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

 

'''홍성흔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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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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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2015'''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8'''
'''2002'''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2000'''





'''KBO 포스트시즌'''
'''2004 준플레이오프 MVP'''


'''1999 KBO 리그 신인왕'''


'''2004 KBO 리그 최다 안타왕'''


'''2006,2010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보유 기록
230개
통산 최다 병살타
109경기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경기 출장
429타석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석
376타수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수
101안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안타
42점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점
149루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루타
4개
통산 최다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42]


'''홍성흔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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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최기문(1998)

'''홍성흔(1999~2008)'''

성영훈(2009~2010)
성영훈(2009~2010)

'''홍성흔(2013~2016)'''

이용호(2017)
<color=#373a3c>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마해영(2008)

'''홍성흔(2009~2012)'''

홍성민(2012~2013)


<color=#373a3c> '''성구회[41]'''
<rowcolor=#373a3c>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0'''
'''2,046안타'''
'''2015년'''
'''우타자 최초 2000안타'''


'''AZL 파드레스 2 No.22 '''
'''홍성흔(洪性炘 / Seong-Heun Hong)'''
'''생년월일'''
1976년 12월 12일[1] (47세)
'''국적'''

'''출신지'''
강원도 횡성군[2]
'''학력'''
서울공릉초[3] - 중앙중 - 중앙고 - 경희대[4]
'''포지션'''
'''지명타자'''[5], '''포수'''[6], [7], [8]
'''배우자'''
김정임[9] (1973년생, 2004년-현재)
'''자녀'''
홍화리 (2005년생)
아들 홍화철 (2008년생)[10]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1차 지명 (두산)
'''소속팀'''
'''[image] 두산 베어스 (1999~2008)'''
'''[image] 롯데 자이언츠 (2009~2012)'''
'''[image] 두산 베어스 (2013~2016)'''
'''지도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 필드코치 (2018~)
'''응원가'''
입장시 : Diana Boncheva 《Beethoven Virus》[11][12][13]
타격시 : 싸이《챔피언》[14]
4 Non Blondes 《What's up[15][16]
'''종교'''
불교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응원가
5. 지도자 경력
5.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5.1.1. 2018 시즌
7. 여담
8. 연도별 성적

[clearfix]

1. 개요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이자 現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의 코치.
1999년 1차 지명으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데뷔 후 바로 신인왕을 수상하고 계속해서 활약을 이어나가며 팀의 주전포수로 도약하였고, 훈훈한 외모와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두산과 당대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포수로 활약하였으며, 포수를 그만둔 뒤 FA로 롯데로 이적후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4년간 롯데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롯데에서 그의 평가는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최고의 FA성공 사례'''를 만든 선수.
그 후 다시 친정 두산으로 돌아왔다. 롯데에서 선수 생활 커리어 전성기를 보냈지만, 이적 전 두산에서도 주전 포수로서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2회나 수상 할 정도로 활약했으며, 선수생활 말년 팀의 캡틴으로 활약했다[17] 선수 시절 별명으로는 '''홍턱''', '''홍포(洪砲)''', '''오버맨''' 등이있다.

