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대학

 



'''九州大学(きゅうしゅう だ い が く'''
'''규슈대학'''
'''Kyushu University'''
[image]
'''모토'''
'''世界へ飛躍する九大新世紀'''
세계로 비약하는 규슈대학의 신 세기

'''국가'''

'''분류'''
국립대학
'''설립'''
1911년
'''현 총장'''
구보 치하루 (久保 千春)
'''위치'''
규슈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캠퍼스'''
'''이토 지구'''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서구 이토시마시
'''병원 지구'''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동구
'''치쿠시 지구'''
후쿠오카현 카스가시, 오노조시
'''오하시 지구'''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남구
'''벳부 지구'''
오이타현 벳푸시

'''재학생 수
(2020.5.)'''

학부생 11,679명
대학원생 6,887명

'''교직원 수
(2020.5.)'''

7,974명
'''교색'''
Kyushu Wine Red
'''웹사이트'''
홈페이지

'''소개 영상'''
1. 개요
2. 평가
3. 역사
4. 조직
5. 캠퍼스
5.1. 상세
5.2. 캠퍼스 이전 사업
5.2.1. 현황
6. 국제 교류
7. 출신 인물
8. 흑역사
9. 기타
10.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이토 캠퍼스 비석(위)과 하코자키 캠퍼스 정문(아래)'''
일본 규슈 지방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명문 국립대학. 1911년에 4번째 제국대학으로 승격되었다. 규슈대학은 건학정신을 따로 설정해 두지는 않았으나, '규슈대학 교육헌장', '규슈대학 학술헌장' 등이 있다.
규슈대학의 약칭은 큐다이((きゅう(だい)이며, 재학생의 75%가 규슈 출신이다. 한국에서도 부산광역시와 매우 가까운 대학인 관계로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영남권 대학 출신의 대학원생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본토 제국대학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조선인 학생이 상당히 많았다. 제국대학 출신 조선인[1] 통계에 따르면 일본 내지의 제국대학 중 조선인 학생이 교토제국대학, 도쿄제국대학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2]
마찬가지로 규슈 입장에서도 도쿄보다 서울이 더 가까웠기 때문에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는 일본인 학생 중 상당수가 규슈 출신이었다.[3] 그러한 인연에서 유래한 것이었는지, 경성제대와 경쟁관계로 양교간 매년 축구부 시합을 포함해 정기전을 개최하는 등 밀접한 관계였다고 한다.[4] 현재에도 한국의 여러 대학들[5]과 자매결연을 맺고 상호 교환학생 파견을 실시하고 있다.

2. 평가


역사적으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일본의 구 제국대학 중 하나로, 모든 학술 분야에서 전국 5~8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슈퍼글로벌대학으로 지정되어 있어, 규슈대학 학부/연구과를 졸업하고 일본 내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일본 고도인재 외국인 대상 포인트 우대제도 신청시 가산점 10점을 받을 수 있다.[6]
규슈대학에 대한 국제적인 기관의 평가로는 2021년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124위(일본 랭킹 7위), 2019년 THE 일본 대학 랭킹에서 4위, ARWU(세계 대학 학술 평가) 2020에서는 301-400위(일본 9-10위)를 기록했다.
다른 구제국대학들도 마찬가지지만, 규슈대학 역시 연구대학 답게 특히 이공계 분야에 두각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 광물학, 광물공학 분야는 2020년 ARWU 기준 세계 15위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 유일의 예술공학부를 운영하는 대학이기도 하고 그 중 음향설계학과는 일본 최고로 친다.[7] 또한 일본 최초의 국제우주정거장 사령관을 역임한 공학부 출신 와카타 코이치 등이 대표적인 동문이다.

