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1. 개요
韓民族 / Ethnic Koreans
'''한민족(韓民族)'''은 한국인(남한인, 북한인 포함)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한반도의 주류 민족이다.
총 8,300만명으로 추산되며, 대한민국에 약 5,200여만명, 북한에 약 2500여만명, 그 외 미국에 약 250여만명, 중국에 약 200여만명, 일본에 약 100여만명 그외에 세계 각지에 진출해있는 수 많은 동포와 교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 명칭
한국이나 대만, 홍콩 특별행정구, 마카오 특별행정구 등 지역에서는 '''한민족(韓民族)'''이라 주로 부르고, 중국, 일본, 북한, 베트남 등에서는 주로 '''조선민족(朝鮮民族)'''이라 부른다. 신경보(新京報) 물론 중국 본토에서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바이두백과: 한민족의 우월주의 (항일관련)
중국에서는 한민족을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조선족은 '중국조선족'으로만 부른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바이두백과: 중국의 소수민족 - 조선족
2.1. 중국어 위키백과의 한민족 표제어 관련 논란
한편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한민족 문서의 표제어를 '조선족'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논란이 있다. 조선족(朝鲜族)이라는 표현은 1949년 이후에야 생긴 표현으로, 중국어로도 십중팔구 중국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조선족에 절대 포함될 수 없다. 한국인과 조선족 두 개 집단을 엮으려면 중국어로도 한민족(韩民族)이나 조선민족(朝鲜民族)으로 표기해야 옳다. 자세한 내용은 중국어 위키백과의 논란 문단을 참조.
3. 상세
대한민국에서 실질적인 남한인과 북한인, 한국계를 모두 통틀어 한민족이라 한다. 한인이란 표현은 더 포괄적으로 쓰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나간 한국인들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인다.
영어로는 일단 '''Ethnic Koreans'''이다. 그리고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한국인과 한국계를 통틀어 Koreans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는 다른 민족이나 국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영어의 국적을 나타내는 명사는 언어도 되고 혈통을 나타내는 형용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위 항목으로 Overseas Koreans 또는 Korean diaspora(재외동포)이 있긴 하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던 예맥족과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하던 한(韓)인이 결합하여 탄생한 민족이다.
한국인은 만주족(정확히는 여진족), 일본인과 가장 유전적으로 가깝다고 한다.[1][2]
100%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민족은 만주족(정확히는 여진족)과 일본인이고, 그 다음이 사모예드족 > 시버족 > 코랴크인 > 다우르족[3] > 몽골인 > 한족(북중국인) > 이텔멘족 > 한족(남중국인) 순으로 나타난다.[4]
다만 몽골인과 중국 한족도 유전적으로 한국인과 매우 가까운 민족들이다. 실제로 한국인과 일본인과 중국 한족의 유전적 차이는 전체 유전적 다양성의 1% 미만으로, 이는 다른 집단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작은 차이이다.[5]
또한 만주족, 사모예드족, 시버족, 코랴크인, 디우르족 등은 현재 주류 민족으로서 존재하는 국가가 없는 소수 민족들이다. 그렇기에 현대에 존재하는 국가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본인, 몽골인, 중국 한족만이 남는다.
한국인은 남중국인(남방 한족)보다 북중국인(북방 한족)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사실 북과 남으로 나누기는 했어도 절반으로 딱 나눈 게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로 보면 남중국인(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은 역사적으로 존재감이 없던 지역이었고(역사적인 중국의 주요 도시는 전부 이북에 있다), 이북 지역에서 북중국인이 매우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명확히 분류하고 비교하는 건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조선 민족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이는 고려라는 명칭이 조선 중기까지도 계속 남아있었던 것과 같은 익숙함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고, 현대에도 북한이 본인들을 정식으로 조선이라 칭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혹은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데, 정작 대만(중화민국)은 한(韓)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韓)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의 요동처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한민족의 거주지역을 뜻하는 관용적인 말로 쓰였고 그들도 그렇게 인식한 바 있다.(예: 정한론) 또한 삼한을 마한, 진한, 변한으로 칭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시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에서 삼한이란 것은 언제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말하는 용어였지 최초 의미인 마한, 진한, 변한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한, 진한, 변한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중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는 이를 한(韓)전이라고 쓰고 있지 삼한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삼국을 삼한으로 칭하는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수나라, 당나라의 역사기록에도 삼국을 삼한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구려 왕족 출신인 고현의 묘지명에서도 스스로를 요동 삼한인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고구려에서도 삼한을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에서 삼한공신을 책봉하거나 후일 조선이 대한제국을 자칭하면서 생각했던 한도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니라 삼국의 삼한이다.
