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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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4년 8월 10일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번째 앨범이다. 대표곡은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이다. 록 음악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앨범이며 동시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 앨범으로 서태지 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음악성이라고 평가받는다. 수많은 악재들로 인해[1] 앨범 판매고가 크게 떨어졌다만 떨어졌다는 게 '''150만장'''이다. 1집이 170만장, 2집이 220만장이었으니 크게 떨어지긴 떨어졌지만 백만장을 우습게 돌파했던 무서운 성적.[2]
전체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스래쉬 메탈을 주축으로 하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준다. 특히 이 앨범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 전 세계 록의 흐름을 주도하던 얼터너티브 록'''이었다. 록 마니아들 사이에선 극과 극의 록 음악으로 불리우는만큼 골수 정통록/헤비메탈 키드인 서태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텐데 이 앨범에선 꽤 높은 수준의 흡수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발해를 꿈꾸며>의 전개부[3] 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타일의 펑키한 기타 연주가 나타나고 후렴부[4] 에는 U2 디 엣지를 연상시키는 쌩딜레이톤이 나타난다. 두 밴드의 음악 스타일은 꽤 다르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기타 연주의 스타일들이 이 곡엔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2. 앨범 제작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제작시 녹음 자체는 1집부터 외국에서 후반 마스터링 작업을 하긴 했다. 서태지가 사비로 집에다가 꾸린 Techno Taiji Studio의 설비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는데, 세션까지 전부 외국계로 갈아치운 것은 2집의 표절시비가 계기가 된 듯. 당시 이태섭이 테스타먼트의 기타 애드립을 도용해서 하여가에 붙여준 게 문제가 컸다.[5] 이후 3집에는 Tim Pierce[6] , Kevin Scott 같은 미국/캐나다계 세션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다. 그래서 사운드 자체는 매우 괜찮은 편이다.
특히 <교실 이데아>의 백미는 곡 전체에서 쏟아지는 DJ 스크래치의 향연인데, 당대의 신성 DJ이자 이후 본토에서도 최고의 DJ로 추앙받게 되는 DJ Q Bert의 솜씨이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댄서 였던 지누션의 션의 소개로 이 앨범에 참여했다고 하며, 직접 자신의 장비를 들고 한국에 와서 서태지의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녹음도 외국에서 해서 당시 대중들 사이에선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주로 컴퓨터로 찍어대던 1, 2집에 비해[7] 세션들을 대거 기용해서 제대로 된 음악을 한다라는 느낌이 든 앨범.
서태지는 <발해를 꿈꾸며>의 연주 버전을 8번 트랙에 집어넣었는데, '사운드 떡칠해놨으니 즐길 사람은 즐겨보라'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참고로 이 앨범이 나온 직후 문화평론가 이동연 교수와 인터뷰를 한 책이 나왔다.제목은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인데, 저자의 관심사가 사회적인 분야이므로 주로 3집에 대한 내용들이 많으니 관심이 있으면 도서관 등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이 책에 따르면 3집은 이전 앨범과는 달리 가사와 주제를 먼저 잡고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3. 문화 대통령이 되다
1, 2집이 기본적으로 사랑 타령에 댄스 음악인데 반해 3집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노래가 많았다. 또한 3집을 기점으로 사회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래가 많아졌다.
타이틀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주제인 <발해를 꿈꾸며>였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이 곡을 듣고 서태지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발해를 꿈꾸며>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요즘은 대중가요가 교과서에 실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 발해를 꿈꾸며가 처음 실렸을 때는 흔치 않은 일이라 기사화 되며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교실 이데아>로 입시 제도를 비판했다. 이전까지 서태지가 청소년, 청년층을 대변한 가치는 자유와 도전 같은 추상적 내용이었다면 교실 이데아에선 교육이라는 구체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중가요라고 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 자체는 꽤 불려지고 있었지만 이미 당대 청소년들의 취향에는 맞는 음악은 아니었는데 그런 와중에 비주류의 담론을 들고 나오는 모험을 했다는 점에서 서태지는 단순한 10대들의 우상을 넘어서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게 된다.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데는 위 두 곡이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소재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곡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3집 컨셉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나름 충격을 안겼다.[8] 이후 치마 콘셉트는 조금 순화되어 삼국시대 복장 비슷한 걸로 바뀌었는데 정작 치마패션 자체는 이후 김원준이 '너 없는 동안'으로 활동할 때 다시 차용해서[9] 흥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사실 치마 콘셉트는 발해 왕자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당시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링크 원래 전공이 한국 전통 의상이었기 때문에 바지 위에 덧입은 치마가 금관조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개량 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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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995년 2월호 잡지에 실린 것으로, 오로지 잡지 인터뷰용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때 서태지는 "교실이데아가 아니라 서당 이데아예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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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때 <발해를 꿈꾸며>를 부르며 입었던 의상이다.
