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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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의 MC 해머.
Stanley Kirk Burrell, 1962년 3월 30일생.
미국의 래퍼이자 댄서. 댄서로서 유명하지 본인의 랩 자체는 그냥 구색맞추기 수준이다.
원 히트 원더라는 오해를 받는데, 원히트원더는 정말 딱 한 곡이 엄청난 경우를 얘기한다. mc 해머는 여러 곡이 대단하기 때문에 원히트원더가 아니다. 전성기가 3, 4년 정도이기 때문에 '''반짝가수'''라고 말한다면 틀린 얘기는 아니긴 하나 어쨌든 원히트원더는 아니다.
1962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빈민가에서 태어나 소싯적 생계를 위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홈구장에서 볼보이로 일하며 타고난 춤 실력으로 구단 팬들의 호응을 받았는데, 그의 외모가 야구선수 행크 아론과 비슷했기에 팬들은 행크의 별명 '해머'를 붙여줬다. 그는 야구선수들의 독려와 지원으로 1986년 <Feel My Power>란 인디 앨범으로 데뷔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 손으로 만들었음에도 댄스 매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 호응을 얻었다.
1988년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해 2집 <Let's Get It Started>로 메이저 무대를 밟았다. 1990년에 발매된 3집 <Please Hammer Don't Hurt'Em>의 수록곡 U Can't Touch This와 1991년 Too Legit to Quit 앨범의 동명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Have U Seen Her[1] , Pray, 2 Legit 2 Quit, Adams Groove라는 노래도 빌보드 탑텐 히트곡이다. 1990년대 뉴 잭 스윙을 앞세운 바비 브라운과 함께 흑인음악 힙합을 빌보드 메인스트림에 올리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으나, 골수 힙합 뮤지션들과 아직도 흑인 차별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흑인들에게는 바비 브라운과 함께 대중에 영합해서 돈을 벌었다는 비판의 대상이다.
1991년에는 그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어린이용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방영했을 정도다. 'Hammerman'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미디어믹스에 적극적이었던 제작사 딕 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하여 MC 해머가 주인공으로 각종 모험을 하는 내용인데 MC 해머는 이 방송에 직접 출연해서 뽀뽀뽀처럼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춤노래도 한다. 애니메이션 품질이 전반적으로 나쁨에도 불구하고,[2] 이런 미디어믹스가 시도되었을 정도로 당시 그가 얼마나 대중적이고 아이코닉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
Hammerman(1991년) 에피소드 중 한 편.
하지만 이후 위 5곡을 뛰어넘는 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3] 초호화 저택을 사서 바닥을 전부 대리석으로 덮고, 스탭은 쓸데없이 200명이나 두고, 인기 덕에 레이블도 만들고 복싱 프로모터 같은 음악 외적인 일에도 손을 벌렸다.
1992년 LA 폭동으로 인한 한국인 피해자 기부 및 사과를 위한 명목으로 11월 12일 한국에 온 후, 다음날부터 14일까지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내한공연도 했으며,(이때 성우 박일의 나레이션으로 랩퍼 해머라고 SBS 광고에서 나온 바 있다.) 기획은 태원예능에서 했다. 하지만 이미 그 무렵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에 인기가 사라진 후라 한국에선 내한공연이 이뤄진 것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망했고, 내한 당시 김포공항에서는 팬들이 없어서인지 소동도 없었다.
1994년에는 2년만에 정규 5집으로 컴백해 데스 로우 레코드 CEO 슈그 나잇이나 독 파운드 같은 갱스터 랩 아티스트들을 참여시켜 과거보다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으나, '신나는 스타일'을 원했던 올드 팬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1995년 정규 6집 때 팝 스타일로 회귀했지만 예전같은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고, 데스 로우에도 잠깐 몸담아 <Too Tight>를 완성했지만 정식 발매까진 이르지 못했다. 1997년 파산 선고를 받고 1998년 7집, 2001년 8집도 내 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목사를 하고 있다. 목회활동의 일환으로 가스펠 앨범을 내기도 했다.
