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 Tai 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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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98년 7월 7일 발매된 서태지의 다섯 번째 앨범. 발매 당시에는 '5집'이란 표현과 '솔로 1집'이란 표현이 공존했지만 7집의 공식 표기가 7th Issue로 나오면서 이 앨범도 5집으로 정리되었다.
이 앨범은 특별한 제목 없이 'Seo Tai Ji'라는 글자만 적혀 있고, 특이하게도 보라 케이스에 담겨 발매되었다.
총 러닝 타임은 28분으로 6곡의 노래와 3곡의 간주곡이 담겨 있으며, 발매 당시 타이틀곡은 <Take Two>, 후속곡은 <Take Five>였다. 수록곡에 제목이 없이 Take 1, 2, 3 하는 식으로 지은 이유에 대해서는 발매 후 이메일을 통해 가진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목이 곡에 선입견을 주는 것 같아 제목을 없애버렸다고 설명했다.[1]
당시 직접 보낸 온 각 곡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링크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피하는 서태지의 특성상 해석은 알아서.
이 앨범을 이후로 추상적인 가사가 많아진다.
2. 수록곡
2.1. Maya
앨범의 인트로 격 음악. 다음 트랙인 <Take One>과 이어진다.
2.2. Take One
<Take One> 뮤직비디오
<Take One>은 외계인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설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다. 감독은 서태지 <시대유감> 싱글 표지와 6집 앨범 표지를 디자인한 전상일이 맡았다. 참고로 <Take Two> 뮤직비디오도 전상일이 맡았다.
당시 전상일 감독은 이 뮤직비디오를 음악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장장 26분짜리 버전도 공개했었다.
원안이 되는 줄거리를 보면 장편 SF 영화를 방불케하는 설정인데, 이 때문에 26분짜리 버전을 봐도 뭔가 불친절한 느낌을 준다.
이후 8집에서 서태지는 본격적인 SF 콘셉트를 시도하는데, 그 시발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6분 버전은 한때 PC통신을 통해 다운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경로로 퍼진 파일이 유튜브에 올라온 적도 있으나,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현재는 볼 수 없다.
여담으로, 이 곡은 2016년 카뮈의 작품 페스트를 뮤지컬화한 작품에서 쓰이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의료계 인물로 잠깐 등장했지만, 뮤지컬 버전에서는 통제된 미래 사회 '오랑 시'의 여성 지배자로 바뀐 리샤르가 부르는 노래로, 자신의 정책을 미화한는 일종의 프로파간다 같은 노래로 쓰인다. 그런데, 원곡 뮤직비디오의 설정을 보면, 통제 사회 '테크노시티'의 여성 지배자 '아이라'가 등장한다. 원래 줄거리에서는 선량한 과학자이나, 악당의 손에 의해 기계화되어 두 가지 자아가 등장한다는 설정이라고 한다.
가사 중 해석을 할 수없는 옹알이 가사가 있는데 팬들은 " it's knocking soul while knocking soul up "로 추측하기도 했다. 다만 훗날 서태지 본인이 말하기를 원래 가사를 써놓은 게 있긴 하나, 외계어처럼 바꿔서 불렀다고 한다. 원래 가사가 공개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15년 일겅 남탕 콘서트에서 팬의 질문에서 직접 답변했다.
2.3. Take Two
<Take Two> 뮤직비디오
<Take Two>는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의 소통의 단절을 다뤘다.[2]
보다 자세한 내용은 Take Two 문서 참조.
2.4. Radio
<Radio>는 습작 식의 리프 여러 개를 짤막하게 플레이한 곡. 각 리프가 바뀔 때의 찰나가 라디오의 주파수를 바꾸는 듯한 느낌이다. 참고로 리프 중 하나를 6집의 <탱크#s-1.3>의 후반부에 재활용했다. 다음 트랙인 <Take Three>와 이어진다.