3. 역사


  • 1867년: 후쿠오카번에서 번사들의 자제에게 의학을 가르치는 산세이칸(贊生館)을 현재의 텐진에 설립
  • 1872년: 학제 개편으로 산세이칸(贊生館)은 폐지되었으나, 부속병원은 유지 존속되며 1874년 슈유칸(修猷館) 부속진료소로 개편
  • 1879년: 후쿠오카현립 후쿠오카의학교 부속병원으로 개편되었고 후쿠오카의학교가 폐지된 후에도 현립 후쿠오카병원으로 존속
  • 1896년: 후쿠오카병원이 현재의 병원지구(병원 캠퍼스)로 이전
  • 1900년: 일본제국 의회에서 '규슈도호쿠제국대학설립건의안(九州東北帝国大学設置建議案)' 통과, 이후 후쿠오카는 후쿠오카병원을 자산으로 하여 규슈제국대학 유치전에 나서서 역시 난학(蘭學)의 중심지로서 의학이 발달했던 나가사키, 제5고등학교가 설치되어있었던 구마모토와 치열한 경쟁을 벌임
  • 1903년: 贊生館의 후신인 후쿠오카병원을 모체로 하는 교토제국대학 후쿠오카의과대학이 설치.
  • 1911년: 후루카와 재벌의 기부금과 후쿠오카현의 모금을 통해 공학부 설치를 통한 규슈제국대학[8] 재원을 마련하고, 1월 1일부로 규슈제국대학 설치. 교토제국대학 후쿠오카의과대학이 규슈제국대학 의학부가 되고, 신설된 공학부와 함께 독립된 제국대학으로 성립
  • 1919년: 농학부를 증설[9]
  • 1924년: 법문학부를 증설[10]
  • 1939년: 이학부를 증설
  • 1945년: 규슈제국대학의 미군포로 생체실험사건 발생
  • 1947년: 제국대학령이 국립종합대학령으로 개정되면서 교명을 '규슈제국대학'에서 현재의 '규슈대학'으로 개칭
  • 1949년: 법문학부를 법학부, 경제학부, 문학부로 분리시켰고 교육학부가 문학부로부터 독립. 규슈제국대학 의학부 설치 당시 부속 전문부를 의학부와 통합시켰으며, 후쿠오카고등학교구제전문학교인 구루메공업전문학교(久留米工業專文學校)를 흡수 통폐합하여 신제 규슈대학 성립
  • 1953년: 대학원을 신제 대학원으로 개편
  • 1963년: 후쿠오카고등학교의 후신인 롯폰마츠 캠퍼스를 교양학부 캠퍼스로 개편
  • 1964년: 약학부 설치
  • 1967년: 치학부[치의학부] 설치
  • 2003년: 1968년에 설립된 규슈예술공과대학을 흡수합병하여, 규슈예술공과대학 자리인 오하시 캠퍼스에 예술공과연구원과 예술공학부를 설치
  • 2004년: 법인화에 따라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하였고, 법과대학원 법무학부를 설치
  • 2014년: 대학 본부가 하코자키 캠퍼스로부터 이토 캠퍼스로 이전
  • 2018년: 이토 캠퍼스 이전이 완료. 공창학부[11] 설치

