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 남분 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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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南大塚 南墳 銀冠.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의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순은제 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6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7.2㎝, 머리띠(대륜) 너비 3.2㎝, 지름 16.6㎝.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은관으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은관은 남분의 목관 밖에 있던 부장품 수장궤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넓적한 은판을 이용하여 중앙부에 윗변이 2개의 원호로 된 사다리꼴 장식과 너비 약 3cm의 대륜(臺輪)을 도려내어 만들었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3개의 가지가 있는 형식으로 기존 신라시대 관모(冠帽)에서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양식이어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금동관이 경상북도 의성 탑리고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 고대 한민족의 정교한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옛 신라시대 은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1978년 12월 7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1. 개요
皇南大塚 南墳 銀冠.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황남대총의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순은제 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63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높이 17.2㎝, 머리띠(대륜) 너비 3.2㎝, 지름 16.6㎝.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은관으로, 제작 연대는 대략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서기 300~400년대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제작되어 황남대총에 함께 묻힌 황남대총 북분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황남대총 북분 은잔,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등 7만여점에 이르는 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은관은 남분의 목관 밖에 있던 부장품 수장궤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넓적한 은판을 이용하여 중앙부에 윗변이 2개의 원호로 된 사다리꼴 장식과 너비 약 3cm의 대륜(臺輪)을 도려내어 만들었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3개의 가지가 있는 형식으로 기존 신라시대 관모(冠帽)에서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양식이어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금동관이 경상북도 의성 탑리고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 고대 한민족의 정교한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옛 신라시대 은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1978년 12월 7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황남대총 남분 은관
- 두산백과 : 황남대총 남분 은관
- 한국어 위키백과 : 황남대총 남분 은관
- 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 황남대총 남쪽무덤 은관
- e뮤지엄 : 황남대총 남분 은관
4. 보물 제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皇南大塚南墳 銀冠)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은관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은관은 남쪽 무덤 널(관) 밖 머리쪽 껴묻거리 구덩이(부장갱)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높이 17.2㎝, 머리띠(대륜) 너비 3.2㎝, 지름 16.6㎝이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3개의 가지가 있는 모습으로 신라시대 관모(冠帽)에서는 보기힘든 독특한 양식이다. 중앙가지는 위에 돌기가 있고, 활 모양으로 휘어지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마름모 형태의 은판을 붙였다. 좌우에는 반달형 은판을 붙이고, 바깥쪽을 일정한 폭으로 오려낸 다음 하나하나 꼬아서 새털 모양을 만들었다. 새털 모양의 가지는 신라 금관 형식에는 없었던 것으로서, 의성 탑리 무덤에서 이와 유사한 관모가 발견된 적이 있지만 경주지역에서는 처음 발견된 예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