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100
'''히스파노 HA-100트리아나(Hispano HA-100 Triana)'''
형식 : 단발 복좌 훈련기
초도비행 :
승무원 : 2명
전장 / 전폭 / 전고 : 8.87 m / 10.40 m / 3.05 m
익면적 : 17.00 m²
중량 : 1,024 kg ~ 1,743 kg
동력 : ENMASA 베타 공랭 엔진 (750 hp) 1기
최대속도 : 478 km/h
상승고도 : 9,500 m
항속거리 : 840 km
1950년대에 스페인에서 독자적으로 설계되고 제작된 군용 훈련기 HA-100트리아나(Hispano HA-100 Triana)는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유지하고 있던 정권의 훌륭한 선전수단이 되었고, 여기에 자극받은 스페인 정부는 그후로도 제트 훈련기 HA-200 사에타와 제트 전투기의 독자 개발에까지 나서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트리아나(Triana)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스파노 아비아시욘 항공장이 있던 세빌리아의 트리아나구에서 따온 것이다. 트리아나 훈련기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 마치 스페인이 순수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선전되었으나, 실상 이 기체는 스페인 내전 무렵부터 인연을 맺고 있던 독일 기술진들, 그중에서도 특히 Bf 109 시리즈를 탄생시킨 빌리 메서슈밋(Wilhelm Emil "Willy" Messerschmitt : 1898~1978) 박사가 기본 설계와 고문을 맡아 만들어진 기체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메서슈밋 박사는 전쟁 포로와 유태인들을 항공기 생산과 공장 건설 같은 노동력으로 동원하며 착취했다는 혐의를 인정받아 군사법정에 서게 되었고, 1948년에는 나치 정권과 기꺼이 결탁하여 전쟁 수행에 협력한 죄목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노예에 가깝게 부려먹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감옥에서 2년을 보내고 석방된 그는 곧바로 회사를 다시 재건했다.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서독과 동독으로 나뉜 독일은 1955년까지 항공기 연구와 개발, 생산이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공학자 메서슈밋 박사는 조립식 건물 자재와 재봉틀, 그리고 소형차를 만드는 민수용품 공장으로 바꾸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메서슈밋 카비넨롤러는 대중들의 저렴한 교통수단으로 크게 각광받으며 사세를 되살리는데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공기에 빠져 공학도의 길을 걸어온 그는 틈만 나면 다시 비행기를 만들고자 했는데, 스페인 정부가 바로 이때 구원의 손길을 뻗어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HA-100은 2차 대전 후 빌리 메서슈밋 박사가 처음 설계한 항공기인 셈이다.
1950년대 초 스페인 공군은 히스파노 HS-42와 그것을 개량한 HA-43을 훈련기로 쓰고 있었지만 100대가 생산된 이 기체들은 금속제 프레임에 팝찬과 천을 덧대 만들어진 다소 구식기였다. 이것을 우선 대체하는 것으로 자국산 항공기 개발 사업을 진행하기로 계획한 스페인 정부는 1951년에 군용 훈련기에 관한 소요제기를 내놓게 된다. 이 시기에 히스파노 아비아시욘에 메서슈밋 박사가 합류했고, 그는 2 종류의 서로 다른 엔진을 탑재한 두 가지 모델을 제안했다. 초등 훈련기 HA-100E와 고등 훈련기 HA-100F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항공기 설계라면 베테랑 중에서 배테랑인 메서슈밋 박사에게 있어 그까짓 훈련기쯤이야 손쉽게 설계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당시 스페인의 한심한 공업기술 수준이었다. 이들은 고거에도 항공기 독자 개발을 시도했지만 그것은 모두 목제로 만들고 저출력 엔진을 올려 만든 수준갖은 기종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HA-100은 전금속제 단엽기인 탓에 재료에서부터 난관에 부딛힌 빌리 메서슈밋은 대부분의 시간을 적절한 알루미늄 합금과 부품을 손에 넣기 위해 써야만 했다. 엔진은 그 기술적인 어려움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원래는 ENMASA 시리오(Sirio) 엔진이 HA-100E에 장착되도록 선정되었지만, 이 자국산 엔진은 실제로는 도저히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할 수 없이 초등 훈련기에 쓰기에는 무겁고 출력도 높은 ENMASA 베타(Beta) 엔진을 써야만 했고, 결국 원형 1호기에 해당하는 HA-100E는 개발을 중지시켰다. 그렇지만 스페인 자국산 베타 엔진도 만족할 만한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원형 2호기이자 HA-100F가 1955년 2월에 첫 비행에 나설 때는 미국제 라이트 R-1300 공랭 엔진을 장비한 상태였다.