2.5. Take Three
<Radio> + <Take Three>를 삽입한 애니매트릭스 매드무비
<Take Three>는 자살에 대해 다뤘다고 하며, 가사집에 있는 풀 버전의 가사를 보면 좀 더 의미가 명확해진다. 원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으며, 굵은 글씨의 가사만이 노래에 들어가 있다. [3]
> 어둠속에 내가 묻혀/결국 후회 속에 죽기 위함이었나
> 난 세상의 무게를 주장했다.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불행
> 나약했던 나의 마음속에는 악마의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 나에겐 흥분만이 가득했다. 생각 없는 아이의 무일푼의 도박,
> 영원히 잠드는 게 아니다. 영원히 어둠속에 깨어있다.
> 난 어둠속에 깨어있어,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를 일으켜,
> 이제 검은 흙이 나를 뒤덮고 그것은 고통의 무게로 날 짓누른다.
> 예전에 결코 알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두려움과 함께 난 갇혀버렸다.
> 도피의 끝은 진정 죽음은 아니었다. 난 죽었지만 고통은 살아있다.
> 죽음 뒤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도 칠 수 없을 정도로...
> 이미 난.. 굳어 버렸다. 네가 계속 나약해질수록...
> 기억해라 불행은 너를 사랑한다.
2.6. Take Four
<Take Four>
2.7. LORD
<LORD>
2.8. Take Five
<Take Five> 뮤직비디오
<Take Five>는 서태지의 인기곡 중 하나이며 암울하거나 신비한 느낌이 많은 당 앨범의 곡들중 그나마 밝은 느낌의 곡이다. 한때 스매싱 펌킨스의 <Today>의 기타리프를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코드나 스타일의 유사성은 있으나 동일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빌보드닷컴에서는 1998년에 나온 베스트 송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8년에 20년 전 노래들을 회고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는데, 그중에는 당시 차트에 없었던 곡들도 있었으며, 이 곡도 차트에 없음에도 선정되었다.기사
현재 유료 기사로 전환된 상태이지만, 서태지가 언급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image]
참고로 해외의 음악 포럼 게시판에는 당시 기사의 순위가 갈무리되어 있다.링크74. Seo Taiji, "Take Five" (Did not chart)
Seo Taiji remains South Korea’s “Culture President” for a reason -- he pioneered the industry’s embrace of diverse genres.
“Take Five” marked another sonic transformation, one that eschewed the rap-rock of his prior group Seo Taiji and Boys.
While his self-titled album was coated in the heavy metal of his early days, this track takes on a sunnier disposition with flahses of late-’90s college rock.
After all, “Take Five” was a message to fans that he’d return to music after retiring in 1996. -- CAITLIN KELLEY
또한 빌보드 기사 본문 전체 갈무리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데, 빌보드 에디터들이 선정한 1998년도의 명곡들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라이브를 할 때 마다 관람객들이 종이비행기를 서태지에게 날리는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내용의 뮤직비디오와 똑같다.
2.9. Take Six
<Take Six> + Hidden Track.
<Take Six>는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의 압박에서 벗어나 미국 생활에서 찾은 안정과 자유를 노래한 곡으로, 곡 자체는 짧아 2분 58초에 끝난다. 5분 00초부터 히든 트랙(연주곡)이 재생되는데, 제목은 딱히 없는 듯하다. 6집의 스타일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며, 실제로 6집 몇몇 곡에 이 히든 트랙의 기타 리프가 쓰였다.
3. 트랙 리스트
4. 라이브 영상
2000.09.09 6집 컴백스페셜 Take One 라이브
2008 서태지심포니 Take One 라이브
2008 서태지심포니 Take Two 라이브
2000.09.09 6집 컴백스페셜 Take Two + 교실 이데아 라이브
2014-2015 QUIET NIGHT TOUR Take Three 라이브
8집 컴백스페셜 Take Four 라이브
9집 컴백스페셜 Take Five 라이브
2004 ZERO TOUR Take Six 라이브
4.1. 라이브 시점
5집은 어떠한 공연도 진행한 적이 없으며, 컴백스페셜에서마저도 딱 두 곡만 틀어주었다.
