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
1996 수능

'''1997 수능'''
(1996.11.13.)

1998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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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시험의 상세



1. 개요


1996년 11월 13일 실시되었다. 본고사가 폐지되고[1] 최초로 400점 만점으로 총점이 바뀐 첫 수능이다.[2] 또한 과목별 문항 수와 시간도 바뀌었다. 1996학년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78년 3월생~1979년 2월생이 응시했다.
전국 수석은 총점 373.3점을 획득한[3] 제주도 대기고등학교의 서준호(당시 17세)군[4] 전국 여자수석은 총점 368.7점을 획득한 윤지완(당시 19세)양[5] 당시 신문기사.
이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수능 역사상 최강의 불수능이다.''' 만점자가 없는 것도 있지만, '''전국 수석의 총점이 373.3으로 굉장히 낮은 편이다.''' 역대 불수능으로 불렸던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전 과목 만점자가 안 나오긴 했다. 그렇지만 각각 전국 수석이 390점대490점대는 넘겼고, 역시 불수능으로 불렸던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아예 만점자가 나와버렸다는 것에서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7차 교육과정 이래 역대 최악의 '불'국어로 악명높은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만점자가 10명 가까이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이 수능의 수준이 어땠는지는 말 안해도 뻔하다.

2. 시험의 상세


교시
영역
계열 구분
문항
배점
시간(분)
1
언어 영역
공통
65
120
100
2
수리 · 탐구 영역(Ⅰ)
인문·예체능, 자연
30
80
100
3
수리 · 탐구 영역(Ⅱ)
사회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48
72
110
자연
32
48
과학탐구 영역
인문, 예체능
32
48
자연
48
72
4
외국어 영역
공통
55
80
80
합계
230
400
390
[6]
1996학년도 수능의 포맷에서 문제가 언어 5문제, 외국어 5문제씩, 수리탐구Ⅱ는 20문제나 늘어났다. 시간은 언어, 수리탐구Ⅰ, 수리탐구Ⅱ가 각각 10분씩 늘어났고 외국어는 그대로였다. 또 언어의 경우에는 시간을 예년보다 더 준 대신 지문의 길이를 늘렸다. 수리탐구Ⅱ는 10분 늘렸으나 20문제나 늘어나 '''문항당 문제풀이 시간이 1.7분에서 1.4분으로 급감하는 바람에[7]''' 수험생들이 시간 부족을 느끼게 되었다. 대신 문제가 평균적으로 짧아진 편.
계열
출제범위 ('''모두 필수'''[8])
인문계
국어, 영어, 수학[9], 과학Ⅰ上[10], 과학Ⅰ下[11], 과학Ⅱ上[12], 과학Ⅱ下[13],
정치경제, 사회문화,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국민윤리
자연계
국어, 영어, 수학[14], 과학Ⅰ上, 과학Ⅰ下, 과학Ⅱ上, 과학Ⅱ下[15],
물리, 화학[16], 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국민윤리
예체능
국어, 영어, 수학[17], 과학Ⅰ上, 과학Ⅰ下, 과학Ⅱ上, 과학Ⅱ下,
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국민윤리
단지 문제 수준만 높았던 것이 아니다. 95 ~ 98학년도 수능은 역대 수능 사상 시험범위가 가장 넓었다. 즉 수험생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 숫자가 자그마치 12~14과목으로 가장 많았던 수능이었다. 게다가 '''모두''' 필수과목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중국 가오카오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특정 과목 쏠림 지수가 0이다. 참고로 99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과목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목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96학년도 수능에서부터 등장한 '''탐구영역에서의 과목간 통합형 문제가 97학년도 수능에서 본격화 되었다.''' 그리하여 예컨대 <물리와 생물이 결합된 문제>, <물리, 화학, 지구과학이 결합된 문제>, <국사, 세계사, 세계지리가 결합된 문제> 등이 마구마구 출제되었다. 요즘처럼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치르는 시스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18] 게다가 언어영역에서는 '''대중문화와 사회의 문제점을 결합시킨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고'''[19], 외국어 영역 듣기평가가 17문제로 늘어났다.[20]

