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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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 J-22 오라오(Soko J-22 Orao)'''
1. 소개
2. 양국 협력 개발
3. 시험 비행
4. 실전에서
5. 제원
6. 파생형


1. 소개


현재는 사라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국영 항공기업 SOKO(Соко)와 루마니아의 IAR(Industria Aeronautică Română) 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공격기가 "독수리"라는 의미를 담은 '''J-22 오라오'''였는데, 루마니아에는 같은 기종을 '''IAR.93 불투르(Vultur)'''라고 부르고 있다. 두 기종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기내 의장이나 항공전자 장비가 조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료에 따라서는 다른 기종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아예 혼동하고 별도의 기종으로 설명되는 일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2. 양국 협력 개발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는 개발에 앞서 국제 협력 개발기구인 YuRom을 먼저 만들고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루마니아 개발진은 테오도르 잔피레스쿠(Teodor Zanfirescu)가 이끌고 유고측은 비도졔 크네예빅(Vidoje Knezević) 대령이 수석 설계자로 임명되었다.

루마니아에서 먼저 완성된 원형 1호기 IAR-93(001호기)은 뒤로 43도 젖혀진 얇은 후퇴익에 3도의 하반각이 주어졌고, 테이퍼 비율이 3에 가로세로비가 3.6이어서 델타익에 가까운 날개가 고익 배치된 형상이었다. 반대로 수평 미익은 낮게 배치되었는데, 이와 같은 형상은 날개 파일런에 무장을 탑재하기 쉽고 주익과 미익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유고측의 VTI Žarkovo 기술진들과 루마니아의 국영 항공연구소(INCAS) 엔지니어들이 협의한 끝에 선택된 것으로 당시에는 SEPECAT 재규어일본미쓰비시 F-1 같은 초음속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라오 원형기에 장착된 엔진은 애프터버너가 없었던 탓에 수평 비행에서는 음속 이하의 속도로만 낼 수 있는 아음속 공격기였다. 원형기 발표로부터 9년이 지난 1983년에 후연기를 갖춘 엔진으로 바꾼 오라오 2부터는 제한적인 초음속 공격기로 거듭났다. 오라오는 기체 설계는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가 협력해 빚어냈더라도 엔진과 항전 장비 상당수는 영국으로부터 구입한 것을 이용했고, HUD프랑스 톰슨(Thompson-CSF) 사의 것을 그대로 써서 개발 비용을 아끼고 실용화를 앞당겼다.

3. 시험 비행


오라오의 시험비행은 루마니아 쪽이 며칠 더 빨랐다. 단좌형 White 001호기는 1974년 10월 31일에 바카우(Bacău) 비행장에서 게오르기 스타니카(Gheorghe Stănică) 대령이 비행에 성공했다. 유고에서 만든 원형 2호기에 해당되는 25002호기는 같은 해 11월에 바타즈니카 공군기지(Batajnica Air Base)에서 블라디슬라프 슬라브예빅(Vladislav Slavujević) 소령이 처녀비행에 도전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복좌형인 NJ-22(25003호기)도 만들어져 시험비행을 시작했다. 복좌형에서는 꼬리날개가 플러터 현상을 일으키는 증상이 발견되어 설계에 수정이 가해졌다. 엔진 강화형인 25101호기는 1984년 11월 22일에 원형 2호기가 떠오른 바로 그 활주로에서 이륙했고, 이때 시험비행을 맡은 마르얀 젤렌(Marjan Jelen) 소령은 조종간을 살짝 앞으로 밀어 완만한 강하 기동을 통해 음속을 돌파했고, 이것은 유고와 루마니아 항공기 개발사를 통틀어 처음 해낸 쾌거였다.
오라오는 기체 설계만큼은 재규어와 미츠비시 F-1, 그리고 정면에서 본 형상은 다쏘-도르니어 알파 제트 같은 기종과 흡사하며 당대의 설계 흐름을 충실히 쫓아 완성도가 높았다. 하지만 장비된 롤스로이스 바이퍼 엔진은 터보제트 엔진이어서 추력에 비하면 연료 소모가 크고, 그런 탓에 저공 비행이 잦은 전술 공격기로 이용될 경우 항속거리가 짧고 전투 행동 반경이 좁은 한계를 드러냈다.