4. 조직


규슈대학의 인사는 학부 과정 학생은 각 학부('''学部''') 소속, 대학원생은 각 학부('''学府''') 소속, 교원의 경우에는 연구원 또는 기간교육원(학부대학) 소속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계열의 학부와 대학원을 묶어 학부의 이름을 붙여 군으로 묶는다. 이를테면, 건축학부와 대학원인간환경학부의 일부는 건축학군. 참고로 간혹 어느 학부와도 연계된 것 같지 않게 생긴 대학원학부도 있다.
일본의 주요대학들의 대학원은 보통 XX연구과로 학부와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았다.(물론, 전부는 아니다 학부와 대학원의 연구과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꽤 있다.) 예를들어 학부인 의학부는 학부생 교육을 위한 조직이라면 의학부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들은 대학원 의학계연구과의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대학원생은 의학계연구과에 속해 교육과 연구를 진행시키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규슈대학은 교육조직으로서의 학부(学府)와 연구조직으로서의 연구원(研究院)을 별도로 분리시켰다. 그러나, 대개 학부와 연구원은 일치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경우는 학부만 존재하고 어떤경우는 연구원만 있는 일치되지 못한 조직도 있다.
[ 펼쳐 보기 / 접기 ] 전체 학부 리스트
  • 공창학부 (자유전공학부)
  • 문학부
    • 인문학과
  • 교육학부
  • 법학부
  • 경제학부
    • 경제경영학과
    • 경제공학과
  • 이학부
    • 물리학과
    • 화학과
    • 지구혹성과학과
    • 생물학과
    • 수학과
  • 의학부
    • 의학과
    • 생명과학과
    • 보건학과
  • 치학부
  • 약학부
  • 공학부
    • 전기정보공학과
    • 물질과학공학과
    • 지구환경과학과
    • 에너지과학과
    • 기계항공공학과
    • 건축학과
  • 예술공학부
    • 공업설계학과
    • 환경설계학과
    • 음향설계학과
    • 영상설계학과
    • 예술정보설계학과
  • 농학부
    • 생물자원환경학과
  • 21세기 프로그램 (2018년폐지)

[ 펼쳐 보기 / 접기 ] 전체 대학원 리스트

•교육조직
  • 인문과학부
    • 인문기초전공
    • 역사공간론전공
    • 언어문학전공
  • 지구사회통합과학부
  • 인간환경학부
    • 건축학전공군
      • 도시공생디자인전공
      • 공간시스템전공
    • 교육학전공군
      • 인간공생시스템전공
      • 행동시스템전공
      • 교육시스템전공
      • 실천임상심리학전공(전문직)
  • 법학부(전문직)
    • 법정이론전공
  • 경제학부
    • 경제공학전공
    • 경제시스템전공
    • 산업매니지먼트전공(전문직)
  • 이학부
    • 물리학전공
    • 화학전공
    • 지구혹성과학전공
  • 수리학부
  • 시스템 생명과학부
  • 통합신영역학부
    • 유저감성학전공
    • 오토모티브사이언스전공
    • 라이브러리사이언스전공
  • 의학계학부
    • 의과학전공
    • 의학전공
    • 보건학전공
    • 의료경영관리학전공(전문직)
  • 치학부
  • 약학부
  • 공학부
    • 물질과학공학전공군
      • 물질창조공학전공
      • 물질프로세스공학전공
      • 재료물성공학전공
      • 화학시스템공학전공
    • 지구환경공학전공군
      • 건설시스템공학전공
      • 도시환경시스템공학전공
      • 해양시스템공학전공
      • 지구자원시스템공학전공
      • 에너지양자공학전공
    • 기계항공공학전공군
      • 기계공학전공
      • 수소에너지시스템전공
      • 항공우주공학전공
  • 예술공학부
  • 시스템정보과학부
  • 총합이공학부
  • 생물자원환경과학부
•연구조직
  • 인문과학연구원
    • 철학부문
    • 역사학부문
    • 문학부문
  • 비교사회문화연구원
  • 인간환경학연구원
  • 법학연구원
    • 기초법학부문
    • 공법사회법학부문
    • 민형사법학부문
    • 국제관계법학부문
    • 정치학부문
    • 실무법학부문
  • 경제학연구원
    • 경제공학부문
    • 산업기업시스템부문
    • 국제경제경영부문
    • 산업매니지먼트부문
  • 언어문화연구원
  • 이학연구원
  • 수리학연구원
  • 의학연구원
  • 치학연구원
  • 약학연구원
  • 공학연구원
  • 예술공학연구원
  • 시스템정보과학연구원
  • 총합이공학연구원
  • 농학연구원
•전문직 대학원
  • 법과대학원(로스쿨)
  • 경제학부 산하의 산업매니지먼트전공(비즈니스스쿨)
  • 인간환경학부 산하의 실천임상심리학전공
  • 의학계학부 산하의 의료경영관리학전공


5. 캠퍼스


[image]
규슈대학 캠퍼스

5.1. 상세


규슈대학의 캠퍼스를 지구(地区)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캠퍼스 부지 면적을 따지면 규슈대학은 일본 내 1위이기도 하다. 그 외에 도쿄 오피스, 오사카 오피스, 하카타역 오피스, 캘리포니아 오피스가 있다.

