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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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켈 He 50(Heinkel He 50)'''

1. 제원


초도비행 : 1931년
운용 시기 : 1935년~1944년
승무원 : 2명
전장 : 9.60 m / 전폭 : 11.50 m / 전고 : 4.40 m
중량 : 1,600~2,620 kg
동력 : BMW 브라모 SAM22B 성형 공랭식 엔진 1기 (650 hp)
최대속도 : 235 km/h
순항속도 : 190 km/h
상승한도 : 6,400 m
항속거리 : 1,000 km
상승률 : 250 m/min
무장 : 7.92mm MG15 기관총 2정 / 폭탄 500 kg
생산수 : 78대

2. 소개


독일의 항공기 제작사인 하인켈(Heinkel Flugzeugwerke) 사에서 생산되어 전간기에 부활한 독일 공군의 경폭격기로 이용된 복엽기였다. 원래는 일본 해군에서 육상기나 함재기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급강하 폭격기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시제기가 독일 국방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루프트바페에 제식으로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독일 공군 최초의 표준 급강하 폭격기가 된 He 50은 나중에 헨셸 Hs 123과 융커스 Ju 87 슈투카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선 부대에서 사용되었다.
1931년에 일본 해군은 250 kg 폭탄을 동체 밑에 탑재한 채로 함선 위에 설치된 캐터펄트에서 이함이 가능한 수상, 육상 겸용 급강하 폭격기를 만들어 줄 것을 독일의 하인켈 사에 의뢰했다. 에른스트 하인켈 박사가 이끄는 개발진들은 1931년 여름에 프로토타입 1호기인 He 50aW를 완성시켰지만, 이 기체를 유심히 눈여겨 본 독일 국방부가 원형기 3대를 추가로 발주했다. 약간의 개량이 더해진 증가 시제기 He 50aL은 지멘스(Siemens) 사가 영국제 주피터(Jupiter VI) 엔진을 면허 생산한 650 hp 공랭 엔진으로 구동시키는 금속제 3엽 프로펠러가 있었고, 우포로 씌운 복엽 날개를 가졌으며 최대 500 kg의 폭탄을 장착할 수 있었다. 시험 결과, 기동성이 좋은데다 강하 폭격자세에서 수평 비행으로 회복하는데 무리가 없어서 He 50A-1라는 명칭으로 1933년에 신생 루프트바페의 제식 폭격기로 채용되어 60대가 생산되었다.
그런 다음 엔진에 새로운 카울링을 붙이는 개조를 더한 형식이 몇 대 생산되었다. 이리하여 He 50는 독일 공군 최초의 표준 급강하 폭격기로 취역했으나, 당시는 항공 기술이 눈부신 스피드로 진보하고 있었고 스페인 내전에 파병된 콘돌 군단에 실험용으로 1대가 보내져 운용을 시작할 때도 세련된 기체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 뒤를 이어 Hs 123과 Ju 87이 등장하자마자 일선 부대에서 물러나 훈련기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중 동부전선에서 소련 공군이 야간 침투 폭격 전술을 구사해 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을 지켜본 공군 수뇌부는 1943년 봄부터 야간 전술 폭격기로 다시 전선에 띄우게 된다. 부슈만 비행중대(Staffel Buschmann)로 불리던 제11야간전투비행단(Nachtschlachtgruppe 11)에서 다시 이용된 구식기들 중에서도 가장 낡은 기체였던 He 50은 1944년 여름까지 현역에 머물렀을 뿐, 그 후로는 자취를 감추었다.

3. 수출형 He 66


일본 해군에서 주문했던 He 50의 초기형 은 거추장스러운 플로트가 덧붙여진 수상기였던지라 원래 달린 Junkers L5 직렬 엔진으로는 출력이 딸렸고, 기동성도 육상기 형식에 비해 불안해 테스트 비행 도중에 사고를 일으켜 바다에 가라앉아버렸다. 그 후 엔진을 교체한 육상형 2호기를 통해 랜딩기어와 엔진을 개선한 3호기가 '''He 66'''이라는 명칭의 수출용으로 완성되어 일본에 넘겨졌다. 이것을 받은 일본 기술진들이 함상에서 운용하기에 알맞게 개수한 것이 아이치(愛知航空機) 사에서 생산된 94식 함상폭격기(九四式艦上爆撃機)였다. 독일은 같은 기체를 일본군과 적대관계에 놓여 있는 중국 국민당 군대에 팔아먹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중국은 24대의 하인켈 폭격기를 1934년부터 1936년에 걸쳐 인수받았다.

4. 함재기 실험


최근 새로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He 50은 독일 해군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의 함재기로도 사용되려 했었다. 1939년 상반기, 항모 갑판에서 이착함하는데 필요한 개조를 받은 He 50 T1이 트라베뮌데에서 함상 작전을 위한 광범위한 이착함 실험이 진행되었다. 독일 해군은 이 시험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결국 항모에 탑재될 폭격기로는 Ju 87이 선택되었다. 공군은 시험을 마친 37대의 기체들을 필라우(Pillau) 기지에서 돌려 받아 다시 지상용으로 되돌려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