당시의 시점으로 국호를 '고작 한반도 남부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에서 따오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어서 그냥 따온 게 아니라, 신라가 삼한일통에서 외쳤던 그 삼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였지 진한, 마한, 변한이 아니었다. 고구려는 마한, 백제는 변한, 신라는 진한으로 놓기도 하므로 더더욱. 그리고 중국의 영토 사관 비슷한 생각마냥 한반도 남부에 근거한 정치 조직들만이 현대 한국인의 혈통적, 언어적, 문화적 근원에 있다는 건 아주 무리한 주장이다. 진한을 구성했던 구성원들에 북방에서 온 이주민들이 아주 많은 기여를 했다. 삼한이 한국사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도 있으며 예맥과 대비되는 종족 명칭으로 통칭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오키나와의 슈리성 만국진량의 종(1458년)에 적힌 명문(銘文)을 본다면 '류큐국은 남해의 승지에 위치하여 삼한(三韓=조선)의 빼어남을 모아 놓았고, 대명(大明=명나라)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일역(日域=일본)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류큐는 이 한가운데에 솟아난 봉래도이다. 선박을 통해 만국의 가교가 되고, 이국의 산물과 보배가 온 나라에 가득하다'라고 되어있다.
4. 인구
약 8,360만 명[6] 수준으로 추정된다. 숫자 자체는 20세기 들어 크게 폭증하기는 했으나 전 세계적인 인구비율로 보면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20세기에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미국, 유럽 같이 일찍이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조금씩 안정되어가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베이비붐 시대를 열었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보다 약 2배 인구가 많은 이집트, 필리핀 같은 경우 1960년도 당시 한국보다 인구가 겨우 2~3백만 명가량 많은 수치였고, 역시 한국보다 약 1.5배 이상 많은 이란, 콩고민주공화국은 오히려 인구가 더 적었다. 한국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인 56-62년도를 포함하여 71년도까지 출생아 100만 명 시대를 유지한 후에 산아제한정책으로 출산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2000년대부터 세계 최저급을 달리는 데 반해 같은 시기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출생률을 가지고 있던 국가들의 대부분은 훨씬 더 오랫동안 유지했거나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아프리카의 경우). 예를 들어 2020년 기준 5천만을 넘긴 케냐의 경우 1960년대에 800만 명으로 당시 한국 인구인 2500만과 비교해보면 3분의 1도 안 되었다.
한국의 21세기 중반 이후로는 대한민국의 저출산과 북한의 경제난[7] 때문에 인구 증가가 하락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래는 체류자와 한국 국적자, 한국계[8] 를 통합한 것이다. 한국의 인구에는 해외에 체류하는 사람이 중복될 수 있다.[9]
5. 역사적 원류
지금은 통합된 개념으로서 '''한민족'''이라는 용어가 쓰이지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 갈래(삼한, 예맥, 부여)의 원류"[10] 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11]
물론 이 외에도 유입된 사람들이 있었을 테지만,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지면 극소수에 그쳤고 대체적으로 이 계통의 집단(예맥과 한(韓))이 인구면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주류'였다고 볼 수 있다.
맥족 계통의 고구려는 예족인 옥저와 동예 그리고 부여 등을 복속시키고 민족적 동화를 이루어 고구려족을 형성했다.
이후 역사의 진행에 따라 남방의 백제에 의해 마한이 병합됐으며, 진한에서 기원한 신라가 당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이후 대동강 일대 이남 지역에서 세 종족의 융합이 진행됐다.[12] 이후 늦어도 고려 원간섭기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형성이 완성된것으로 보인다. 한편 압록강 이북에 살던 예맥인들은 발해의 주 구성원이였지만 발해가 멸망한 이후로 피지배층으로 전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해부흥운동이 일어난것을 보면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요나라와 금나라의 탄압과 이주등으로 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탄압에도 조선 초기까지 랴오닝 반도 일대에 상당수 살고 있었는데, 끝내 요동이 명나라에 복속되면서 이들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한족에 동화되었고 이후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만주족에 동화되었으며 현재는 만주족 대부분이 한족에 거의 동화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다시 한족에 동화되었다.
한(韓)족과 예맥(濊貊)족은 광개토대왕릉비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오래 전에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섞여 살아온 여러 민족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그 명분을 확립하기 위하여 삼한일통을 표방했으며, '''후대의 국가들은 이를 계승해 현재는 단일민족국가가 되었다'''."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2] 일본인(야마토 민족)은 일본 열도 선주민이라 할 수 있는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인보다 한국인과 훨씬 가까웠고, 일본인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러스터에 속한다고 한다.[3] 거란족(요나라를 새운 그 민족)의 후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4] ##[5] #[6] https://ko.wikipedia.org/wiki/한국인[7] 북한의 경우, 단순한 경제악화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인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저출산율을 벌써부터 기록하고 있다. 이미 2004년 기준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을 정도로 이쪽의 출산율과 인구비율 문제도 꽤나 심각한 수준이다.[8] 한국계 미국인, 한국계 중국인, 한국계 일본인 등.[9] 보통 90일 이상 체류하면 체류자에 포함된다.[10] 부여는 예맥을 구성하는 두 계통의 집단들 중에서 '예족'과 연관이 깊지만, 일단은 별개로 보자.[11] 좀 더 세밀하게 나누면 한(韓)족, 예족, 맥족, 부여족, 탐라족, 우산족 등등이 있다.[12] 다만 언어적인 융합은 이보다 훨씬 전에 진행된것으로 보인다. 양서같은 중국 사서기록이나 일본서기에 남겨진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통한다고 되어있으며 백제와 신라와도 언어가 통한다고 나와있다.[13] 부여와 동예는 예족, 한반도 북부는 고구려의 맥족, 한반도 중남부는 한인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