'''규슈대학 하코자키 캠퍼스'''
과거 규슈제국대학의 대학본부가 위치해있던 메인 캠퍼스로 규슈대학의 문계4학부와 수학계열을 제외한 이학군, 농학군, 구 공학군[12], 대학본부 등이 위치해 있었다. 하코자기 캠퍼스에 있던 모든 학부는 이토 캠퍼스로 옮겨진 상태이며 각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문학부 본관 등은 철거되었다고. 이전 사업 완료 후에도 규슈대학 박물관과 문서고가 위치할 계획이다. 원래 롯폰마츠지구처럼 매각할 계획이었으나 일이 잘 안 되었다고.
  • (폐쇄)
원래 후쿠오카구제고등학교가 위치해있던 곳으로, 종전 후 각 제국대학구제고등학교가 흡수될 때 신제 규슈대학 교양학부로 통합되었다. 지금은 이토의 센터 존으로 이전한 교양학부(현 기간교육원)와 비교사회문화학연구원이 롯폰마츠 캠퍼스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캠퍼스를 철거하여 부지 전체를 UR임대주택에 매각한 상태다. 이곳에는 현재 후쿠오카시의 아카사카에 위치해 있는 변호사회, 가정재판소와 함께 하코자키의 로스쿨이 이전하기로 계획되어 2013년 말 공사에 착공했고 2017년 규슈대학 법과대학원이 롯폰마츠 캠퍼스에 재건축된 복합건물에 입주하였다. 기타 신설된 어린이과학박물관도 위치한다.
  • 오하시 캠퍼스
이곳엔 원래 1968년 설립된 규슈예술공과대학의 위치해있었다. 이 규슈예술공과대학이 2004년 규슈대학에 흡수되면서 규슈예술공과대학의 후신인 예술공학부가 계속 이곳 오하시 캠퍼스에 위치해 있다. 예술공학부는 이토 캠퍼스로 종합화를 거부하면서 오하시 캠퍼스는 계속 존치된다.

'''규슈대학병원'''
  • 병원 캠퍼스
규슈제국대학의 모체가 된 후쿠오카의학교 부속병원이 위치해있던 곳으로, 영상 설명에도 나오지만 19세기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병원과 의치약학군이 위치해 있다. 이토지구 이전사업의 걸림돌이며, 이토 캠퍼스로 이전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바람에 이토지구까지 후쿠오카시 지하철을 연장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사실 의학부의 경우 부속병원과 함께 메인 캠퍼스와는 동떨어진 대학들이 많기 때문에 크게 이상한 모양새는 아니다.
  • 벳부 캠퍼스
벳부 병원이 위치하고 있다.
  • 치쿠시 캠퍼스
대학원종합이공학부가 위치해 있다.
  • 이토 캠퍼스
원래 이토시마군 시마정(31ha), 이토시마군 마에바루시(1ha)였던 부지 일부를 규슈대학과 후쿠오카시(243ha)가 협의하여 후쿠오카시의 서부 개척을 위해 일부 편입 후 만든 캠퍼스이다[13]. 농경지가 위주였던 시마정에는 규슈대학의 이토캠퍼스가 들어오면서 왕복 4차선 + 자전거도로 + 보도 에 육박하는 큰 길이 생겼다. 캠퍼스는 산을 깎아 만든 형식이며 지금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웨스트 존, 센터 존, 이스트 존으로 나뉜다. 이토캠퍼스 신축에 관해서는 별도의 항목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 웨스트 존
2005년 건축학과군을 제외한 공학부군이 이토캠퍼스에는 가장 먼저 여기에 입주했다. 2015년 후기에 이학부문이 이전할 예정이다.
  • 센터 존
2009년 롯폰마츠의 기간교육원과 비교사회문화학연구원이 이곳으로 이전했다.
  • 이스트 존
현재 황무지 개간 공사중이다. 2014년에 대형 강당과 문학부문이 들어올 예정인 건물을 완공했다. 2018년 후기에 문계4학부가 이곳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2018년 9월 이전완료.

