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화
Cinema of the United Kingdom
1. 개요
영국의 영화 산업에 대하여 서술한 문서.
2. 역사
2.1. 시작 및 여명기
에디슨이 나왔던 미국이 같은 영어권 혈맹국이며, 영화를 발명한 프랑스의 옆나라다 보니, 영국 역시 거의 동시기에 영화가 들어왔다. 영상물로만 따지자면 프랑스인인 루이스 르 프린스가 영국 처가집에 찍은 영상이 세계 최초의 영상으로 남아있을 정도. 다만 영국인이 만든 첫 영국 영화로는 로버트 W. 폴의 Incident at Clovelly Cottage를 꼽는다. [1] 일상을 다루는 영상물을 거쳐, 극영화가 등장했는데 당연하게도 영국 극문화 전통이 영화로 많이 수입되었다.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를 각색한 영화들이 많았다고. [2]
이미 거대 영화 시장을 형성한 고몽 같은 프랑스 회사들이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윌 베이커 주도하에 영국 영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일링 스튜디오가 설립된다. 일링 스튜디오는 게인즈버러 스튜디오나 고몽에서 만든 이즐링턴 스튜디오와 함께 1930년대 이어질 영국 영화의 황금기를 열어젖혔다.
고전기 영국 스튜디오 특징으로는 미국과 달리 스튜디오별로 장르 전담이 명확했다는 점을 들수 있다. 게인즈버러 스튜디오는 멜로 드라마로, 일링 스튜디오는 범죄 코미디 전담, 이런 식으로 명확했다. 그 유명한 해머 영화도 공포 영화 전담으로 유명해진 제작사다.
한편 이 시기부터 찰리 채플린이라던가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유명 영국 영화인들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3]
2.2. 1930년대~1940년대: 짧은 전성기와 위기
영국 영화의 전성기는 보통 1930년 초중반으로 꼽힌다. 우선 히치콕이 너무 많이 안 사나이, 39계단, 젊음과 순수 같은 서스펜스 영화로 영국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편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 독일의 탄압으로 영화인들이 대거 해외로 망명을 했는데, 이때 영국에 정착한 해외 영화인들이 영화 영화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헝가리 출신 알렉산더 코르다는 감독과 유명 영화 감독들의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역시 헝가리 유대인인 에머릭 프레스버거는 영국인 마이클 파웰과 함께 아처스 스튜디오를 결성해 기존 스튜디오들과 차별화되는 화려한 세트와 로맨티시즘으로 가득찬 영화를 만들었다. [4] 스타들도 대거 등장한 시기도 했다.
한편 존 그리어슨 같은 초기 다큐멘터리 영화 흐름이 발전해 영국식 사실주의 전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성장한 영국 영화계가 미국 영화계로 흡수되는 상황 때문에 영국 영화계는 다시 위기를 맞이한다.1937년엔 그 많던 스튜디오가 1/32로 줄었을 정도다. 남아있던 스튜디오들이 버티는 와중에 히치콕은 할리우드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과 계약해 영국 영화계를 떠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이 참전하자, 영국 스튜디오 역시 전시 선전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이 점을 활용해 걸작을 찍은 감독도 있다. 훗날 영국식 대하 영화로 유명해지는 데이비드 린은 노엘 카워드와 협업으로 전시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2.3. 195-60년대: 전후 부흥기와 영국식 사실주의의 등장
전후가 되면서 영국 영화계도 사정이 나아진다. 일단 꾸준히 활동해왔던 감독들이 전후 걸작들을 내놓았다. 1950년대 해머 영화사, 1960년대 키친 싱크-프리 시네마로 대표되는 영화 조류로 유명해졌다. [5]
2.4. 197-80년대: 암흑기
영국 영화 최악의 암흑기
가장 큰 이유로는 미국 자본이 대거 철수를 해버려 투자 받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 결과 195-60년대에 데뷔한 영국 감독이나 배우들 모두 영국을 떠나 할리우드로 활동무대를 옮기거나 저예산으로 허덕여야 했다. 그나마 위커맨이라던가 니콜라스 뢰그, 켄 러셀, 스탠리 큐브릭,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조셉 로지의 사랑의 메신저, 마이클 호지스의 겟 카터, 몬티 파이선 시리즈가 두각을 보였지만 영국 영화의 침체를 일으키지 못했다.
