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리그
1. 설명
Independent League
한 국가의 주된 스포츠 관할 단체와는 별개인 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리그.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통합형 리그의 대표적인 스포츠인 축구는 각 나라에 축구협회가 단독으로 존재하고 그 나라에서 열리는 모든 축구경기는 축구협회의 주관하에 이루어진다. 프로리그건 아마추어 리그건 공통 사항. 축구협회란 공식적으로 그 나라내의 축구경기의 관할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가진 협의체인 것, 그래서 이런 협회는 축구경기를 공식이냐 비공식이냐라고 판정할 권한, 경기 시설,경기 장비,경기 운영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반면, 이런 독점 협의체가 없는 프로 스포츠 종목의 경우는 각각 팀들이 연합해 리그별로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독립 리그들이 존재할 수 있다. 축구처럼 글로벌한 기준과 조항에 따라 선수의 입단,퇴단 규정이 결정되지 않고, 리그 내의 규정에 따라서만 선수의 입단,퇴단이 결정되는 폐쇄적인 운영방식이 많아서 주로 독립 리그 = 폐쇄형 리그 = Closed League의 성격을 갖는다. 때문에 단순히 리그 운영만 독립적인게 아니라 내부 규정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어서 리그 별로 특이한 규칙이 존재하기도 하며 그게 심하면 거의 마개조 수준으로 경기 스타일이 바뀌기도 한다.
미국에서 야구는 반독점법 규제를 피해갔지만 다른 종목은 다 걸렸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축구협회처럼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를 제외한 나머지 리그를 마이너리그로 흡수한 것. 미국 스포츠의 1960~1970년대는 한참 미국 서부의 개발과 함께, 미식축구의 AFL, 농구의 ABA, 아이스하키의 WHA 등 NFL, NBA, NHL을 위협하던 정도로 성장한 독립 리그가 존재했다. AFL을 합병한 후의 NFL 미식축구의 경우도 지속적으로 시장의 빈틈을 노리는 USFL, CFL 등의 독립리그가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한다. WWE로 유명한 빈스 맥마흔이 야심차게 시도했다가 2001년 한 번만 운영하고 망한 XFL 같은 흑역사도 있다. 맥마흔은 2020년을 목표로 XFL 재건에 나섰지만 또 코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계속 독립리그가 시도되는 것은 프로 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2. 역사
독립 리그가 어떻게 생긴것인지 보자면 프로스포츠가 가장 먼저 만들어진 축구와 야구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축구에 있어서 원래 19세기 잉글랜드에는 Football이라 불리는 운동은 한가지 규칙으로 이루어진 종목이 아니었다. 원래 1863년까지는 하나의 공통된 룰을 따르는 풋볼이라는 경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런던의 11개 풋볼클럽들이 모여서 Football Association(FA)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이 단체에서 '''손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여기에 반발한 클럽들은 따로 떨어져나가 럭비 클럽을 만들게 되었다. 따라서 축구의 경우에 '손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축구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만든것이 FA였고 이 FA가 만든 규칙을 받아들여 경기하는 모든 풋볼클럽은 FA룰을 따르므로 자연히 FA가 관리하게 되었다. 사실 현대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잉글랜드축구협회가 만든거나 다름없으니 결과적으로 모든 잉글랜드의 축구클럽은 FA가 관리하므로 따로 독립리그란게 만들어지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외국으로 축구가 퍼져감에 따라서 이 시스템도 같이 퍼졌고, 오늘날 축구에서는 독립리그란 걸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야구는 또 달랐다. 19세기 이전부터 공을 던지고 방망이로 치는 운동은 여기저기서 했지만 특히 미국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여기도 처음에는 공통된 규칙같은것은 없었다. 그나마 처음으로 오늘날의 야구 규칙과 유사한 규칙이 만들어진 것이 1848년 'Knickerbocker Rule'이었는데 이것은 뉴욕스타일로 불렸으나 미국전역에 퍼지지는 않았다.(미국이 워낙 땅덩이가 크기도 했고) 이후로도 미국 각지에서 자기 나름대로 공을 던지고 치는 운동을 했는데 1875년 처음으로 오늘날의 메이저리그의 원형이 되는 내셔널 리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내셔널 리그 협회가 야구란 스포츠를 만든 것은 아니므로 영국의 축구 협회와는 달리 야구 전체를 관장하는 협회가 아니라 내셔널 리그만 관리하는 단체였다. 게다가 내셔널 리그는 초창기엔 1882년에 설립된 강력한 경쟁자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1] 과 1901년 설립된 아메리칸 리그와도 경쟁해야 했다. 규칙 또한 내셔널리그가 하나씩 바꿔갔으나 [2] 내셔널리그가 아닌 다른 리그의 경우에는 내셔널리그의 규칙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예를들어 내셔널리그는 1895년에 파울을 스트라이크로 간주한다고 했으나 아메리칸 리그가 이를 받아들인것은 1903년의 일이다. 그러다가 1902년 최초로 내셔널과 아메리칸 두 리그간에 서로 선수를 빼가지 않는다는 협약이 만들어졌고, 오늘날과 같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이 만들어진 것은 블랙 삭스 스캔들이 끝난 1920년 랜디스가 커미셔너로 임명되면서부터 였다.
