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제도

 


1. 개요
2. 시초
5. NPB
6. 기타
7. 참고 문서


1. 개요


'''F'''ree '''A'''gent. 자유계약선수제도.
보류조항이 존재하는 스포츠 리그에서 선수가 자율적으로 팀과 계약할 수 있는 제도다.
원래 폐쇄적 환경으로 시작한 미국 스포츠리그 초창기는 모두가 자유계약이었다. 리그 규정이란게 제대로 잡혀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팀간 이동도 돈만 있으면 자유로웠고 이때문에 혼선도 많았다. 그래서 내셔널리그를 비롯한 프로스포츠리그가 단합하여 보류조항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지금도 한국의 모든 프로리그나 폐쇄형 독립 리그에는 무조건 존재하는 이 제도의 취지는 간단하게 말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로 요약된다. 한번 리그의 팀과 계약한 뒤에는 선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팀으로 자유이적이 불가능한 것.
그래서 이는 선수의 직업선택권을 침해하는 처사이므로 점점 선수들의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아래 커트 플러드 사건을 통해 '자유계약선수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조건을 충족한 선수에 한해 제한적으로 보류조항을 해제하여 선수에게 자유롭게 팀과 계약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구단과 베테랑 선수와의 자유로운 계약 체결을 통해 구단은 전력 상승을 꾀할 수 있고 선수는 본인의 의지를 관철하면서 동시에 거액의 돈을 움켜쥘 수 있게 되어 서로에게 윈윈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2. 시초


[image]
FA제도 탄생의 단초를 제공했던 커트 플러드
197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필라델피아 필리스 간의 트레이드를 통해 중심선수이던 커트 플러드가 필리스로 트레이드 되었다.[1] 이에 대해 커트 플러드는 12년간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생활의 급격한 이전과 필리스의 노후한 홈구장, 인종차별적 팬[2]을 들어 트레이드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1922년의 연방대법원 판결인 '프로야구는 독과점금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로 선수는 트레이드를 거부할 권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커트 플러드는 이에 대해 커미셔너를 상대로 비인간적 처사라는 이유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였다. 선수노조는 이에 대해 호응하였으나, 은퇴선수를 제외하고서는 현역선수는 불이익을 이유로 법정에서 아무도 증언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1972년, 1922년 판결을 재확인하면서 구단과 사무국의 승소를 선언했다. 커트 플러드는 1970년 시즌은 포기하였고[3], 1971년에 다시 트레이드 돼서 13경기에만 출전한 이후로 은퇴하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허사가 아니었으며, 마빈 밀러의 노력으로 캣피시 헌터, 앤디 메서스미스, 데이브 맥널리에 대한 '사이츠의 결정' 등으로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뛴 선수는 자유계약을 할 수 있다는 FA 권리가 생겨났다. 이후 MLBPA(선수노조)의 구단 및 사무국과 협상으로 현재의 FA 제도, 연봉조정 제도가 생기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1998년 반독점금지법에 프로야구를 포함시키는 법이 제정됨으로서 선수의 권한은 확대되었고, 이 법은 '커트 플러드 법'으로 명명되었다.

