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Back Home

 


1. 개요
2. 설명
4. 가사
5. 여담


1. 개요


'''가요대상 대상'''
김건모
'''핑계'''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5년)'''

김건모
'''스피드'''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수록곡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의 타이틀 곡.
뮤직비디오는 1996년 MTV Asian Viewer's Choice를 수상했다.

2. 설명


서태지 본인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인터뷰 사실상, 서태지의 곡 중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알려진 곡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가히 대한민국 사회를 뒤집어놓은 노래로, 이 노래가 발표된 뒤 실제로 가출 청소년들 여럿이 집에 돌아오면서 화제가 되었다.[1] 1996년도에 방영된 시사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가출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가수보다도 못하다" 라는 비판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정부의 위촉으로 가출청소년 귀가 캠페인 공익광고를 찍었다.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운동권에서는 체제 순응적인 메시지라고 날선 비판을 내보냈다. 집은 사회의 시스템을 상징하므로,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은 사회의 시스템에 순응하겠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이너한 사회 비평 잡지에 실린 탓에 큰 주목을 못 받고 잊혔지만, 이때부터 서태지를 못마땅하게 보는 진보 진영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가사가 더욱 추상성을 띤 5집부터.
다만 위에서 언급된 비판은 ‘집에 돌아간다’는 제목이나 가사의 결론을 침소봉대한 오독에 가깝다. 컴백홈은 부모와 자식 관계를 ‘제압’으로 표현한 점, 가족이나 관계 때문이 아닌 ‘(내가) 아직 젊기에’, ‘(내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등이 집에 돌아가야 하는 이유로 제시된 점, ‘(다른 누구도 아닌) 날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나’를 완성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 등 가사 전반에 걸쳐 체제 순응과는 명백히 거리를 둔 내용들로 가득하다. 특히나 이 곡이 발매된 1995년 당시의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고려하거나, 서태지 자신의 자전적인 얘기를 가사로 옮겼다는 언급[2]에 비춰보면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나를 완성하겠다는 내용에 더 가깝다[3].
또한 위의 비판이 주목을 받지 못한 건 단순히 사회 비평지에 실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에 사회 비평지에 실려서 주목받지 못했다는 설명부터가 어불성설인데, 당시의 음악 평론은 음악 자체보다도 메시지에 주력하는 사회비평적 성격이 지금보다 훨씬 짙었기 때문이다. 즉 사회 비평과 음악 평론이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던 상황이었다. 사회 비평가들이 음악 평론에 발을 걸치거나 가사 전문 평론가[4]가 따로 있었을 정도.
서태지는 그들의 대표적인 우상인 동시에 먹잇감이었다. 데뷔 초부터 X세대의 대표주자로서 사회 비평지에 조금씩 실리기 시작했으며, 3집 발매 이후에는 ‘의식있는 뮤지션’의 전형으로 진보 계열 비평의 단골 타겟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랬던 만큼 그의 가사를 다루는 비평은 한두곳이 아니었고, 당연히 컴백홈 가사의 체제항거적 특징들을 잘 짚어낸 비평들은 당시에도 존재했다. 위에서 언급된 오독성 비평은 그런 이유로 묻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마이너해서 묻힌 거라기엔 당시의 평론 수준도 적어도 가사쪽으로는 만만치 않았다.