2. 플레이 스타일


컨택형 교타자지만 홈런을 10개 중반 정도는 충분히 쳐줄 장타력을 겸비하고 있다. 다만 IsoP(절대장타율)이 낮은 편이라 2사 이후에는 투수에게 큰 부담이 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적극적인 타격을 선호하고 타고난 선구안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이병규와 함께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로 꼽힌다.
워낙 공격력이 좋았던 탓에 수비가 묻힌 감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국가대표에 포수로 수차례 차출되는 등 괜찮은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태형, 진갑용, 최기문, 이도형 등등 걸출한 포수자원이 넘쳐났던 포수왕국 두산에서 살아남은 선수다. 물론 박경완, 김동수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부상과 입스로 인해 2007시즌부터 포수로서의 출전이 어려워지며 지명타자로 나오게 되었고, 1루수좌익수로 이동해보려 했지만 실패하여 대부분 지명타자로 나오게 되었다. 빅터 마르티네즈와 비슷한 케이스. 가끔 크게 이기고 있거나 크게 지고 있던 경기에서 1루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뛴적은 있지만, 1루수로 선발 출장한 경기는 단 1경기밖에 없다.[18] 발은 느린 편이지만 그렇다고 이대호김태균같은 뚱보 선수들 수준은 아니다.
[image]
그의 1루 수비. 공격일변도의 야구를 추구했던 로이스터 감독조차 이 한 경기 쓰고 바로 봉인했다.
타격자세에 들어가기 전에 양팔을 흔들흔들 거리면서 어깨가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거는 행동을 하는데 롯데에 들어와서 시도했기 때문에 반 자동적으로 갈매기 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성흔 하면 빠지지 않는 트레이드 마크. 그러나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위한 스피드룰(12초룰)이 도입됨에 따라 갈매기 타법을 자주 보기는 힘들어졌다.
커리어 하이는 2010 시즌으로[19] 이대호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며 5개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해 장타율과 OPS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갔으며, 절대장타율도 2009시즌 대비 0.109 상승한 0.271로 리그 2위인 리그 최강의 타자로 발돋움했다. 이해에는 눈야구도 가능해져서 1.19의 BB/K, 0.435의 훌륭한 출루율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성적이 다시 떨어졌다는 점에서 플루크라고 의견이 많지만, 2011년부터 외야수 훈련을 병행해 타격 훈련량이 떨어지고 직전 시즌에 손에 사구를 맞아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된데다 노쇠화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2013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2012, 2013년의 기록을 보면 2010시즌은 타격의 변화를 통한 브레이크아웃 시즌이자 커리어하이 시즌일 뿐 플루크라고까지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홍성흔의 커리어는 그게 플루크 소리 들을 정도로 형편없지 않다. 즉, 2011시즌의 급격한 장타력 감소는 난생 처음하는 외야수 훈련 탓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2012년은 부상으로 기복이 있었지만 시즌 초에는 날아다녔으며, 장타력은 명백히 2011년에 비하면 좋아졌다. 2013년 역시 노쇠화와 친정팀 잠실구장의 영향 등으로 전반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제대로 부활하며 여전히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4년에도 5월에 그야말로 폭주하며 2012년 초반을 넘어 2010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했으나 이후 다시 부진. 2010시즌을 재현하기에는 나이 탓에 시즌 내내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10시즌 이전의 홍성흔과 이후의 홍성흔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타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은근히 묻힌 사실이지만, 2010시즌 김현수와 함께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 기록에 도전하는 단 둘뿐인 선수였는데, 사구로 인한 부상과 복귀 끝에 시즌 타율을 .350으로 마감하게 되면서 최초로 기록을 확정지었다.[20]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은 홍성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21] 2016년과 2017년, 역대급 타고투저가 2시즌 연속 이어지며 선수들의 평균 타율이 높아진 덕에 2018년에는 이 기록에 박건우와 박민우, 박용택과 최형우가 도전했다. 이 중 박용택과 최형우는 3시즌 이상 0.330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역시 3시즌 연속 타율 0.330에는 실패했었던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넷 중에서 오직 최형우만이 이 기록에 도전해 성공했고 여전히 2020시즌까지 우타자 중에서는 홍성흔만이 갖고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전성기 홍성흔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22]
그리고 이대호, 김현수와 함께 2년 연속 타율 0.350 이상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이게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설명하자면,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라도 .350 이상 쳐본 선수는 30년 역사에서 역대급 타고투저가 이어지는 2014~2017시즌까지 포함해도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23]
2013년 만 36의 나이로 통산 1,800안타 고지를 넘었고 2014년 5월 1,000타점, 9월 12일 200홈런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14일 KBO에서 2,000안타를 돌파한 최초의 우타자가 됨과 동시에 양준혁, 장성호에 이어 3번째로 2000안타-200홈런-1000타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이런 타격능력과 데뷔시절부터 공격력만은 못했다고 평가받는 수비실력을 고려했을때 처음부터 포수가 아닌 코너 외야수(좌익수, 우익수)나 1루수였다면 양준혁, 김동주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대 타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 커리어로도 일세를 풍미한 훌륭한 타자다. 다만 그렇다기엔 아마시절 두각을 낸 것과 프로 데뷔와 함께 주전을 차지한 것도 포수였던 이유가 크기에 오히려 포수를 선택함이 옳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3. 응원가