때문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넘어간 케이스를 제외한) 194-50년대생 영국 감독이나 배우들 커리어를 보면, 1970년대부터 갑자기 공백기가 생기거나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되는 다국적 B급 호러 영화, TV 드라마/영화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존 허트나 마이크 리, 켄 로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6] . 영화사가들도 1970년대 영국 영화를 언급할 때는 '''왠만한 미국 TV 드라마보다도 돈이 없던 시절''' 라고 언급한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은 이탈리아로 넘어가 싸구려 호러 영화를 찍어야 할 정도였다. 피터 스트릭랜드의 버베리언 스튜디오는 당시 영국 영화인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1980년에 이르면 영국 영화 제작 편수는 ''31편'''으로 줄어들고 다음해인 1981년엔 '''24편'''으로 줄어든다.
1980년 갱스터 영화 롱 굿 프라이데이가 흥행하며 그나마 영국 배우들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5. 1990년대~현재: 회복 및 재도약
3. 영화 시장
2015년 기준으로 일본 영화 시장을 제치고 '''세계 3위'''의 영화 시장으로 '''복귀'''했었지만 현재는 다시 밀려 5위이다. 박스오피스 마켓 기준 20억 달러로 중국 영화 시장에 밀려 3위였던 일본 영화 시장의 19억 달러를 제친 것. 영국의 영화관 스크린 수 역시 일본 영화 시장의 스크린 수보다 많은 788개 지점 4,194개 스크린을 나타내고 있다. 링크 2016년에는 미국 영화 / 중국 영화 / 일본 영화 / 인도 영화 시장에 이어서 '''세계 5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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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AA(미국영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영국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중국 영화, 일본 영화 시장에 이어서 인도 영화, 한국 영화, 프랑스 영화 시장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위의 그래픽에서는 북미 영화 시장(114억 달러)이 따로 표시되어있지 않은데, MPAA가 미국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만 표로 따로 나온 것이다.
영화관 시장에서 영국은 상위 3개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체인 오데온시네마, 씨네월드, 뷰 시네마스 3사의 스크린 점유율이 70%를 넘는다. 한국의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개 체인이 전체 스크린 수의 93%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덜하지만, 그래도 '''영국 역시 굉장한 과점 시장'''인 것. 4위에서 6위까지를 더 합치면 80%까지 달성한다. 영국 영화 시장의 절대 1위 영화관 사업체인 오데온시네마는 중국 다롄완다그룹의 완다시네마가 자회사인 AMC 시어터스를 통해 인수하여 2017년 12월 현재 '''중국계 기업'''이다.
영화 시장은 1960년대에 연 20~30%씩 급성장하여 일본 영화판을 제치고 '''세계 2위'''였다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굉장한 침체기였다. 영국 자국 영화가 영어를 기반으로 제작되는데, 영어 기반 영화로는 단연 미국 영화, 즉 할리우드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보니, 영국 영화들은 실컷 만들어서 미국 영화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는 겨우겨우 사정이 나아져 TV 드라마로 갔던 인력들이 다시 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1990년대까지는 영화관 투자도 느려서 일본 영화 시장한테는 물론 한 때 프랑스 영화 시장보다도 작아져버린 바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해리포터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영국 영화시장도 30년에 가까운 침체기를 벗어던지고 다시 급성장하여 2015년 연말에 '''일본마저 제치고 세계 3위로 복귀했다'''. 지금은 중국 영화 시장을 제치고 리즈시절인 '''세계 2위'''까지 올라가기는 힘들겠지만.
결국 2016년에는 일본에서만 2억 달러를 쓸어담은 너의 이름은.의 기세를 탄 일본 영화 시장에 밀려서 세계 3위 자리를 내주고 인도 영화 시장한테까지 밀려서 세계 5위로 떨어졌다.
전 세계 영화 통계에서 영국 영화시장은 아일랜드와 몰타의 영화 시장을 포괄한 영국-아일랜드-몰타 시장을 가리킨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영화시장을 세르비아 영화시장으로 축약시켜 표현하는데, 영국 영화시장 역시 영국-아일랜드-몰타 시장을 포괄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영국 영화시장'''이라는 표현 하나로 표시하는 중이다.
4. 영국의 영화
연극과 공연, 음반, 신문, 방송 등 '''미디어 산업 전반이 크게 발달'''한 영국 문화 시장답게 영화 감독과 배우, 성우, 마케팅 분야 인력, 심지어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구축하며 '''금융시장도 크게 발달'''한 영국에서 '''사람과 돈'''을 구하는 일은 매우 쉽다. 분명히 이러면 킬러 콘텐츠들이 수십개씩 쏟아져나와야하지만... 이 유용한 인력과 자본들이 죄다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 영화판으로 블랙홀마냥 빨려들어가는 것이 문제.