서태지의 가사에 대한 진보 일각의 비판은 이 곡이 시초가 아니다. 3집 수록곡인 발해를 꿈꾸며가 원조. 이때는 일부 민족주의적 가사나 통일을 제국이었던 ‘발해’에 비유한 제목 등을 문제로 삼았었다. 하지만 역시 이 곡에서도 북한을 ‘갈려진 땅의 친구들’이라고 지칭한, 당시로서는 놀라울만큼 파격적인[5] 관점이라든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젊은 힘’들이 ‘모여서 손을 잡자’라는 방법론을 강조한 진보적인 가사 내용 등에 대한 찬사가 대부분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 트랙도 방송용 버전이 있다. 원곡과 다른 첫번째는 2절 이후 서태지 솔로 댄스부분부터 드럼 비트가 조금 헤비하게 추가된 것. 두번째는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부분에서 내 심'장'부분부터 드럼 비트를 집어넣었는데 아마 안무 맞추기용인 듯 하다.[6]
세번째는 3절 후렴 이후 서태지의 가성 부분인 '난 지금 무엇을~'이 나오는데 다시 반복되는 지점부터 원곡은 반주가 거의 사라지면서 페이드 아웃이 되지만, 방송용은 드럼 비트가 계속 헤비하게 나오다가 목소리와 같이 페이드 아웃이 된다. 그리고 11월 중순을 기해 컴백홈 자체의 안무가 바뀌는데 초반 특유의 훑어내리는 동작이 사라졌다.
자신의 곡을 적극적으로 리메이크하는 서태지의 디스코그라피 안에서도 가장 베리에이션이 많은 곡 중 하나다. 스튜디오 녹음 된 버젼만 원곡, 6집 리레코딩과 15주년판 일렉 등 무려 3종류에 서태지 심포니까지 합치면 4종류.
여담으로 이 곡이 갱스터랩으로 알려져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서태지가 이 곡을 갱스터랩으로 소개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와전된 것. 정확히 말하면 "갱스터랩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많이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 6집의 하드코어 논란도 그렇고.
서태지가 6집에서 말한 의도는 하드코어 랩 쪽이었으며 역시 그 쪽 장르가 아닌 그 쪽의 성향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했을 뿐 자신이 그 쪽 장르다라고 확고히 말한 적은 없다. 의외로 작사 실력 만큼 인터뷰에서의 말재주는 없는 듯 하며 실제 인터뷰에서도 말을 최대한 아끼는 타입이다.
방탄소년단의 리메이크 소식을 다룬 외신 기사에서도 원곡을 갱스터 랩이라 정의하지 않고 비밥[7]의 요소가 있는 힙합 곡이라고 소개했다. 링크
또한 방송 무대 도중 누군가가 무대로 인형을 던지는 비매너 행동을 했을 때[8], 일순간 멤버들이 당황했지만 양현석이 인형을 집어들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재치를 발휘했다.
몇년 후 드렁큰타이거는 자신의 노래 '매일밤 01'에서 컴백홈이 나를 불렀다는 가사를 썼고, 실제 컴백홈이 히트한 후 한국에서도 힙합이 통하는 것에 감명을 받아서 한국에 왔다고 전했다. 래퍼 양동근은 이 노래 가사의 일부를 자신의 노래인 '흔들어' 에서 사용되었다.(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지누션의 1집 수록곡 Jinusean Bomb에도 한구절이 샘플링으로 들어가 있다(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서태지 컴백 직전 국내 인디밴드[9]에 의해 하드코어로 리메이크되었다. 그리고 2007년엔 독일 아이돌 그룹(!)이 리메이크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20년 후, 테이크원이라는 래퍼가 힙합 크루 코홀트 디스곡 Come Back Home에 이 비트를 사용했으며 자세한 건 테이크원 - 코홀트·하이라이트 디스전 문서 참조.
2016년에는 미국의 힙합 레이블인 88rising의 유튜브 채널에 이 곡이 언급되었다. 링크 참고로 88rising은 아시아의 힙합 뮤지션들과 인연이 깊은 레이블로, 아시아쪽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는데, 해당 동영상의 제목이 '''Seo Taiji is the OG Legend of Korean Music(서태지는 한국 음악의 진짜배기 전설)'''이다.
여담이지만, 아는형님에서 강호동이 미는 유행어 '없었엉~' 가사가 나오는 원곡이 바로 이 노래에서 나온 말이다.
발매 당시 사이프러스 힐의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장르의 특성상 어느 정도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었고, 당시 표절이 사회적 이슈였기에 공격을 많이 받았다. 이를 두고 서태지 측은 아예 Come Back Home을 사이프러스 힐에게 보내서 사이프러스 힐측이 '컴백홈이 자신의 노래와는 다르다'는 내용의 멘트를 할 의사가 있음을 인증했고 이를 라디오에서 정식으로 해명했다. 훗날 방탄소년단의 리메이크 기사에 이때 일이 언급된다. 링크

