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태자
孝靈太子
(1149 ~ ?)
1. 개요
고려의 왕족. 의종의 태자였으나 부왕이 무신정변으로 쫓겨남으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다.
2. 생애
의종 3년(1149) 4월 27일(음력) 의종과 장경왕후의 원자#s-2로 태어난다. 의종 7년(1153) 정월 홍(泓)이라는 이름을 받는데, 이후 기(祈)로 바꾼다. 같은 해 4월에 태자로 책봉된다. 의종 11년(1157) 왕이 민가 50여채를 헐어 지은 수덕궁 대평정에 편액을 쓴다. 의종 16년(1162) 원복이 더해진다. 의종 22년(1168) 강양백 왕감[1] 의 딸을 태자비로 맞으며 의종 24년(1170) 4월 수성(壽星)이 출현하니 복원궁에서 초제를 지낸다. 같은 해 9월 정중부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영은관에 보내졌다가 다음날 바로 전라도 진도현으로 유배된다. 고려사절요와 고려사 정중부 열전에 따르면 태자비와 사이에서 아들이 있었는데 정중부 등에게 죽임을 당한다.
후일 명종이 즉위한 뒤, 의종의 '퇴위'와 동생의 왕위 계승을 해명하기 위해 금나라에 보낸 표문에서는 태자가 "어려서는 지혜가 없고, 자란 뒤에도 허물이 많았다."[2] 라고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