'''▲ 홍성흔 응원가'''
첫 번째 등장하는 응원가는 원래 롯데에서 사용하던 응원가로 홍성흔 선수가 두산으로 돌아올때 본인의 요청으로 롯데 응원가를 가져와 "롯데"를 "두산"으로 개사하여 편곡한 곡이다. 처음에는 롯데 구단의 허락을 받지않고 사용하여 롯데자이언츠의 조지훈 응원단장이 개인 SNS에 이에대한 서운함을 표하기도하였으나 이후 원만하게 해결되어 두산에서도 은퇴때까지 사용하였다

4. 선수 경력




5. 지도자 경력



5.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17년 9월 1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제의를 받아 정식 프로 코치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걸음이 시작됐다. # 아직 잘 지내는 듯 하다. 홍성흔에 대한 안 좋은 여론도 어느정도 희석되는 는 중... #. '''결국 샌디에이고 정식코치가 됐다.''' #
이는 이만수 전 SK 감독에 이은 두번째.[24] 다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메이저리그 코치가 아니라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 코치다.

5.1.1. 2018 시즌


포지션은 배터리 코치 혹은 타격 코치중 하나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루키 리그 인턴 당시엔 둘을 병행했다고.

6. 특이사항




7. 여담


  • 신인 시절부터 상당히 밝고 쾌활한 이미지를 유지해왔지만 알고 보면 어린 시절이 꽤나 불우했다. 중학생 시절 홍성흔의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이혼을 했고 아버지, 형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홀로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홍성흔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 1999년에는 신인왕, 총 6번의 KBO 골든글러브[25] 수상, 야구 국가대표 수차례 차출 등 경력이 매우 화려하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골든글러브 수상이 많다는 것이 흠.[26]
  • 트위터를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롯데 선수였다.[27] 오히려 선수단의 트위터 등 SNS 이용을 금지시켰던 주장이었다.
  • 스포츠 스타 여럿[28]을 보내버린 치명적인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아내와 즐겨한다고 알려졌다.[29] 결혼 당시 기사를 보면 꽤 열심히 한 듯 하다. 참고로 2003년 당시 만렙은 75렙으로 알려져있다. 직접 NC소프트를 방문 했을 정도. 그럼에도 최고의 타자로 군림한 걸 보면 자기관리 하난 정말 철저한 듯하다. 다만 게임 내에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알려졌다.
  • 40대의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색한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 오버스러운 끼를 주체할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해서 방송에 자주 출연했다. 경희대 재학 시절에는 KBS 2TV 캠퍼스 영상가요에 출연하기도 했고 두산 입단 후에는 출발 드림팀에 출연해 같은 팀 선배들인 강병규, 정수근과 함께[30] 하드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로 분장해서 공연을 했다. 역시 홍오바.# 동영상 : # 2015년 1월 15일 해피투게더에 딸 홍화리와 같이 나와 또 췄다.
[image]
[image]
그리고 이 짤방은 두산 베어스 갤러리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개념글을 빠르게 갈 수 있는 치트키가 되어버렸다. 이 경우 통용되는 별명은 흐니흐니.
  • 올스타전에서는 2009년에는 가발을 쓰더니[31] 2010년엔 최다득표 감사[32] 라고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수염도 달고 나왔다. 쇼맨십이 있는 듯. 그리고는 그 수염쓴 상태로 류현진에게 2점 홈런을 날렸다.[33] 2006년 및 2010년 올스타전 MVP 수상.##
  • 위의 올스타전과 골든글러브 수상식 일화에서 보여지듯 쇼맨십과 스타의식이 상당한 선수로 팬 서비스도 그에 걸맞게 좋은 선수였다. 단순히 사인만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홍오바' 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상식이나 올스타전에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줄 퍼포먼스를 준비해 와서 프로야구가 단순히 운동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던 선수. 지금은 팬 감사데이 등에서 선수들이 각종 분장을 하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것이 당연한데, 홍성흔 젊은 시절만 해도 운동선수가 저렇게 머리를 염색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면 선배들로부터 구박을 받았던 경직된 체육계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이를 벗어던지기 시작해서 자유로운 문화를 어느정도 정착시킨 1세대 선수. 물론 기본중의 기본인 사인도 어린이 팬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인을 해줬다는 일화부터 시작해서 미담뿐이다.