(Cypress Hill’s B-Real later said that the group members were aware of the song but were "cool" with it.)

이후 몽골의 힙합 그룹 "Lumino"가 제대로 Come Back Home을 베꼈으며 정확히는 컴백홈과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나네를 매시업한 듯한 곡이다. 한때 몽골 컴백홈이 몬더그린으로 인해 국내 웹에서 컬트적인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예를 들면 "이글씨보기싫지발~빼~ 예쓰모러 이젠 차네 낸들 꼬시래" 같은 후렴구. 게다가 몬더그린 가사 중에는 '''태지나라'''라는 말도 포함되어있었다. 몽골 힙합 태동기-발전기의 어두운 면으로 1세대와 1.5세대 힙합 뮤지션들이 민주화이후 몽골에 힙합문화를 소개하고 발전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노래들이 표절로 얼룩져 있다.
2019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전후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에 이 곡이 삽입되었다. 쿠바에 건너간 한인들의 삶을 다룬 내용인데, 쿠바 한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한 헤로니모 임이 1995년에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는 장면에서 이 곡이 사용되었다. 전후석 감독은 서태지컴퍼니에 사용 허락을 요청했고, 서태지컴퍼니 측에서는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여 허락했다고 한다. 링크


3. 리메이크



2017년에는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방탄소년단리메이크했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트랩비트를 깔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리메이크 곡 뮤직비디오를 자세히 보면, 댓글 창에 외국인들의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상당수가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들이다. 이에 힘입어 원곡 뮤직비디오에도 2017년 7월 이후 외국인들의 댓글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4. 가사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가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가슴 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내겐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 끝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 다시 '''부모의 제압'''[10]은 시작됐지
네겐 사랑이 전혀 없는 것
내 힘겨운 눈물이 말라 버렸지
무모한 거품은 날리고
주위를 둘러봐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이젠 그만 됐어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COME BACK HOME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IN THE PLACE TO BE
ONE TWO TREEE
IN THE PLACE TO BE)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만들 것 같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 았어
날 사랑했다는 것을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가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

5. 여담


이 곡에서 영감을 얻은 동명의 성장 소설이 출간된 적이 있다. 작가는 황시운이며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링크
영화 블랙팬서를 관람한 관객들에게 추천하는 한국 힙합곡을 소개하는 미국 웹진 기사에 언급되었다. 링크
기사에서 언급한 것은 원곡이 아닌 방탄소년단의 리메이크 버전이지만, 원곡자인 서태지가 한국에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웠으며, 원곡이 90년대의 상징적인 곡이라는 설명이 있다.

[1] 그 중 유명인도 있는데 '''골든벨 소녀'''로 알려진 기업인인 김수영이다.[2]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순간부터 데뷔하고 최고 연예인이 되어서도, 나아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할 때까지도 서태지는 기성세대들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스스로 개척했다. 그의 역사를 체제 대한 항거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3] 오히려 해당 비판은 20년 후에 나온 BTS리메이크 버전 가사에 더 어울린다. 특히 ‘가문의 영광 어머니께~’로 시작되는 부분. 다만, 방탄소년단의 리메이크 버전의 뮤직비디오는 가사와는 달리, 청년들의 좌절에 포커스를 뒀다.[4] 이들 중에는 유명한 작사가 출신이나 진보 운동권 출신도 다수 있었다. 아직까지 민중가요가 대학가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 남아있던 시절임을 상기하자.[5]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나온 94년은 여러모로 남북관계가 역대급으로 혼란스러운 한 해였다. 연초부터 전쟁 위기가 고조되다가 3월에 서울불바다 발언이 나오고, 이와 맞물린 북한의 핵 개발 위협으로 서울 시내 매장마다 각종 생필품이 동나기도 했다.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 급 화해무드가 조성되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김일성이 사망하여 다시 전쟁 위기가 고조되기도 하는 등 실로 롤러코스터 같았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한 달 뒤에 나온 곡이 바로 <발해를 꿈꾸며>인데, 그 곡에서 서태지는 북한을 ‘친구’라고 적은 것이다. 독보적 인기를 구가하는 대중 가수의 이러한 시각은 많은 진보 인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또한 고 김대중 대통령이 서태지에게 특별한 호감을 갖게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서태지에게 문화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안겨준 계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6] 뮤직 비디오에서도 서태지의 댄스 동작이 들어간 걸로 봐서 방송용 버전으로 작업한 듯.[7] 재즈의 한 갈래이다. 실제로 도입부의 베이스 샘플은 재즈에 쓰이는 베이스 기타이다.[8] 직후 팝콘까지 누군가 던졌다.[9] '퍼니파우더'라는 밴드로 2000년에 '지구인 납치사건'이라는 곡으로 잠시 화제가 된 바 있다. 해당 리메이크는 음원 형태로 소리바다에서 숱하게 떠돌아다녔으나 정식 앨범으로 나온 적은 없다.[10] 원판 2쇄부터는 비프음으로 덮여서 발매되었다. 발매 직후 초도물량에는 비프음이 없다. 시대유감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심의 지적을 받았는데, 공윤이 아니라 KBS측에서 부모의 제압 부분을 그냥 제압으로 하라는 권고를 발한 데에 대하여 서태지측이 반발하고 비프음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4집 CD 초도물량에는 이 부분이 그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