한편 미국에서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가 가장 큰 인기를 끌게 되자, 자연스럽게 자본도 두 리그에 속한 팀에 몰리게 되었고, 그 결과 다른 리그의 선수들은 유명해지면 저 두리그로 이적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러자 인기가 없어져 폐쇄된 Federal League 소속팀의 구단주가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나 소송에 졌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른 야구 리그들은 메이저리그에 속한 구단들과 팜리그로서의 계약을 하게 되어 마이너리그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당연히 모든 리그가 마이너리그가 된 것은 아니었고 메이저리그와 계약을 맺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리그도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독립 리그였다.
다시말해 오늘날 종목내에서의 위상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잉글랜드의 축구협회와 비교해도 낮다고 할 수 없지만 초창기 야구에는 잉글랜드의 FA처럼 처음부터 종목을 총괄하는 협회같은건 없었다. 그 결과 과거 미국에는 Union Association, Players' League, Federal League 등등 수 많은 야구 리그가 생겨났다가 몇 년 뒤에 없어지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이렇게 NFL,MLB,NBA,NHL등 4대 빅리그가 존재하고, 빅리그의 물량공세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끼리 리그를 만들어서 경기하는 일이 흔했으며 이들도 잊을만 하면 반독점법 소송을 걸거나 해서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메이저리그가 미국 전체를 주관하는 주요 야구 리그가 된 뒤에도 이런 식의 독립적인 리그는 계속 만들어졌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독립리그와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농구나미식축구 같은 경우에도 야구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독립 리그'(Independent League)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쓴 리그 - 정확히는 독립 야구 리그(Independent baseball league)라고 불렀다 - 는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존속한 캐롤리나 리그였으며 이 때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와 관련없다는 점에서 무참히도 Outlaw(무법)리그 라고도 불렸다. 이후 다른 프로스포츠도 활발해지면서 이런 종목들도 독립 야구 리그와 비슷한 형태를 띈 리그들이 생겨났으며 이런 리그들을 독립 리그라고 부르게 되었다.
3. 야구의 독립 리그
해당 국가의 가장 큰 프로야구 리그와는 별도로 다른 팀들이 모여서 하는 리그. 마이너리그와 같은 2군 성격의 팀이 모여서 하는 리그와는 별개로 운영된다. 독립 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은 독립 구단이라고 일컬으며, 프로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뤄지는 프로야구 리그와는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팀들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특히 융성하고 있다.
아무래도 각 국의 독립 리그는 정규 리그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고, 선수의 수준도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규 야구팀이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서도 야구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이득이 있는 것도 사실.
독립 리그도 프로 리그라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국내에서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진출했다가 뒤늦게 KBO 리그에서 뛰려고 하는 선수들은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 종료 시점부터 2년 동안 소속 팀이 없는 유예 기간을 보내야 하는데 독립 리그에서 뛰는 기간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학주와 하재훈이 대표적인 사례.[3]
3.1. 미국 야구 독립 리그
미국에서는 수많은 독립 리그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해왔다. 최우선 목표는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그리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선수 순환을 돕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처럼 연고지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찾아와 선수를 지켜보고 픽업하는 경우도 있다. 선수 뿐 아니라 구단도 어느날 독립리그에서 탈퇴하고 마이너리그 구단으로 넘어가거나[4] , 반대로 마이너리그에서 계약해지 된 후 독립리그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독립리그라고 무시할수가 없는 것이 인기구단의 경우에는 관중수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에 위치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소속 미네소타 세인트 폴 세인츠 구단은 50경기 누적 홈관중이 40만명이 넘었다.[5][6] 월급도 유명한 독립 리그의 경우는 수백만원씩 받고, 리그 수준도 AA 이상 되는 곳도 있다.