5.2. 캠퍼스 이전 사업


규슈대학의 7개 학부가 모여 있고, 대학 본부가 존재하는 하코자키 캠퍼스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점이 존재했다.
  • 학부대학을 롯폰마츠지구에 두어 저학년 학생들의 다양한 학부체험이 불가하다. 또한 고년차 학생이라도 타 학부의 강의를 들으려면 캠퍼스 간 이동을 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 하코자키 지구의 건물 대다수가 메이지 시대에 지어져 노후하여 특히 공학부와 이학부의 실험 조건이 상당히 악랄하다.
  • 드물게 도심 내에 있는 후쿠오카 공항으로 인하여 하코자키 지구의 건물을 높게 지을 수가 없어 공학부와 이학부의 집약화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안타까움을 느낀 총장은 1991년 후쿠오카시와 협의하여 대학의 모든 학부와 시설을 시 서부의 산지와 농지를 사들여서 그곳에 이전할 계획을 세운다. 후쿠오카시로서는 과거 서일본 철도주식회사의 압력으로 인한 시 동부에 편중된 번화화를 타개하기 위한 좋은 선택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후쿠오카시 지하철 연장사업을 계획하는 등 규슈대학의 이전을 지원하기로 한다.
규슈대학의 전 시설이 이전할 예정인 이토캠퍼스 부지는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았던 산지였고, 곳곳에 고분과 같은 중요문화재도 묻혀 있었다. 이를 고려하여 캠퍼스 이전 계획단은 다음과 같은 개발방침을 세운다.
  • 학부, 연구원제도의 이념을 실현하는 공간구성과 그 관리 운영을 확립한다.
  • 종합대학으로서의 일체적인 연구교육환경을 구축한다.
  • 경영과의 공존을 꾀할 수 있는, 산학 지역연계와 국제교류를 위한 거점을 전략적으로 구성한다.
  • 민간시설들의 활용과 입지유도를 위한 연구 교육의 활성화와 생활지원을 촉진한다.
  • 전통을 상징적인 공간과 유연히 변화하는 공간의 조화를 이룬다.
  • 이토시마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자연과의 공생을 꾀한다.
  • 안전하고 쾌적한 캠퍼스 환경을 정비한다.
  • 다양한 기술로 친환경적 캠퍼스를 만든다.
  •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하는 도전적 실험도시를 구축한다.