앞서 언급한 금관조복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다.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호 특집화보에 실렸던 사진.
4. 안티의 등장
서태지 안티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크게 음악적 안티와 사회/문화적 안티로 나눌 수 있다.
음악적 안티는 이 앨범이 락으로 회귀하면서 발생했다. 시나위의 베이스 주자였던 서태지는 원래부터 본류라 할 수 있는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에겐 전향자 취급받고 있었고, 3집의 행보는 오히려 자존심 센 락매니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교실 이데아>에 협력하고 라이브에서는 아예 특별게스트로 참가한 크래쉬 같은 경우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나중에 인터뷰에서 보컬 안흥찬이 해명한 적도 있을 정도. 이 때가 PC 통신의 확산기[10] 라고 할 만한 시기였는데 음악 게시판 등지에서 많은 논쟁이 오갔었다.
사회/문화적 안티는 3집의 사회비판 메시지에 반발한 기성세대에서 등장했다. 1집, 2집에서도 대중문화의 주축이 10대로 넘어가는 현상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은 있었다지만 음악 산업 분야에 한정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서태지가 3집에서 보여준 내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세대간 담론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언론을 중심으로 '서태지 죽이기'로 통칭되는 공격이 있었다. 여기에 교실이데아 루머 문단에서 소개할 '피가 모자라' 사건 때문에 개신교계에서도 안티가 발생했고 기존 팬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5. 성적
6. 수록곡
6.1. Yo! Taiji
3집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예고하는 듯한 스래시 매탈 트랙이다.
시즌1 1박 2일 19,20회의 오프닝 곡으로 사용되었다.
6.2. 발해를 꿈꾸며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위 영상은 공식 버전이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당시 '굿바이 베스트앨범' VHS에 수록되었으며 1994년 첫 발표 버전에서 두 군데가 수정되었다. 아래 영상 링크 부분 참조.
<발해를 꿈꾸며>는 남북의 분단 상황을 얼른 끝내고 북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싶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서태지의 마음을 담은 곡으로, 서태지가 단순히 10대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가 아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의식 있는 뮤지션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곡이다.
- 뮤직비디오 초기 버전 - 1994.8.27 MBC 송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무대를 통해 공개된 것으로 MBC 아카이브를 통해 살아남았다. 초기 버전에는 'SEOTAIJI AND BOYS III'라는 글자 자막이 없고, 1절 후렴부 넘어가는 부분이 양현석 얼굴이 VHS테입이 씹히는 듯한 효과로 되어 있다.
- 3집 컴백콘서트 무대 - 1994.8.13~15 공연으로 8.20 KBS2 송출. 발해를 꿈꾸며의 안무는 뒤로 갈수록 조금씩 수정되었는데 가장 초기버전의 안무를 볼 수 있다.
- 가을개편 특집 '94 새 MBC 무대 - 이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은 TV 출연이 극도로 적었기 때문에 이런 쇼프로 무대 자료도 적다. 이외에는 MBC 스타쇼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지만 현재 유튜브에서는 공연이 잘리고 대담과 꽁트만 살린 버전이 올라와 있다.