4. 실전에서


J-22를 수령한 첫 부대는 체르클례(Cerklje)에 주둔하고 있는 유고슬라비아 공군의 제82항공여단 예하의 제351정찰 비행중대였다. 이 부대는 1991년에 처음 실전에 동원되기 전까지 J-22 공격기와 NJ-22 훈련기를 갖춘 3개 스쿼드론이 있었다. 이 여단 예하의 제238전투폭격기 비행중대와 골루보비치(Golubovci) 기지의 제241 및 98항공여단의 제242 및 127 전투폭격기 연대에도 J-22가 배치되었다.
J-22는 슬로베니아에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시작될 때 무력시위를 위해 비행했지만 이때만 해도 실제로 폭탄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J-22의 첫 번째 공격 미션은 유고슬라비아군이 크로아티아의 군사 목표물을 공격하는데 출격시킨 1991년이었다. 전쟁 첫 해에 뮤즈 베기치(Muse Begić) 중령이 조종한 NJ-22가 격추되었으나 무사히 탈출했고, 제238전폭기 중대의 토미치(Z.Tomić) 소령은 전사했다.
슬로베니아에서 JNA가 철수한 후, 제82항공여단은 체르클레에서 반자 루카 마호벨자니(Banja Luka Mahovljani) 공군기지로 옮겨갔다. 이듬해인 1992년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자 유고슬라비아군은 8대의 J-22 편대를 스릅스카 공군(Republika Srpska Air Force)에 맡기고 떠났다. 1대의 기체는 전쟁 중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1999년에 유고슬라비아의 J-22는 20회 전투 임무를 수행하면서 코소보군(Kosovo Liberation Army)에 대해 제한적인 전투를 경험했다. 3월 25일, 지보타 뒤리치(Života Ðurić) 중령이 조종한 J-22는 기체 고장인지 조종사의 실수인지 확실하지 않은 요인으로 행방불명되었다. 또한 NATO군의 공습이 포니크베(Ponikve) 공군기지의 격납고에 집중되자 6대의 J-22와 2대의 MiG-21을 포함하여 11대의 군용기가 지상에서 파괴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0년 6월 3일, 세르비아 공군의 슬로보단 요치치(Slobodan Jocić) 소령이 조종하던 J-22가 세르비아 중부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기체의 랜딩기어가 고장나 펼쳐지지 않자, 슬로보단 소령은 위험한 동체착륙을 시도하거나 기체를 버리고 비상탈출을 하는 대신 J-22를 몰고 잔잔한 호수 위에 착수했고, 그 직후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5. 제원


처녀비행 : 1974년 10월 31일
승무원 : 1명
운용 시기 : 1978년~
전장 : 13.02 m / 전폭 : 9.30 m / 전고 : 4.52 m / 익면적 : 26.00 m²
중량 : 5,550 kg~11,080 kg
동력 : 롤스로이스 바이퍼 Mk 633-41 터보제트 엔진 (추력 4,000~5,000 lbf) 2기
최대속도 : 1,130 km/h (해면고도)
실속속도 : 185 km/h
전투행동반경 : 522 km (BL755 폭탄 4발 + 1,500 L 보조 연료탱크 탑재시)
항속거리 : 1,320 km
상승한도 : 15,000 m
상승률 : 5,340 m/min.
무장 : 23mm GSh-23L 기관포 2문 / 하드포인트 5개소 2.8톤
미사일 : AGM-65 매버릭 또는 Grom-1 공대지 미사일
폭탄 : BL755 확산탄, 듀랜달 활주로 파괴폭탄, LGB

6. 파생형


IJ-22 Orao 1 : 유고슬라비아 기술진들이 제작한 프로토타입 1호기
J-22A Orao 1 : 초기형 단좌 공격기로 애프터버너가 없는 Viper Mk 632-41R 엔진을 장비.
J-22B Orao 2 : 165대가 생산된 주력 생산형
NJ-22 Orao : 35대가 생산된 복좌 전술 정찰기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