5.2.1. 현황


규슈대학 이토캠퍼스 전경
  • 2005년에 물질과학공학과와 기계항공공학과가 이전하였다.
  • 2006년에 지구환경공학과와 시스템정보과학부가 이전하였다.
  • 2009년에 롯폰마츠 캠퍼스 전체가 이전하였다.
  • 2018년 9월에 이토캠퍼스에는 치학부의 일부분, 의학부, 예술공학부를 제외한 모든 학부가 이전 완료했다.
다만 규슈대학으로 편입된 예술공학부와 새로운 건물을 가지고 있는 병원 캠퍼스가 이토 캠퍼스로의 이전이 무산되었다. 또한, 병원 이전 거부와 후쿠오카시 지하철 연장사업의 수요 부족이 얽히면서 계획대로의 시 서부 개발이 차질을 빚게 되었다. 따라서 캠퍼스 신설의 제일 큰 목적이었던 모든 시설의 통합은 불가능한 과제로 남게 되고, 학생들과 교원들이 다른 시설이나 학부에 가려면 캠퍼스를 여전히 이동해야 하는 오점을 남겼다. 게다가 개발되지 않은 새로운 지역에 학생들이 모이며 학생들은 시골에서 고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규슈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고려하여 진학을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의학부와 예술공학부가 있는 병원캠퍼스, 오하시캠퍼스는 그래도 비교적 도심에 위치하여 있지만, 새로운 이토캠퍼스는 후쿠오카시도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시골이라서 교통이 불편하므로 이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도심에서 그렇게 떨어져 있는 편은 아니나(직선 거리로 20k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교통비가 비싸고, 캠퍼스에서 시내로 나가는 교통편의 수가 부족하다. 예컨데, 캠퍼스에서 시내로 나가는 교통 수단은 크게 두 가지 인데, 쇼와 버스 + JR그룹 + 지하철 혹은 니시테츠 버스를 타는 것이다. 전자는 정기권이나 이토캠퍼스 회수권이 없으면 편도 740엔에 육박한다. 편도 가격이다. 회수권이 있다면 그나마 516엔으로 떨어지지만, 10개 묶음으로 사야하며 유효기간이 3개월이므로, 자주 가는것이 아니라면 손해이다. 니시테츠 버스의 경우 캠퍼스에서 텐진까지 편도 680엔으로 비교적 싸나, 이마주쿠에서 바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계통이 아닌 계통을 탄 경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거기다, 캠퍼스에서 큐다이갓켄토시역으로 가는 버스는 꽤 편수가 있는 편이지만, 막차가 10시 40분대 이며, 큐다이갓켄토시역에서 시내로 가는 전철은 오프 피크 타임 기준 대충 20분에 한 편 꼴이고, 마지막 편도 11시 20분쯤. 늦어질수록 편수는 줄어든다. (이는 시내에서 이토시마 방면으로 가는 열차도 똑같다.) 반대로 밤에 시내에서 이토시마 방향 전차는 많다. 고로 가축수송을 각오해야 한다. 열차 편수가 적고, 버스가 반드시 열차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비싼 교통비와 적은 편수가 이 캠퍼스를 시내에서 아주 먼 오지에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런 지리적인 이유로 취준생의 불만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14] 다만 애초에 구제국대학은 연구과를 중점으로 한 학술 연구를 기반 목표으로 하는 기관이고, 규슈대의 목표도 통합적인 연구 환경을 만드는 것이기에 취준생의 편의 따위는 별 상관이 없긴 하다. 같은 예로, 옥스브리지라고 불리며 영국 최고의 대학으로 취급받는 옥스퍼드 대학교케임브리지 대학교도 수도 런던이 아닌 각각 옥스퍼드케임브리지에 위치하여 있다. 이 도시들은 서울이나 도쿄와는 정말 정반대 성격으로, 중세시대의 역사적인 건물과 녹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전부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도시이다. 즉, 지역사회가 주체가 된 진정한 연구 및 지식 생산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느낌.

6. 국제 교류


한국대학과의 교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전체 협정교 리스트교환 대학 목록 참고.
[ 펼쳐 보기 / 접기 ] 한국 협정교 리스트

[ 펼쳐 보기 / 접기 ] 한국 교환유학 협정교


7. 출신 인물


• 한국인
  • 계응상 - 농학부 - 북한의 농학자
  • 김동조 - 법학부 - 외무장관, 주미대사
  • 김삼순 - 농학부 - 생물학자, 한국균학회 설립자.
  • 김유택 - 법문학부 - 정치인.
  • 김종원 - 공학부[15] - 경성제국대학, 서울대학교 교수.
  • 민병주 - 19대 국회의원.
  • 백남억 - 법문학부 - 정치인
  • 안수한 - 공학부 -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엄민영 - 법문학부 - 공무원, 정치인
  • 윤종화 - 법문학부 - 일본제국 관료.
  • 윤치형 - 의학부 - 조선인 최초의 의학 박사
  • 이경호 - 정치인
  • 이익흥 - 법과 - 내무부장관
  • 전예용 - 법문학부 - 부흥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 황인평 - 대학원 공법학 석사 - 전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 현신규 - 임학과 - 대한민국의 임목육종학자
  • 황종률 - 법문학부 - 정치인
• 일본인