3. KBO 리그




4. MLB




5. NPB


NPB의 FA 제도는 1993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FA를 최초로 선언한 선수는 마츠나가 히로미한신 타이거스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이적했다.
일본 내 이적과 해외 이적시 기준이 다른데, 일본 내 구단간의 이적의 경우 2006년 이전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는 모두 누계 8년, 2007년 이후 드래프트된 선수는 고졸의 경우 8년, 대졸 및 사회인의 경우는 누계 7년을 뛰어야 FA자격을 얻을 수 있으며, 해외 구단으로 이적시는 일괄적으로 9시즌이 넘어야 FA 자격이 주어진다.[4]
2008년부터 바뀐 규정을 적용하면 FA선수 등급은 전년도 기준 '''팀내 연봉 순위'''에 따라 분류되는데, 1~3위까지 A급, 4~10위까지는 B급, 나머지는 C급으로 분류되며 C급은 어떠한 보상도 필요없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C급 보상 최초의 이적 선수는 당시 주니치에서 라쿠텐[5]으로 옮긴 나카무라 노리히로이다.
원소속구단에 대한 보상 규정은 선수 보상 없이 현금만 보상받고자 할 때는 A급은 전년도 선수 연봉의 80%, B급은 60%이며, 선수로 보상을 받을 경우 A급은 전년도 선수 연봉의 50%, B급은 40%를 지급해야 한다. 보상선수를 지명하려면 보호선수 28명 + 외국인 + 신인 드래프트된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만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보상선수 지명시에는 원소속구단이 보상선수를 내주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FA선수를 획득한 구단은 전년도 선수 연봉의 30%, B급은 20%만 이전 구단에 지불하면 된다. 또한, 어떤 선수가 FA자격을 재취득한 경우 현금 보상액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한편 FA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인 1947년부터 1975년까지 프로 10년차 선수를 대상으로 한 '10년 선수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한 팀에서만 뛴 10년차 선수는 자유계약 권리와 재계약금 수령 권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여러 팀에서 뛴 10년차 선수는 재계약금 수령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는데, 이 제도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가네다 마사이치가 있다. 가네다는 10년 선수 권한을 획득한 뒤 자유계약권을 사용, 만년 B클래스인 친정 고쿠테쓰 스왈로즈를 떠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해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개인적 소원을 성취할 수 있었다.
KBO랑 다른 점이라면 원 소속팀과 재계약 시 연봉협상이나 다년계약을 하고 FA를 신청하지 않는다. 타팀 이적을 생각할 때만 FA를 신청한다. 물론 이적할 생각으로 FA를 신청했는데 막상 조건이 맞는 팀이 없다던지 원 소속팀의 정성에 마음이 바뀌었다던지 하는 이유로 원소속팀으로 돌아와 재계약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FA를 선언한다고 무조건 이적은 아니지만 대부분 애초에 이적할 생각으로 FA를 선언하기 때문에 FA=팀을 떠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위의 메이저리그의 FA제도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FA를 선언하지 않고 그냥 연봉인상을 요구하든가 하는 방식으로 그동안의 팀에 대한 공헌을 보상받는다. 일본은 비 FA선수라도 다년계약이 가능하므로, 보통 고액 다년계약을 주는 식으로 공헌에 화답하는 편. 이는 미국도 비슷해서 떠날 생각이 없으면 FA획득 이전에 고액 다년계약을 맺는 것이 추세.
애초에 떠날 생각으로 신청하는 것이 아닌 원소속팀과의 다년계약을 바라고 선언하는 한국프로야구의 FA는 미국이나 일본의 FA라기보다는 과거 일본의 10년 선수 제도에 가까운 셈. 형태 또한 FA금액에서 계약금이 기형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해서 FA라기보다는 10년선수 제도의 재계약금 수령에 가깝다.
참고로 FA로 원 소속팀을 떠난 선수가 두번째 FA로 원 소속팀에 돌아오는 케이스는 2018년에야 생겼다. 바로 닛폰햄에서 소프트뱅크로 이적했다가 다시 FA로 닛폰햄으로 돌아온 츠루오카 신야.[6] 위에도 썼듯이 FA자체가 이런저런 이유로 팀을 옮기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에...금전적 이유로든 다른 이유로든 한번 떠난 팀으로는 돌아오기 힘들다. 금전적 이유라면 애초에 첫번째 FA때 돈을 못 맞춰준 팀이 두번째라고 돈을 제대로 맞춰줄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고 팀이 맘에 안 든다던지 하는 다른 이유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보상선수로 KBO에 비해서 거물 선수들이 자주 튀어나온다. 물론 대부분의 보상선수는 노망주, 즉전감이 못된 2~3년차 유망주로 KBO랑 비슷하기는 한데 종종 초노 히사요시 같이 본인이 보상선수를 받고 FA로 이적할 만한 선수라거나, 사카이 토모히토처럼 전년도에 1군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한 선수가 보상선수가 되기도 한다.[7] 또한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와세 히토키'''같은 전설급 프랜차이즈가 보상선수로 지명되는 대형사고도 있었다.[8]
심지어 보호인수 28인으로 KBO의 20인보다도 8명이나 많은데 이렇다. 한 팀 20명 묶으면 그저그런 선수밖에 안남는 KBO에 비해 28인 보호해도 유명한 선수가 튀어나오는 NPB의 어마어마한 선수뎁스를 알 수 있는 부분. 또한 KBO의 경우 연봉을 구단이 벌어서 주는 게 아니라 모기업 돈으로 주는 거라 그냥 팬들에게 인기만 좋으면 가성비고 뭐고 묶어버리지만, NPB는 구단이 돈을 벌거나 지원을 받더라도 1년 예산이 넉넉치 못하게 지원을 받아 적자는 안 내는 수준까지 자립도 있는 경영을 해야 하는 팀이 많아서 이름값 센데 연봉값 못하는 가성비 안좋은 왕년의 스타들이 풀리는 점도 있고.

