구를 남편으로 선택하든, 그녀에게 큰 일이 생기면 다같이 구하러 간다는 제안을 직접 해놓고도 안 가려고 발악을 하던 오디세우스와는 경우가 다르다.[20] 이런 부분을 호메로스가 잘 썼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어쨌건 제아무리 모셔온 객장이라도 총대장이 아가멤논인 만큼 군대에서 총대장의 명에 복종하고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은 군인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전적으로 아킬레우스의 잘못이다. 하지만 꽤 강렬하게 가고 싶지 않았는데도 모셔온 객장이라는 위치가 갈등구조를 강화하고 이야기의 생명력을 강하게 만들어준다.[21] 굳이 비유하자면 18로 제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22] 일리아스에서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의 전투는 단 나흘 동안만 전개된다. 첫째 날에 아킬레우스가 삐쳐서 빠진 상황에서 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결투 등이 벌어지고, 이틀째에 헥토르가 활약해서 여러 장수들이 부상을 입는다. 사흘째에 파트로클로스가 참전했다 전사하고, 나흘째에 아킬레우스가 참전해서 헥토르를 죽인다.[23] 많은 병사들 뿐만 아니라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면서 아킬레우스 본인 또한 피해를 보았다.[24] 물론 이때는 아킬레우스의 입김으로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그리스군이 불리해지게 해달라고 하는 등, 신의 능력이 개입된 상황이다. [25] 아킬레우스만 그런 건 아니다. 오디세우스나 헥토르 정도를 제외하고 고대 그리스 영웅들은 거진 다혈질에 자기중심적이고 잔인함과 근성으로 똘똘 뭉친 깡패들이었다.[26] 당장 '정의로운 국가의 수호신'인 제우스가 신화 속에서 하는 짓을 보자. 더불어 사실 트로이아 전쟁의 발단 자체도 매우 감정적이다. 신들에게는 여신들의 자존심 경쟁 탓에, 인간들에게는 눈 맞아 야반도주한 불륜 남녀 탓에 벌어진 것이 트로이아 전쟁이다.[27] 일단 점잖은 표현이지만 '''"지금 여기서 친구 죽은 사람이 너뿐인 줄 알아? 이 전쟁통에 일일이 명복 빌다가 그냥 다 굶어 죽겠다. 다 귀한 목숨인데 네 친구 가지고만 유난 그만 떨어."'''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28] 이건 대개의 그리스 영웅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영웅 신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탁월한 인물이 성격적 결함(하마르티아)으로 인해 파멸을 맞는 비극적인 성격이 꼽힌다.[29] 정확히는 페르시아 전쟁 이전. 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 '그리스인'이란 정체성이 생겨난다. 그 이후에 쓰여진 그리스 비극에선 트로이를 야만족이라고 부른다.[30]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페르시아 침공했을 때 페르시아 측에서 그리스 놈들 좀 놀라고 급해서 연합한 거지 결코 끝까지 연합하고 있을 놈들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시되었고, 실제로 그리스 연합군도 더 큰 희생을 얻는 포지션을 강요하거나, 자기들 폴리스를 내주는 식의 전략을 짜려 하거나 하여 수틀리면 언제든지 돌아가서 자기들 폴리스나 챙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31] '''이쪽은 아예 드래곤의 형상을 한 신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