2018년 현재 대표적인 독립 리그는 다음 다섯 가지가 존재한다. 아래 게재 순서는 약간의 서열이 포함되어 있다. 명백한 서열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직 메이저리거 숫자 등으로 보건대 사실상 명백한 서열이 존재한다. 클레이 데이븐포트가 측정한 각종 리그들의 상수.
1. 애틀란틱 리그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리그로 리버리티 디비전과 프리덤 디비전으로 2개 디비전이고, 각 리그별로 3개팀씩 총 6개팀이 있다. 리그의 특징으로는 인기가 평준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리그 수준도 독립 리그들 중 가장 높다. 더블 A보다 약간 낮고, 하이 싱글 A보다 높은 수준. 수천 명 단위의 관객을 동원하며, 아시아에서 외국인으로 뛰었던 전직 AAA~MLB 급의 선수들이 팀당 수 명씩 존재한다. 사실 메이저 경력자 수로 보자면 NPB 보다도 많다. 기록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KBO 팬들도 익숙한 선수들이 매해 여러 명 뛰는 것을 알 수 있다. 돈도 여기가 제일 많이 받는다. 연봉이 약 3-4만 달러 정도 나온다. 독립 리그이지만 MLB와 제휴 협약을 맺고 있으며,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야심차게 개정한 야구 룰을 먼저 실험하는 일종의 베타 테스트용 리그의 역할을 맡고 있다.[7]
2.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미국 중부에 위치한 리그로 노스(North), 사우스(South) 2개 디비전에 10개 구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틀랜틱 리그까지는 어느 정도 상위 마이너리그에 해당하지만 나이 먹은 선수들이 있는 아시아 로컬 리그의 미국판 급이라고 한다면 여기서부터는 정말 독립리그 스러운 느낌. 2018 시즌에는 53세의 라파엘 팔메이로 가 뛰기도 했다. 리그 전체에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는 약 20명 수준이다.
3. 캔-암(캐나다-아메리카) 어소시에이션캐나다와 미국의 동부지방에 있던 독립리그로, 2019년을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소속 구단들은 프런티어 리그로 넘어갔다. 특이하게 쿠바나 도미니카 국내리그 선수 대표단과의 교류경기를 가졌다. 맷 레이토스 등 10여명의 메이저리그 경력자가 뛰었다.
4. 프런티어 리그- Frontier League (1993)
캐나다 동부지역 및 미국 동북부 지역의 팀으로 구성된 캔암 디비전과 5대호 주변의 팀으로 구성된 미드웨스트 디비전으로, 총 16팀으로 되어있다.
본인들 주장으로는 1900년 초반에 만들어 진 리그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993년 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시작했다고 보는것이 정확하다.
5. 퍼시픽 어소시에이션본인들 주장으로는 1900년 초반에 만들어 진 리그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993년 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시작했다고 보는것이 정확하다.
2014년 새로 창립. 기존의 Pecos 리그의 위치를 대신하는 위상인듯.
기타.- Pecos League (2010[9] )
- 윈터리그
- Arizona Winter League (2007[10] )
- California Winter League (2009[11] )
3.2. 일본 야구 독립 리그
일본 4개 큰 섬중에 유일하게 시코쿠에만 일본프로야구팀이 존재하지 않자 프로구단 창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일본 야구계에 나오기도 했지만 NBP 사무국은 1부리그 팀을 늘리는 것보다 독립리그 창단을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2005년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라는 최초의 독립리그가 생겨났고 이후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등이 탄생하게 되었다.