U Can't Touch This. 90년 초반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앨범만 해도 1800만장이 넘게 팔리는등 선전했다. 음악 못지 않게 해머가 보여준 현란한 스텝과 댄스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토끼춤 스텝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곡의 댄스는 마법의 짤방은 물론이고 90년대 이후 전세계 힙합 댄스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이 곡은 릭 제임스(Rick James)가 80년대 초에 발표한 곡인 Super Freak를 무단으로 샘플링한 곡이다. 이 곡을 비롯한 앨범들의 샘플링은 한 귀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프로듀싱이 허술했고,[4] 꼴에 가사는 유치함에 계몽적임이 더해서 커진 인기에 힘입어 쓸데없이 그의 가사를 정치적, 인종적 문제로 확대해석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결국 법정 소송끝에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어 MC 해머는 릭 제임스에게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로열티를 지불해야했고, 그의 평소 헤픈 씀씀이와 함께 MC 해머가 몰락하는 단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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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공전절후의 세계적 히트를 친 싸이의 강남스타일덕에 재조명을 받았고, 싸이와 스쿠터 브런의 요청으로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다. 같이 활동한 싸이의 말로는 50이 넘었어도 여전히 스텝 밟으면 발이 안 보인다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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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의 MC 해머.
Stanley Kirk Burrell, 1962년 3월 30일생.
1. 개요
미국의 래퍼이자 댄서. 댄서로서 유명하지 본인의 랩 자체는 그냥 구색맞추기 수준이다.
원 히트 원더라는 오해를 받는데, 원히트원더는 정말 딱 한 곡이 엄청난 경우를 얘기한다. mc 해머는 여러 곡이 대단하기 때문에 원히트원더가 아니다. 전성기가 3, 4년 정도이기 때문에 '''반짝가수'''라고 말한다면 틀린 얘기는 아니긴 하나 어쨌든 원히트원더는 아니다.
2. 생애
1962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빈민가에서 태어나 소싯적 생계를 위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홈구장에서 볼보이로 일하며 타고난 춤 실력으로 구단 팬들의 호응을 받았는데, 그의 외모가 야구선수 행크 아론과 비슷했기에 팬들은 행크의 별명 '해머'를 붙여줬다. 그는 야구선수들의 독려와 지원으로 1986년 <Feel My Power>란 인디 앨범으로 데뷔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 손으로 만들었음에도 댄스 매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 호응을 얻었다.
1988년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해 2집 <Let's Get It Started>로 메이저 무대를 밟았다. 1990년에 발매된 3집 <Please Hammer Don't Hurt'Em>의 수록곡 U Can't Touch This와 1991년 Too Legit to Quit 앨범의 동명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Have U Seen Her[1] , Pray, 2 Legit 2 Quit, Adams Groove라는 노래도 빌보드 탑텐 히트곡이다. 1990년대 뉴 잭 스윙을 앞세운 바비 브라운과 함께 흑인음악 힙합을 빌보드 메인스트림에 올리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으나, 골수 힙합 뮤지션들과 아직도 흑인 차별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흑인들에게는 바비 브라운과 함께 대중에 영합해서 돈을 벌었다는 비판의 대상이다.
1991년에는 그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어린이용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방영했을 정도다. 'Hammerman'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미디어믹스에 적극적이었던 제작사 딕 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하여 MC 해머가 주인공으로 각종 모험을 하는 내용인데 MC 해머는 이 방송에 직접 출연해서 뽀뽀뽀처럼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춤노래도 한다. 애니메이션 품질이 전반적으로 나쁨에도 불구하고,[2] 이런 미디어믹스가 시도되었을 정도로 당시 그가 얼마나 대중적이고 아이코닉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
Hammerman(1991년) 에피소드 중 한 편.
하지만 이후 위 5곡을 뛰어넘는 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3] 초호화 저택을 사서 바닥을 전부 대리석으로 덮고, 스탭은 쓸데없이 200명이나 두고, 인기 덕에 레이블도 만들고 복싱 프로모터 같은 음악 외적인 일에도 손을 벌렸다.
