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률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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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鍾律
1909년 9월 3일 ~ 1972년 1월 21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2. 생애


1909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남대문상업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1935년 규슈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만주국 대동학원(제1부 제5기)을 거친 뒤 만주국에서 경제관료로 근무하였다.
이 당시 친일잡지 <재만조선인통신>에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블럭을 만들어 아시아 민족을 해방시키자'고 역설하는 기고를 하였다. 친일 청년운동조직인 선계자흥회의 연락간사, 만주국 협화회 수도계림분회의 경제부장, 신징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1] 간사를 지내면서 친일조직에서 활동했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연희대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다시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60년 5월부터 12월까지 관선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63년 2월부터 12월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1966년 12월부터 1967년 10월까지 무임소 장관을, 1967년 10월부터 1968년 5월까지 체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8년 5월부터 1969년 10월까지 다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회의원 임기 중 별세했다.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의 만주(관료) 부문에 등재되었다.


[1] 동만주 일대 항일유격대를 귀순 투항시키기 위해 특별공작을 벌이는 부대를 후원하기 위한 친일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