-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라이브 - 1995.1.11~16 공연으로 <발해를 꿈꾸며> 무대의 마스터피스. 1995년 1월 16일 이후 <발해를 꿈꾸며> 전곡이 라이브된 적은 한 번도 없다.[12] '버터플라이 댄스'의 완성 무대를 볼 수 있다.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할 당시 무대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도배하는 연출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에서 저 대형 태극기를 걸어놓은 곳이 다름 아닌 '''철원 노동당사'''로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북한 유적이란 점에서 남북화해 무드영상을 찍기엔 이 만한 장소가 없다. 판문점에서 공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2011년 MBC 평화콘서트에서는 MBLAQ과 miss A가 그 노동당사 현관 위에 또 올라가서 발해를 꿈꾸며 커버링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포인트인 대형 태극기는 안 걸었다.
발매 후 24년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환송식에서 식전 곡으로 선택되었다. 환송식을 위해 자리로 이동하는 중에, 그리고 환송식 공연곡 중간에 멜로디로 삽입되었다.
영상 링크
서태지가 6~9집까지 서태지밴드와 솔로활동을 한 이래 얼마 안 남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단 한 번도 라이브하지 않은 곡'''이다. 6집 당시 있었던 비정규 공연(2000 평화콘서트)에서 탱크 직전에 인트로만 나왔던 것과 9집 공연에서 인트로만 인터루드의 형태로 잠깐 나온 걸 제외하면 완곡은 10집 공연에서 연주 시 '''최소 24+a년만의 라이브'''가 될 예정.
1994년 문화 계간지 <리뷰> 창간호 특집으로 문화 평론가 강헌과 서태지가 대담을 했는데, 이 인터뷰에 곡에 대한 설명이 있다. 링크
인터뷰 발췌 [13]강헌: 우리는 랩과 레게의 흥청거리는 측면만 수입했으며 94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홍보전략의 차원으로만 얼터너티브 록을 내세워 그 본연의 정신을 모독하는 신인밴드들도 출몰하곤 한다.
음악적인 측면만으로 한정할 때 , 시애틀을 본거지로 발흥한 얼터너티브 사운드 속엔 사이키델릭과 헤비메탈, 그리고 펑크의 핵들이 녹아 흐르고 있다.
이중 사이키델릭은 70년대 초반 신중현에 의해서 시도되다가 외풍으로 인해 중도에서 표류되었고, 펑크는 아예 수입되지도 않았다. 당신이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규정한 `발해를 꿈꾸며`를 예로 들어가 보자.
서태지: 이 곡의 최대 과제는 너댓개의 모티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새소리의 효과음에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서주는 청명한 하늘의 이미지를 의도한 것인데 여기에 지저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첼로를 동반시킴으로써 혼돈을 노렸다.
그리고 양현석의 랩적인 멜로디가 등장하면서 급격히 메틀로 돌아서며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트윈 기타가 받치는 후렴구로 상승한다.
이는 긴장-긴장-해방의 구성을 꾀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타 애드립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남긴 것인데 이상의 전과정의 반복 이후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내가 이 곡을 얼터너티브라고 한 것은 이상과 같은 구성과 선율, 특히 첼로의 멜로디 라인, 연주기법 등이 정통적인 록의 노선에서 이탈해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며, 가사 또한 본격적인 얼터너티브 정신으로 충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상황에서는 개중 그래도 몸부림친 축에 든다고 본다.
6.3. 아이들의 눈으로
<아이들의 눈으로>는 90년대 스타일의 팝 발라드 곡으로, 서태지의 커리어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곡 초반부는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가 아닌 어린이 보컬의 솔로로 시작하며, 최후반부는 아이들의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방송무대에선 모두 AR로 대체했다. 콘서트 '94 새로운 도전 무대에서는 동화 속 집 같은 무대세트와 함께 실제 아이들을 무대에 등장시켰으며,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와 그 이후에는 팬들의 제창으로 이 부분을 "완벽히" 대체했다. 라이브를 자주 하지는 않아서, 3집 투어인[14]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6집 투어 태지의 화 / 9집 투어 QUIET NIGHT 세 번의 공연에서만 라이브해주었다.