1992년 LA 폭동으로 인한 한국인 피해자 기부 및 사과를 위한 명목으로 11월 12일 한국에 온 후, 다음날부터 14일까지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내한공연도 했으며,(이때 성우 박일의 나레이션으로 랩퍼 해머라고 SBS 광고에서 나온 바 있다.) 기획은 태원예능에서 했다. 하지만 이미 그 무렵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때문에 인기가 사라진 후라 한국에선 내한공연이 이뤄진 것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망했고, 내한 당시 김포공항에서는 팬들이 없어서인지 소동도 없었다.
1994년에는 2년만에 정규 5집으로 컴백해 데스 로우 레코드 CEO 슈그 나잇이나 독 파운드 같은 갱스터 랩 아티스트들을 참여시켜 과거보다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으나, '신나는 스타일'을 원했던 올드 팬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1995년 정규 6집 때 팝 스타일로 회귀했지만 예전같은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고, 데스 로우에도 잠깐 몸담아 <Too Tight>를 완성했지만 정식 발매까진 이르지 못했다. 1997년 파산 선고를 받고 1998년 7집, 2001년 8집도 내 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목사를 하고 있다. 목회활동의 일환으로 가스펠 앨범을 내기도 했다.
U Can't Touch This. 90년 초반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앨범만 해도 1800만장이 넘게 팔리는등 선전했다. 음악 못지 않게 해머가 보여준 현란한 스텝과 댄스는 수많은 청소년들을 토끼춤 스텝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곡의 댄스는 마법의 짤방은 물론이고 90년대 이후 전세계 힙합 댄스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이 곡은 릭 제임스(Rick James)가 80년대 초에 발표한 곡인 Super Freak를 무단으로 샘플링한 곡이다. 이 곡을 비롯한 앨범들의 샘플링은 한 귀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프로듀싱이 허술했고,[4] 꼴에 가사는 유치함에 계몽적임이 더해서 커진 인기에 힘입어 쓸데없이 그의 가사를 정치적, 인종적 문제로 확대해석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결국 법정 소송끝에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어 MC 해머는 릭 제임스에게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로열티를 지불해야했고, 그의 평소 헤픈 씀씀이와 함께 MC 해머가 몰락하는 단초가 되었다.
[image]
2012년 공전절후의 세계적 히트를 친 싸이의 강남스타일덕에 재조명을 받았고, 싸이와 스쿠터 브런의 요청으로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다. 같이 활동한 싸이의 말로는 50이 넘었어도 여전히 스텝 밟으면 발이 안 보인다고...[5]
[1] The Chi-Lites의 1971년 히트곡을 커버한 곡이다.[2] 딕 엔터테인먼트가 1980년대 후반부터 작품의 양에만 몰두하면서 품질이 전반적으로 급락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해머맨을 포함한 총 9편의 신작을 낸 1991년은 "질보다 양"을 외치던 절정기. 결국 노스텔지어 크리틱이 "너무 망가져서 망가지는 재미로 보는 작품"이라고 본작을 평가하기도 했다.#[3] Pray까지 5곡이다. 더구나 Pray는 해머의 대표곡 U Can't Touch This(8위)를 비롯 Have U Seen Her(4위),Too Legit to Quit(5위),Addams Groove(7위)보다 더 높은 2위까지 올랐던 해머의 최고 히트곡이다.[4] U Can't Touch This를 포함한 대부분의 곡은 모두 MC 해머가 직접 프로듀싱했다.[5] 무한도전에도 방송되었다. 2012년 연말 뉴욕 타임스퀘어 공연에 싸이가 초청되었을 당시, 무도 멤버들 중 강남스타일 뮤비에 출연한 옐로가이 유재석, 엘리베이터 가이 노홍철에 하하가 깍두기로 싸이의 댄스팀 멤버로 함께 했고, MC 해머와도 뒷풀이 회식을 함께 가졌는데, 유재석의 증언에 의하면 육쌈냉면을 좋아하고 소주도 파도타기와 독소빼기를 할 줄 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정형돈은 "전설의 유 캔 터치 디스 그 분이 이걸(독소빼기) 한다고?"라며 어이없어 했지만 사실이라고..