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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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muth Johannes Ludwig von Moltke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1]
(1848년 5월 25일 ~ 1916년 6월 18일)
2. 소개
일명 소(小) 몰트케. 그의 숙부인 헬무트 폰 몰트케와 구분하기 위하여, 이 사람은 소 몰트케, 그의 숙부를 대(大) 몰트케라고 흔히 칭한다. 그리고 1차 대전 때 중립국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침공하는 계획을 짜고 영국의 참전을 우려해 이를 반대하는 카이저마저도 무시하여 벨기에 학살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전쟁범죄자이기도 하다.
3. 생애
제1차 세계 대전 초기 참모총장이었고, 슐리펜 계획을 본인 멋대로 수정하여 계획을 진행한 사람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러시아 제국의 동프로이센 침입도 고려해야 하고, 그 전에 슐리펜 계획도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본질적으로 허점이 많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소 몰트케는 그 이전부터 슐리펜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폭 수정시켜 버렸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슐리펜 계획의 우익과 좌익의 병력 비율은 7:1이었는데, 그것을 3:1로 변경하였고, 1, 2군을 각각 18개에서 13개 군단으로 축소하였다... 게다가 러시아의 총동원이 의외로 빠르자 동부전선에도 우익에서 5개 군단을 빼내 우익을 더 축소시킴은 물론, 후방에 있던 6개의 예비병력을 좌익 지원 위치로 이동시키면서, 슐리펜 계획에서 포위의 핵심인 우익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무리수를 저질렀다.[2]
이렇게 악화된 조건에도 불구하고 40일이라는 비현실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강대국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동시에 동부에서 러시아까지 항복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급기야 이에 경악한 빌헬름 2세는 그를 즉시 참모총장에서 해임하고, 에리히 폰 팔켄하인 원수를 후임 참모총장으로 임명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1916년 사망하여 1차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1차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일 제국군이 지나친 낙관주의로 일관했기 때문이지만, 그의 슐리펜 계획 수정도 전쟁 수행에 악영향을 끼쳤다.[3]
4. 기타
인터넷에서 몰트케란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1) 장발에 수염없는 깔끔한 장군과 2) 대머리에 콧수염 달린 장군이 동시에 나와서 헷갈리기 쉬운데, 본 항목에 나오는 소(小) 몰트케는 후자의 인물이다. 그런데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이 2000년대 초 제작한 8부작 전쟁사 다큐멘터리 <전쟁과 문명>(War and Civilization)의 6부에서도[4] 대 몰트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소몰트케의 사진을 넣는 실수를 저질렀다.[5] 은근히 헷갈리기 쉬운 듯.
[1] 외래어 표기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폰몰트케'가 되지만 오랫동안 '몰트케'로 알려졌기에 관용적 예외가 인정된다.[2] 융커들이 자신들의 심장인 동프로이센을 지키겠다고 프랑스 전선에서의 좌우익 균형을 깨버린 결과가 바로 1차대전의 단기 결전을 무산시키고 참호전 양상으로 변화시킨 마른 전투다.[3] 총력전 양상으로 확대된 국민전쟁의 특징을 간과하고, 대 몰트케의 중심타격이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해 받아들인 결과다. 이러한 문제는 보불전쟁 때도 있었지만 당시의 대승리에 도취되어 이를 간과했다.[4] 영국의 원로 전쟁사학자 존 키건도 출연했다.[5] 링크된 영상의 34~35분 정도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