때문에 일반적인 서태지의 새 앨범 전국투어에서 그 앨범의 곡들이 (인터루드를 제외하면) 모두 라이브 되는 것과 달리 5집은 각 곡들의 첫 라이브를 따로 했기에, 여기에 서술한다.
5. 앨범 구별방법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매니아들의 경우 초판과 재판을 구분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정말 간단하다. [9] 초판의 경우 케이스 뒷면 오른쪽 하단에 일련번호가 찍힌 삼성뮤직 홀로그램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그 스티커가 있는 위치, 그러니까 케이스 안에 보이는 부클릿에 오렌지 레코드와 반도음반 라벨, 그리고 좌측 하단의 삼성뮤직의 영문인 SAMSUNG MUSIC이 보인다면 그 앨범은 초판이다. 디스크 표면에도 오렌지 레코드와 삼성뮤직이라고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재발매판은 괴수대백과사전 표시가 대신하고 있다.
음반 옆에 표기되어있는 발매번호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1998년도 초판은 SCS-333PSR, 2004년도 재발매 판은 YDCD-689, 2009년도 리마스터링 판은 STJCD-0001이다. 푸른bf762e 주얼 케이스 때문에 발매번호 확인이 어려운데, 확인 하고싶다면 휴대폰 플래시로 꼭 비춰서 확인해보길 권장한다.
추가로, 2004년도 재발매 판에는 예당 로고가 표기되어있고, 2009년도 리마스터링 판에는 예당 로고가 없다.
6. Thanks To
날개를 준비할 것.
날개를 접어 보낸다. 우리가 다시 날 수 있도록...
헤어짐과 만남
절망과 희망
끝과 시작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의 다른 이름들,
"너"와 "나"
우리가 모두 하나이듯이
Special Thanks To 나의 영원한 친구들....
7. 은퇴에서 컴백까지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고 미국에서 잠적 생활에 돌입한 첫 1년 동안[10] 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캠핑카에서 음식 만들어 먹고 뒹굴거리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보인 악기점에 들어갔고 '''음악 하던 사람이니까''' 취미삼아 기타를 구입하고, 오랜만에 기타를 치려는데 갑자기 팬들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음악을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간 것이 바로 5집이다.[11]
이에 대해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당시부터 솔로로서 새로운 음악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견해도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매니저를 담당했던 최진열씨가 자신의 책 <태지 주노 양군과 함께한 1036일>에서 은퇴 후 서태지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모든 것을 처분했으나 음악작업에 필요한 것은 전혀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미국에 가지고 갔다."라고 말한 부분이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앨범에서 여기저기 볼 수 있는 암시[12] 가 그 근거.
다만 음악작업에 필요한 고가의 기계들은 애초에 쉽게 처분할 수도 없고, 은퇴 선언을 했다고 해서 꼭 악기와 레코딩 장비들을 처분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장비를 안 버렸네?. → 그럼 음악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네? → 애초에 솔로를 준비했구만.'이라는 것은 억측에 가깝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앨범 준비는 서태지의 원맨 밴드 작업으로 이뤄졌다. 보컬/기타/베이스 모두 서태지가 녹음하였지만 드럼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레코딩 세션으로 참여했던 조쉬 프리즈가 참여했다. 6집과 유사한 방식으로 드럼이 최종작업 되었기에 조쉬 프리즈와 태지의 샘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셈.
초기에는 드러머가 공개되지 않았으며, 2000년 이후 '5집, 6집의 드럼이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되었다.'라는 서태지의 언급으로 추정만 하다가, 재발매 5집에서 확실해졌다.