6.4. 교실 이데아
<교실 이데아>는 한국의 교육문제를 직격으로 비판하는 노래이며,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를 품고 있는 공교육 때문에 현재에도 회자되는 희대의 명곡. 이 노래를 계기로 수능몰입교육을 바꾸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살짝 있었으나, 학교는 지금도 '매일 아침 7시 30분'이 '8시'로 바뀐 것 말고는 바뀐 게 없다.(여담 : 08년도 ebs 고등학교 언어영역 수능특강 문제에 응용되어 실린 바가 있다.) '''이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어서도''' 주입식 교육은 사라지지 않고, 공부공부하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세태 또한 여전하니 현 부모 세대는 좀 뼈아프게 반성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곡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라 온 당시의 청소년 세대들이 훗날 학부모 세대가 되어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를 겪게 되자 현 부모 세대는 자녀의 학업성적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학교생활'''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무분별하게 학원을 보내는 학부모 또한 상당히 줄었다.
후일 H.O.T.(전사의 후예, 열맞춰), 젝스키스(학원별곡)등 초창기 아이돌 가수들에게 학원문제를 꼬집는 노래를 만들게 한 장본인스러운 노래기도 하다.
<교실 이데아>는 한때 표절 의혹이 일었었다. 비스티 보이즈의 <Pass the Mic>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 것. <Pass the Mic>의 'Yes Yes Y'All, And Yes Yes Y'All'과 <교실 이데아>의 '됐어 됐어 됐어 됐어'의 구조가 유사하다는 의견이었는데 사실 Run-D.M.C.로 시작된 Y'All 형태의 라임이 클리셰로 굳어진 형태로 표절과는 무관하다. 실제로 저런 라임을 구사한 뮤지션은 비스티 보이즈 외에도 많고, 서태지는 그저 저런 라임을 한국어로 잘 비틀어서 메탈에 집어넣은 것 뿐. 그것도 그런 것이 안티들이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 크로스를 표절했다거나, Run-D.M.C.를 표절했다는 등 의견이 제각각이다.
교실 이데아 라이브
<교실 이데아> 라이브는 아예 크래쉬#s-2가 편곡까지 전부 새로 해서 크래쉬스러운 사운드를 내놓았다. 다만 멀티큐브와 연동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했기에[15] 천하의 크래쉬가 (미리 합주를 녹음해놓긴 했지만) 핸드싱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곡에 피처링을 한 안흥찬이 당시 일화를 밝혔는데 링크 '''내 목소리가 굵고 거칠다보니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서태지씨는 그러기는커녕 잔향까지 그대로 사용해 개인적으로 만족했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TAP SONIC에도 등장한 바 있는데, 단타+긁기의 미친 듯한 난이도 때문에 8레벨 보스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태지의 솔로 커리어에서 이 곡은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서태지에게 '''큰 행사'''라 할 수 있을 때 연주된다.
최초의 솔로 활동 시작이던 '''6집 컴백스페셜의 다섯 번째 곡'''으로 쓰인 이후, 2004 ETP와 교감 서태지에서 연주되었다.
2007년 15주년 기념으로 리믹스하였으며[16] 2008의 Seotaiji Symphony에서 07 rmx 버전을 토대로 라이브되었다. 서태지 활동의 제3의 막을 올린 9집 컴백쇼인 Christmalo.win에서도 연주되었다.
6.4.1. 교실 이데아 소동 1 (1994~1996)
교실이데아는 크래쉬(Crash)의 보컬 안흥찬의 참여도 화제였지만, 그가 맡은 파트의 백마스킹 '피가 모자라'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몬데그린의 일종인데, 이 사건으로 서태지 사탄 숭배설이 크게 흥했다. (자세한 내용은 피가 모자라 항목 참조) 인터넷 대중화는커녕 PC통신망조차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도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수많은 테이프들이 절단 났다. 그것 때문에 앨범을 두 번 산 아이들도 많았다.[17] 참고로 이 사건에서 서태지 자신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지, 최근 발매된 15주년 앨범의 교실이데아 리믹스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는 '피가 모자라' 백워드 마스킹이 나오면서 얼굴에 덮인 신문지를 찢어버리는 장면이 담겨있다.