수많은 걸작 항공기들을 탄생시킨 경험이 있는 메서슈밋 박사가 직접 설계하고 개발 과정을 지도한 덕분에 HA-100F의 비행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에 스페인 공군은 40대를 납입해줄 것을 계약하게 된다. 심지어 HA-100은 경합에 앞서 미국제 훈련기 T-28 트로젼과 실시한 비교 테스트에서 상당 부분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메서슈밋 박사가 이끄는 이스파노 기술진들에게는 국산 엔진을 구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스페인 정부는 가격이 비싼 라이트 엔진을 수입할 여유가 없었고 베타 엔진의 개량은 지지부진했다. 역시 기초 재료공학과 야금술, 기계공학의 결정체인 항공 엔진을 단시간에 독자 개발하여 국산 엔진을 양산하는 것은 메서슈밋 박사 혼자의 힘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는 보다 근본적인 공업 인프라 문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HA-100의 생산 라인은 서서히 멈추고 만들어진 몇 대의 기체는 쓸만한 부품은 골라 제거하고 스크랩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때 회수한 주날개와 꼬리날개는 제트 훈련기인 HA-200 사에타의 개발에 활용되었다.
1. 제원
형식 : 단발 복좌 훈련기
초도비행 :
승무원 : 2명
전장 / 전폭 / 전고 : 8.87 m / 10.40 m / 3.05 m
익면적 : 17.00 m²
중량 : 1,024 kg ~ 1,743 kg
동력 : ENMASA 베타 공랭 엔진 (750 hp) 1기
최대속도 : 478 km/h
상승고도 : 9,500 m
항속거리 : 840 km
2. 배경 요약
1950년대에 스페인에서 독자적으로 설계되고 제작된 군용 훈련기 HA-100트리아나(Hispano HA-100 Triana)는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유지하고 있던 정권의 훌륭한 선전수단이 되었고, 여기에 자극받은 스페인 정부는 그후로도 제트 훈련기 HA-200 사에타와 제트 전투기의 독자 개발에까지 나서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트리아나(Triana)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스파노 아비아시욘 항공장이 있던 세빌리아의 트리아나구에서 따온 것이다. 트리아나 훈련기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 마치 스페인이 순수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선전되었으나, 실상 이 기체는 스페인 내전 무렵부터 인연을 맺고 있던 독일 기술진들, 그중에서도 특히 Bf 109 시리즈를 탄생시킨 빌리 메서슈밋(Wilhelm Emil "Willy" Messerschmitt : 1898~1978) 박사가 기본 설계와 고문을 맡아 만들어진 기체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메서슈밋 박사는 전쟁 포로와 유태인들을 항공기 생산과 공장 건설 같은 노동력으로 동원하며 착취했다는 혐의를 인정받아 군사법정에 서게 되었고, 1948년에는 나치 정권과 기꺼이 결탁하여 전쟁 수행에 협력한 죄목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노예에 가깝게 부려먹은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감옥에서 2년을 보내고 석방된 그는 곧바로 회사를 다시 재건했다.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서독과 동독으로 나뉜 독일은 1955년까지 항공기 연구와 개발, 생산이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공학자 메서슈밋 박사는 조립식 건물 자재와 재봉틀, 그리고 소형차를 만드는 민수용품 공장으로 바꾸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메서슈밋 카비넨롤러는 대중들의 저렴한 교통수단으로 크게 각광받으며 사세를 되살리는데 힘을 보탰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항공기에 빠져 공학도의 길을 걸어온 그는 틈만 나면 다시 비행기를 만들고자 했는데, 스페인 정부가 바로 이때 구원의 손길을 뻗어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HA-100은 2차 대전 후 빌리 메서슈밋 박사가 처음 설계한 항공기인 셈이다.