8. 컴백과 프로모션
완성된 앨범을 한국에 보내기만 했을 뿐 공식적으로 활동은 하지 않았으며, 후에 방송에서 한국에서 다시 활동하는 것에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앨범 속표지에 라이너노트 및 가사 같은 건 없고, 가사집은 A4 크기의 포스터 한 장으로 앨범을 구매할 때 레코드점에서 따로 끼워줬지만 못 받은 구매자도 상당히 많다. 속표지에는 이상의 오감도를 영문자판으로 친 글자들만 있다. 속지뿐만 아니라 앨범의 커버 아트도 이상의 날개가 모티프이다. Take Five의 MV의 마지막 장면에는 신세경이 출연하여, 당시 아역으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5집의 재킷, 부클릿, PV 등 음악을 제외한 모든 내용은 서태지와 무관하게 작업되었다. 서태지 팬들은 오감도의 내용과 음악 간의 연관 고리를 찾으려 애썼지만, 서태지는 마스터링 음원을 제공했을 뿐 어떤 내용에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보면 서태지 솔로 활동 중에 음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자신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앨범.
한국에서 직접 활동을 하지 않은 탓도 있어서 그런지 앨범 판매는 주로 팬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일반 대중의 소비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렇게 팔리지 않은 재고를 전량 회수하여 집계된 판매량은 '''110만장'''이다.
그리고 이 음반을 유통했던 삼성영상사업단은 1999년에 해체했다. 당시 시대 상황이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벌인 것도 있고, 실제 음반이 110만장이라는 준수한 판매고를 올렸지만 서태지의 컴백앨범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음반 수요예측을 하여 실제 수요 이상으로 음반을 엄청나게 찍어내었고, 결국 엄청난 재고가 발생하여 이것이 모두 제작비로 떠안겨 버린 바람에 결과적으로 수익이 줄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당시 일단은 삼성그룹 계열사였기 때문에 이점을 두고 당시 딴지일보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기사에 '삼승은 스테지도 구워삶슴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실제로 1999년 즈음 삼성영상사업단 산하 케이블 영화 유료채널 캐치원의 고객유치를 위한 '''사은품으로 이 앨범 테이프 판을 서울의 모 아파트 단지에 찌라시 마냥 뿌릴 정도'''였고 아파트 1층 경비실 앞에 무더기로 쌓아놓고 맘대로 가져가도 되는 곳도 있었다. 비닐 포장은 제거된 상태였으며 보라bf762e 테이프 곽에 은빛의 캐치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13]
이에 대한 언급은 응답하라 1994 후반부에도 나왔다. 여기선 삼천포가 CD를 무려 '''100장'''이나 사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무슨 광고 마냥 뿌리는 걸로 나왔는데 결국 이 꼴을 보고만 서태지 광팬이었던 아내가 말 그대로 빡돌아버려서 남편과 대판 싸웠다. 이 당시 MP3 플레이어가 인기를 끌면서 소리바다를 비롯한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가 흥하기 시작하고 CDP 및 미니 디스크가 흥하던 시점이라, 테이프 카세트는 급속도로 사장되기 시작하던 때라서 그런 듯하다.
덕분에 이 앨범의 저작권은 공중으로 뜨게 되았고 절판된 이후 한동안 희귀음반으로 남다가, 판권문제가 해결된 2004년 9월에 예당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재발매되기 전까지 중고시장에서 상당한 고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니 아예 살 수가 없었다. 한창 이 앨범의 중고가가 치솟을 무렵 팬사이트에서는 한 팬이 중학생 시절 학교 바자회에서 이 앨범을 500원(!)에 샀다던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됐다. 이는 B급이라도 5만원을 호가하던 시절의 얘기다.
절판되기 전 발매된 초판들의 경우 앨범 케이스 뒷면에 일련번호가 찍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한정판이 아니었던 이상 큰 의미는 없겠지만.
9. 반응
5집 컴백 기사
타이틀 곡 Take Two는 앨범 출시 직후 케이블 가요 차트 순위[14] 에서 1위로 껑충 뛰는 등 서태지의 컴백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컸는지 증명했으며, 5집은 1998년 상반기 최고의 판매고를 올렸다.[15]
다만 이런 성적과는 별개로 음악 외적인 부분으로 말이 많았다. 공식 은퇴 선언을 번복한 것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활동하지 않고 앨범만 낸 것조차 상술이라는 비난이 가해졌다.