3. 난이도


앞서 말한대로 역대 최고난도. 애초에 어떤 형태의 과외도 시험에 도움이 되지 못하도록 대놓고 어렵게 내겠다고 했다.
전국 수석은 앞의 문단에서 나왔듯 자연계 학생인 서준호 군으로 총 점수는 400점 만점에 373.3점이었다. 전국 수석의 과목별 점수는 언어 108.8점[21], 수리탐구(Ⅰ) 76.0점[22], 수리탐구(Ⅱ) 110.0점[23], 외국어 78.5점[24]이었다.[25]
인문계 수석은 정용식 군[26]으로 370.2점, 예체능계 수석은 박은경 양으로 334.3점을 득점했다.
원점수 370점 이상이 인문계 1명(0.0002%), 자연계 3명(0.0008%), 360점 이상이 인문계 14명(0.004%), 자연계 32명(0.009%)이었다. 350점 이상 인문계 73명(0.019%)이고 자연계 128명(0.037%), 340점 이상 인문계 270명(0.071%)이고 자연계 345명(0.100%), 330점 이상 인문계 697명(0.184%), 자연계 903명(0.261%), 320점 이상 인문계 1660명(0.439%), 자연계 2092명(0.607%)이었다. 인문계는 308점까지 상위 1% 이내였고 자연계는 313점까지 상위 1% 이내였다. 97수능의 점수 분포는 상위권 점수차가 크고 하위권 점수차가 좁은 꽃병형으로 하위권으로 점수가 쏠리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는 최상위권, 상위권의 변별력 확보가 잘 되었지만 중위권, 하위권의 변별이 안되었을 정도로 중위권의 점수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목별로 보면 언어영역[27]의 경우에는 계열 통합(예체능까지 포함) 평균 점수가 120점 만점에 64.72점(만점의 53.93%)으로 작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만점자나 1문제 틀린 수험생은 존재하지 않았고 116~118점(2문제 틀림)인 수험생이 인문계 7명, 자연계 3명'''이었다.
원점수 '''120점 만점에 97점 정도(만점의 81%)'''가 상위 4%정도였으며[28](당시에는 등급의 개념이 없었다) 106점 이상 인원이 인문계 1337명(0.353%), 자연계 1161명(0.336%)이었다. 만약 현재식으로 백분위를 매겼으면 100점 만점에 88점 정도(당시 문제당 기본 배점이 1.8점이므로 실제 시험에서 7~8개 틀린 수준)도 백분위 100(상위 0.5%)을 무난하게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 원점수 110점 이상(만점의 91.67%)이 전국에 487명(전 수험생의 0.06%, 자연계 217명, 인문계 269명, 예체능계 1명)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웠다 역대 2위 언어영역 수준이었지만... 96 수능 언어영역이 조금 더 어려웠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체감 수준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편이었다.[29]
수리 · 탐구영역(Ⅰ)[30]은 계열 통합으로 평균 점수가 80점 만점에 22.92점(만점의 28.65%)이라는 극악의 수준을 자랑했다.
원점수 60점(만점의 75%)이면 인문계는 1855명(0.490%)으로 0.5%이내, 자연계는 3376명(0.979%)으로 1%이내였다. 72점 이상(만점의 90% 이상)은 자연계에서 '''205명(0.06%)''', 인문계에서 '''66명(0.02%)'''이었으며 예체능계에서 '''1명(0.001%)'''이었다.
'''78점 이상이 자연계 10명(0.003%), 인문계 1명(0.0002%)'''이었으며 만약 '''80점 만점'''을 받았을 경우 현재의 표준점수식으로 계산하면 자연계 '''187점''', 인문계 '''205점'''으로 나온다. 또 현재처럼 등급컷을 매길 경우 총점 100점에 문항당 2.5점, 3.75점, 5점으로 계산시 인문계는 '''100점 만점에 58.75점''', 자연계는 '''100점 만점에 63.75점'''이 1등급컷이 나올 것이다.
특히 문이과 공통 29번 '''집합(!)''' 문제는 말 그대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었는데, 공식 정답률 '''인문계 1.25%, 자연계 1.09%'''로 문이과 모두 역대 최저 정답률이었으며 이 타이틀은 2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31] 참고로 비공식 정답률은 '''0.08%'''였다고 한다. 덕분에 97학년도 수능의 수준에 초점을 맞춘 98수능 대비 모의고사 수리영역 문제들은 괴이한 발상을 요구하는 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아직도 수리영역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또한 이 수능부터 수리 탐구 영역(I)에서 주관식 단답형 문제가 최초로 출제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32]
수리 · 탐구영역(Ⅱ)[33]도 매우 심각하여 120점 만점에 100점 이상(1/6을 틀린 경우)을 받은 수험생이 인문계 294명(0.07%), 자연계 468명(0.13%)이며 110점 이상(1/12을 틀린 경우)은 인문계 '''5명''', 자연계 '''13명'''밖에 없다. 인문계는 80점(1/3을 틀린 경우)을 받아도 상위 3.7%정도였고 자연계도 82점에 3.7%정도였다. '''여기에서도 만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계열 통합으로 평균점수는 120점 만점에 48.03점(만점의 40.03%).
외국어영역[34]도 상당히 어려운 편이었는데 원점수 80점 만점에 68점 이상이 인문계 14714명(3.89%), 자연계 14397명(4.18%)으로 100점 만점에 85점을 전후하여 상위 4%가 되었다. 78점 이상(1개 이하 틀림)의 경우 인문계 676명(0.179%), 자연계 472명(0.137%)정도밖에 없었다. 평균점수는 80점 만점에 43.83점. 덤으로 외국어 듣기평가가 17문제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1997 수능이 유별나게 어려웠던 것은 논술을 제외한 대학별 본고사가 완전히 폐지된 후의 첫 수능이었기 때문에 수능이 본고사를 대체할 성격을 띠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공부를 아무리 하더라도 수능은 풀 수 없다"'며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 때문인지 98학년도 수능은 97학년도 수능에 비해 매우 쉽게 출제되었다(...) 97학년도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는 반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00점만 맞으면 서울대 간다고 해서 소나타 승용차의 S와 Ⅲ를 다 떼 훔쳐가는 풍조가 유행할 정도였고. 실제 경험자에 따르면 96년도 시험을 치르고 이해 재수 도전, 매겨보니 전체 문제의 반밖에 못 맞힌 거 같아서 '전문대나 가야겠다 이러고 무슨 대학을 가' 생각했는데 준수한 4년제 사범대학에 진학하고도 남을 석차가 떴다고 한다. 아무리 수능이 어려워진다 해도 레전드로 남을 만한 한 획을 그은 시험이라 하겠다. 원점수 기준 300점이면 연고대, 270점 정도면 성균관대, 250점이면 흔히 말하는 건국대, 동국대, 홍익대 정도, 250점 맞고 중앙대 경영학과(...)에 합격 가능했다는 얘기가 있고. 인문계열 기준 200점이었는데 상위 15퍼센트(3등급) 선이었다고 한다 흠좀무. 증언실제 배치표에 따르면 요즘 수능이면 4등급 5등급 뜰 정답 숫자만 맞혀도 수준급 대학에 갔다는... 뜻이다.[35]