월급은 BC 리그와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는 최소 10만엔, 최대 40만엔으로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만 지급한다. 즉 최저 연봉은 약 900만원, 최대 연봉은 약 3600만원. 오히려 돈을 내고 하는 한국의 독립리그에[12] 비해서는 어느 정도 리그가 자리잡았기 때문인지 대우가 나은 편.
또한 나름 팬덤이 있는지 응원단과 응원가도 다 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다 나온다. 응원 방식은 NPB와 비슷하게 트럼펫+북+육성.
-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13] (2005)
-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2007)
- [14]
- 프로야구 마스터스 리그
- 베이스볼퍼스트리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에서 뛰었던 카쿠나카 카츠야(치바 롯데 마린즈)는 2012년 퍼시픽 리그 수위타자에 오르며 독립리그 출신 첫 타이틀 획득 선수가 되었다. 이 해 카쿠나카가 규정타석을 채운 것도 독립리그 출신 NPB 선수로서는 최초였다.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에서 뛰었던 스미 코타는 27살에 소속팀 감독으로 승진하였다.
2017년 드래프트+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총 9명의 선수가 NPB에 드래프트되었다.
3.3. 한국 상황
대한민국은 2014년 기준으로 야구 독립 리그가 없었다. 독립 구단은 고양 원더스 하나뿐이었으며,[15] 한국에 독립 리그가 없는 관계로 KBO 퓨처스리그에 교류전 형식으로 참가하였었다. 경기도와 수원시가 kt wiz를 창단하는 조건으로 도내 인구 40만 이상 도시를 연고지로 한 야구 독립 리그 창설을 내세웠고, 실제로 이를 위해서 연구가 이뤄진 적도 있지만 수익성 문제로 인해 당시에는 독립 리그가 창설되지는 않았다.
고양 원더스가 2014년 9월 11일 해체된 이후 5개월 후인 2015년 2월 24일 기사를 통해 '연천 미라클'이라는 새로운 독립야구단의 창단식이 2015년 3월 20일 열린다고 발표된다. #
2015년 11월 말 한국야구독립리그 창설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2016년 3월 4팀으로 리그를 출범시키고 2017년도부터 점차 팀을 늘리기로 계획했다. #
2016년, 연천 미라클에 이어 저니맨 외인구단, 파주 챌린저스가 창단되었고 2017년 4월24일에 첫번째 독립리그인 코리아 드림리그가 출범을 하였다.
고양 위너스팀이 창단을 준비하였고# 양주 레볼루션이 두번째 독립리그인 경기도 챌린지 리그에 가입한다.
2017년 성남 블루팬더스가 창단했다.
2018년 고양 위너스, 양주 레볼루션, 성남 블루팬더스 3팀이 모여 경기도 챌린지 리그를 개막했다. (수원 로보츠는 선수를 모으지 못해 참가하지 못했다.)
2019년 리그에서 초대 우승을 차지한 성남 블루팬더스가 프로진출 이라는 궁극적 성과를 못 거두는 등 어려움으로 인해 해체를 결정했다. 이후 인천에서 독립야구단이 창단했고 용인, 시흥에 연고를 둔 독립야구단이 준비중이다.
- KIBA 드림 리그 (2017~)
- 경기도독립야구연맹리그 (2018~), 경기도 리그 (2019~)
KBO 및 KBO 리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웹상에서는 독립 리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띄워 주며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독립 리그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고양 원더스가 보였던 문제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2019년을 끝으로 해체된 성남 블루팬더스나 2020년 현재 운영 중인 팀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4. 야구 이외의 독립리그
미국에서 야구를 제외하고 반독점법에 걸리던 모든 스포츠의 경우 작게나마 꾸준하게 독립리그가 활동하고 있다.
가장 독립리그 활동이 많은 스포츠는 다름아닌 미식축구. NCAA에서 엄청난 양의 풋볼 선수가 쏟아지지만 이를 흡수하는 NFL의 규모가 전체 드래프트신청자의 5%도 되지 않을만큼 바늘구멍이기 때문에 이들을 받아줄 독립리그의 필요성이 많았고 꾸준하게 수요는 있었다. 대표적인 독립리그로는 실내 미식축구 리그인 아레나 풋볼 리그와 캐나다 기반의 CFL이 있으며, 빈스 맥마흔이 창설한 XFL도 존재한다.
