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귀달
洪貴達
1438년(세종 20) ~ 1504년(연산군 10)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부림(缶林),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이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홍귀달은 1438년 경상도 함창현 양적리(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여물리)에서 아버지 홍효손(洪孝孫)과 어머니 경주 노씨 노집(盧緝)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1459년(세조 5) 식년시 진사시에 급제하고#, 1461년(세조 7) 별시 문과에 3등 1위로 급제하였다.# 그후 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조정랑에 제수되었다. 계속해서 일반적인 신하들의 일반적인 승진을 계속하는데, 성종에게 밤에도 경연을 하라고 간한 신하이다. 이후, 홍문관직제학, 동부승지가 되는데, 동부승지가 되면서 로비를 받고 대표로 말을 하다가 도승지인 현석규에게 면박당한 사람이다.
이후에도 승진을 계속하다 무오사화 당시 연산군의 폐단을 지적한 상소를 쓰다 좌천되었고, 갑자사화 때는 경기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손녀딸에게 입궐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입궐시키지 않고 해명성 글을 올리는데, 이것이 갑자사화의 시발점이 되어 결국 유배 도중 교수형에 처해진다. 두 사화에 모두 휘말렸으니, 안습.
다행히 뒤에 신원되었다.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아니하고 연산군에게 간언을 하는 등 성품이 강직하였다. 글을 짓는 솜씨도 뛰어났다고 전하는데 김시습이 칭찬한 일화가 패관잡기에 전한다.
1438년(세종 20) ~ 1504년(연산군 10)
1. 소개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부림(缶林),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이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2. 벼슬생활
홍귀달은 1438년 경상도 함창현 양적리(현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여물리)에서 아버지 홍효손(洪孝孫)과 어머니 경주 노씨 노집(盧緝)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1459년(세조 5) 식년시 진사시에 급제하고#, 1461년(세조 7) 별시 문과에 3등 1위로 급제하였다.# 그후 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조정랑에 제수되었다. 계속해서 일반적인 신하들의 일반적인 승진을 계속하는데, 성종에게 밤에도 경연을 하라고 간한 신하이다. 이후, 홍문관직제학, 동부승지가 되는데, 동부승지가 되면서 로비를 받고 대표로 말을 하다가 도승지인 현석규에게 면박당한 사람이다.
이후에도 승진을 계속하다 무오사화 당시 연산군의 폐단을 지적한 상소를 쓰다 좌천되었고, 갑자사화 때는 경기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손녀딸에게 입궐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입궐시키지 않고 해명성 글을 올리는데, 이것이 갑자사화의 시발점이 되어 결국 유배 도중 교수형에 처해진다. 두 사화에 모두 휘말렸으니, 안습.
다행히 뒤에 신원되었다.
3. 평가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아니하고 연산군에게 간언을 하는 등 성품이 강직하였다. 글을 짓는 솜씨도 뛰어났다고 전하는데 김시습이 칭찬한 일화가 패관잡기에 전한다.
김시습이 영동(嶺東)을 떠돌아 양양부(襄陽府)에 이르러 누각에 쓰인 시를 읽고 욕하기를, "어떤 놈이 이딴 시를 지었는고."라하고는, 읽을 때마다 욕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읽다가 한 시에 이르러서는 말하기를 "이 녀석의 것은 조금 낫구먼." 하였다. 그 이름을 보고는 "과연 귀달(貴達)의 시로다." 하였는데 그것은 함허(涵虛) 홍공(洪公)을 말한 것이다.
金時習遊嶺東。至襄陽府。讀樓題罵曰。何物狗子作此詩乎。每讀罵不絶聲。讀至一篇曰。此漢稍可。及見其名曰。果貴達之作也。蓋謂涵虛洪公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