영국의 영화 시장은 오히려 미국 영화에 빨려들어가고 남은 것들만 만든다는 인식이 영국 내에서도 강해서[7] 2010년대가 되기까지 수십년간 대형 자본을 들여서[8] 만든 영화가 잘 나오지 못했다. 어떻게든 산업을 안정시키기 위해 007 시리즈, 킹스맨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을 미국-영국 합작으로 만든다거나, 영국-호주 합작, 심지어 영국-일본 합작 영화도 만들고,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개발하여 수출하는 등 여러가지로 노력은 하고 있다. 영국의 문화 기반 자체가 탄탄하다보니 '''적은 비용과 적은 시간을 들여서 가성비 높은 영화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데에는 가히 천재적인 수준'''이다.
특이한 점은 보통 영국 영화를 제작하면 영국 영화 시장에서 먼저 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영화 및 한국 영화 시장에 먼저 개봉을 시키고 영국 본국에는 나중에 개봉'''하는 것이 정착해있다. 왜 뜬금없이 한국이 나오냐면, 보통 한국 영화사들은 미국 영화시장에 개봉한 작품을 사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국 영화다 보니 미국 영화를 수입하는 것보다 비용도 싸게 들고, 영국 영화사들 역시 한국 영화 시장이 '''세계 6위'''나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정작 지들 본국에 개봉하기 전에 베타테스트 형식으로 한국에서 개봉시켜 보는 영화가 굉장히 많다. 애니메이션 영화나 공포 영화는 미국 영화 시장과 한국 영화 시장에 먼저 개봉한 후에 영국 본토에서 개봉하는 것이 2011년부터 정착해 있다.
바다 너머 프랑스 영화계하고도 협업이 많다. 프랑스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카날은 영국 영화계에서도 큰 손으로 유명하다.
이외 영국 영화 협회라는 국영 영화 기관으로 유명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더불어 시네마테크에 큰 영향을 끼쳤던 곳. 한국영상자료원도 이 영국 영화 협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만 2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 영화는 은근 프랑스 영화 평론가들에게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앨프리드 히치콕과 대담 도중 '''영화가 탄생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시간의 시험과 공간의 테스트를 거치고 살아남은 감독이 찰리 채플린과 당신 밖에 없다는 사실은 다소 기이하기까지 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디스하고 장 뤽 고다르도 비슷한 이유로 영국 영화를 대놓고 무시했을 정도. 물론 반론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국 문화에 깊숙히 뿌리 박은 극 문화가 영화 매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평이 의외로 흔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많이 수그러든 편이지만.
영국 영화만의 특성을 꼽으라면 사회파 사실주의 경향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영국적인 개성을 내세워 유명해진 영국 영화들은 개별차는 있지만 사회파 사실주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에드가 라이트 역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장르 영화와 결합하면서 유명해졌다.
또한 영국 영화계의 특징으로, 상류 계층 위주의 엘리트주의가 강하다. 이른바 '금수저' 위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영국의 연극계에서 비롯한 것. 연극계부터가 이런 엘리트주의가 강하고, 이것이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당수가 상류층 집안 출신이고 어린 시절부터 명문 학교에서 연기와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엘리트들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층 계급 출신의 배우들은 아예 캐스팅의 기회도 잡기 힘들 정도이다.[9] 그래서 하층 계급 출신의 성공한 영국 배우들은 대부분 이런 엘리트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한 미국 영화 등의 다른 국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예가 헬렌 미렌, 게리 올드만 등이다.
4.1. 공포 영화 강국
그야말로 '''가성비 높은 영화에 특화'''된 나라다 보니, 공포 영화에서 한 끗발 하는 국가이다. 해머 영화사가 이 나라 스튜디오고 47 미터와 같은 작품이 한국에도 개봉하여 꽤 인기를 끈 영국의 공포 영화이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제인 도, 국가의 탄생, 쳐다보지 마라 등 유명 공포영화들이 엄청나게 많다.
4.2. 유명 영화 감독
영국 영화계 중심으로 활동해서 유명해진 감독으로는 파웰과 프레스버거, 마이크 리, 켄 로치, 피터 그리너웨이, 린 램지, 에드거 라이트, 마이클 윈터바텀, 안드레아 아놀드, 앤드류 헤이가 있다.