역사는 짧았지만 독립리그로 강한 족적을 남긴 리그로는 농구의 ABA가 있다. 한때 NBA와 대등한 레벨까지 올라갔지만 돈 싸움과 미디어의 경쟁에서 패해 결국 NBA에 흡수합병되고만 비운의 리그.
그리고 2014년 한국독립아이스하키리그가 창설되었다.
5. 기타
축구의 경우에는 전세계의 축구를 관리하는 FIFA와 그 산하단체인 AFC, 다시 그 산하단체인 대한축구협회 이런식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선수 이적 등에 관해서도 공통된 룰을 따르게 되는데[16] 다만 독립 리그는 아니지만 독립 국제 연맹인 ConIFA 같은 조직이 있어서 독자적인 세계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또한 독립리그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서 잉글랜드 축구사 초창기에 존재했던 풋볼 얼라이언스[17] 같은 사례가 있다. 미국의 야구나 농구 같은 경우는 전 세계적인 관리 기구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각 나라별, 리그별로 독자적인 운영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된다.[18]
한국에서는 '미국식 폐쇄형 독립 리그'라며 간혹 이런 시스템을 '''독립 리그'''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원래 영어의 Independent League라는 말은 이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으며, 이런 경우 독립 리그는 폐쇄 리그(closed league)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이런 리그는 대체로 선수 영입 및 방출 절차가 독자적인 운영 방식을 거치며 타 리그와의 선수 이동의 제약이 심한 경우가 많아서 웨이버 공시, 지명할당등 여러가지 신분의 변화가 존재한다.
[1] 1891년 폐쇄. 다만 여기 참가한 팀중 여럿이 내셔널 리그에 합병되었다. 신시내티 레즈, 브루클린 다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등.[2] 처음에는 아예 포볼이 없었다가 9볼이 되고 다시 8->6->5볼로 바뀌고 나서야 지금의 포볼이 되었다. 다른 규칙들도 이런식으로 계속 바뀌어 갔다.[3] 하재훈의 경우 컵스를 떠난 뒤 일본 독립 리그로 진출했다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면서 유예 기간이 리셋된 바 있다.(야쿠르트에서 퇴단한 시점부터 다시 유예 기간 계산.)[4] 최근 예시로는 2021년에 새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트리플 A 구단으로 지정된 슈가랜드 스키터즈가 있다. 원래 이 팀은 독립리그인 애틀란틱 리그 팀.[5] 2018년 NC 다이노스의 홈 경기 총 관중수가 44만명이다. 물론 그 시즌을 거하게 말아먹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6] 참고로 J.D. 드류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엿 먹이고 입단한 독립 리그가 바로 이곳이다.[7] 이곳에서 실험하는 룰은 시프트 제한, 1투수 3타자 의무 상대, 베이스 크기 확장, 1루 도루 허용 등 야구의 근본을 바꿀 수 있는 룰이라 즉각 도입하기 어려운 것들이다.[8] 줄여서 Can-Am League.[9] 첫번째 시즌은 2011년.[10] 첫번째 시즌은 2007년 1월 시작.[11] 첫번째 시즌은 2010년 1월 시작.[12] 단, 해체된 고양 원더스는 일본 독립 리그 수준의 월급을 주고, 숙소와 식사까지 나왔다고 한다.[13]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로 시작했으나 큐슈 지역 팀 참가, 탈퇴, 혼슈 지역 팀 참가 등 변화를 겪으면서 이름이 바뀌었다.[14] 한때 한국인으로 구성된 서울 해치가 속해 있던 리그. 2013시즌 종료 후 운영 방침을 놓고 구단 간의 대립이 심화되어 소속 구단들이 모두 탈퇴하면서 사실상 와해되었다.[15] 2014년 시즌을 마치고 해체했다.[16] 그렇다고 FIFA에서 각 회원국의 리그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돌았던 '10개 팀 미만인 리그는 FIFA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설에 대한축구협회가 적극 해명했던 이유.[17] 1889년 출범, 1892년 잉글랜드 2부리그로 편입.[18] 야구의 경우 세계야구소프트볼총연맹인 WBSC가 있긴 하지만, WBSC는 FIFA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위상이 낮고, 이런 규정을 만들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