3. 훈련기부터 시작하자!
1950년대 초 스페인 공군은 히스파노 HS-42와 그것을 개량한 HA-43을 훈련기로 쓰고 있었지만 100대가 생산된 이 기체들은 금속제 프레임에 팝찬과 천을 덧대 만들어진 다소 구식기였다. 이것을 우선 대체하는 것으로 자국산 항공기 개발 사업을 진행하기로 계획한 스페인 정부는 1951년에 군용 훈련기에 관한 소요제기를 내놓게 된다. 이 시기에 히스파노 아비아시욘에 메서슈밋 박사가 합류했고, 그는 2 종류의 서로 다른 엔진을 탑재한 두 가지 모델을 제안했다. 초등 훈련기 HA-100E와 고등 훈련기 HA-100F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항공기 설계라면 베테랑 중에서 배테랑인 메서슈밋 박사에게 있어 그까짓 훈련기쯤이야 손쉽게 설계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당시 스페인의 한심한 공업기술 수준이었다. 이들은 고거에도 항공기 독자 개발을 시도했지만 그것은 모두 목제로 만들고 저출력 엔진을 올려 만든 수준갖은 기종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HA-100은 전금속제 단엽기인 탓에 재료에서부터 난관에 부딛힌 빌리 메서슈밋은 대부분의 시간을 적절한 알루미늄 합금과 부품을 손에 넣기 위해 써야만 했다. 엔진은 그 기술적인 어려움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원래는 ENMASA 시리오(Sirio) 엔진이 HA-100E에 장착되도록 선정되었지만, 이 자국산 엔진은 실제로는 도저히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할 수 없이 초등 훈련기에 쓰기에는 무겁고 출력도 높은 ENMASA 베타(Beta) 엔진을 써야만 했고, 결국 원형 1호기에 해당하는 HA-100E는 개발을 중지시켰다. 그렇지만 스페인 자국산 베타 엔진도 만족할 만한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원형 2호기이자 HA-100F가 1955년 2월에 첫 비행에 나설 때는 미국제 라이트 R-1300 공랭 엔진을 장비한 상태였다.
4. 만족스러운 시험비행
수많은 걸작 항공기들을 탄생시킨 경험이 있는 메서슈밋 박사가 직접 설계하고 개발 과정을 지도한 덕분에 HA-100F의 비행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에 스페인 공군은 40대를 납입해줄 것을 계약하게 된다. 심지어 HA-100은 경합에 앞서 미국제 훈련기 T-28 트로젼과 실시한 비교 테스트에서 상당 부분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메서슈밋 박사가 이끄는 이스파노 기술진들에게는 국산 엔진을 구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스페인 정부는 가격이 비싼 라이트 엔진을 수입할 여유가 없었고 베타 엔진의 개량은 지지부진했다. 역시 기초 재료공학과 야금술, 기계공학의 결정체인 항공 엔진을 단시간에 독자 개발하여 국산 엔진을 양산하는 것은 메서슈밋 박사 혼자의 힘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는 보다 근본적인 공업 인프라 문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HA-100의 생산 라인은 서서히 멈추고 만들어진 몇 대의 기체는 쓸만한 부품은 골라 제거하고 스크랩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때 회수한 주날개와 꼬리날개는 제트 훈련기인 HA-200 사에타의 개발에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