  • 1남 1녀의 아버지이며, 본인의 미남 유전자를 고대로 받은 장녀 홍화리는 상당히 큐트하고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 팬들로부터 화리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홍화리 양은 2014년 2월 22일부터 왕가네 식구들 후속으로 방영되는 참 좋은 시절에서 강동주 역으로 출연, 아역 배우로써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4년 12월 31일 열린 KBS 연기대상에서, 강동주 역으로 청소년 연기상 여자 부문을 수상했다. 홍성흔도 직접 관객석에 앉아 딸의 수상을 지켜봤다. 2014년 5월 30일 롯데와 두산 경기에서 시구를 맡았는데 그야말로 베테랑 투수급의 포스를 뿜는다. 아들 홍화철 군도 광진구 소속으로 리틀야구단에 소속되어 있다.[34]
  • 헤드앤 솔더광고를 찍었다. 그의 오버...[35]
  • 2011년 9월 6일 MBC FM4U 정오의 희망곡에 문자사연을 올린 게 당첨이 되면서 전화연결까지 했다. DJ인 현영은 홍성흔의 부인과 친분이 있던지라 이야기하는 동안 홍성흔을 형부라고 지칭했다. 롯데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우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등 유창하게 멘트를 날리고. 현영에게 자기 응원가를 가르쳐주고 퇴장.
  • 2013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SBS ESPN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송한 김성근의 돌직구에서 제대로 디스당했다. 두산의 전반기 결산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홍성흔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성근이 "홍성흔은 자기 할 일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정면으로 디스한것. 그 방송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후반기엔 비교적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36][37]
  • 2014년부터 홈런을 친 후 손 대신 턱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세레머니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10호 이후로 평범하게 하이파이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5월 19일 라디오볼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 부인이랑 딸이 가정교육에 문제가 된다면서 턱 세레머니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 딸 홍화리의 주장에 의하면, 같은 팀 외국인 선수를 많이 데려온다고 한다. 이유는 불쌍해서.
  •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문채원의 아역 역할이었던 딸 홍화리와 함께 자이로드롭을 탄 남자로 등장했다. 심지어 대사도 있다. 대사 내용은 이승기 아역에 괜찮냐고 말한 거. 덤으로 이승기 아역은 자이로드롭을 타고 오줌을 지리고선 홍화리(문채원아역)에게 현실의 홍화리아빠(홍성흔)가 쏟았다고 변명했다가 차였다. 자세한 상황은 같이 자이로드롭타면 사귀어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이승기 아역이 바지에다 오줌을 지렸다.
  • KBO 리그 통산 230개의 병살타를 쳤으며,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다.[38]
  • 맨 위에 서술되어 있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할때 틀을 잡아준건 바로 야구계 대선배이자 스승이었던 MBC 청룡 출신 이해창이었다. 리틀야구로 딱 한번 방문했을때 원 타임 코칭을 해준 인연이 시작이 된것.. 2019년 2월 22일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서 32년만에 해후를 하였다. 홍성흔, 불우했던 가정사 고백.."부모님 이혼, 어렵게 자라"[39]
  •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그날 경기 승리시 상대팀 갤러리에 깃발꽂듯이 홍성흔의 사진을 들고가고 높은 확률로 개념에 가있다.
  •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 벤치클리어링에서는 당시 다음날 선발인 다니엘 리오스가 흥분한 상태로 참여했는데 홍성흔이 말리느라고 애먹었다고 한다[40]
  • 코로나19 때문에 마이너리그 2020시즌이 통째로 취소되면서 2020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능 노망주로 변신했다. 화리, 화철과 함께 공부가 머니에 출연했고, 노는 언니 '가을운동회' 편에서는 남자팀 주장으로 나와 피구 시합 중에 한유미의 강슛에 고간을 정통으로 맞고 플로어를 뒹구는 등 몸개그까지 보여줬다.