또한 정규 앨범치고는 짧은 러닝타임 문제(총 28분)도 제기되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풀렝쓰 앨범이라기보다는 EP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서태지의 반대자들은 EP 수준의 앨범을 정식 앨범 값에 팔았다는 점을 지적했다.[16] 일각에서는 서태지가 그 동안 가수로 벌어놓은 돈 가지고 미국에서 잘 살다가 돈이 점점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니 다시 돈 벌러 나온 거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10. 음악적 평가
앨범 전반적인 성향은 로우파이 사운드에 어떤 장르라고 특정되기 어려울 정도로 실험적이다. 첫 타이틀이었던 <Take One>이 얼터너티브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대표곡 <Take Five>도 스매싱 펌킨스의 사운드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얼터너티브 장르의 음반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각종 샘플링과 랩이 동원되어 익스페리멘탈로까지 불린 타이틀곡 <Take Two>나 묵직한 쓰래쉬 사운드의 <Take Three> 등 그 뒷 트랙들까지 그렇게 정의하기에는 무척이나 복잡하기에 앨범 전체의 장르로 보면 그냥 록 음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무난하겠다.
전반적인 마스터링 퀄리티 또한 시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 있어서 앨범 사운드는 현재 시점에서 들어도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이다.
컴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수록곡들 역시 자신의 목소리 부분이 고의적으로 낮게 녹음되어 있다. 그나마 덜 낮게 녹음된 곡이 <Take Two>, <Take Five> 정도.
사실 아이돌 시절의 1~4집 팬들 중에는 5집을 듣고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많았다. 분명히 태지형 태지오빠의 앨범인데, 현석이형 목소리 주노형 목소리는 물론이요 태지오빠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도 않고, 곡들도 하나 이해가 안 되는데 가사집도 딸려오지 않은 것[17] . 이 이후 서태지는 소수 매니아 계층들에 대한 의존성이 점점 강해지고 가장 전문적 프로모션을 보여준 8집 Atomos에서 그 절정을 맞는다. 실질적으로 "매니아" 아닌 "팬"을 다시 제대로 수용하기 시작한 건 9집 때부터.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6집이 발매되자 당연히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던 5집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가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오히려 이러한 보컬 사운드를 낮춘 프로듀싱이 오히려 신선함을 주는 것 같다고 호평하는 평론가나 리스너들도 생겼을 정도다. 보컬이 정면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 오히려 다른 악기와 융합이 되어 오히려 목소리 자체도 기타나 베이스 디제이와 같은 하나의 악기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밴드음악으로써는 오히려 다른 악기와의 조합이 상당히 좋았다는 평이 나왔다.
특히 <Take One> 같이 외계 컨셉을 잡은 곡 같은 경우는 오히려 컨셉에도 맞는다고 대호평. <Take Two>의 경우도 다른 기타와 베이스 디제이 등의 악기와 잘 어울려 정말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처럼 들린다.[18] 거기다 서태지의 보컬 자체가 메탈 특화 보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Take Three>의 곡도 무난히 소화해 낸 게 이런 프로듀스가 오히려 플러스 효과를 이뤄냈다는 평이 생겨났다.
이후 서태지의 팬들은 해외의 평론가들에게 이 1집에 대한 평가를 의뢰하여, 서태지의 솔로 1집 앨범은 'Rock-extreme 이주의 밴드'등 음악 평론 사이트에서 호평을 얻는다.