6.4.2. 교실 이데아 소동 2 (2018~)
헌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서태지가 대중의 관심에서 과거보다는 조금 멀어지자 이번에는 외국에서 문제가 터진다.
방탄소년단의 광복절 티셔츠 착용을 문제삼아 방송 및 입국을 거부한 일본의 우익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문제로, "나치를 옹호하는 방탄은 악하다"며 여러 가지 근거를 댔는데, 하필 그 근거 중 하나가 '''25주년 공연 교실 이데아 무대에서 고전 군복패션을 하고 다함께 고유의 깃발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이에 이번에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날조로 가득 찬 동영상이 만들어져 이 곡이 공격받았으나, 해외 ARMY 팬들이 참전했고 그 이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교실 이데아 25주년 Time:Traveler (feat.BTS) 영상.
댓글란을 보면 일본 넷우익들이 달려들었다가 ARMY들에게 역으로 털린 흔적을 볼 수 있다(....)
6.5. 내 맘이야
앞서 언급한 이동연 교수의 저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교실 이데아와 마찬가지로 구속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내 맘이야>는 전형적인 펑크록 공식에 충실한 곡이다.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가사와 재미있는 펑크락 사운드가 즐거운 곡이다. 물론 이 곡도 만만치 않게 교실 이데아만큼이나 하이브리드 성이 은근히 들어가 있다. 전주 중간중간 들어가는 스크래치 연주와 힙합 비트의 샘플링과 후렴의 CRASH 안흥찬의 코러스 등 단순한 사운드가 아니다. 앨범에 수록된 락/메탈 곡들중에 유일하게 리얼 드럼이 아닌 미디 프로그래밍 된 드럼이 사용되었다. 마니아들 중에선 타이틀곡인 <발해를 꿈꾸며>보다도 <교실 이데아>와 <널 지우려 해>와 함께 이 곡을 더 높게 쳐주는 팬들도 많다. 참고로 곡이 끝나면 서태지의 육성으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온다.
다른 하늘이 열리고 이후 라이브하지 않다가, 솔로 활동으로 넘어가 Atomos Part Secret이 릴리즈되던 2009년 초의 웜홀 콘서트에서 5개 앨범 만에, '''14년 만에 앵콜곡으로''' 라이브하였다. 이후 8집투어 뫼비우스, 9집투어 QUIET NIGHT까지 매 투어마다 셋리스트에 들어간다.
6.6. 제킬박사와 하이드
<제킬박사와 하이드>는 서태지가 유명한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만든 곡. 사악하게 변해가는 지킬박사의 심경변화를 곡을 들으며 느낄 수 있다. 중반부 지킬박사가 범행을 저지르는 중반부의 '내리쳤어'는 폭력성을 이유로 심의에 걸렸다.
역시 다른 하늘이 열리고 이후 라이브하지 않다가, 14년만에 8집 투어 Mobius에서 '''뮤지컬 액션 버전'''으로 부활, 9집 투어 QUIET NIGHT까지 셋리스트에 들어가고 있다.
6.7. 영원
<영원>같은 경우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단순 스트링이 아닌 클래식사운드를 구현했다.
<영원>은 서태지의 미성을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느낌의 발라드. 서태지의 소녀 팬들을 위한 곡이라고 봐도 무방.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별을 다룬 곡으로,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운드 때문에 김동률이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디즈니풍이다. 서태지가 디즈니 작품이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그렇다. 2008년 서태지 심포니에서 제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서 엄청난 퀄리티로 라이브앨범에 수록되었다.
이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공동 편곡을 했다. 공동 편곡자는 한국 최초의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인 이성환이다.링크 출처 여담으로 서태지의 셋째 할아버지가 대한민국 오케스트라 초창기에 활동했던 연세대 음대학장 '''정희석'''인데, 이분의 아들 소개로 만난 편곡자라고 한다.