8.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병살타
1999
두산
111
353
.258
91
14
1
16
63
47
3
25
.439
.304
10
2000
127
438
.290
127
13
2
10
59
55
10
35
.397
.340
12
2001
122
408
.267
109
18
1
8
48
50
9
32
.375
.318
13
2002
127
432
.289
125
17
0
18
70
51
5
42
.454
.350
'''17'''
(1위)
2003
73
241
.290
70
12
0
7
36
20
2
15
.427
.326
8
2004
133
501
'''.329'''
(3위)
'''165'''
(1위)
27
2
14
'''86'''
(5위)
62
10
46
.475
.384
8
2005
115
394
.272
107
17
0
11
74
41
2
32
.398
.324
'''17'''
(2위)
2006
119
390
.287
112
16
0
10
56
36
1
30
.405
.336
10
2007
80
231
.268
62
11
0
5
39
21
0
34
.381
.354
10
2008
114
423
'''.331'''
(2위)
'''140'''
(4위)
19
2
8
63
45
8
29
.442
.370
'''16'''
(2위)
연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병살타
2009
롯데
119
426
'''.371'''
(2위)
'''158'''
(4위)
'''33'''
(1위)
0
12
64
71
9
54
.533
'''.435'''
(5위)
15
2010
111
431
'''.350'''
(2위)
'''151'''
(2위)
28
1
'''26'''
(4위)
'''116'''
(2위)
'''88'''
(3위)
2
61
'''.601'''
(2위)
'''.427'''
(3위)
'''18'''
(2위)
2011
132
474
.306
145
24
2
6
67
70
2
56
.403
.376
'''22'''
(1위)
2012
113
390
.292
114
20
0
15
74
48
4
49
.459
.369
10
연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병살타
2013
두산
127
469
.299
'''140'''
(5위)
21
0
15
72
61
5
63
.439
.379
'''15'''
(5위)
2014
124
447
.315
141
19
1
20
82
63
5
68
.497
.405
13
2015
93
301
.262
79
12
0
7
46
39
8
47
.372
.362
13
2016
17
40
.250
10
2
0
0
5
4
0
5
.300
.333
3
<rowcolor=#373a3c> '''KBO 통산
(18시즌)'''
1957
(9위)
6789
(6위)
.301
'''2046'''
(4위)
323
12
208
1120
(6위)
872
85
723
.444
.366
'''230'''
(1위)
[1] 음력으로는 10월 21일이다. 여담으로 부인은 5월 21일, 장녀 홍화리는 2월 21일생 장남은 9월 23일생. 호적상 생일은 1977년 2월 28일.[2] 태어난 곳은 강원도였지만 학창시절은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 보냈다. 홍성흔이 자라던 당시에는 도봉구였다.[3] 어린 시절 서울 도봉구 리틀야구단(현 강북구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배웠다고 한다.[4] 체육학과 (1995학번)[5] 2007년부터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이후론 거의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다. 결과적으론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 되었다.[6] 아마시절 최고의 포수였고, 데뷔 첫해 주전 포수자리를 차지했으며 2007년까지 포수로 출전하였다. 통산 875경기 출전.[7] 통산 24경기. 2008시즌, 2011시즌.[8] 통산 4경기. 2009시즌.[9]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홍성흔보다 세 살 연상이다. 결혼 전에는 모델 활동을 했다.[10] 아는형님 2020 어린이날 특집에 출연[11] 롯데로 가기 전의 두산 시절에는 Suvivor의 Eyes of Tiger[12] 롯데 이적전 2008년 플레이오프 6차전부터 Beethoven Virus를 등장음악으로 쓰기 시작했다. 두산으로 돌아온 2013년에도 이 음악을 등장음악으로 쓰고 있다.[13] KIA 타이거즈의 라인업 송도 이 곡인지라 홍성흔이 등장시에 KIA 팬들은 라인업 송을 부르며, 두산팬들은 KIA 타이거즈 라인업 송이 나오면 홍성흔을 외친다.