8. 흑역사


  • 이 대학에는 제국대학 시절의 흑역사가 존재하는데 바로 의학부 이시야마연구실 미군포로 생체실험 사건[16]. 자세한 내용은 규슈대학 생체해부 사건 참조.
> "수술대에 눕혀진 포로들에게 마취가 진행됐고 옷이 벗겨졌다. 팔에 꽂은 주사기를 통해 투명한 액체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도노 옹은 “나중에야 그게 바닷물이었으며 혈액 대용으로 주입됐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 다음 광경은 더 끔찍했다. 포로 몸에서 장기가 하나씩 적출되는 것이 아닌가. 지켜보고 있던 일본 군인 한 명이 갑자기 “이놈은 일본을 무차별 폭격했다. 총살을 당해야 할 놈이란 말이다”라고 외쳐댔다.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정당한 일이라는 변명이었다.[17]"

9. 기타


  • 역사적으로 규슈대학은 서울대학교와 유사성이 강한데,[18] 캠퍼스를 보면 그게 물적으로 드러난다. 조선총독부가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할 당시에 조선총독부병원에 의학부(연건캠퍼스)를 두고 길 건너편 동숭정에 법문학부와 대학본부 등 메인캠퍼스를 건설한 것과 똑같이, 규슈제국대학은 후쿠오카현립병원에 의학부(병원 지구)를 두고 인접한 하코자키에 공학부와 대학본부 등이 소재하는 하코자키 캠퍼스를 건설하였다.[19] 또, 1975년 서울대학교가 대학본부 등이 소재해있던 메인캠퍼스인 서울시내의 동숭동캠퍼스로부터 경기도와 경계 지역인 서울의 남쪽 끝자락(사실상 과천) 관악산에 새로 개발된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것과 유사하게 규슈대학은 2000년대부터 추진한 계획에 따라서 하코자키캠퍼스가 후쿠오카시후쿠오카현 이토지마군의 경계인 이토캠퍼스로 2018년까지 이전한 것도 똑같다. 그리고 제국대학 설립의 모체가 된 의대캠퍼스는 원래 병원 자리에 그대로 남은 것까지 동일하다. 후쿠오카고등학교의 롯폰마츠 캠퍼스는 규슈대학 교양학부가 되어 이토캠퍼스 이전때까지 지속된 반면에, 경성제대 예과의 청량리 캠퍼스는 국립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로 잠시 쓰이다가 의예과가 사용했으며 기존 예과격인 교양학부는 1975년 관악캠퍼스 종합화 당시 경성제대 이공학부가 있었던 공릉동캠퍼스에 위치하고 있었다.
  • 2019년 11월, 봄에 치루어진 수학 본고사의 채점 미스로 원래 합격했어야 할 수험생 1명이 불합격 처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학 측은 수험생에게 배상하고 모든 학생들의 모든 과목 시험을 재채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사
  • 2020년 3월, 채점 미스가 또 다시 반복되었다. 화학 과목 시험에서 실수가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11명이 추가 합격되었다. 기사