4.3. 유명 영화 배우
- 게리 올드만
- 나오미 와츠
- 나오미 해리스
- 니콜라스 홀트
- 다니엘 래드클리프
- 다니엘 크레이그
- 데이비드 테넌트
- 데이빗 듈리스
- 데이지 리들리
- 도널 글리슨
- 로버트 패틴슨
- 루크 에반스
- 루퍼트 그린트
- 리처드 아미티지
- 리암 니슨
- 릴리 제임스
- 마이클 갬본
- 마이클 케인
- 마크 스트롱
- 마틴 프리먼
- 맷 스미스
- 밥 호스킨스
- 베네딕트 컴버배치
- 브렌단 글리슨
- 빌 나이
- 사이먼 페그
- 샘 라일리
- 실베스터 맥코이
- 안소니 홉킨스
- 알란 릭맨
- 앤드류 가필드
- 앤드류 스콧
- 에디 레드메인
- 엠마 왓슨
- 엠마 톰슨
- 오드리 헵번
- 올랜도 블룸
- 올리비아 핫세
- 윌 폴터
- 이안 맥켈런
- 이완 맥그리거
- 제나 콜먼
- 제이슨 스타뎀 - 영국에서는 코크니 억양으로 꽤 유명하다.
- 제임스 매커보이
- 조디 휘태커
- 조지 맥케이
- 주드 로
- 주디 덴치
- 줄리 앤드류스
- 찰리 채플린
- 카렌 길런
- 카야 스코델라리오
- 케네스 브래너
- 크리스토퍼 리
- 키이라 나이틀리
- 킬리언 머피
- 콜린 퍼스
- 크리스찬 베일
-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 태런 에저튼
- 토마스 브로디 생스터
- 톰 히들스턴
- 톰 하디
- 톰 홀랜드
- 틸다 스윈튼
- 패트릭 스튜어트
- 피터 카팔디
- 헨리 카빌
- 헬레나 본햄 카터
- 헬렌 미렌
- 휴 그랜트
5. 영화 목록
영화 관련 정보 참조.
6. 영화관
- 오데온시네마: 영국 아일랜드 영국과 아일랜드를 담당하는 영국 영화관 최대 체인. 1930년에 세워졌다. 완다그룹이 돈을 부어 AMC 시어터스에 인수되었다. 이로써 중국계 영화관이 유럽까지 들어가게 된 셈으로, 완다가 인수한 이후 오데온에서 중국 영화를 자주 상영한다.
- 씨네월드: 홈페이지 영국 2위의 영화관 체인.
- 뷰 시네마스: 홈페이지 영국 3위의 영화관 체인.
- 쇼케이스 시네마스: 홈페이지: 영국 4위의 영화관 체인. 미국의 내셔널 어뮤즈먼트, 즉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모회사가 영국에 낸 자회사이다.
- 픽처하우스: 홈페이지 영국 영화 시장에서는 5위로 꽤나 메이저 플레이어 행세를 하지만 영국 전체에 23개 지점밖에 없다.
- 엠파이어 시네마: 홈페이지 영국 영화 시장 6위.
[1] 뤼미에르 형제의 Workers Leaving the Lumière Factory와 공개 시기가 몇개월 차이나지 않는데, 연계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게 좋다.[2] 셰익스피어 무성 영화 같은 경우, 남아있던 필름을 가지고 만든 무성시대의 셰익스피어 라는 제목의 앤솔로지 영화로 일부 확인 가능하다. 다만 영국 영화 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다른 나라 셰익스피어 무성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3] 다만 채플린은 배우 데뷔 전 조금 유명해지자마자 할리우드 진출을 해버려, 영국 영화와 큰 연이 없다. 말년에 매카시즘 때문에 돌아와 작업한게 전부.[4] 다만 기록상으로는 아처스 스튜디오는 그 애매모호한 장르 때문에 당시 영국 영화계에서는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5] 유명 감독으로는 토니 리처드슨과 존 슐레진저, 린지 앤더슨이 있다. 현재는 이 시절 데뷔했던 켄 로치가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6] 문서가 등록되어 있진 않지만, 대니 보일 등 영국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알란 클라크 역시 안정된 제작환경 때문에 방송국에 눌러앉아서 작품 활동을 했을 정도다.[7] 사실 이건 영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어권 국가들도 그렇다. 오히려 영국은 이 정도로나마 버티고 있는거지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영화계는 그야말로 그나마 있던 인재들도 흡수되어 초토화된 상태.[8] 데이비드 린이 대형 자본을 들인 영국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대표적인 감독이다. 하지만 린 역시 라이언의 딸 이후 1970년대 영국 영화 침체로 반은퇴 상태에 빠져든다.[9] 노동 계급 배우나 일반인을 캐스팅하는 켄 로치와 안드레아 아놀드는 그 점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