[14] 두산 컴백 후 사용하는 응원가. 샘플링된 원곡은 Harold Faltermeyer의 Axel F. 참고로 롯데 이적 전까지 두산에서 쓰던 원래 응원가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였다.[15] 롯데 자이언츠 시절부터 불리던 응원가. 원래 가사는 '''홍~성~흔~ 홍~성~흔~ 화이팅! 롯데의 홍성흔!'''이고, 이적 후 응원가가 위의 것으로 바뀌었지만 2013년 여름부터 롯데 조지훈 응원단장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고 뒷부분만 "'''두산'''의 홍성흔"으로 바꿔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16] 하지만 가끔 롯데 팬들이 잠실 야구장에서 홍성흔 타석에 들어서면 '''롯데의 홍성흔'''이라고 비아냥대서 두산 팬들이 이 응원가를 굉장히 싫어한다.[17] 대부분의 누적스탯에서 역대 두산 타자들 중 김동주, 김현수와 같이 탑을 달리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지만 본인 커리어의 전성기를 FA 이적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보냈다는 점과 부산 레전드 발언등으로 인해 두산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몇몇 두산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의 각종 이벤트 데이(미스터두데이 레전드 열쇠고리 증정 등)때 홍성흔의 캐리커쳐 굿즈도 매년 등장하고 있으며, 매년 신년이 되면 두산 신인 선수들에게 멘토링과 강연을 해주는 등 두산의 레전드로서 행보를 이어가고있다.[18] 2009년 6월 2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1루수로 뛰었다.[19] 스탯티즈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최다안타 1위를 기록한 2004년.[20] 그리고 상기됐듯 이해 전무후무한 5개 부문 2위를 차지했다. 타율 타점 최다안타 장타율 OPS 2위이며 득점은 3위.[21] 그 이전까지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단 두 명, 전설적인 교타자 장효조와 2009년 홍성흔과 타격왕을 두고 다툰 라이벌이었던 LG의 레전드 박용택밖에 없었다. 장효조 : 0.369, 0.324, 0.373, 0.329, 0.387(1983년~1987년) / 박용택 : 0.328, 0.343, 0.326, 0.346, 0.344(2013년~2017년)[22] 2020시즌 기준으로는 좌타자 중에서는 이정후, 우타자 중에서는 양의지가 3시즌 연속 타율 0.330에 도전하게 된다.[23] 백인천(1982년), 장효조(1983년, 1985년, 1987년), 김종모(1983년), MBC 김상훈(1988년), 이정훈(1992년), 이종범(1994년), 마해영(1999년), 양준혁(2001년), 김현수(2008년, 2009년,2018년), 김동주(2009년), 정근우(2009년), 박용택(2009년), 홍성흔(2009년, 2010년), 이대호(2010년, 2011년), 김태균(2012년, 2014년, 2016년), 서건창(2014년), 손아섭(2014년, 2020년),강정호(2014년), 최형우(2014년, 2016년, 2020년), 에릭 테임즈(2015년), 유한준(2015년), 이용규(2016년), 김선빈(2017년), 박건우(2017년), 박민우(2017년), 양의지(2018년, 2019년)[24]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포수였지만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비롯한 몇몇 구단에서는 불펜포수를 제 2의 배터리 코치라는 의미로 정식 코치로 인정해준다. 실제로 화이트삭스의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페이지에 접속하면 코치명단에 '불팬캐처' 이만수가 정식코치로 들어가 있다.[25] 포수로써 01, 04년 2차례, 지명타자 4차례(4년 연속 08~11년). 포수 및 지명타자 1차례는 두산 소속으로, 나머지는 롯데 소속으로 수상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과 2010년 지명타자 골글을 제외한 4번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수상이다. 특히 가장 큰 피해자는 01, 04년 무려 두번이나 골든글러브를 빼앗긴 박경완. 여기에 2009년 페타지니와 2011년 김동주 또한 피해자로 분류된다. 