10. 둘러보기


[image]
'''규슈대학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1] 정종현 저, 「제국대학의 조센징」 참조[2] 1943년까지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의 조선인 합격자(총 135명) 배출학교 순위에서도 경성제국대학(45명), 도쿄제국대학 18명, 교토제국대학 17명에 이어 '''규슈제국대학''' 9명, 도호쿠제국대학 6명 순서로 4위를 차지했다.[3] 정근식 등,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경성제국대학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pp.531-532. '표 IX-10. 본적별 예과 입학자수(문과, 이과 전체)'에 정리된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1924년~1943년 신입생들의 본적지 통계자료에 따르면, 도도부현 순위는 1위 경기도 290명, 2위 후쿠오카현(福岡) 204명, 3위 야마구치현(山口) 162명, 4위 히로시마현(廣島) 118명, 5위 가고시마현(鹿兒島) 115명, 6위 충청남도 110명, 7위 나가사키현(長崎) 107명, 공동 8위 평안남도경상북도 101명, 10위 함경남도 100명, 11위 오이타현(大分) 97명, 12위 도쿄도 93명, 13위 구마모토현(熊本) 91명, 14위 사가현(佐賀) 88명, 15위 평안북도 87명(이하 생략) 등으로 상위 등수에 후쿠오카(2위), 가고시마(5위), 나가사키(7위), 오이타(11위), 구마모토(13위) 사가(14위) 등 규슈의 각 지방(미야자키현(宮崎) 33명)이 포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규슈에 가까운 야마구치(3위), 히로시마(4위)가 합격자를 다수 배출했다.(통계상 재조일본인 중 규슈가 본적인 사람이 많긴 했겠으나 본적지상으로 그러하다)[4]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개학 120년 기념 국립서울대학교 개학 반세기사(1895~1946)」 575쪽.[5]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동국대학교,경북대학교, 부산대학교(부산대와는 캠퍼스 아시아 사업의 일환으로 복수학위제도 시행 중이다.), 동아대학교, 전남대학교, 충남대학교, 강원대학교[6] 즉, 해당대학 졸업시 어지간하면 요건 점수 70점을 바로 채우게 되어 있어서 일본 영주권이 빠른 시간으로 나온다.[7] 전기정보공학과, 기계항공공학과와 함께 규슈대학에서 가장 입결이 높은 학과이기도 하다.[8] 제국대학은 복수의 학부로 구성되어야 했음.[9] 농학부에 농학과가 설치된 것은 이듬해인 1920년.[10] 8월에 개정되었고 제1회 입학생은 1925년 4월에 입학.[치의학부] [11] 자유전공학부[12] 여기 근처를 지나는 모든 이방인들의 이목을 집중하는 항공공학전공 구 건물은 마치 포격을 당한 양 외관이 엉망 진창인데 이는 포격을 맞은 것이 아니라 미군의 포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기 있다. [13] 2010년 이토시마군은 시로 승격되었다. [14] 이과의 경우 직접 구직을 하지 않고 연구과에서 추천 입사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큰 상관이 없겠으나, 직접 구직 준비를 해야 하는 문과의 경우는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취직 활동은 도쿄에 비해 비교적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15] 지질학교실 대학원. 미졸업[16] 별명이 아이카와 사건[17] 1945년 일본 규슈대학 생체해부 사건’ 목격자 도노 도시오의 인터뷰[18] 후쿠오카의학교와 현립병원을 모체로 의학부를 만들고 공학부를 추가해 규슈제국대학이 설립된 것처럼,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역시 조선총독부병원(舊대한의원)을 모체로 의학부를 두고 법문학부를 추가하며 설립되었다. 경성제대에 설치된 법문학부(당초 1925년 본과 법문학부 개교 예정, 제1회 예과 졸업생이 1926년에 법문학부 1기 입학)는 도호쿠제대(1923년 제1회 입학)와 규슈제대(1925년 제1회 입학)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19] 다만 규슈제대가 공학부가 있었던 하코자키 캠퍼스에 법문학부, 농학부, 이학부 등을 차례로 증설한 것과 달리 경성제대의 경우는 동숭정의 법문학부와 본부 바로 옆에 경성고등공업학교 등이 위치해 가용부지가 협소한 관계로 이공학부를 공릉동에 새로 개발했다는 차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