6. 기타


해당 용어가 스포츠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쓰기도 한다. 연예인이 소속사과 계약 만료가 되었을 때 FA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연예인이 연인과 공식 결별했다는 뉴스가 나면 FA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리그 규모가 작고 발전이 느린 대만프로야구는 2016년 시즌이 끝나고 린즈성중신 브라더스로 이적한 게 최초의 FA 이적이라고 한다. 동 시즌에 린즈셩과 같이 중신으로 이적한 정다홍이 2호 FA 이적자. 이후 2019년 FA까지 FA 이적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7. 참고 문서


[1] 보복이 아닌 팀 보강 차원에서 이뤄진 트레이드이기 때문에 물론 다른 선수들도 포함되었지만 본 문서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 플러드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필리스의 거포 3루수 딕 알렌부터가 필라델피아 팬들의 인종차별적 욕설과 야유에 질릴대로 질린 상태였다.[3] 9만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 400만달러의 소송비용을 썼다.[4] 2008년 부터 바뀐 규정으로 그전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누계 9년을 뛰어야 FA자격을 획득했다.[5] 2019년 시즌 종료 후 롯데에서 이적한 스즈키 다이치의 보상선수로 오노 후미야를 지명하기 이전에는 모두 현금으로만 보상했다. 라쿠텐은 그렇게까지 육성이 막장인 팀은 아니지만 상위픽이 아닌 선수가 즉전감이 못 돼주면 몇 년 보지도 않고 급하게 방출시키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팀의 육성능력에 비해서 2군 팜은 엄청 황폐하다. 정말 뎁스를 유지할 정도만 남기고 빠르게 빠르게 방출시키기 때문. 니시마키 켄지처럼 내야 수비 요원으로 고졸 1년차부터 1군을 밟은 선수를 2년 만에 육성선수로 강등시킨 사례도 있었다.[6] 첫번째 FA는 B급, 두번째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C급.[7] 사카이는 2019년 20홀드로(54경기 등판) 팀내 2위를 기록했던 주축 불펜이었는데 미마 마나부의 보상선수로, 초노는 마루 요시히로의 보상선수로 지명되었다. 이름값이야 센데 근 몇년간 부진해서 현재 폼으로 보면 보호명단에서 빠져도 이상하지 않기는 했다.[8] 2017년 시즌 후에 있었던 일로 당시 이와세가 43세로 초 고령이었고, 2018년에는 플레잉코치를 맡기로 했기 때문에 2018년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라 보호명단을 아끼려고 주니치가 이와세를 보호명단에서 빼버렸고 닛폰햄은 그걸 보고 좋다고 이와세를 오노 쇼타의 보상선수로 지명해버렸다. 결국 이와세가 자신을 지명한다면 그대로 은퇴해버리겠다고 버티면서 닛폰햄이 보상선수 지명을 취소하고 현금 보상으로 틀게 된 촌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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