자세한 서술은 골든글러브 논란 부분과 홍성흔의 선수경력 부분에 많이 나와있으니 참조해보도록 하자.[26] 워낙에 친목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기자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투표에서 유리한 점이있다고 알려져 있다.[27] 2012년 1월 10일 가짜 홍성흔 트위터가 적발됐었다.[28] 대표적으로 고종수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고종수는 이렇게 밝혔으니 인터넷의 루머란 지긋지긋하다.[29] https://news.joins.com/article/1811914[30] 강병규는 이때의 방송 출연을 계기로 예능인으로서의 변신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31] 참고로 이 가발은 전지훈련 갔다가 조성환과 같이 산 거다.. 올스타전 나가면 쓰자고 산 건데 조성환은 잃어버렸다고 한다.[32] 역대 올스타전 최다득표를 기록하였다.(818,269표) 이 유니폼 홍성흔이 직접 준비한 거라고..[33] 10시즌 올스타전 최종 성적은 5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34] 아버지와 달리 좌투좌타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아빠가 돈 되는 왼손잡이라고 했다고 한다.[35] 근데 이 과정에서 모델에이전시 대표가 출연료를 빼돌렸다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고 한다 기사 [36] 영웅스윙 발언과 이 돌직구 발언을 통해 김성근이 홍성흔을 싫어하나? 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성근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홍성흔이 이타적인 타자고, 팀을 위해 희생한다라고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홍성흔을 비판하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이고 각각 모래알 발언과 07, 08년으로 김성근 감독이라면 치를 떠는 롯데팬들과 두산팬들 조차 인정했으니 이건 홍성흔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게 맞다.[37] 그러나 김성근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홍성흔은 지명타자 전향으로 인한 체력문제 해결로 급격한 타율 향상을 경험했지만, 그가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은 롯데 이적 후 소위 영웅스윙으로 불리는 풀스윙을 완성하면서부터이다. 그의 스윙 변화는 삼진과 병살을 늘렸지만 장타를 늘리는 동시에 다른 어떤 공격스탯에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감안하면 2012년 이후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의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한 찬스에서의 부진과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을 비판한다고 해도, 그것이 스윙 변화와 필연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따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38] 참고로 가장 적은 병살타를 친 타자는 타격의 달인 장효조(31개)이다.[39] 이해창도 소싯적에 고아였던 형편 때문에 야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에서 원로 야구인 풍규명이 그를 거두어 주며 야구 생활을 지속하였다. 그런데 풍규명씨의 집에 기거하던 이해창이 어린 시절부터 누나로 모시던 2살 연상인 그의 딸 풍옥희를 임신시키는 사고를 쳤고 이 사실이 들통나자 풍규명은 이해창을 죽일놈 살릴놈 하며 두들겨 팼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자식처럼 키운 정을 끊을 수 없어 일찌감치 결혼시키고 장인-사위지간이 되었다고 한다.[40] 다음날 선발투수는 벤치클리어링에서 빠져도 왕따를 먹거나 벌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다니엘 리오스는 결국 당시 선발에서 컨디션 난조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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