여담으로 어떤 팬이 <Take Five>, <Take Six>를 제외한 이 앨범의 전곡을 자신의 관점으로 모두 해석한 글들이 있다.[19] 근데 몇몇 곡들이 약간 뒤섞여 있는데다 일부 팬들의 관점으론 거부감이 느껴질수 있으니 주의. 또한 글이 약간 섬뜩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도 주의하자. 글 읽는 순차는 앨범 트랙과 똑같이 Maya-Take One-Take Two-Radio-Take Three-Take Four.
part 1: Take One, Maya, Radio
part 2: Take Two
part 3: Take Three
part 4: Take Four
최근 케이팝 열풍을 계기로 해외 매체에서 서태지를 케이팝의 원조로 조명하기 시작하면서, 5집 앨범 수록곡도 뒤늦게 조명을 받았다. 2018년 빌보드 닷컴에서는 20년 전엔 1998년도에 나온 곡 중에서 98곡을 선정해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그중 74위가 <Take Five>였다. 심지어 당시 자사 차트에는 오르지도 않았던 곡이었다.
해당 곡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수록곡 항목에서 후술한다.
평론가나 음악 애호가들의 반응을 대체적으로 보면 발매 당시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가 후해지는 경향이 있는 앨범이다.
멜론 매거진에서 '갇띵반('God 명반'을 야민정음식으로 표기)' 시리즈를 연재하는 배순탁 평론가가 2019년 5월 9일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전지구적 슈퍼 에고가 파생한 국지적 슈퍼 에고'''라고 한다. 해외 음악에서 파생된 음악이지만, 자신만의 색채를 띠고 있는 명반이라는 의미다.
또한 헤비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6집에 담길 음악을 예고했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5집은 자기 색채가 있는 반면 6집은 '''콘이나 림프비즈킷'''의 아류라는 혹평이 많았는데, 배순탁 평론가는 5집과 6집이 하나의 맥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양쪽 다 자기 나름의 색깔이 있는 명반이라 평가했다는 점이다.
일단 2000년에 발표된 서태지의 솔로 2집부터 얘기해보자. 역대급 컴백 쇼와 함께 돌아온 서태지의 랩 메탈 음악을 두고 "파격"이라는 표현이 줄을 잇고 등장했다.
글쎄. 당시 나는 이게 과연 음악을 제대로 듣고 글을 쓴 건지 의문이 들었다. 2집은 차라리 1집의 연장이었다. 헤비한 음악을 '더' 격렬하고 헤비하게 다듬어낸 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긴, 랩 메탈을 하드코어라며 엉뚱하게 정의하던 사람들이 태반이었던 시절이다. 장르 따지는 게 때론 무용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랩 메탈과 하드코어는 좀 많이 다른 음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2집에서 추구한 콘(Korn)류(流) 음악의 흔적은 1집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Radio'와 'Take Three', 그리고 'Lord'의 기타 리프를 들어보라. 2집에 들어갔어도 전혀 어bf762e하지 않았을 타격감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면서도 서태지는 기본이라 할 멜로디를 잃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Take Five'는 오랜만에 감상해도 변치 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런 식의 상승 무드로 펼쳐지는 멜로디를 나는 정말이지 애정한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곡을 아껴 듣는 이유다.
사운드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요소는 보컬의 위치다. 'Take Five'에서는 보컬이 꽤나 전면에 나섰지만 다른 곡들, 예를 들면 'Take One'에서는 그보다 좀 더 뒤로 물러나서 흩뿌리는 방식으로 곡이 전개된다. 반면, 'Take Two'에서는 한층 선명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Take Six'는 2분 20초경을 기준으로 보컬의 위상 자체를 다르게 가져가면서 음반을 강렬하게 마무리한다. 뭐로 보나 사운드의 입체성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앨범임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제 서태지 음악의 전체에 대해 논해볼까. 바다 건너 그의 "롤모델"들이 연상된다는 점은 서태지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서태지의 음악은 항시 "슈퍼 에고"를 상정하고 출발해왔다는 점에서 마니아 외부 진영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적어도 몇몇 앨범, 특히 이 1집(과 2집)의 경우 오리지널을 모사하는 필사본이 아닌 자신만의 터치가 녹아있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성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서태지 마니아들이 변함없이 그에게 환호를 보내는 바탕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전지구적" 슈퍼 에고가 파생한 "국지적" 슈퍼 에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