[1] 논술시험으로 대체.[2] 94년 1차부터 96학년도까지는 200점 만점.[3] 5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466.625점, 200점 만점이면 186.65점.[4] 아마 빠른생일이거나 생일이 지나지 않은 듯 하다. 이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5] 서울대학교 의학과에 진학했다.[6]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수리.탐구 II가 10분 증가, 언어영역이 10분 감소한 후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이 포맷으로 유지되었다.[7] 현재 탐구영역의 문항당 문제풀이 시간은 1.5분[8] 당시 수능엔 선택과목 제도가 없었다.[9] 일반수학 + 수학Ⅰ[10] 오늘날의 생명과학I보다는 수준 높고, 생명과학II보다는 수준 낮음[11] 오늘날의 지구과학I보다는 수준 높고, 지구과학II보다는 수준 낮음[12] 오늘날의 물리I보다는 수준이 높고, 물리II보다는 수준 낮음[13] 오늘날의 화학I보다는 수준이 높고, 화학II보다는 수준 낮음[14] 일반수학 + 수학Ⅱ[15] 계열별 문제(자연계 전용)의 경우 과학Ⅱ는 물리, 화학과 겹치는 부분에서 출제되었다.[16] 각각 오늘날의 물리II, 화학II와 비슷한 수준이며, 생물과 지구과학은 실시되지 않았다.[17] 일반수학 + 수학Ⅰ[18] 이러한 탐구영역의 통합형 출제는 전면 선택체제로 전환된 7차 교육과정 하의 수능에서부터 사라지게 되었다.[19] 언어 듣기 평가에서 '''정지용'''의 시 '''향수(시)'''를 리메이크한 가요를 출제했다.[20] 95학년도 수능까지는 외국어 듣기문제가 8문제였고, 96학년도에서 10문제였다가 97학년도 수능부터 13학년도 수능까지는 17문제였으나, 14학년도에는 22문항으로 늘고 15학년도부터는 다시 17문제로 환원되었다.[21] 배점상 6문제 틀렸으며 백분위 99.90[22] 4점 1문제 혹은 2점 2문제 틀림, 백분위 99.98[23] 5~7문제 틀림, 백분위 100.00[24] 1문제 틀림, 백분위 99.87[25] 물론 370점 정도면 다른 세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전체적으로 쉬웠던 2009 개정 교육과정 세대의 수능에서조차 충분히 최상위 레벨에 준하는 점수이다. 문제는 '''전국 수석이 이랬다는 거다.''' 요즘 같으면 같이 수능을 치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현직 교사나 인강 1타 강사 레벨조차 실전 한정으로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인간이 못 푸는 문제가, 그것도 한두 개도 아니고 '''한 시험에서 10개가 넘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 악랄했던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만점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26] 서울대 법대 진학[27] 지금의 국어영역[28] 7차 교육과정 이후로 국어가 이 수준으로 1등급컷이 나온 수능은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유일하다. 하지만 6차 교육과정 이전에는 이런 결과가 '''대세'''였던 시절이었다.[29] 96학년도 언어영역은 60점 만점에 46점 정도가 되어야 대략 4% 안에 들 수 있었다. 즉 120점 만점에 92점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30] 지금의 수학영역[31] 조건을 통해 P(x)와 Q(x)가 적어도 하나의 공통근을 가진다는 것을 추리해야 했는데 듣도보도 못한 신유형이었던 탓에 거의 모든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32] 음수 부호 (Θ)와 30번 문제 한정 소숫점까지 마킹해야 했으나, 실수를 하는 학생이 많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최대 세 자릿수 자연수만으로 한정되었다.[33] 지금의 사회/과학탐구[34] 지금의 영어영역[35] 극단적인 사례로 평소에 모의평가 240점 근방으로 뜨던 사람이 수능 시험날 찍신이 강림하여 전국 석차 4%까지 찍었던 사람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