6.8. 널 지우려 해
<널 지우려 해>는 1집의 '이 밤이 깊어가지만'에 이어 양현석이 작사를 했다. 발라드로 시작했다가 강렬한 메탈 사운드로 연인에 대한 이별을 외치는 강렬한 곡으로 서태지 콘서트에 단골로 올라오는 곡이다. 서태지도, 양현석도 애착이 있는지 이후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YG 소속 후배 가수들이 커버링하기도 했다. 3집 활동 종료 후 4집 컴백 스페셜에서 공연되었고, 서태지 솔로 활동에서는 2002 ETP에서 넬의 무대에 서태지가 난입하여 김종완과 함께 부른 것이 첫 라이브다. 아예 Nell(2003~05 서태지컴퍼니 소속) 스타일로 새로 부른 버전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편곡이 다르다. 이후 2004 제로 투어, 2008 뫼비우스 투어에서 원곡을 편곡한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참고로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때는 기존의 이주노 파트가 끝이 난 뒤 바로 서태지 파트로 이어지지 않고 이 콘서트에서만 나온 양현석의 오리지널 파트가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양현석 파트(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는 생략되었다.
앨범 버전에서는 곡이 끝나면 서태지의 육성으로 "훗, 안뇽"이라는 말이 나지막이 나온다. 서태지가 당시 이 말에 꽂혀 있었는지(?) 3집 컴백콘서트 당시에도 콘서트 클로징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무대를 마무리했다(...).
7. 트랙 리스트
8. 제작진
기획: 최진열
프로듀서: 서태지
마스터링 엔지니어: 빌 마체티(Bill Mazzetti)
마스터링 스튜디오: 파이브 필 마스터링 스튜디오(Five Feel Mastering Studio)
레코딩 스튜디오: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Conway Recording Studio)
드럼 테크니션: MR. DRUM DOCTORS T.M.[20]
기타 테크니션: 케빈 스콧(Kevin Scott)
베이스 기타 테크니션: 데이비드 프리드먼 (David Freedman)
기타 : 서태지, 케빈 스콧, 팀 피어스(Tim Pierce), 존 피어스(John Pierce)
베이스 : 서태지, 존 피어스
드럼 : 조시 프리즈(Josh Freese), 데니 폰게이저(Denny Fongheiser)
드럼 프로그래밍 : 서태지
키보드 : 서태지, 최태완(어쿠스틱 피아노)
첼로 : 권선미
스트링 : 제팬 킹 오케스트라(The Japan King Orchestra)
디제잉 : DJ Q-Bert
컴퓨터 프로그래밍 : 서태지
디자이너: 권혁방, 임성구 (Ivy Production)
컴퓨터 그래픽스: 이욱재 (Shins Graphics)
사진: 임두현
카피라이터: 채송아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김국현
9. Special Thanks To Our Fan
깊은 것은 언제나 믿음이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들 -
믿음으로 마음이 닿아 있었기에
이제, 세 번째의 앨범을 여러분께 바치며
새롭게 시작되는 날엔
함께 하고 싶습니다.
10. 여담
- 양현석, 이주노가 약간 쩌리였던 시절. 아닌 게 아니라 저럴 거면 밴드로 나오지 여전히 <서태지와 아이들>이어서 위화감이 들긴 했다.[21]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마지막 앨범으로 생각하고 냈던 앨범이라 서태지가 이것저것 다 해본 거라고 한다. 즉 4집 앨범은 일종의 뒤풀이 격으로 준비한 거였는데 이게 다시 대박을 쳤다.
- '발해를 꿈꾸며'의 기타 애드립 부분은 후일 1박 2일의 백두산 특집 티저 영상에서 다시 한 번 사용했다. 당시 1박 2일의 vice PD와 작가진들[22] 은 서태지 팬으로 여러 번 인증되기도 했는데, 예고 영상을 보면 간주부분부터 2절 후렴부까지 거의 1분 30초간 무편집으로 집어넣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후로도 3회차간 백두산 특집 본방송 오프닝 음악으로 활용되었다.#
- 이 애드립 속주부분은 1995년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세션을 맡았던 국내 연주자는 원곡과 약간 다르게 편곡, 속주와 테크니션을 중시하는 피어스의 원곡보다 좀 더 유연해졌다.
-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75위에 랭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